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ootprint 2020. 7. 10. 11:22

오늘(7.10)의 학습은 성심상(省心上)편 [33]으로 본문과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본문 풀이

 

有福莫享盡(유복막향진)하라 福盡身貧窮(복진신빈궁)이요 有勢莫使盡(유세막사진)하라 勢盡寃相逢(세진원상봉)이니라 福兮常自惜(복혜상자석)하고 勢兮常自恭(세혜상자공)하라 人生驕與侈(인생교여치)는 有始多無終(유시다무종)이니라.

"복이 있어도 복을 누리기를 다하지 말라. 복이 다하고 나면 몸이 가난하고 궁색해진다. 권세가 있다고 해도 그 권세를 다 부리지 말라. 권세가 다하면 원수와 서로 만난다. 복이 있을 때는 항상 스스로 아끼고, 권세가 있을 때는 항상 스스로 공손하라. 사람이 살면서 교만하고 사치하면 시작은 있으나 대부분 끝이 없느니라."

 ○ 莫(없을 막) 없다, ~ 하지말라.

 ○ 享(누릴 향) 누리다, 드리다

 ○ 寃(원통할 원) 원통하다, 원한, 원수

 ○ 惜(아낄 석) 아끼다, 애석하다

 ○ 恭(공손할 공) 공손하다, 삼가다

 ○ 驕(교만할 교) 교만하다, 교만

 ○ 侈(사치할 치) 사치하다.

   - 驕侈(교치) 교만하고 사치스러움(=驕奢: 교사)

 ○ 多(많을 다) 많다, 대부분, 흔히

 

위 본문의 속뜻을 헤아리는 중에  "있을 때 잘 해"라는 가요가 떠오르더군요. 행복하다고 느낄 때 잘 해야 복이 달아나지 않습니다. 권세가 있을 때 잘 해야 원한을 사지 않고, 돈이 있을 때 잘 해야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있을 때 잘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본문 33조(條)와 34조(條)의 본문에서는 '다 쓰지 않는 막진(莫盡)과 부진(不盡)'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의 나만을 위해 다 쓰지 않고 내일의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남기는 것이 막진(莫盡)이고 부진(不盡)입니다. 농부는 오늘 굶더라도 씨앗을 남겼다(農夫餓死枕厥種子: 농부아사침궐종자)가 다음의 수확을 위해 뿌립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하는 마음이 곧 배려(配慮)하는 마음입니다.   

 

 

▣ 배려의 가치

 

배려(配慮)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입니다. 한자(漢字)로 풀어보면 配(짝 배)와 慮(생각할 려)가 합쳐졌으니 '짝처럼 여기는 마음'이 배려입니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오래 전부터 배려의 마음을 생활 속에서 보여줬습니다. 다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던 미국의 펄 벅 여사가  1960년에 한국을 다녀간 뒤 남긴 소회(所懷)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펄 벅은 경주를 방문하던 중 특이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해질 무렵, 그녀는 지게에 볏단을 진 채로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를 보게 됩니다. 펄벅은 지게의 볏짐을 소 달구지에 싣고서 타고 가면 편할텐데 구태여 지게에 짐을 지고 가는 것을 이상히 생각하여 농부에게 묻습니다.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펄 벅의 질문에 대한 농부의 대답입니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펄벅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술회합니다.

"서양의 농부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소달구지 위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농부는 소의 짐을 덜어주려고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 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짜릿한 마음의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 번은 늦은 가을까지 따지 않은 감 10여개를 보게 됩니다. 그녀는 동행한 기자에게 질문을 하는데요. "저 감은 왜 따지 않고 있는거죠?" 기자의 대답입니다. "저건 겨울에 새들 먹으라고 남겨 둔 까치밥입니다." 기자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 했습니다. "바로 이거에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고 감동합니다.

 

아래 동영상은 위 두 가지 이야기를 포함하여 그녀의 한국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이나 대추를 따면서도 '까치밥'은 남겨 두는 마음, 기르는 소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배려가 불과 얼마 전까지의 우리 모습이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나 아닌 것과의 나눔을 생활의 지혜로 따랐습니다. 그래서 봄철 씨앗을 뿌릴 때도 셋을 뿌렸었지요. 하나는 하늘(새)에게, 하나는 땅(벌레)에게, 나머지 하나는 나에게 서로 나눈다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오늘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최근 수십년 동안의 경제발전을 통해 얻은 것도 크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의식주(衣食住) 생활은 몰라보게 윤택해졌고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은 한껏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웃간의 인정은 멀어졌고 서로에 대한 배려는 매말라진 것 같습니다.

 

배려를 어떻게 하면 실행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복을 혼자 다 쓰지 말고 남기라고 합니다, 가진 권세와 재산을 남겨서 돌려주라고 가르칩니다. 가당치 않은 소리로 들립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고 남길 재산도 부릴 권세도 없습니다. 남을 배려하다 보면 나만 피곤하고 손해 보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려는그런 것이 아닙니다. 배려를 베풀면 나의 행복감이 커지고 내가 기분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배려의 본질이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배려는 남을 위하기 앞서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배려는 남을 향한 것이지만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배려가 갖는 가치입니다.

 

 

배려문화의 회복    

 

그래서 통 큰(?) 배려보다는 작은 배려의 행동이 소중합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배려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6년을 전후하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공익방송 광고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신문 대신 던져주는 시간 6초”, “어르신과 함께 횡단보도 건너는 시간 23초”, “후배에게 커피 타주는 시간 27초”, “버스 벨 대신 눌러주는 시간 4초”,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시간 하루 1분이면 충분합니다”

 

 

위에서 보듯이 배려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기막힌 아이디어나 많은 비용, 큰 희생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에 대한 배려가 먼저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배려란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배려는 남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입니다. 내가 소중하듯이 상대 역시 소중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존중에는 여러 행동이 있으나 상대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하고 상대의 행복을 돕겠다는 마음이 배려와 존중의 시작입니다. 

 

▶ 판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판단력이란 나의 말이나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인식입니다. 별 생각없이 올린 댓글이 여러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선의(善意)의 행동이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니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추기급인(推己及人)'이 중요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는 접근이 배려입니다.

 

▶ 공중도덕을 지켜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가 정한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는 것은 배려의 필수적 요소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무분별한 행동은 신뢰, 협력, 소통과 같은 사회적 자본을 잠식하며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개인위생수칙을 지키는 것이 타인의 안전 뿐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배려입니다.   

 

 

▶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공로를 낮춥니다. 상대의 약점을 덮어주고 강점을 드러나게 합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내세우지만 남들을 무시하고 쉽게 무례(無禮)를 저지릅니다. 자기는 존중받으려 하지만 남을 깎아 내립니다. 겸손이 배려입니다.

 

▶ 참을성을 가져야 합니다

배려는 많은 경우 참을성을 수반합니다. 자녀 혹은 상대가 내 말을  쉽게 따르지 않아도,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운전 도중 앞 차가 느릿느릿 가더라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지 못하면 짜증과 성냄이 오가고 서로 마음을 상합니다. 때로는 참는 것이 바로 배려입니다.

 

▶ 매일의 만남이 배려의 현장입니다 
일상에서 순간순간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작은 만남이 배려의 현장입니다. 어느곳 보다 배려가 필요한 곳이 가정이고 동네이며 일터입니다. 가족과 친지, 이웃 주민, 직장 동료, 아파트 경비원, 식당 종업원 등에게 건네는 따뜻한 표정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배려입니다.

 

▶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는 내가 행복할 때 여유가 생깁니다. 오직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내키지 않는 배려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감정노동이 되어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때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추스르는 것이 순서입니다. 항공기 비상사태시에 자기가 먼저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후에 다른 사람을 돌아봐야 한다는 이치와 통합니다.

 

 

▣ 맺음말

 

기계문명이 발전할수록,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배려는 더욱 필요한 덕목입니다. 빈부와 귀천을 떠나 각자 가진 것으로 베푸는 배려의 행동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받는 사람도 옆에서 보는 사람도 좋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런 점에서 배려는 이타적(利他的) 이기주의(利己主義)입니다.

 

오늘 본문의 “有始多無終(유시다무종)”, 즉 “시작은 화려해도 끝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반대되는 말을 찾는다면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도 훌륭하다는 뜻의 ‘유종(有終)의 미(美)’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나 만을 위하고, 오늘 만을 위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하고 내일을 위해서 남기고 나누는 배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끝이 좋으려면 끝까지 배려의 덕목을 실천해야 합니다.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