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문제, 초심으로!
오늘(9.22)의 본문은 치가(治家)편 3조(條)입니다.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과 풀이
太公曰(태공왈) 痴人(치인)은 畏婦(외부)하고 賢女(현녀)는 敬夫(경부)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
○ 太公(태공) 성(姓)은 강(姜)이고 씨(氏)는 여(呂)이며, 이름은 尙(상) 또는 望(망)
○ 痴(어리석을 치) 어리석다, 미련하다
○ 畏(두려워할 외) 두려워하다, 꺼리다, 경외하다
○ 賢(어질 현) 어질다, 현명하다
○ 敬(공경할 경) 공경하다, 삼가다
痴人畏婦(치인외부) 賢女敬夫(현녀경부)
○ 痴人(치인)은 어리석은 사람. 여기에서 人(사람 인)은 '~한 사람'의 의미로 사용됨
○ 畏婦(외부)에서 婦(아내 부)는 인의 대구(對句)로 사용됨.
○ 위 문장에서 人(인)과 夫(부)는 남편을, 女(여)와 婦(부)는 아내를 지칭함
3조(條)의 본문은 중국의 탈무드라고 불리는 증광현문(增廣賢文)에 실려 있는 문구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에 종속되어 제 역할을 못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삼가 대하여 가정의 평안을 도모한다는 말이지요. 태공(太公)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웬지 뒷끝(?)이 있는 말로 생각됩니다. 오늘 글은 태공과 관련된 옛 이야기 하나에 아내를 두려워한 치인(痴人), 남편을 공경했던 현녀(賢女)의 이야기 하나씩을 소개합니다.
▣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첫번째 이야기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으로 이 고사성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 번 쏟은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覆(엎어질/다시 복) 水(물 수) 不(아닐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강태공의 일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다림의 대가 강태공, 성(姓)은 강(姜)이고 씨(氏)는 여(呂)이며, 이름은 尙(상) 또는 望(망)으로 불립니다. 3천여년전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출신입니다. 강태공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이지요. 해당되는 고사(古事)의 내막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강태공은 마씨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이주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태공은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아니면 낚시만 하고 있으니 가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낚시를 해서 물고기라도 잡았다면 모르겠지만 강태공의 낚시바늘에는 애초부터 바늘이 없으니 물고기가 잡힐 리도 만무했지요. 단지 흘러가는 세월을 낚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먹고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은 오로지 부인 마씨의 몫이었습니다. 부인 마씨는 삯바느질 등을 하여 강태공을 뒷바라지 하였지요. 이런 마씨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린 많은 비로 그나마 조금 있는 곡식이 떠내려가는데도 강태굥은 책만 읽었습니다. 마씨는 이러한 강태공을 보고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며 강태공의 곁을 떠납니다.
부인이 떠난 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 강태공의 나이가 80이 가까울 즈음 주나라 제후 희창(훗날 문왕이 됨)이 찾아와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강태공은 문왕의 스승이 되어 작은 제후국에 불과했던 주나라를 강성하게 만듭니다. 이어서 강태공은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의 스승이 되어 무왕과 더불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웁니다.
많은 공을 세운 강태공은 제나라 제후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는데 이때 길을 막고 강태공을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강태공의 전처인 마씨였지요. 강태공의 전처인 마씨는 강태공에게 다시 같이 살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강태공은 병사에게 물 한동이를 담아오라고 시킨 후 병사가 물을 담아오자 마씨에게 물동이의 물을 바닥에 쏟으라고 합니다.
부인은 강태공의 말대로 물동이의 물을 땅바닥에 쏟습니다. 그러지 강태공은 마씨에게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라고 합니다. 쏟아진 물을 물동이에 다시 담을 수만 있다면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지요. 마씨 부인은 쏟아버린 물을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강태공은 마씨에게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고 말하며 가던 길을 재촉하며 떠나 버립니다.
이처럼 '복수불반분'은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로 이후로는 일단 헤어진 부부는 다시 만나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일이든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원상복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 복수난수(覆水難收)라고도 합니다.
위 고사(古事)로 볼 때 강태공은 뛰어난 책략가일지는 몰라도 가정적이거나 적어도 온화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야망만을 앞세웠을 뿐 한 집안의 가장과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의 의무는 소홀하였습니다. 만약 강태공이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생계유지 활동을 했다면 부인 마씨가 강태공을 버리고 떠났을까요?
강태공은 가장으로서 자신이 맡아야 할 책임은 대수롭게 생각하고 마씨 부인의 소행만을 과도하게 탓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꼴이지요. 강태공의 이러한 생각과 처신이 오늘 본문과 같은 뒷끝을 남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물동이 물을 쏟고 다시 담으라는 강태공의 처사에 아내는 분하고 억울합니다.
▣ 홍기청기(紅旗靑旗)
두번째 이야기는 치인외부(痴人畏婦), 즉 아내를 두려워한 어리석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한문에게 말걸기(조경구 지음, 다락원)>라는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겼습니다. 출전(出典)은 조선 광해군 때의 사람인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입니다.
이야기의 제목인 홍기청기(紅旗靑旗)는 사자성어가 아닙니다. 따로 정해진 제목이 없어서 필자가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아래 글은 진짜 웃자고 하는 이야기로 옮긴 것이니 긴장을 푸시고 읽어주기 바랍니다. 원문과 풀이는 이야기 뒤에 따로 마련했습니다.
십만 명의 병사가 아득히 넓은 운동장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습니다. 야,왜 우릴 모이라고 한 거야? 모르지 뭐 , 훈련을 하려는 건지 아냐 무슨 조사를 한대나 봐. 야야야,장군님 나오신다. 조용조용. 장군께서 연단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외칩니다. "에,제군들~ 저어기 연병장 양끝에 깃발을 세워 둔 것이 보이나?’ “예, 보입니다!” 지축을 울리듯 우렁찬 대답. "너희들 중에서 마누라를 두려워하는 자는 붉은 깃발 아래 가서 서고, 마누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 가서 서라!”
뭐,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훈련이 아니네. 그나 저나 뭐라구? 마누라가 무서우면 붉은 깃발? 어디야, 어디. 붉은 깃발 있는데가. 아, 저기구나. 얼렁들 가세. 아니 근데 무슨 사람들이 죄다 이리로만 몰리는 거야? 참 내, 사내 대장부란 것들이 죄다 마누라를 이렇게 겁내서야 어디…… 어이,그러는 자네는 어떻구? 응? 으응~ 그러구 보니 그렇네. 얼른 가자구. 혹시라도 늦게 갔다가 괜히…… 아이구, 이 먼지…….
폭풍과도 같은 소란이 지나가고,모든 병사들이 제 갈곳으로 가서 섰습니다. 먼지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드러나는 광경, 아아니!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십만명의 병사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십만명의 병사들은 서로 돌아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동지가 이렇게 많다는 데 몹시 안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연단에 늠름하게 서 있는 장군께서도 몹시 흐뭇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모두들 붉은 깃발아래 웅성거리며 서 있는데, 저어기 반대쪽 푸른 깃발 아래. 씩씩한 장부 하나 홀로 우뚝 서서 늠름한 자세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으니…… 깜짝 놀란 장군,"내 휘하에 저토록 용감한 병사가 있었단 말인가? 전령, 너 저 병사에게 얼른 달려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용감할 수 있는지 좀 물어보고 오너라.” 전령이 달려가 묻습니다. “옥동자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누라가 안 무서울 수 있니?’
전령의 질문에 대해 푸른 깃발 아래에 섰던 병사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과는 아래 원문과 풀이를 보시면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아주 어렵거나 복잡한 한문은 아니니까 즐겁게 웃으면서 한문을 익혀보면 어떨까요? 한문 풀이 공부도 하실 겸 천천히 읽어 보기 바랍니다.
古者(고자} 有將軍(유장군》하니 領十萬兵(영십만병)이라
옛날에 병사 십만을 거느린 장군이 있었다.
分東西(분동서) 樹大旗(수대기)한대 ᅳ旗青(일기청) ᅳ旗紅(일기홍)하다
동서로 나누어 큰 깃발을 세웠는데,깃발 하나는 푸른 색,다른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曰(왈) 畏妻者立紅旗下(외처자입홍기하》하고 不畏妻者立青旗下(블외처자입청기하)하라 하니
말하기를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아래 서거라!
十萬之軍皆就紅旗下而立(십만지군개취홍기하이립) 하다
십만 명의 병사가 모두 붉은 깃발아래 가서 섰다.
有一丈夫獨立青旗下(유일장부독립청기하)하니 將軍傳令問之(장군전령문지)!하다
한 장부가 홀로 푸른 깃발 이래 서 있으니 장군이 전령을 보내어 물었다.
答曰(답왈) 吾妻常戒我曰 (오처상계아왈)
대답하여 말하였다. “우리 마누라님께서 늘 제게 주의를 주며 말씀 하시기를,
男子三人會(남자상인회)면 必論女色(필론여색)하리니 三男會處(상남회처)에 汝則ᅳ切勿入云(여즉일절물입운)이라 한대 남자란 셋만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이야기하니 남자 셋 모인 곳에 당신은 일절 끼어들지 마슈’ 라고 하였사옵니다.
況今十萬男子所會處乎(황금십만남자소회처호)잇가
하물며, 이제 십만 명의 남자가 모인 곳에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是以不敢違命(시이불감위명)하여 獨立青旗下(독립청기하)로소이다
이런 까닭에 감히 명령을 어길 수 없어 홀로 푸른 깃발 아래 서 있었던 것이옵니다.”
감히 (마누라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장군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로군요. 그래도 명색이 군인인데 ……•
재미도 있고 웃음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히고 허탈한 느낌도 갖게 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세상의 많은 남편들이 아내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남편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아내의 위상은 하늘(天)에 닿을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주변에는 아내의 위력(?)을 대변해 주는 우스개 소리가 즐비합니다. 한자를 비틀어 놓은 것도 있지요. 몇 가지만 열거합나더.
- 인명재처(人命在天\妻) 남편의 목숨은 아내에게 달려 있다.
-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처분을 기다린다.
- 지성감처(至誠感妻) 정성을 다해야 아내가 움직인다.
- 처하태평(妻下泰平) 아내 밑에 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 순처자존(順妻者存) 역처자망(逆妻者亡) 아내에 순종하면 살고, 아내를 거역하면 죽는다.
▣ 거안제미(擧案齊眉)
세번째 이야기는 현녀경부(賢女敬夫), 즉 남편을 받들었던 현명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부부에 대한 고사성어는 거안제미(擧案齊眉), 경전서후(耕前鋤後), 금슬상화(琴瑟相和), 부창부수(夫唱婦隨), 조강지처(糟糠之妻) 등으로 제법 많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 중요한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지요. 아래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하여 부부가 화목하게 살았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거안제미(擧案齊眉)에 대한 것입니다.
擧(들 거) 案(책상 안) 齊(가스릴 제) 眉(눈썹 미)
중국 후한(後漢)때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몰락한 귀족의 후손으로 가난했지만 행동거지나 처신이 훌륭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여 학문에도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양홍의 높은 절조를 흠모하여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였지만 양홍은 모두 거절합니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맹씨 집에 딸이 있었습니다. 몸이 뚱뚱한 데다가 얼굴은 시커멓고 몹시 추했습니다. 그녀는 나이 30이 되도록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처럼 덕 있는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그녀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양홍에게 청혼을 하는데, 양홍은 그 뜻을 받아 예를 갖춰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곧 결혼을 하였습니다.
처녀는 시집가는 날에 곱게 화장을 하고 예복까지 잘 차려 입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록 양홍이 색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겁니다. 색시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양홍은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그리고 곧 머리 모양도 옛날처럼 하고 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지요. 양홍은 기뻐하며 그녀에게 덕요(德曜)라는 자(字)와 맹광(孟光)이란 이름을 지어 줍니다.
그 후부터 아내 맹광은 화장도 않고 산골 농부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돕고 아끼며 살았는데, 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맹광은 밥상을 자기 눈썹 높이까지 올려 남편에게 바쳤다고 하네요.[每歸(매귀) 妻爲具食(처위구식) 不敢於鴻前仰視(불감어홍전앙시) 擧案齊眉(거안제미)} 이처럼 아내는 남편의 의지를 따르고 평생에 걸쳐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렸습니다. 또한 남편이 마음놓고 학문을 하게하여 명저(名著)를 저술하도록 도왔습니다.
위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 · 양홍(梁鴻)〉에 실려 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금실이 좋은 부부를 가리켜 ‘양맹(梁孟)’이라 하고, 남편을 깍듯이 공경하는 것을 가리켜 ‘거안제미’라 칭하게 됩니다. 전거(典據)의 내용 만으로는 상호관계가 일방적이어서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사자성어로 생각됩니다.
▣ 맺는 말
세상에는 부부관계의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헤어져 사는 사람이 있고, 상대를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이 있으며, 서로를 공경하며 사는 부부도 있습니다. 마음같이 안 되고, 생각처럼 안 되며, 이론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관계이고 특히 부부문제입니다. 100만 부부에게는 100만 가지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어쨌든 부부문제의 아이디어를 위 글에서 소개한 마지막 사례에서 찾고자 합니다.
귀곡천계(貴鵠賤鷄)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고니를 귀하게 여기면서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것으로, 멀고 드문 것은 귀하게 여기는 반면, 가깝고 흔한 것은 천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현상은 사람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어쩌다 만나는 사람에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면서 자주 만나서 잘 아는 사이가 되면 조심성이 사라지고 아무렇게나 대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처음 만날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임이 컸습니다. 말은 조심스러웠고 행동에는 예의를 지켰지요. 결혼하여 잘 아는 사이가 되니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변하고 세월이 가면서 설레임이 따분함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언재부터인지 말과 행동에서 예의가 사라집니다. 서로 삼가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면서 부부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위기가 발생합니다.
구이경지(久而敬之)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제(齊)나라 재상이었던 안영(晏嬰, 안자)을 칭찬하면서 한 말입니다. 구이경지(久而敬之)는 "사람을 사귄지 오래 되어도 공경으로 대한다"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이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으로 서로를 오랫동안 공경하여 살아간다면 부부관계는 원만하고 자녀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공경한다 해도 요즘같은 세상에 밥상을 눈썹까지 올리는 행동은 상상할 수도 없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혹시 공경이라는 단어가 고루하거나 상하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존중'이라는 말로 바꿔도 좋습니다. 처음 배우자를 만났을 때의 초심(初心)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래 글은 오늘의 글과 통하는 바가 있어 <자구톡톡> 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부부행실장(夫婦行實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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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구나 어렵구나 부부금슬 어렵구나
좋을때는 알콩달콩 서로서로 위하다가
안좋을땐 날을세워 말도끼로 찍는구나
애고애고 그말도끼 상처흔적 없건만은
가슴속은 불덩이요 오장육부 뒤집히네
∑
무섭구나 무섭구나 세치도끼 무섭구나
분노감정 날을세운 말도끼가 무섭구나
그도끼를 알았거든 정신깨어 맘다스려
가깝다고 쉽게보면 감정도끼 번뜩이고
상대감정 무시하면 그감정에 불길솟네
다스리소 다스리소 내감정을 다스리소
열번참고 백번참아 불길감정 다스리소
∑
부부인연 생각하면 천지간에 제일이라
무엇으로 귀하드뇨 음양이치 귀하드라
니가있어 내가있고 내가있어 니가있는
천지조화 그이치가 부부인연 아니든가
생각감정 다른것은 음양이치 분명한데
내생각만 앞세우니 음양충돌 당연하지
몰라서가 아니라오 양보실천 문제지요
∑
아내마음 헤아리면 남편생각 물이되고
남편생각 헤아리면 아내마음 꽃이되네
이런것이 음양이치 부부지도 아닐런가
다시한번 생각해서 처음으로 돌아가세
부부도리 예의범절 공경지심 으뜸이라
목소리는 밝고낮게 얼굴빛은 부드럽게
서로서로 공경하면 처음처럼 돌아가네
∑
하고픈일 있거들랑 서로양보 양해하고
칠정불화 있거들랑 솔직고백 관용하며
부부예절 지켜가면 가정화목 절로되네
사랑사랑 내사랑아 어화둥둥 내사랑아
천생연분 꽃을피워 길이길이 행복하세
남편이건 아내이건 처음 만날 때부터 밉거나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만나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좋아지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합니다. 금슬 좋은 부부는 상대방에게 맞춰가는 초심의 자세로 삽니다. 부부가 평안하게 해로(偕老)하려면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단점까지 포용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중이 필요합니다.
- 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