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ootprint 2020. 8. 18. 08:06

오늘(8.18) 학습은 성심편(省心篇) 하(下) 20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본문 풀이

渴時一滴(갈시일적)은 如甘露(여감로)요 醉後添盃(취후첨배)는 不如無(불여무)니라.

"목마를 때 한 방울 물은 단 이슬과 같고, 술이 취한 후에 잔을 더하는 것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 渴(목마를 갈) 목마르다. 갈증이 나다.

○ 滴(물방울 적) 물방울

○ 甘露(감로) 단 이슬, 감로수로 ‘하늘에서 내려주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비한 약’으로, 천하가 태평하면 하늘이 상서(祥瑞)로운 징후로 내려주는 것이라 함.

○ 添(더할 첨) 더하다. 보태다.

○ 盃(잔 배) 잔

不如(불여) ~만 못함. A不如B : A는 B만 못하다, A보다는 B하는 것이 낫다.

○ 醉後添盃(취후첨배) 不如無(불여무) 취한 후에 잔을 더하는 것은 없는 것만 못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오늘(8.15)도 비는 내리고 있습니다. 올해 장마는 강우량도 많고 기간도 유난히 기네요. 중부지방에서 장마 기간이 가장 길었던 해는 2013년 기록한 49일이라고 합니다. 올해 중부지방 장마는 6월 24일부터 이어지고 있으니 오늘(8.15)로 장마 기간이 53일째로 신기록입니다. 가뭄 뒤에 내리는 비는 생명을 살리는 단비지만 장마 중에 계속 내리고 또 내리는 비는 달갑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일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자세를 물과 술로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선별 복지와 보편 복지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여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을 본문의 가르침으로 풀어 내려고 합니다.

 

▣ 처음처럼

다음은 신영복(1941~2016) 선생이 쓰고 그린 책, 「처음처럼」의 첫 머리에 나오는 글입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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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날, 갈증이 심할 때 마시는 한 잔의 물은 말 그대로 꿀맛이요, 감로수(甘露水)입니다. 그런데 한 잔을 더 마시고, 세 잔째 물을 마시려고 하자 갈증은 사라지고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집니다. 처음 마신 물 한 잔의 만족도는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한 잔씩 더 마실 때마다 만족도가 점점 줄어들지요.

 

위와 같은 현상을 경제 측면에서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효용’이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계 효용’이란 물을 한 잔씩 더 마실 때 더해지는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말하지요. 여기서 ‘한계’라는 말은 ‘더해지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배고플 때 먹는 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의 느낌을 주지만 자꾸 먹을수록 만족도는 떨어집니디. 똑같은 음식이라도 배고플 때 먹는것과 배부른 후에 먹는 것은 차이가 있지요. 마치 선조 임금이 피난길에 맛있게 먹었던 생선을 '은어'라고 멋진 이름을 주었다가 나중에 다시 먹어보니 맛이 예전 같지 않다 하며 '도루묵'이 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은 "목마를 때 한 방울 물은 단 이슬과 같고, 술 취한 후에 한 잔을 더 마시는 것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합니다. 물이건 술이건 처음은 만족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하지만 거듭될수록 만족도는 떨어지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맞아 떨어집니다.

 

♠ 사람이 사는 이치가 대개 비슷합니다. 새해 첫 날은 희망의 발걸음으로 시작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저 그런 일상을 반복합니다. 첫 출근날 방문을 나서면서 다짐했던 당찬 각오는 몇 번의 월급날이 지나면 퇴색해 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던 날에 피어올랐던 설레는 감정은 살아갈수록 시들어 버립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날수록 만족감과 사는 맛이 떨어집니다.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행복감이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이 반복된다면 발전과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자기성장을 꾀함과 동시에 사는 맛과 만족감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도출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빌리자면 '처음처럼'의 경험을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 변화는 좋은 것이고, 또 필요한 것입니다. 발전과 성장은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일이나 일상생활에서 더 나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더 나은 방법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바꿔보는 겁니다.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서 언제나 한 가지 방법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자는 1주일에 2~3차례씩 집 가까이에 있는 경안천을 90분 안팎을 걷습니다. 집이 있는 둔전에서 송담대(중앙시장) 쪽을 왕복할 경우도 있고, 반대편 쪽인 에버랜드역이나 포곡까지 왕복할 때도 있습니다. 냇물을 따라서 걷는 경우도 있고, 제방 길을 따라서 걷기도 하지요. 같은 냇물 길이라도 갈 때는 남쪽 길을 걷지만 돌아올 때는 북쪽 길을 택합니다. 때로는 걷는 시간대도 바꿔봅니다.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변화를 주니 언제나 처음 길을 걷는 느낌으로 새롭고 즐겁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우리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출근할 때 새로운 길을 시도해 볼 수도 있고, 식당에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 하는 시도가 항상 만족을 주지는 않습니다. 출근길이 조금 더 걸리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실패가 큰 성공의 지혜를 줄지도 모릅니다.

 

출근길이나 점심 메뉴와 같은 물리적 변화도 좋지만 보다 근원적인 변화는 관점과 태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처럼' 대하면 같은 길, 같은 사람이지만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혹시 여러분은 부자데(Vuja de)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미 앞서서 수십, 수백 번 경험한 것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 부자데형 접근방식입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도 처음인 것처럼 다르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족감에 의한 새로운 열정이 생기고 자기발전이 촉진됩니다.

원래 부자데(Vuja de)는 데자뷰(De ja vu)라는 심리학 용어와 대비시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로버트 서튼 교수가 내놓은 개념입니다. 데자뷰(De ja vu)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지요. 실제로는 체험한 일이 없는 상황을 전에 체험한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반대로 부자데(Vuja de)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치 첫 경험처럼 느끼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틀에 박힌 일상에 빠져있다면 일부러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고 새로운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목마를 때 마시는 처음 물방울이 최고의 만족감을 주듯이 내가 매일 걷는 길을 처음 걷는 길로 바꾸어 놓을 때 매일의 삶이 만족스럽게 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 맺는 글

不有初, 鮮克有.(미불유초, 선극유종)은 "일을 하는데 시작은 하지만, 끝을 맺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입니다 . 久而敬(구이경지)는 사람을 사귄지 오래 되어도 처음처럼 변함없이 상대를 공경하는 군자의 교제를 뜻합니다. 모두가 처음처럼의 마음이 소중함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여름 휴가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가 중의 여행을 통해 즐거음과 행복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욕망할까요? 여행에는 처음이 많습니다.  처음 맞닥뜨리는 풍광이 신비롭고, 처음 먹는 음식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신기합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으니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첫 마음으로, 처음처럼 걷는 새로운 길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정채봉, 윤동주의 시(詩)로 맺는 글을 마무리 합니다. 글이 다 쓰여져가는 오늘(8 16), 드디어 길고 길었던 장마가 끝났습니다. 뜨겁게 쏟아 붓는 햇볕이 처음처럼 느껴지는 지금입니다.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감사함으로 몸을 돌린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안수를 받던 날의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로운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지리라.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아래를 클릭하시면 위의 시(詩)를 노래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