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에 왕도(王道)가 있을까요?
오늘(8.25)의 학습은 성심편(省心篇) 하(下) 30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 풀이
入山擒虎(입산금호)는 易(이)나 開口告人(개구고인)은 難(난)이니라.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기는 쉽지만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고하기는 어렵다."
○ 入(들 입) 들다, 들어가다
○ 易(쉬울 이, 바꿀 역) 쉽다. 편안하다, 바꾸다, 역경(易經)
○ 擒(사로잡을 금) 사로잡다, 붙잡다
○ 口(입 구) 입, 어귀, 말하다
○ 告(고할 고) 고하다, 알리다, 아뢰다, 타이르다, 깨우치다
♠ 入山擒虎(입산금호)는 입산(入山: 산에 들다)과 금호(擒虎: 호랑이를 사로잡다)의 두 문장을 사건의 순서에 따라 하나의 문장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접속사 '而(말이을 이)'를 사용하여 入山而擒虎(입산이금호), 즉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다'로 풀면 되겠지요. 뒷 문장도 같은 방법으로 開口而告人(개구이고인), 즉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고하다'로 풀면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호랑이 잡는 일이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고하는 것보다 쉽다고 했을까요? 실제로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告(고할 고)'에는 '고하다'나 '알리다'라는 뜻 외에도 '깨우치다', '충고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위 문장은 다른 사람에게 그의 허물을 충고하고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비유를 사용하여 강조한 말입니다.
♠ 상대편의 나이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충고나 설득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충고를 들었거나 설득당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충고를 들으면 곧 내가 상대로부터 비난받고 공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설득을 당할 때는 어떤 면으로는 자신이 열등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충고하고 설득하려고 하면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이 작동하게 되죠. 논어(論語)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임금을 섬김에 있어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하고, 친구 간에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진다.(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 사군삭 이욕의, 붕우삭 이소의/이인편, 26장)"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충고하고 설득한다 하더라도 잘못되면 목적달성은 커녕 관계가 틀어지거나 심한 고초(苦楚)를 겪는 일까지 생깁니다. 충고나 설득에도 효과적인 방법,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위 논어의 문장 '事君數(사군삭)'에서 한자 數(셈할 수, 자주 삭)는 '숫자'를 뜻할 때는 '수'로 읽고 '자주'의 뜻일 때는 '삭'으로, '촘촘하다'의 뜻일 경우에는 '촉'으로 읽습니다.
▣ 먼저 신뢰 쌓기
♠ 충고나 설득이 어려운 것은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받을 때 반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변화를 요구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옳은 말이라도 거슬리기 쉽습니다. 충고나 설득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대의 신뢰를 얻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서 논어(論語)에서 공자의 제자 자하는 “군자는 믿음을 얻은 이후에 백성에게 일을 시킨다.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고 일을 시키면 학대한다고 여긴다. 군주에겐 신뢰를 얻은 이후에 직언을 한다. 임금의 믿음을 얻지 못하고 직언을 하면 비방한다고 여긴다(자장편, 10장)”고 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는지에 따라 수용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바른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을 말하는데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한비자의 다음 이야기는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줍니다.
송나라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소낙비가 내려 집의 담장이 무너졌다. 이를 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당장 담장을 수리하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 같아요.” 같은 날, 이웃집 사람이 찾아와 같은 말을 했다. “당장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을 걸세.”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부자집에 도둑이 들었다. 부자는 누구를 범인으로 추측했을까? 당연히 이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의심을 받기는 커녕 준비성이 있다며 칭찬까지 들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수 있을까요? 집단에 따라서는 성과를 내는 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다. 일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느 조직이건 성과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자기가 표방하는 가치관이나 일과 사람에 대한 태도가 신뢰 형성에 밑바탕이 됩니다. 일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설득의 대가(大家), 안영(晏嬰)
♠ 책과 인터넷에는 커뮤니케이선과 설득에 대한 이론과 기술이 즐비합니다. 각종 강연을 통해서도 자주 소개되고 있지요. 그런데 설득이라면 옛 중국의 안자(晏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안자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때의 명재상인 안영(晏嬰)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안영은 키가 6척으로 135cm(춘추시대 1척은 22.5cm)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박학다식하고 배짱이 있었으며 인품이 훌륭했습니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안영의 인품을 누구보다도 흠모했습니다. 사마천은 “만약 안영이 살아있어 그의 마부가 돼 말고삐를 잡는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다”고 까지 말했지요.
여러 서책에 남아있는 그에 대한 일화(逸話)는 오늘에도 무릎을 치게 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잘 정리된 이론보다는 짦은 이야기에서 더 많은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아래에서는 안영과 관련된 한 가지 얘기를 통해 충고와 설득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 다른 쪽을 두드려 깨닫게 하다
♠ 삽십육계(三十六計) 중에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있습니다. 바둑 격언에도 나오는 말이지요. 동쪽을 공격하려는 듯이 소리치지만 사실은 서쪽을 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설득을 할 때도 직접 상대의 허물을 대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끌어내어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때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안영의 주군(主君)인 경공이 자기가 사랑하던 말을 병들어 죽게 만든 말 관리인을 처형하려 했다. 그러자 안영이 나섰다. “이 자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니, 제가 왕을 위해 제대로 따져서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자 안영이 말 관리인에게 말했다. “너는 세 가지 큰 죄를 지었다. 첫째, 너는 임금이 아끼시는 말을 죽게 한 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하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네가 임금으로 하여금 하찮은 짐승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이도록 한 일이다. 세 번째로, 네가 죽고 나면 이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백성들은 임금을 원망할 것이고 제후들은 비웃을 것이니, 이것이 너의 세 번째 죄이다. 나의 이 논죄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아라.”
이때까지 안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공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재상은 그만두시오! 재상은 그만두시오!”
위의 고사(古事)에서 안영은 임무 실패로 죽게 된 하급관리를 살리고, 일시적인 분노 때문에 그 하급관리를 죽여 자신의 명예와 위엄을 추락 시킬 뻔했던 왕을 지켰습니다. 왕을 직접 설득하기보다는 잘못을 저지른 관리를 꾸짖으면서 왕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라도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설득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면 결국 어려움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 역시 지혜로워야 합니다. 만약 안영이 군주의 올바른 치세 방법을 내세우면서 직접적으로 왕을 설득했다면 왕의 권위는 훼손되고 목적 달성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영은 다른 곳을 두드려 군주가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왕의 권위를 살리면서도 의도했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 안영과 비교해볼 때 우리를 비롯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설득 방법은 어떤가요? 우리는 보통 명령과 회유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고 하죠. 만약 두 방법 다 실패한다면 협박을 합니다. 하지만 명령하고, 회유(誨諭)하고, 협박하는 것은 효과가 아주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
이 말을 못 믿겠다면 여러분이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해보세요.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여러분은 일단 반항하거나 버티지 않나요? 회유나 협박을 당했을 때는 어떨까요? 회유에 쓰인 당근이 사라지거나 협박이 별 것이 아니라면 결과는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맙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충고와 설득을 통해 변화시키는것은 하나의 멋진 사건입니다. 때로는 아주 느린 과정이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거나 상대방의 행동변화를 돕고 싶다면 지혜로운 설득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설득력을 키우는 길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入山擒虎(입산금호)는 易(이)나 開口告人(개구고인)은 難(난)이니라.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기는 쉽지만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고하기는 어렵다."
♠ 가끔은 '이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들립니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나이만 많았지 존경의 대상은 아닙니다. 어디 나라 뿐이겠습니까? 가정에서도 어른 노릇 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입을 열어 자녀에게 훈계하고 설득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가족간에 서로에 대한 영향력, 설득력은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원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고, 어른에게도 있습니다. 자신은 충고를 듣지 않으면서 상대는 내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어른은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우며 아이들을 압박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나 설득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 법칙에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이 있습니다.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작용하면, 동시에 물체 B도 물체 A에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의 힘을 가한다."는 것으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도 부르지요. 이 법칙은 인간관계와 설득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성경 구절도 있지요.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논어 학이편, 16장)"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충고하기 전에 나애 대한 충고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자기를 바꾸는 것은 그보다 쉽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임금이 세종(世宗)이라면 중국에는 당태종(唐太宗)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최고의 명군(明君)으로 평가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직언(直言)과 간언(諫言)에 대해 귀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임금이 신하의 충고와 설득을 따르는데 허조(許稠)나 위징(魏徵)같은 신하들이 어찌 임금을 진심으로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짜 어른은 자신에 대한 충고와 설득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충고와 설득을 당할 일이 있으면 기꺼히 변화에 나서야 합니다. 상대방의 설득력을 높여주면 나의 설득력도 함께 높아집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열고, 상대의 변화 요구에 따르면 신뢰가 쌓여갑니다.
♠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소통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설득에 대한 지식과 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각기 왕도(王道)를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이성(logos), 감성(pathos), 품성(ethos)을 제시하였습니다.
20여년 전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교수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정리한 상호성, 일관성 등의 6가지 원리는 오늘까지도 자주 회자(膾炙)됩니다. 코칭(coaching)이나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ication)와 같은 대화 방법론도 신뢰 기반의 설득술에 해당합니다.
많은 방법론 중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정은 여의치가 않습니다. 필자는 설득술은 고정적인 것이기 보다는 생활 속에 드러나는 각 개인의 인간관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 개인의 설득의 힘은 그(녀)가 교류하는 사람들과의 신뢰의 크기에 좌우됩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입니다. 설득의 왕도(王道)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신뢰 쌓기입니다. 상호 신뢰가 없으면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뢰가 없다면 충고도, 설득도 부질없는 짓입니다. 안영(晏嬰)이 설득술의 본보기가 된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과 인품으로 군주는 물론 백성으로부터도 무한한 신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를 항상 자문(自問)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신뢰의 성(城)을 쌓아가야 합니다. 함석헌 선생이 남긴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의 시작의 글을 조금 바꿔서 맺는 말로 대신합니다.
"그대가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일수 있는가?"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