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시로 납치하다(1)

efootprint 2023. 6. 22. 18:42

 

 

생에 감사해 / 칠레가수 비올레타 파라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눈을 뜨면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알아보는 샛별 같은 눈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귀뚜라미 소리, 새 소리,

망치 소리, 기계 소리, 개 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밤낮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소리와 글자를 주어 그것들로

단어들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해주어서.

‘엄마, ‘친구’, ‘형제자매’

그리고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추는 

‘빛’ 같은 말들을.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지친 다리로도

도시와 물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들판을

그리고 당신의 집, 당신의 길, 당신의 정원을

지친 다리로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인간의 정신이 맺은 열매를 볼 때

악에서 멀리 있는 선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이를 볼 때

내 고정된 틀을 흔드는 심장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웃음과 눈물을 주어서

그것들로 행복과 고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어서.

그 웃음과 눈물로 내 노래가 만들어졌지.

당신의 노래도 마찬가지

우리들 모두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나의 이 노래도 마찬가지.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어서.

 

비올레타 파라(1917년 10월 4일 ~ 1967년 2월 5일)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비올레타 파라(1917년 10월 4일 ~ 1967년 2월 5일)

"이 노래는 바로 여러분들의 노래이자 우리 모두의 노래이고,&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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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1966, 한글자막) / Mercedes Sosa & Joan Baez - YouTube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 팻 슈나이더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일

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는 빨아드리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일상의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일상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더 알아차리기 힘들다, 개미와 풀꽃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신의 존재도 알 수 없다고 독일의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는 것들과, 입어 줄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지, 더러운 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양말, 어떤 입술에도 아부하는 숟가락의 매끄러움, 밤새 앉아 울어도 품어주는 의자, 진짜 모습을 감추는 행위를 묵인하는 거울의 너그러움,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 않겠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의 삶을 떠받쳐 주는 평범한 것들의 은총과 같은 도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반짝이는 날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네 삶은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것에서라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기쁘게 살거나 그 어떤 것에서도 아름다움 대신 그늘을 바라보며 살거나. 대개 이렇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질 때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가 평범한 이들과 평범한 사물들을 통해 어느 날 문득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세상은 아름다울까. 바로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날 말이다. 문득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번쩍 띄는 경우가 더러 있다.“어떻게 이것을 못 볼 수가 있었지?” 느끼는 순간 말이다. 평범한 것들에 대한 특별한 느낌,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역사책 읽는 노동자의 질문/베르톨트 브레히트

 

일곱 개의 성문을 가진 테베를 누가 건설했는가?

책에는 왕의 이름들만 적혀 있다.

왕들이 울퉁불퉁한 돌 덩어리를 직접 날랐는가?

그리고 수없이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는가?

황금으로 빛나는 리마의 건설 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된 날 저녁

석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승리의 개선문들로 가득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딛고 승리를 거뒀는가?

끝없이 칭송되는 비잔티움제국에는 궁전들만 있었는가?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곳을 집어삼키는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어 가면서 그들의 노예를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서?

카이사르는 갈리아인들을 물리쳤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황제는 자신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혼자 울었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혼자 승리했을까?

 

모든 페이지마다 승리가 적혀 있다.

누구의 돈으로 승리의 잔치가 열렸을까?

십 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했을까?

 

너무도 많은 목록들

너무도 많은 의문들

 

 

질문에 대답해 보라. 불가사의한 문화유산을 남긴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를 왕들이 세웠나, 노동자들이 건설했나? 대성당과 광장과 수녀원들이 줄비한 페루의 도시 리마는 누구의 노동으로 완성되었나? 동로마제국의 중심지 비잔티움에는 오직 부자들만 살았나? '천재성과 용맹함'으로 켈트족(갈리아인)을 무찌른 로마의 장군카이사르는 정말 혼자서 천재적이고 용맹했나? 무적함대라 불리던 스페인 전함들이 영국군의 공격에 침몰하고 만 명의 병력이 숨졌을 때 눈물 흘린 이는 필립 황제 혼자였나? 유럽 열강이 둘로 갈라져 싸운 7년전쟁에서 승리해 마지막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프리드리히 2세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을 딛고 그 자리에 올랐나? 너무도 많은 목록들, 너무도 많은 의문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나치를 피해 망명 후 유럽과 미국을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대표 시집 <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가 있다.

역사 속 사건들을 나열하며 시인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의 기록 자체가 불공정하다. 그 속에 노동자와 병사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없다. 승리는 언제나 권력자들의 몫이고 희생은 민중의 몫이다. 답해 보라. 오늘날 우리의 국가와 공동체는 누구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이상해/가네코 미스즈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초록색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도 만지지 않는 박꽃이

혼자서 활짝 피어나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한테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한 거야, 하고 말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