明心寶鑑/동네글방(火金通信)

'굽히는 것'이 '이기는 것'

efootprint 2020. 5. 19. 10:42

아래는 오늘(5.19)의 본문으로 계성(戒性)편 7조(條)의 내용입니다.

 

屈己者(굴기자)는 能處重(능처중)하고 好勝者(호승자)는 必遇敵(필우적)이니라

"자기를 굽히는 자는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을 만나느니라."

 

본문의 시작인 굴기(屈己)는 그 뜻이 굴기지지(屈己之志)와 굴기지신(屈己之身)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전자(前者)가 자신의 가치나 신념을 외부 작용에 의해 굽히고 꺾는 전향(轉向)이나 변절(變節)이라면 후자(後者)는 고개를 숙이는 것, 즉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겸손과 하심(下心)을 뜻합니다. 계성(戒性)편 7조(條)의 본문에서 말하는 굴기(屈己)는 당연히 후자(後者)입니다.

 

자기 몸을 굽혀서 훗날에 중책(重責)을 맡은 굴기(屈己)의 대표 사례로는 과하지욕(胯下之辱)이 있습니다. 한왕(韓王) 신(信)이 무명 시절에 겪었던 이 고사(古事)는 오늘 단톡에서 소개한 아래 주소에 있으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90 )

 

< 과하지욕(袴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라는 뜻. 한신(韓信)은 굴욕을 견디고 묵묵히 때를 기다려 훗날에 자기 뜻을 이룸. >

명심보감의 판본(板本) 중에는 7조(條) 본문의 글자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屈己者, 能處重>에서 '重(무거울 중)' 대신에 '衆(무리 중)'을 쓰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屈己者, 能處重"을 앞에서 "자기를 굽히면 중책을 맡을 수 있다." 로 풀었는데, "屈己者, 能處衆"은 "자기를 굽히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혹은 "자기를 굽혀야 여러 사람을 거느릴 수 있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중(重)이든 중(衆)이든 자기를 굽히는 굴기(屈己)가 성공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줍니다.

 

호승(好勝)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역사에는 싸움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 중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오(吳)나라의 부차(夫差)가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으려고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 와신(臥薪)의 시련 끝에 월(越)나라의 구천(勾賤)과의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 나라와의 전쟁을 그치지 않았고 국력을 고갈시킵니다. 반면 패전(敗戰)으로 모진 수모(受侮)를 당했던 구천(勾賤)은 곰의 쓸개를 맛보는 상담(嘗膽)의 세월을 보내면서 나라의 힘을 키워 20년 후에 오(吳)나라를  굴복시켰고 부차(夫差)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호승(好勝), 즉 이기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던 부차는 종국(終局)에는 패배하고 맙니다. 아무리 강해도 강함에는 끝이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 역사가(歷史家)는 “부차가 망한 이유는 너무 많이 싸우고, 너무 많이 이겼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고, 병법가(兵法家)는 "예로부터 여러 번 이겨서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가 오히려 많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 호승(好勝)은 파멸의 길, 멈출 줄 알아야 함 >

왜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굽히는 굴기(屈己)를 싫어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호승(好勝)을 선택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굴기(屈己)는 자신의 모자람을 드러내거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고 승리를 욕망합니다. 설령 모자람이나 잘못을 자인(自認)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로 자존심(自尊心) 때문이지요.

 

자존심은 사전에서는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혹은 "자기를 높여 스스로 잘난 체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근자(近者)에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이 회자(膾炙)된 적이 있습니다. '가오'는 일본 말로 '얼굴'이나 '체면'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베테랑'에서도 나왔던 대사(臺詞)로 한 사회평론가가 SNS에 올려 매스컴을 장식(裝飾)했던 적이 있고, 국회의원이 법정에서 이 표현을 썼다가 법관의 책망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표현은 바꿔 말하면 "돈은 없지만 자존심은 있다. 그래서 굽히지 않겠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굽히는 굴기(屈己)는 돈과 힘이 없거나 잘못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의 태도이며 자신감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자존심만 있으면 결코 겸손이나 때를 기다리는 태도를 보일수 없습니다. 본문 계성(戒性)편 7조(條)에서는 주변에 영향을 주는 중임(重任)을 맡으려면 자기를 굽히라고, 자존심을 버리라고 경계(警戒)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자존심(自尊心) 대신에 자존감(自尊感)이 개인의 성공과 행복에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존심은 비교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합니다. 반면에 자존감은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성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입니다. 자존심이 상대적 비교에 영향을 받는다면 자존감은 절대적 가치로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나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자존심이 자극을 받은 것'이고, '없는데 있는 척, 모르는데 아는 척' 하면 자존심에 발동이 걸린 것이며,  "니가 뭔데 나에게 그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대신에 친구의 성공에 질투 대신 기쁨이 앞선다면 자존감이 피어나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모르면 모른다고 밝히면 자존감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설령 자신이 실패했더라도 원망과 좌절보다는 재기의 희망을 설계한다면 자존감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 자존심 vs 지존감 >

참고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법으로 세간(世間)에 나와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자신의 단점보다는 강점과 장점에 주목한다

 - 완벽할 수 없는 자신을 수용한다.(완벽주의를 벗어난다)

 - 긍정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 언어 습관을 개선한다.(예: "죄송합니다" 대신에 "감사합니다"를 많이 사용한다)

 -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을 따로 빼 놓는다.

 -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 건강한 식단을 섭취한다.

 - 운동을 더 많이 한다. 

 - 긍정 일기, 감사일기를 1주에 1회 이상을 쓴다.

 

자존감이 확고한 사람은 굴기(屈己)를 하더라도 자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은 승리를 하더라도 우쭐(好勝)대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굽히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한 유명 시인의 시(詩),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를 조금 옮깁니다. 원래의 시 내용이 많아서 일부만 뽑았습니다. 시의 제목인 "지고"라는 표현 대신에 오늘의 언어인 "굽히지"로 바꿔서 읽어 봄직도 합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도종환

 

(전략: 前略)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살아 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너무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보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제피붙이 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며 삽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건데

절대로 지면 안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주고 싶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후략: 後略)

 

자기를 굽히는 대표적인 행동은 고개를 숙이는 인사입니다. 서양의 인사 방식은 '악수'로 무기가 없음을 서로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인사 방식인 '절'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설치 미술가인 유영호 작가의 작품들인 그리팅맨(Greeting Man: 인사하는 사람)입니다. 작가가 '평화', '존중', '화해'의 염원을 담아 모두를 동일한 형태로 조각하였고, 국내는 물론 우루과이 등 해외의 여러 곳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각상은 1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상태' 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진 중 가장 왼쪽은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 설치된 것으로 북녘을 향하도록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차 꿈은 북한 땅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똑같은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이라네요.

작가의 꿈처럼 남과 북이 호승(好勝)이 아닌 굴기(屈己)의 겸손으로 서로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평화', '존중', '화해'로 남북이 하나됨을 이루고 세계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으로 뻗어가기를 소망합니다.(끝)

 

< 국내외에 설치된 그리팅맨, 왼쪽부터 경기도 연천, 제주도, 미국 뉴저지, 우루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