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雜同散異)/펀글, 받은 글

'Three days to see'/ 3일간 볼 수 있다면...

efootprint 2025. 3. 3. 08:48

출처: 

 

삼중 신체장애인 헬렌켈러가 쓴 글 “내가 3일간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만일 이 세상에서 삼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삼일 동안에 볼 일들을 이렇게 정리하겠다.
 
내 눈을 뜨는 그 첫날, 나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예쁘고 인자한 나의 스승 에나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내 손가락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내심 많은 얼굴 모습. 그가 입고 있는 아름다운 옷. 그리고 그의
늘씬한 몸매. 이 모든 것들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의 인상을 내 가슴 속 깊이깊이 간직해
두겠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도 집에 모이게 하여 얼굴 모습 하나 하나의 특징도 내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해 두겠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나는 들로 산보를 나가겠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오색찬란한 꽃들과 신비스럽게
생긴 여러 가지 형태의 나무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풀들을 보고 싶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나는 나의 손 끝 감촉으로 아무리 만져서 알려 해도 알 수 없었던 황홀하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그 다음 둘째 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가 밤과 낮이 구별되는 장엄한 일출을 보고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진주 알 처럼 영롱한 아침 이슬과 하늘 높이 나는 종다리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집에 와

아침을 먹고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겠다.
그 곳에서 선사시대의 공룡들과 인류의 찬란한 유적을 보고 오후가 되면 미술관으로 가겠다.
유명한 화가들이 그려 놓은 아름다운 그림들, 조각품들, 내 손가락 촉각으로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었던 신비한 색깔의 하모니를 감상하겠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나의 영혼의 씨앗을 싹틔워 준 매력적인 책들을 보고 싶다.
신기하게 나열된 알파벳의 조화나 그 속에 간간이 끼어 있는 컬러 사진들을 보다가 또 하루가 지날

것이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의 계시와 새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바쁜 거리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을 시작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겠다.
사람들의 입가에서 미소를 본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심각한 각오를 본다면 나는 자랑스러울 것이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슬픔을 본다면 나는 동정을 금치 못할 것이다.
다음에 나는 뉴욕 번화가인 5번 가로 걸어 나와 어떻게 특별한 목적도 없이 단지 색깔의 요지경을 보고

싶다.

내가 확신하건대 군중 속에서 움직이는 여성들의 옷 색깔은 내가 결코 지치지 않을 탐스럽고 어지러운
장면이 될 것이다.
나는 또 외국 여행을 대신 하여 외국인 주거지에 가서 관광을 하겠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와 다른 그들의 문화와 생활 습관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더 깊게 그들의 문제를 탐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영화관으로 뛰어가겠다. 영화관에서 나는 유명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겠다.
내 손가락 끝으로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었던 대형 화면에 비추어지는 총천연색 화면들을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밤이 되면 나는 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건물 숲을 걸으며,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 온 후, 내가 다시 눈을 감아야 할 시간이 되면 지난 삼일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을 볼 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켈러는 그녀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단 3일의 볼 수 있는 기회 마저 신으로부터 부여 받지 못했으나
그의 글과 생각은 두 눈을 다 가진 사람보다 더 예리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그리고 있다.

헬렌켈러는 오히려 두 눈을 다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치 내일이면 눈이 멀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방법은 당신이 지닌 다른 모든 감각들에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즉 내일이면 귀가 멀 지도 모른다는 듯이 음악을 감상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를 음미하도록 하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없어져
버릴 듯이 조심스럽게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십시오.
 
내일이면 이제 다시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들의 향기를 맡아 보고 온갖 음식의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보도록 하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사용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기쁨이 당신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녀는 앞도 못보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기관을 다 기진 사람을 부끄럽게 하기에 중분한 삶을 살았으니 행복이란 무엇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헬렌켈러는 다 가졌으면서도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했다.
 
“때때로 나는 볼 수 있는 내 친구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 보곤 해 왔다.
최근에 나는 한참 동안 숲 속을 산책하고 방금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별로 특별한 게 없었어."라고 대답했다. 한 시간 이상이나 숲 속을 산책하면서 아무것도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나는 단지 감촉을 통해서도 나를 흥미롭게 해 주던 수많은 것들을 발견한다.
 
나는 잎사귀 하나에서도 정교한 대칭미를 느낀다.
나는 손으로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표피를 사랑스러운 듯 어루만지기도 하고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을 쓰다듬기도 한다.
 
봄이 되면 자연이 긴 겨울잠을 깨고 나오려는 첫 번째 몸짓인 새 싹과 새 눈을 찾아보려는 희망으로
나는 나무줄기들을 더듬어 본다.
 
이따금씩 매우 운이 좋은 경우 조그만 나무 가지 위에 살며시 손을 대었을 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새들의 행복한 떨림을 느낄 수가 있다.”

 

 

 

'Three days to see(사흘만 볼수 있다면)'

                                - Helen Keller



I have often thought it would be a blessing
if each human being were stricken blind
and deaf for a few days at some time during
his early adult life.
Darkness would make him more appreciative
of sight; silence
would teach him the joys of sound.

종종 사람이 일찍부터 몇일 동안
눈이 멀거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곤 했왔습니다.
어둠은 볼 수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게 느끼고, 
들을 수 없을 때에
소리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Now and then I have tested my seeing friends
to discover what they see.
Recently I asked a friend
who had just returned from a long walk
in the woods, what she had observed.
"Nothing in particular," she replied.
How was it possible, I asked myself,
to walk for an hour through
the woods and see nothing worthy of note?

종종 난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본것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질문을 하고 합니다.
최근 긴 시간을 숲을 산책을 하고 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숲을 한 시간 동안이나 산책을 하고도
특별히 주목 할 만한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 했을까요?

I who cannot see find hundreds of things to interest me
through mere touch.
I feel the delicate symmetry of a leaf.
I pass my hands lovingly about the smooth skin of
a silver birch or the rough, shaggy bark of a pine.

볼 수 없는 나는 단순한 손길만으로도
흥미 있는 것들을 수 백가지를 찾는답니다.
잎새 하나에서도 섬세한 좌우대칭의 미를 느낄 수 있죠.
은빛 박달나무의 매끈한 껍질,
소나무의 거칠은 껍데기의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In spring I touch the branches
of trees hopefully in search of a bud,
the first sign of awakening nature
after her winter's sleep.
Occasionally, if I am fortunate,
I place my hand gently on a small tree
and feel the happy quiver of a bird in song.

봄엔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난 것을 알리는 자연의 첫 징조, 
새싹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나무 가지들을 더덤죠.
행운이 있다면,
우연히 작은 나무 가지게 가볍게 손을 올렸을 때에 
노래 부르는 새들의 행복한 움직임을 느낄 수도 있죠.

At times my heart cries out with longing
to see all these things.
If I can get so much pleasure from mere touch,
how much more beauty must be revealed by sight.
And I have imagined which I should most like to see
if I were given the use of my eyes, say,
for just three days.
I should divide the period into three parts.

이 때에 제 마음은 이들을 모두를 볼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이 솟구칩니다.
만약 제가 단순한 터치로도 이렇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욱 아름다운 모습들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 단 삼일 만이라도 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볼 것인가를 상상하곤 합니다.
세 부분으로 시기를 나누어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On the first day,
I should want to see the people whose kindness
and companionship have made my life worth living.
I do not know what it is to see into the heart
of a friend through that "window of the soul," the eye.
I can only "see" through my finger tips the outline of a face.

첫날 전 친절과 동료심으로 나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전 영혼의 창 눈을 통해서 친구의 마음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얼굴의 윤곽을 손으로 드덤어서 알 수 있을 뿐이죠.

I can detect laughter, sorrow,
and many other obvious emotions.
I know my friends from the feel of their faces.
How much easier, how much more satisfying
it is for you who can see to grasp quickly
the essential qualities of another person
by watching the subtleties of expression!!,
the quiver of a muscle, the flutter of a hand.
But does it ever occur to you to use your sight
to see into the inner nature of a friend?
Do not most of you grasp casually
the outward features of a face and let it go at that?
For instance, can you describe accurately
the faces of five good friends?

전 웃음과 슬픔 그외 수 많은 확연한 감정을 드덤어서 알 수 있죠.
나의 친구들의 얼굴의 느낌으로 친구를 알아보죠.( 주석:
헨렌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볼 수 있는 당신들은 감정의 미묘한 표현들, 근육육의  떨림과
손 흔듬을 봄으로 다른 사람들의 꼭  필요한 특징들을 빨리
파악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더 쉽고,
얼마나 더 많이 만족스럽겠습니까?
그런데, 볼  수 있는 것으로 친구의 내면 모습을 본적도 있나요?
여러분, 대부분은 얼굴의 겉 모습만 형식적으로 보고,
그렇게 아무런 생각을 더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나요?
당신의 친한 친구의 다섯명의 얼굴을 바로 세세하게 묘사 할 수 있나요?

As an experiment, I have questioned husbands about
the color of their wives' eyes and often
they express confusion and admit that they do not know.
Oh, the things that I should see
if I had the power of sight for just three days!

경험으로 보자면,
전 남편들에게 와이프의 눈동자 색상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종종 그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모른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 내가 3일 동안 볼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보고 싶은 것들!

The first day would be a busy one.
I should call to me all my dear friends
and look long into their faces,
imprinting upon my mind the outward evidences
of the beauty that is within them.

I should let my eye rest, too, on the face of a baby,
so that I could catch a vision of the eager,
innocent beauty which precedes the individual's
consciousness of the conflicts which life develops.
I should like to see the books which have been read to me,
and which have revealed to me the deepest channels
of human life.
And I should like to look into the loyal trusting eyes
of my dogs, the little Scottie and the stalwart Great Dane.

첫날에 바쁜 한 가지가 있죠.
전 사랑하는 친구들을 불럴거고,
그들의 얼굴을 오래 오래 볼겁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의 들어난
증거 하나 하나를 마음속에 새길 겁니다.
전 또 나의 눈을 아기의 얼굴 바라보면서 쉬게 할겁니다.
(그 속에서) 열정적이고,
순수한 미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생명이 개발한 투쟁의 의식에 앞서는 있는 것이죠.
(헬렌 캘러가 이 말이 무슨 뜻으로 했는지????
아마도 아기 얼굴은 투쟁 의식이 생기기 전의
순수한 것이라고 본 것 같다.)
전 내게 읽혀진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들은 인간 삶의 깊은 모습들을 내게 드러내 주었읍니다.
그리고, 난 충성스러운 개들( 작은 스카티와
충실한 그레이트 단)의 눈망울을 보고 싶습니다.

In the afternoon I should take a long walk
in the cool woods
and fill my eyes on the beauties of the world of Nature.
And I should pray for the glory of a colorful sunset.
That night, I think, I should not be able to sleep.

오후에는 산산한 숲을 쭉 산책을 하고,

자연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을 겁니다.
그리고, 화려한 노을의 영광 속에 기도할 겁니다.
그 날 밤 참으로 잠들기 힘들 것 같습니다.


The next day I should arise with the dawn
and see the thrilling miracle by which night is
transformed into day.
I should behold with awe the magnificent panorama
of light with which the sun awakens the sleeping world.
This day I should devote to a hasty glimpse
of the world, past and present.
I should want to see the pageant of man's progress,
and so I should go to the museums.
There my eyes would see the condensed history of the earth -
animals and the races of man pictured
in the native environment:
dinosaurs
and mastodons which roamed the earth before man appeared,
with his tiny stature and powerful brain,
to conquer the animal kingdom.
My next stop would be the Museum of Art,
I know well through my hands the sculptured gods
and goddesses of the ancient Nileland.

다음 날 전 여명과 함께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쓰릴 넘치는 기적을 목도 할 겁니다.
태양이 잠자는 세상을 깨우는
거대한 빛의 파노라마를 감탄할 겁니다.
이 날은 세계의 역사를 서둘러 둘러 보는데
집중을 할겁니다.
인간 진화의 모습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 박물관에 가고 싶습니다.
거기서 제 눈은 지구의 압축된 역사- 야생에
그려진 동물과 인류를 볼  수 있겠죠.

I have felt copies of Parthenon friezes,
and I have sensed the rhythmic beauty of charging
Athenian warriors.
The gnarled,
bearded features of Homer are dear to me,
for he, too, knew blindness.
So on this, my second day,
I should try to probe into the soul of man through his art.

전 판테온 모형을 느껴봤었고,
아테네 전쟁꾼들의 율동감있는
아름다움을 느껴봤습니다.
호머의 울퉁불퉁하고 수염텁수룩한 모습은 제게는 참 소중한 것이죠.
왜냐면 그 역시 눈먼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요.
이날 나의 셋 째날, 전 그의 예술을 통해서
인강의 영혼 속을 탐구해 갈 수 있을 겁니다.

The thing I knew through touch I should now see.
More splendid still,
the whole magnificent world
of painting would be opened to me.
I should be able to get only a superficial impression.
Artists tell me that for a deep
and true appreciation of art one must educate the eye.
One must learn through experience to weigh the merits of line,
of composition, of form and color.
If I had eyes, how happily would I do so.

손으로 더덤어 알았던 것들을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미술의  더욱  화려하고, 어마 어마한 전체 세계가
내게 열려질 겁니다.
나는 엄청난 감동에 사로 잡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가들은 깊고 진정한 감상을 위해서는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게 말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선과 구성 모형과 칼라에서
중점을 두는 것(곳)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눈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The evening of my second day
I should spend at a theater or at the movies.
How I should like to see the fascinating figure of Hamlet,
or gusty Falstaff amid colorful Elizabethan trappings!
I cannot enjoy the beauty of rhythmic movement except
in a sphere restricted to the touch of my hands.
I can envision only dimly the grace of a Pavlova,
although I know something of the delight of rhythm,
for often I can sense the beat
of music as it vibrates through the floor.
I can well imagine that cadenced motion must be
one of the most pleasing sights in the world.
I have been able to gather something
of this by tracing with my fingers the lines
in sculptured marble;
if this static grace can be so lovely, how much more acute
must be the thrill of seeing grace in motion.

둘째날 저녁엔 전 극장이나 영화관에 가고 싶습니다.
헴릿의 환상적인 모습이나 온갖 색상의 엘리자베스 장식구들
가운데 머리 날리는 팔스태프를 보고 싶습니다.
전 손의 터치에서 저항으로 나타나는 세계를 벗어나서
율동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바닥의 진동을 할 때에 음악의 율동을 종종 느낄 수 있기에
리듬의 경케함이 뭔지 좀 알지만 전 파블로바의
우아함을 희미하게 저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 율동적인 모션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잘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리석 조각의 라인을 손가락으로 더덤으로
이것의 무엇인가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데, 이 고정된 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면, 
모션속에서 세련미를 본다는
쓰릴감은 얼마나 생생 할까요?

The following morning, I should again greet the dawn,
anxious to discover new delights, new revelations of beauty.
Today, this third day, I shall spend in the workaday
beauty of men going about the business of life.
The city becomes my destination.

다음날 아침엔 난 다시 여명을 맞을 것이고, 
미의 새로이 찬란함과 드러남을 갈망하게 될겁니다.
오늘은 이 세번째 날, 전 일상 일을 하러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하루를 보낼 겁니다.

First, I stand at a busy corner, merely looking at people,
trying by sight of them to understand something of
what makes up their daily lives.

I see smile and I am happy.
I see serious determination, and I am proud.
I see suffering, and I am compassionate.

첫째, 바쁜 코너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일상의 삶을  만들어가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 몹습을 살필겁니다.
전 미소를 볼 수있고, 행복합니다.
전 중요한 방향 볼 수 있고, 전 자랑스럽습니다.(???)
전 고통을 볼 수 있고, 전 안타까워 할겁니다.

I stroll down Fifth Avenue.
I throw my eyes out of focus,
so that I see no particular object
but only something kaleidoscope of color.
I am certain that the colors of women's dresses
moving in a throng must be a gorgeous spectacle of which
I would never tire.
But perhaps if I had sight I should be like most women -
too interested in styles to give much attention
to the splendor of color in the mass.
From Fifth Avenue I make a tour of the city
- to the slums, to factories,
to parks where children play.
I take a stay-at-home trip abroad by visiting
the foreign quarters.
Always my eyes are open wide to all the sights
of both happiness
and misery so that I may probe deep
and add to my understanding of how people work and live.

전 오번가를 가로질러 갑니다.
전 눈을 흐릿하게 뜨고 특별한 사물에 구에 받지 않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볼 겁니다.
군중들 속에서 움직이는 여성의 옷의 색체가 
제가 한번도 실증을 낼 수 없는
고상한 모습일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제가 시력을 가졌다면,
저도 대부분 여성들 처럼 될겁니다.
대중 속에서 색채의 화려함에, 
많은 주의를 주는 스타일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겁니다.
오번가에서 슬럼가, 공장들,
아이들이 노는 공원으로 관광을 합니다.
전 외국 지방을 방문함으로 홈스테이 여행을 합니다.
항상 제 눈은 행복과 비극의 광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를 이해하는가를
탐구 할 겁니니다.

My third day of sight is drawing to an end.
Perhaps there are many serious pursuits to which
I should devote the few remaining hours,
but I am afraid that on the evening of that last day
I should again run away to the theatre,
to a hilariously funny play, so that I might appreciate
the overtones of comedy in the human spirit.
At midnight permanent night would close in on me again.
Naturally in those three short days
I should not have seen all I wanted to see.

제 세째 날은 끝나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남아 있는 얼마의 시간에 집중할
중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에 희극의 재미있는 연극,
극장에 다시 달려갈 겁니다.
그래서 인간 영혼의 과장된 코메디를 감상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정이 되어 영원한 밤이 나에게 다시 시작 되겠죠.
자연히 이 삼일의 짧은 날 속에 전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을 겁니다.

Only when darkness again descended
upon me should I realize how much I had left unseen.
Perhaps this short outline does not agree with
the programme you might set for yourself
if you knew that you were about to be stricken blind.
I am, however,
sure that if you faced that fate your would use
your eyes as never before.
Everything you saw would become dear to you.

겨우 어둠이 다시 내게 덮쳤을 때에
얼마나 많은 볼 것들이 남았는지 깨닫겠죠.
아마도 이 짧은 글이
당신이 눈먼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운명을 만났다면,
당신은 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 할 겁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이 당신에 소중한 것이 될 겁니다.

Your eyes would touch and embrace every person
and object that came within your range of vision.
Then, at last, you would really see,
and a new world of beauty would open itself before you.
I who am blind can give one hint to those who see:
use your eyes as if tomorrow you would be stricken blind.
And the same method can be applied to the other senses.

당신의 눈들은 당신의 시야에 있는 모든 사람,
사물들과 부딪히고, 포옹 할 겁니다.
그때 마침내 당신은 정말 볼 수 있고, 정말 아름다운
미의 세계가 당신 앞에 열릴 겁니다.
볼 수 없는 저는 볼 수 있는 이들에게 힌트를 드립니다.
내일 당신이 봉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속에서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다른 감각들에 대해서도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Hear the music of voices,
the song of a bird, the mighty strains of an orchestra,
as if you would be stricken deaf tomorrow.
Touch each object as if tomorrow your tactile sense would fail.
Smell the perfume of flowers,
taste with relish each morsel,
as if tomorrow you could never smell and taste again,
make the most of every sense;
glory in all the facets of pleasure and beauty which
the world reveals to you through the several means
of contact which Nature provides.
But of all the senses,
I am sure that sight must be the most delightful.

보컬을, 새의 노래를,
오케스트라의 엄숙한 연주에 내일이면
귀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속에 귀기울이 십시요.
내일이면 감각을 잃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속에
사물들을 만져 보십시요.
다시는 맛고 냄새 맡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꽃의 향기 맡고, 모젤을 맛보십시요.
최선을 다해 감각을 느끼도록 하십시요.
자연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접촉 수단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내는
미와 즐거움의 면면에 영화 돌리십시요.
그러나 모든 감각 중에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전 확신 합니다.

Only when darkness again descended upon me should
I realize how much I had left unseen.
Perhaps this short outline does not agree with
the programme you might set for yourself
if you knew that you were about to be stricken blind.
I am, however,
sure that if you faced that fate your would use
your eyes as never before.
Everything you saw would become dear to you.

겨우 어둠이 다시 내게 덮쳤을 때에
얼마나 많은 볼 것들이 남았는지 깨닫겠죠.
아마도 이 짧은 글이 당신이 눈먼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운명을 만났다면,
당신은 전에는 해본적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 할 겁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은 당신에 소중한 것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