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교(敎): 공자를 가르친 사람들
명심보감의 훈자편(訓子篇)은 자식 교육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금(昨今)의 우리 사정은 아이 교육에 대한 투자는 날로 늘어나는데 걱정 또한 커지는 것 같습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최고인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 교육입니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합쳐져도 밥상머리 교육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면 헛된 꿈이 되고 맙니다. 자식 교육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가르침을 앞으로 몇 차례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의 학습 내용은 훈자(訓子)편 2조(條)입니다. 본문과 풀이를 먼저 보겠습니다.
莊子曰 事雖小나 不作이면 不成이요 子雖賢이나 不敎면 不明이니라.
(장자왈 사수소 부작 불성 자수현 불교 불명)
장자가 말하였다. “일이 비록 작다고 해도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고, 자식이 비록 어질다고 해도 가르치지 않으면 현명해지지 않는다.”
앞서의 근학(勤學)편이 배움(=學)에 대한 것이라면 훈자(訓子)편은 자식 가르침에 대한 잠언들을 모은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 한자는 교(敎), 훈(訓), 회(誨) 등이 있습니다. 관련 글자부터 알아보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합니다.
▣ 가르침을 뜻하는 한자들
▶ 敎(가르칠 교)
敎(교)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敎(교)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으로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습니다. 敎자가 들어가는 단어에는 교육(敎育), 교사(敎師), 교양(敎養), 종교(宗敎), 순교(殉敎) 등으로 많습니다.
▶ 訓(가르칠 훈)
訓(훈)자는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訓자는 言(말씀 언)자와 川(내 천)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천(川)자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 흐름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즉 訓자는 말(言)의 흐름(川)이 자연스러워야 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訓자는 마치 물이 흐르듯이 조리 있게 얘기한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훈이 들어있는 단어로는 훈련(訓練), 훈계(訓戒), 훈화(訓話), 교훈(敎訓), 가훈(家訓) 등 많이 있습니다.
▶ 誨(가르칠 회)
誨자는 '가르치다'나 '인도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言(말씀 언)자와 母(어미 모)자가 결합한 모습이네요 어머니가 회초리 대신에 말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는 채찍으로 때려 가르치기 보다는 새벽녘에 동트는 것처럼 스스로 깨쳐 밝히는 효(曉)의 의미, 즉 배우는 사람에게서 끌어내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중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얘기할 때 억압적인 교(敎)자나 일방적인 훈(訓)이 아니라 굳이 회(誨)자를 사용하였습니다.(술이편 7장, 33장)
▶ 斅(가르칠 효)
斅(효)자는 學(배울 학)과 攴(=攵; 칠 복)자가 합쳐진 것으로 敎(교)자의 옛글자(古字)입니다. 현재 이 글자가 들어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고, 사람 이름으로 작명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습니다. 옛 책에서 쓰인 용례로는 상서(上書) 열명(說命)에 나오는 효학반(斅學半)이 알려져 있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반반(半半)의 동반관계에 있음을 가리키고 있지요. 실제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움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馴(길들일 순/ 가르칠 훈)
馴자는 '길들이다'는 뜻일 경우에는 '순'으로 읽고, '가르치다'는 뜻일 경우에는 '훈'으로 읽습니다. 馬(말 마)와 川(내 천)자가 합쳐진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야생의 짐승을 길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가 들어 있는 단어로는 순치(馴致: 짐승을 길들이는 것) 정도가 있습니다.
▣ 공자를 가르친 사람
논어에는 공자가 누구로부터 배웠는가, 바꿔 말하면 누가 공자를 가르쳤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자장편, 22장)
衛公孫朝가 問於子貢曰 仲尼는 焉學고?
(위공손조 문어자공왈 중니 언학)
위나라의 공손조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는 어디서 배우셨소."
子貢曰 文武之道가 未墜於地하여 在人이라 賢者는 識其大者하고 不賢者는 識其小者하여 莫不有文武之道焉하니 夫子焉不學이시며 而亦何常師之有시리오
(자공왈 문무지도 미추어지 재인. 현자 지기대자 불현자 지기소자 막불유문무지도언 부자언불학 이역하상사지유)
자공이 말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남긴 통치의 도(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 속에서 큰 것을 기억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작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문왕과 무왕의 도(道)를 갖고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공자 선생님께서 어찌 그것을 배우지 않고 놓아 두셨겠습니까. 그러니 또한 어찌 정해진 스승이 따로 있었겠습니까?"
위 글로만 보면 공자에게는 따로 가르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불치하문(不恥下問),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청해 묻거나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때맞춰 공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아래에 두 가지 고사(古事)를 소개합니다.
▶ 문례노담(問禮老聃)
문례노담(問禮老聃)은 '노자에게 예(禮)를 묻다'는 뜻으로 담(聃)은 노자의 자(字)입니다. 공자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 갔습니다. 노자(老子)를 찾아간 것도 그런 자세 때문이었지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를 물었다는 내용은 '사기열전(史記列傳)과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에 등장합니다.
공자는 34세 때 노자를 찾아가서 예(禮)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나 공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교만과 허망(虛妄)을 버리라는 노자의 차거운 반응이었지요. 길이 달랐던 노자로부터 독설(毒舌)에 가까운 피드백을 들었지만 노자를 만나고 돌아온 후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공자의 포용력이 대단합니다.
"나는 지금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날아가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은 존재였다.”
위 그림은 공자의 행적을 화필(畵筆)로 옮겨 놓은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중에 문례노담(問禮老聃)의 일화에 해당하는 장면입니다. 병풍 바로 앞에 앉은 민머리 인물이 노자이고 맞은 편의 무릎 자리로 앉아 있는, 크게 그려진 인물이 공자입니다.
두 성인이 실제로 만났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알려진 것이 적어서 증명하기가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노자가 공자보다 연장자일 것이라는 가정은 대체로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문례노담’을 제작한 유가(儒家)에서는 그림을 통해 마치 두 성인의 만남이 당연한 사실이었다는 듯 한 자리에 앉혀 놓았습니다. 도교와 유가의 시조가 만났으니 천지의 축복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림을 보면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이 자욱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 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孔子)가 구슬(珠)을 꿴다(穿)”라는 뜻의 이 고사(古事)는 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의 일화입니다. 공자는 이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진기한 구슬 하나를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나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문득 가까운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합니다.
"찬찬히, 꼼꼼하게(密: 빽빽할 밀) 생각해 보세요." 공자는 그 아낙의 말대로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를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蜜: 꿀 밀)을 발라 놓았습니다. ‘밀(빽빽할 密)’에서 ‘밀(꿀 蜜)’로 생각이 발전된 것이지요. 그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왔고 공자는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자는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삼인행필유사(三人行必有師 : 세명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의 말처럼 누구에게서나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공자는 주나라의 대부(大夫)인 장홍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노나라의 악관인 사양자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공자천주(孔子穿珠)의 경우에는 뽕나무 밭의 아낙네가 공자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에서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VZIKSDhQkEE
▣ 어머니 안징재(颜徵在)의 가르침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에 대한 지식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물며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颜徵在)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빈약합니다. 기껏해야 그녀의 나이 16세에 70살에 가까웠던 공자의 아버지 숙량흫(叔梁紇)과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고, 그녀가 하는 일이 무녀(巫女)였다는 것이 기억의 대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를 보면 "子雖賢(자수현)이나 不敎(불교)면 不明(불명)이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자식이 비록 어질지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현명해질 수 없다" 는 뜻이니 아무리 생득적(生得的)으로 뛰어난 공자라고 하더라도 주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4대 성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은 공자가 태어나자 어머니인 안징재를 떠났고, 공자가 3살 때에 사망하였습니다. 공자를 키우고 가르치는 일은 오로지 어머니 안징재의 몫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뜻으로 보자면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공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래 파란색 설명은 <옛 성현에게 얻는 자녀교육의 지혜>라는 책자 중 "공자의 어머니가 공자에게 악기의 음률을 가르치다" 부분을 발췌(拔萃)한 것입니다. 어머니 안징재의 자식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법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공자의 어머니는 조기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어릴 때 곧게 바로 잡아야 하며, 적절한 교육을 통해 큰 재목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가 철이 들기도 전에,어머니 안징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악기를구입하여 때로는 직접 연주하기도 하고 때로는아들이 혼자 악기를 가지고 놀도록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안징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악기들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근본이 있어야 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는데에는 무엇보다 예의와 원칙이 중요하며, 순서와 규율이 없이는 심금을 올리는 소리를 낼 수가 없지요. 아이에게 일찌기 예의와 음률, 사물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앞으로 자라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공자는 어려서부터 갖가지 악기를 연주핳 줄 알았고 음악의 규율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 악기들이 어울려 내는 소리를 들으며, 공자는 차츰 음과 음 사이에는 박자와 규율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복잡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률과 박자가 맞아야만 듣기 좋은 음악이 나오듯이, 인간관계도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본분과 예의를 지키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알게 된다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그는 훗날 '인(仁)'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사회적 관계와 인간관계를 주제로 하는 유가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음악을 통해 아들 공자가 세계 지성사(知性史)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가르친 위 사례를 아래 동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www.youtube.com/watch?v=yOt0bJjLXQc
공자의 언행 중에는 음악과 관련된 일화들이 적지 않습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음악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가 19차례 나옵니다.(술이편 13장, 양화편 4장, 선진편 14장, 위령공편 10장과 41장 등) 그의 생애에서 음악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시로써 감흥을 일으키고, 예로써 바르게 하며, 음악으로써 인격을 완성한다.(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태백편 8장)"라고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인식과 기대를 알아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가 음악을 이처럼 높게 평가하고 사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공자 어머니인 안징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것입니다.
“신은 세상에 고루 존재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자식의 아픔을 자신의 어떤 고통보다 크게 느끼며, 평생을 걱정과 기대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의 뒤에 가려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숭고한 모성애(母性愛)가 있기에 어쩌면 인류가 존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