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주(藥酒)와 독주(毒酒)
오늘(7.17) 학습은 성심상(省心上)편 44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 풀이
史記曰(사기왈) 郊天禮廟(교천예묘)에는 非酒不享(비주불향)이요 君臣朋友(군신붕우)에는 非酒不義(비주불의)요 鬪爭相和(투쟁상화)에는 非酒不勸(비주불권)이니라 故(고)로 酒有成敗而不可泛飮之(주유성패이불봉음지)니라.
『사기』에 이르기를 “하늘에 교제(郊祭)를 지내고 종묘에 제례를 모실 때에는 술이 아니면 제향(祭享)하지 않고, 임금과 신하,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술이 아니면 의리가 깊어지지 않고, 다투고 나서 서로 화해할 때에는 술이 아니면 권유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술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으니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고 하였다
○ 史記(사기) : 중국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중국 상대(上代)의 정사(正史)로 130권임
○ 郊(들 교) 성밖, 교사(郊祀)를 지내다,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
- 동지(冬至)에는 남교(南郊)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하지(夏至)에는 북교(北郊)에서 땅에 제사를 지냄
○ 廟(사당 묘) 사당(祠堂: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곳)
○ 禮廟(예묘) 사당에 제례를 올림
○ 享(누릴 향) 누리다. 제사지내다. 흠향함, 신령이 제물을 받음
○ 非酒不享(비주불향) 술이 아니면 흠향하지 않는다.
- '非A不B' ; A가 아니면 B하지 않는다
○ 臣(신하 신) 신하, 신하로 삼다
○ 爭(다툴 쟁) 다투다, 경쟁하다
○ 勸(권할 권) 권하다, 힘쓰다
○ 敗(패할 패) 패하다, 무너지다
○ 泛(뜰 범, 엎을 봉) 뜨다(범), 엎다(봉)
○ 泛飮(봉음) 엎어지도록 마심. 泛은 '뜨다'의 뜻일 때에는 '범'으로, '엎다, 엎어지다'의 뜻일 때에는 '봉'으로 읽음
술은 인류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음식입니다. 사람 일에는 술이 거의 빠지지 않지요. 본문에 나와 있듯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제례 올리는 일에, 임금과 신하, 그리고 벗과 벗 사이에, 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하는 일에, 하나같이 술이 필요합니다. 술애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블로그에 지난 6.12에 올린 <'술'과 '깃발'>이라는 글에서 이미 한 차례 '술'과 관련된 얘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글에서 밝혔듯이 명심보감 초략본(抄略本)에는 총 16 번이나 술(酒)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초략본 전체 263조(條)의 6%에 해당하니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지요. 한 번의 얘기로는 술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죠. 오늘도 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약주(藥酒)와 독주(毒酒)
'술은 모든 약의 우두머리(酒百藥之長: 주백약지장)'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면에 '술은 온갖 병의 뿌리(酒萬病之本: 주만병지본)'라는 아우성도 있습니다. 술은 죄가 없습니다. 술은 사람이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겠지요. 술은 약도 주고, 병도 주는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마시는 사람의 몫입니다.
▶ 약(藥)이 되는 술
♣ 술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술의 원료(原料)나 도수(度數)를 논외로 한다면 음주량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 첫잔은 갈증을 풀기 위해 마시고 둘째 잔은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 마시고,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해서 마시고,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술은 적당히 마셨을 때 그 멋이 우러나오고 약이 되는 것이지요.
채근담(菜根譚)에 '花看半開(화간반개) 酒飮微醉(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차중대유가취)'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약간 취할 만큼 마시면 이 가운데 아름다운 멋이 있다.'는 뜻이지요. 감당할 수 없는 술을 마시면 100프로 독주(毒酒)가 됩니다. 酒飮微醉(주음미취)! 약간 기분좋은 상태에서 멈출 때 술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 고대 중국의 제나라 위왕은 어느날 술에 도통한 순우곤(荀于髡)을 불러다가 "어떻게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벼슬에 9품이 있듯이 술맛에도 9품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대답인 즉 임금이나 손위 어른 앞에서 엎드려 마시는 부복술(俯伏酒)이 가장 맛없는 9품이요, 공석에서 마시는 술(回飮酒)이 다음으로 맛없는 8품이며, 제사나 잔칫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시는 예주(禮酒)가 7품, 주점에 가서 여럿이 마시는 술이 6품, 주점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 5품, 자기집이나 친구집 사랑에서 대작(對酌)하는 것이 4품, 사랑에서 혼자 마시는 독작이 3품, 좋은 경치 찾아 대작하는 것이 2품, 풍광 찾아 독작하는 것이 1품이라 했습니다.
순우곤의 설명을 보면 술의 맛은 다수보다 복수, 복수보다 혼자 마실수록 높아지고, 공석보다 사석의 주품(酒品)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에게 술은 집에서 마시는 것이 정도였고 혼자서 마시는 독작(獨酌)의 주법이 꽤나 발달하게 됩니다. 꽃가지를 꺾어서 잔 숫자를 세며 마신다든가 둥글게 만 연잎에 술을 붓고 대롱같은 연줄기로 빨아 마신 벽통음(碧筩飮)이 그것이지요. 조선 명종 때 재상 상진(尙震)은 달빛 아래서 잔 속에 달을 담아 그 달을 마시는 음주 풍류를 누렸습니다. 어쨌든 순우곤이 말하는 2품과 1품이라면 약이 되는 술이라 할 만합니다.
♣ 술에는 대체로 안주가 따르는 것이 순리입니다. 술도 술이지만 안주가 무엇이냐애 따라 술이 약주가 되기도 하고 독주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주란 곁들여 먹는 음식 뿐 아니라 술을 마실 때의 분위기입니다. 술을 마실 때 자탄(自嘆)에 빠지거나 타인에 대한 분노와 험담의 뒷담화가 안주가 되는 술은 독주(毒酒)입니다. 위로나 칭찬의 언사(言辭)가 오고 가고, 축하의 풍류나 가무가 있는 술은 마음의 안정과 기쁨을 얻고, 흥과 멋을 돋우니 약주(藥酒)가 됩니다.
▶독(毒)이 되는 술
독주는 상술(上述)한 '약이 되는 술'에서 이미 언급이 되었습니다. 술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술은 독주입니다.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마시는 술도 독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좋은 목적과 분위기로 시작해도 술을 마시면 과음하게 되어 약주가 독주로 변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의 여러 종교에서는 술을 아예 금하거나 절제하라고 권합니다.
중동(中東) 지역은 포도주, 맥주와 같은 술의 발상지이지만 그 곳에서 시작된 이슬람교는 철저하게 술을 배격합니다. 그만큼 술에 의한 폐단이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성경의 몇몇 구절에서는 술을 긍정적으로 표현(전도서 9:7, 시편 104:15 등)하기도 했지만, 술에 대한 언급의 대부분은 음주를 멀리 할 것 (이사야 5:22, 잠언 23:30, 고전 6:10, 엡 5:18 등)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불교에는 수백 가지의 계율이 있는데 기본이 되는 것은 오계(五戒)입니다. ①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불살생) ②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불투도) ③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불사음) ④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불망어) ⑤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불음주)가 그것입니다. 금주(禁酒)가 오계의 하나인 것을 보면 본래 불교는 술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에는 음주로 인해서 생기는 36가지 폐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합니다.
飮酒三十六失(음주삼십육실: 술을 먹어서 생기는 36가지 허물)
1, 資財散失(자재산실) 재물이 모이지 않고 돈을 쓰게되며
2, 現多疾病(현다질병) 질병을 앓게되고
3, 因與鬪爭(인여투쟁) 술 때문에 싸우게 되고
4, 增長殺害(증장살해) 남을 헤칠려는 마음이 늘어나고
5, 增長瞋恚(증장진애) 성내는 마음이 늘어나고
6, 多不隨意(다불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지고
7, 智慧漸寡(지혜점과) 지혜가 줄어들고
8, 福德不增(복덕불증) 복덕이 늘지 않고
9, 福德轉減(복덕전감) 복덕이 줄어들며
10,顯露秘密(현로비밀)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11, 事業不成(사업불성) 사업을 이루지 못하고
12, 多增憂苦(다증우고) 걱정 고통이 많아지고
13, 諸根暗昧(제근암매) 눈, 귀등 감각기관이 어두어지고
14, 毁辱父母(훼욕부모) 부모를 욕되게 하고
15, 不敬沙門(불경사문) 스님들을 존경치 않으며
16, 不敬波羅門(불경파라문)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게되고
17, 不敬佛寶(불경불보) 부처님을 공경치 않게 되고
18, 不敬法寶(불경법보) 부처님 진리를 공경치 않으며
19, 親近惡友(친근악우) 나쁜 벗들과 어울리고
20, 遠離善友(원리선우) 좋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고
21, 常棄飮食(상기음식) 음식을 버리는 일이 잦고
22, 形不隱密(형불은밀) 모습이 단정치 못하고
23, 淫慾熾盛(음욕치성) 음욕이 불타듯 하고
24, 衆人不悅(중인불열)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고
25, 多增語笑(다증어소) 쓸데없는 말과 웃음이 늘고
26, 父母不喜(부모불희)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며
27, 眷屬嫌棄(권속혐기) 친척들이 꺼리고 멀리하며
28, 受持非法(수지비법) 옳지못한 일에 따르고
29, 遠離正法(원리정법) 바른진리를 멀리하고
30, 不敬賢善(불경현선) 어질고 착한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31, 違犯過失(위범과실)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32, 遠離涅槃(원리열반) 열반에서 멀어지며
33, 癲狂漸增(전광점증) 미치광이짓이 자꾸 늘게 되고
34, 身心散亂(신심산난) 몸과 마음이 산란하고
35, 作惡放逸(작악방일) 나쁜짓을 하고 게으르게 되어
36, 身壞命終墮大地獄(신괴명종타대지옥) 죽고나서는 큰 지옥에 떨어진다.
▣ 건강한 음주 문화
왼쪽 표는 2014년도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세계 각국의 음주량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술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벨라루스입니다. 상위권 대부분이 동부 유럽국이네요. 한국은 전세계에서는 15번째로 술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술을 소비하는 나라로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같은 해인 2014년도에 발간된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정구선 지음, 팬덤북스)의 작은 소제목 중의 일부분입니다.
∇ 조선 전기 - 전국이 술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 조선 중기 - 음주의 생활화
∇ 조선 후기 - 한양에 술집이 차고 넘치다
책의 내용을 보면 조선은 술 때문에 나라를 잃은 것 같고, 술 덕분(?)에 조선 500년을 지킨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또한 2020년 지금의 대한민국 술문화라고 해도 별로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적지 않습니다.
술은 위로와 칭찬, 축하의 목적을 가지고 마실 때 생활에 활력을 더합니다. 적당히 마셨을 때 약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술자리에서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좌전(左傳)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週以成禮 不繼以淫(주이성례 불계이음), 술을마시며 예를 이루어야지 지나치게 마시지는 말아야한다."
술을 마시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절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술잔에 빠져 죽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害惡)이 커집니다.
술 주(酒)자에 술을 절제하며 마시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술 주(酒)자를 파자(破字)하면, 술은 유시(酉時) 이후에 닭(酉)이 물(氵)을 쪼아 마시듯이 천천히 마시라는 것이지요. 잦은 음주를 피하는것 또한 중요합니다. 1주일에 최소한 2~3일은 술을 쉬어야 합니다. 112와 119 음주법도 추천할 만 합니다. 112는 1주일에 1차례로 2시간 이내로 끝내는 것이고, 119는 1차에서 한가지 술로 9시 전에 끝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술이 인간의 동반자지만 지나치게 마시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지난 6.12에 올린 글, <'술'과 '깃발'>의 마지막 문단의 내용을 오늘 글에도 그대로 인용하며 마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음주(飮酒)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알콜 소비량은 8.7리터(소주로는 115병, 맥주로는 300여 캔)에 달합니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13명이 술때문에 숨지는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년간 10조원에 육박할 만큼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2017년 통계 기준). 술에 대한 명심보감의 경고는 오늘에도 새길 만 합니다.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