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지(知)"
오늘(6.23) 학습 내용은 성심(省心)편 상[8]입니다. 먼저 본문과 풀이를 아래에 옮깁니다.
▣ 본문 풀이
子曰(자왈) 不觀高崖(불관고애)면 何以知顚墜之患(하이지전추지환)이며 不臨深泉(불림심천)이면 何以知沒溺之患(하이지몰닉지환)이리오 不觀巨海(불관거해)면 何以知風波之患(하이지풍파지환)이리오.
공자가 말하였다. “높은 낭떠러지를 보지 않고서 어찌 굴러 떨어지는 우환을 알겠는가. 깊은 연못에 가보지 않고서 어찌 빠져 죽는 우환을 알겠는가. 큰 바다를 보지 않고서 어찌 세찬 바람과 험한 파도의 우환을 알겠는가.”
○ 崖(언덕 애) 언덕, 낭떠러지, 벼랑
○ 何以(하이) 무엇으로써, 어찌 하여
○ 顚(엎드러질 전) 뒤집히다, 넘어지다
○ 顚墜(전추) 굴러 떨어짐
○ 淵(못 연) 못, 웅덩이, 깊다
○ 沒(빠질 몰) 빠지다, 가라앉다
○ 溺(빠질 익/닉) 빠지다, 지나치다
○ 沒溺(몰닉) 헤어날 수 없게 깊이 빠짐
○ 巨(클 거) 크다, 많다
○ 波(물결 파) 물결, 물결이 일다
위 본문의 출전은 공자가어(孔子家語) 곤서편(困誓篇)으로 직접 맞닥뜨려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배움이며 교훈이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한편으로는 공자 일행이 광(匡) 땅에서 겪었던 산산(辛酸)에 대한 자기 위로의 의마가 강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3가지 내용으로 짜여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풀이 하겠습니다.
▶不觀高崖 何以知顚墜之患(불관고애 하이전추지환)
- 觀(볼 관)은 자세히 보는 것으로 視(볼 시)보다 세밀하게 보는 것입니다.(이 블로그, 3.17, <견/시/관/찰> 참고)
- 高(높을 고)는 崖(언덕 애)를 수식하는 짜임이니 높은 낭떠러지입니다.
- 不觀高崖(불관고애)는 서술어+목적어로 종속절을 구성하며 조건을 나타냅니다.
- 何以(하이)는 '어떻게', '무엇을 바탕으로'의 뜻입니다. 문장 중에 나오는 以+동사는 以 뒤에 之가 생략된 것이며, 이 때 之는 앞에 나온 내용을 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顚墜之患(전추지환)은 굴러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환난입니다.
▶不臨深泉 何以知沒溺之患(불림심천 하이몰닉지환)
- 臨(임할 림/임)은 어떤 장소에 다다름을 뜻합니다
- 深(깊을 심)은 淵(못 연)을 수식하는 짜임이니 深淵(심연)은 깊은 연못입니다.
- 不臨深泉(불림심천)은 서술어+목적어로 종속절을 구성하며 조건을 나타냅니다
- 沒溺(몰닉)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말합니다.
▶不觀巨海 何以知風波之患(불관거해 하이지풍파지환)
- 巨海(거해)는 大洋(대양)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巨(클 거)가 海(바다 해)를 수식합니다.
- 風波(풍파)는 풍파가 일어나서 배가 顚覆(전복)되는 일을 축약하여 표현하였습니다.
▣ 지(知)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는 같은 글자의 반복이 많습니다. 不(불), 可以(가이), 지(知), 之지), 환(患)이 각각 3차례씩 되풀이되어 나옵니다. 오늘은 지(知)자를 글의 소재로 삼아 공부거리를 찾아 보겠습니다.
▶자원(字源) 풀이
知(지)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知자는 소전(小篆)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金文)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知와 智는 같은 뜻으로 쓰였지요.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습니다.
知자를 분해하면 矢(화살 시)와 口(입 구)로 나뉩니다. 화살의 특징은 속도의 빠름과 과녁을 뚫는 관통의 두가지입니다. 그래서 知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풀이도 있고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듯이 상황을 날카롭게 판단해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기도 합니다.
智자가 처음 나타난 금문(金文)에서는 曰(가로 왈)자와 知(알 지)자가 결합한 모양입니다. 曰(가로 왈)은 입을 벌려 말하는 모습으로 "말하기를", "이르되"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애초의 智의 의미는 "아는 것이 많아 입(口)으로 말하는 것(曰)이 화살처럼 거침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요즘은 智자를 知(알 지)에 日(날 일) 이 더해진 글자로 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日은 해(=태양) 혹은 기한(=세월)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지혜(智)는 세상을 밝히는(日) 지식(知)이고 시간(日)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曰(왈) 보다는 日(일)로 푸는 요즘의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 지(知)와 인(仁)
논어에 보면 공자는 인(仁) 만큼이나 지(知)에 대하여 먆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논어에 등장하는두 글자의 빈도수만 보아도 인(仁)이 105회, 지(知)가 117회로서 디른 글자들을 압도합니다.(이 블로그, 5.15, <공자의 교수법> 참고)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술이편 17장)라고 하여 지(知)를 '안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학이편 1장)라고 했는데, 이 때의 지(知)는 '알아주다' 또는 '인정하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지(知)는 명사적으로는 지혜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공자는 남이 자기를 알도록 능력을 갖추는 일도 지헤이고, 남을 알아주는 마음을 갖는 것도 지혜이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강조합니다.(공자가어, 삼서편)
공자는 또한 지(知)를 종종 인(仁)과 대비시켜 말하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인자(仁者)는 어진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자(知者)는 어진 것을 이롭게 여긴다"(이인편 2장)고 하였고,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知者)는 동적이고 인자(仁者)는 정적이다"(옹야편 21장)라고 하였습니다. 그밖에도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안연편 22장)라고 하는 등 자주 두 가지를 비교하였습니다.
▶ 지(知)의 단계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 분류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과 관련하여 흩어져 있는 것들을 유사성에 따라 나누고 묶어 정리하는 방법이지요. 이렇게 하면 대상을 훨씬 쉽고 빠르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공자는 아는 것에 대해 등급을 부여하여 분류하였습니다. 아래는 논어 계씨편 9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孔子曰(공자왈) 生而知之者(생이지지자)는 上也(상야)요 學而知之者(학이지지자)는 次也(차야)요 困而學之(곤이학지)는 又其次也(우기차야)요 困而不學(곤이불학)이면 民斯爲下矣(민사위하의)니라.
공자께서 이르기를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우는 자는 그 다음이다. 어려움을 겪고서도 배우지 않는다면 사람으로서 가장 아래가 된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공자는 스스로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배우기에 열심이었다(논어, 술이편 19장)"라고 하면서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논어, 위정편 11장) "라고 말히셨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배워서 알게 된 것들입니다 실패와 곤경을 겪고서 배운 것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패와 곤경을 겪고서도 배우려 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경우지요. 모른 다는 것을 알고도 배우지 않거나 배우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배우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한편 실용학문에서는 知를 분류하는 방법으로 데이타→정보→지식→지혜로 단계 짓거나 선언적 지식, 절차적 지식, 조건적 지식으로 나누며, 형식지(形式知)와 암묵지(暗默知)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교실 학습이 이루어질 때 이런 내용도 다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안다의 10단계'도 앎(知)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인터넷 등에 떠돈 것인데 출전을 알 수 없습니다. 글쓴 이의 생각을 더해서 '안다의 10단계'를 약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안다의 10단계>
1단계; 들은 적이 있다
2단계: 여러 번 들었다
3단계: 들은 내용을 대충 말할 줄 안다
4단계: 핵심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줄 안다
5단계: 말한 내용을 할 줄 안다
6단계: 말한 대로 행동하고 산다
7단계: 가르칠 줄 안다
8단계: 체계적으로 가르칠 줄 안다
9단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
10단계: 다른 것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안다의 10단계'로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는 적어도 5단계 이상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는 것을 자기 말로 얘기할 수 있고, 말한 대로 행동할 때 그 무엇을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덕 점수가 높다고 해서 도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행이 뒤따를 때 도덕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 개미(蟻)에서 거미(蜘)로?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 글자 하나 하나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자의 모양이나 뜻을 살피다 보면 그 글자를 만들고 썼던 사람들의 사유(思惟)나 느낌, 기대 등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蟻(개미 의)자와 蜘(거미 지)자도 그렇습니다. 蟻(개미 의)는 虫(벌레 훼/충)과 義(옳을 의)의 결합이고, 蜘(거미 지)는 虫(벌레 훼/충)과 知(알 지)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곤충 중에 개미와 거미에게 義(옳을 의)와 知(알 지)라는 뜻깊은 글자를 선물했습니다. 개미(蟻)는 의롭고 순종하는 착한 곤충이라는 뜻이고 거미(蜘)는 지식이 많고 지혜로운 곤충이라는 뜻입니다.
한 때 변화경영 전문가들은 개미(Ant)를 산업화시대의 상징으로, 거미(Web)를 지식경제 시대의 상징으로 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개미의 근면함과 충직함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거미의 연결력(networking)과 개인의 가치만을 높게 칭송하는 우(愚)를 범합니다. 어느 한쪽 만의 지나친 편향(偏向)은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위태롭게 만듭니다.
당대의 석학(碩學) 이어령 교수의 표현대로 아나디지(Anadigi), 즉 아나로그의 따뜻한 감성과 디지털의 차거운 이성의 공존이 필요합니다. 지혜와 지식을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지(智) 글자에 지(知)가 들어 있으니 지식 없는 지혜는 존재할 수 없고, 지혜 없는 지식만으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 나갈 수가 없습니다.
知(=智)는 예로부터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덕목이었습니다. 공자(孔子)는 知(알 지)와 仁(어질 인)과 勇(날랠 용)을 군자의 삼덕(三德)으로 삼았고(논어, 자한편), 맹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인 智를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사단(四端: 仁, 義, 禮, 智)의 하나로 꼽았으며(맹자, 공손추편), 손자(孫子)는 장수가 갖춰야 할 오덕 (五德: 知, 信, 仁, 勇, 嚴)의 첫째 요건으로 지(知)를 내세웠습니다(손자병법, 계편).
사람이 사람다워지고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려면 지식도 필요하고 지혜도 발휘해야 합니다. 지식을 높이고 지혜로 꽃피우는 나와 우리와 세상을 꿈꿉니다. 나부터 공부해서 지식을 높이고 남과 나누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공부해서 남 줍시다!
(2022.7.22)
-> 오이코스 말씀묵상 - 2022년 7월 22일(금)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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