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心寶鑑/동네글방(火金通信)

복 부르는 사람, 복 걷어 차는 사람

efootprint 2020. 7. 21. 10:31

오늘(7.21)의 학습은 성심상(省心上)편 47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 풀이

 

天不生無祿之人(천불생무록지인)이요 地不長無名之草(지부장무명지초)이니라.

"하늘은 복록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고, 땅은 이름이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 祿(녹 록/녹) 복, 행복, 녹봉(祿俸).

之(갈 지) ~이(는), ~의, ~한, ~하는

○ 長(길 장) : 길다, 기르다

 

天不生無祿之人(천불생무록지인) : 하늘은 복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는다

○ 주어(天)+서술어(不生)+목적어(無祿之人)의 구조로 "하늘은 천록(天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뜻

○ 천록(天祿)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남의 뜻

○ 之는 관형격 조사로 '~의', '~하는', '~은' → 無祿之人 : 복록이 없는 사람

地不長無名之草(지부장무명지초) : 땅은 이름이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 不長은 기르지 않다.

○ 無名之草는 이름이 없는 풀이나 사실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 이름 없는 풀은 없으니 하찮은 것을 뜻함

 

위 본문은 복 없는 사람 없고, 이름 없는 풀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저마다 한 가지 이상의 능력과 장점을 갖고 태어나니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지요. 요컨데 모든 사람은 자기 몫의 복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고나는 복이지만 각자의 마음이 가는 길에 따라 복을 받거나 복을 걷어 차는 경우가 생깁니다.

 

▣ 같은 조건, 다른 결과

 

같은 환경과 조건이지만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여건이 좋아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훨씬 나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환경이나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복을 불러 들이는 사람이 있고 굴러 들어온 복도 걷어 차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 복을 걷어 차는 사람

 

 

복을 차버리는 사람은 그 특징이 다양합니다. 거칠고 사나우며 쉽게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원망이 잦고, 냉소적이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행동들을 자주 하게 되면 사람들이 멀어집니다. 소통과 협력이 단절되고 복이 도망갑니다.

 

복을 발로 차는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에 자기비하(自己卑下)가 있습니다. 자기 비하와 겸손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본질은 다릅니다. 겸손은 자기가치를 믿고 상대 앞에서 떳떳하지만 자기비하는 열등감과 비굴한 태도를 보입니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자 내가 자발적으로 낮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반면 자기 비하는 자기를 업신여기고 깔보는 것입니다. .

 

맹자에 "人必自侮然後人侮之(인필자모연후인모지), 家必自毁而後人毁之(가필자훼이후인훼지), 國必自伐而後人伐之(국필자벌이후인벌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 여긴 다음에 남이 업신 여기고, 집은 반드시 스스로 허문 다음에 남이 허물며, 국가는 반드시 스스로 친 다음에 남이 친다."는 뜻입니다.

 

맹자는 남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내가 먼저 나를 함부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말을 삼가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 남도 나를 함부로 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합니다. 반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제멋대로 하면 남도 나를 막 대하고 깔봅니다. 외부의 도전이나 역경은 노력에 따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미리 포기하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맹자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天作孽猶可違(천작얼유가위) 自作孽不可逭(자작얼불가환) : 하늘이 낸 재앙은 피할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라고.

 

물론 살다 보면 실패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을 절감할 때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자기비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버려졌다고 느끼는 것은 세상이 버린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를 버릴 때입니다. 내가 버렸는데 남이 도와주고 세워주지는 않습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품위를 지키는 것을 자중(自重)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여 자기 몸을 아끼고 스스로를 돕는 행위를 자애(自愛)라고 합니다. 남을 존중하기 전에 자신부터 존중하고 남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자중자애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남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복을 부르는 사람

 

복을 부르는 사람의 행동 역시 다양합니다. 그 예로서 이미 이 블로그에서 7.14에 올린 <돈과 행복>의 글에 '목표에의 헌신', '친절한 행동' 등 12가지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아래 글은 12가지에  포함된 '낙관성 기르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행복을 부르는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에는 바로 '감사'와 '긍정 마인드'의 토대가 되는 낙관주의가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습니다. 나에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을 부르는 사람은 슬픔 보다는 기쁨에, 단점 보다는 장점에,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래에 동일한 환경에서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을 때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눈앞에 펼쳐지듯이 실감나게 전해주는 글을 소개합니다. 텔마 톰슨(Thelma Thomson)이라는 미국 작가가 그녀의 실제 삶을 묘사한 「빛나는 성벽(Bright Rampart)」이라는 소설을 요약한 것입니다.

 

텔마 톰슨은 2차 대전 중에 장래가 촉망되는 한 육군 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 '모제이브사막' 근처에 배속된 남편을 따라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 가까이에 있고자 이사를 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하기만 했습니다. 못마땅한 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훈련차 나가고 오두막집에 혼자 남게 되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고작 멕시코인이나 인디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英語)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모래바람이 불어 음식물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로 신세 한탄이 나왔고,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이곳에 더 눌러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더 낫겠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형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오라 거나 자신을 위로해 줄 거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답장은 '단 두 문장' 뿐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監獄)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세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

 

너무 간단한 편지 내용에 처음엔 너무나 실망했지만, 이 두 얘기가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자신에게 밤하늘의 별이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주변을 살피던 중 원주민들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그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편물(編物)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 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는 팔지도 않던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 난초, 여호수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고 사막의 식물들을 조사했으며, 사막의 낙조(落照)를 바라보기도 하고, 1백만 년 전 사막이 바다의 밑바닥이었을 무렵에 존재했을 법한 조개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 시켰을까요? '모제이브 사막'은 변함이 없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가짐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그녀는 '비참한 경험'을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었고. 새롭게 발전한 세계에 자극받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출판 사인회서 그녀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너는 불행하다!' '너는 외톨이다!' '너는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는, '마귀의 소리'도 들렸고 "너는 복 받은 사람이다! 이곳으로 너를 인도한 이는 바로 나 하나님이다. 이곳에서 너의 새 꿈을 꾸려무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귀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의 이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복(=행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중에서 어느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복이 오거나 떠납니다.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관주의자의 생각과 행동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 화복동행(禍福同行)

 

어떤 사람이 숲속 나라에 있다는 복(福)을 파는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요정(妖精)들이 뭘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사람들에게 줄 복을 포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보내는 거랍니다.

 

그런데 복을 포장하는 포장지에는 하나 같이 '고난(苦難)'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으니 '고난'은 단단해서 내용물이 파손되지 않고 잘 벗겨지지도 않아 포장용으로는 제격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요정이 하는 말이, "그런데 사람들이 껍데기인 고난이라는 화(禍)만 보고 '어이쿠 무섭다' 하면서 받지 않고 피해 버리거나, 받아 놓고서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복(福)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겁니다.

포장지를 어떻게 벗기는 거냐고 물으니까, 고난이라는 포장지를 벗기고 복을 꺼내는 열쇠는 "감사"라고 합니다. 고난을 무서워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받으면 그 껍질이 벗겨지고 그 속에 들어있는 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이라는 선물을 받으면 화(禍)라는생각에 화(火)를 내고 불평을 해서, 껍질이 더 단단해지는 바람에 포장지 안에 있는 복이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감사로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판소리 흥보가에도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판소리 흥보가의 ‘매품’ 대목을 보면 가난한 흥보가 처자식을 굶길 수 없어 아전에게 찾아가 사정을 호소합니다. 그러자 그는 흥보에게 매를 대신 맞아주고 돈을 받는 매품을 하라고 권합니다. 집에 돌아 온 흥보가 매품 사실을 아내에게 실토하자 그녀의 처절한 절규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전략)…아이구 여보 영감, 중한 가장 매품 팔아 먹고산다는 말은 고금천지(古今天地) 어디 가 보았소.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불쌍한 영감 가지를 마오.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요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가 있는 법이니 설마한들 죽사리까. 제발 덕분에 가지 마오. 병영 영문 곤장 한 대를 맞고 보면 종신 골병이 된답디다. 여보 영감 불쌍한 우리 영감 가지를 마오…(하략).’

 

흥보 아내의 한바탕 소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을 가져보자는 호소입니다. 자신들의 능력을 믿자는 외침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두운 면이 아니라 밝은 면을 바라보려는 긍정의 몸짓입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들 각자의 몫입니다. 화와 복은 문이 따로 없고(화복무문; 禍福無門), 화와 복은 함께 다니기(화복동행: 禍福同行) 때문입니다.

 

밝은 면을 보고, 감사하고, 복 부르며 살건지...

어두운 면에 불만을 품고, 불평하고, 복을 걷어 차며 살건지...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