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ootprint 2020. 9. 25. 11:55

오늘(9.25) 학습은 안의(安義)편 1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알림: 다음 주간은 추석 휴가로 9.29(화) 및 10.2(금)의 두차례의 블로그 학습을 쉽니다.

 

▣ 본문과 풀이

顔氏家訓曰(안씨가훈왈) 夫有人民而後(부유인민이후)에 有夫婦(유부부)하고 有夫婦而後(유부부이후)에 有父子(유부자)하고 有父子而後(유부자이후)에 有兄弟(유형제)하니 一家之親(일가지친)은 此三者而已矣(치삼자이이의)라 自玆以往(자자이왕)으로 至于九族(지우구족)이 皆本於三親焉(개본어삼친언)이라 (고)로 於人倫(어인륜)에 爲重也(위중야)니 不可無篤(불가무독)이니라.
『안씨가훈』에서 말하였다. “무릇 사람이 있고 난 다음에 부부(夫婦)가 있고, 부부가 있고 난 다음에 부자(父子)가 있고, 부자가 있고 난 다음에 형제(兄弟)가 있다. 한 집안의 친족은 이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이로부터 나아가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삼친(三親)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인륜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인정이 두텁고 진실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顔氏家訓(안씨가훈)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가 엮은 책

○ 夫(지아비 부) 지아비,남편, 무릇, 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 人民(인민) 백성, 사람

而後(이후) ~한 뒤에, 이후(以後

○ 已矣(이의) ~뿐 이다. 而已矣(이이의) ~뿐이다

玆(이 자) 이, 이에, 여기

往(갈 왕) 가다, 뒤, 이후

○ 自玆以往(자자이왕) 至于九族(지우구족) : 이로부터 나아가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自는 ~로부터 至는 ~까지,

于(어조사 우) 어(於)와 같은 뜻임. ~에, ~에서, ~까지

○ 九族(구족) : 고조(高祖)․증조(曾祖)․조(祖)․부(父)․자기(自己)․자(子)․손(孫)․증손(曾孫)․ 고손(高孫:현손(玄孫))의 직계친(直系親)을 중심으로 하여 방계친(傍系親)으로 고조(高祖)의 사대손(四代孫) 되는 형제(兄弟)․종형제(從兄弟)․재종형제(再從兄弟)․삼종형제(三從兄弟)를 포함하는 동종(同宗) 친족(親族)을 말함.

○ 三親(삼친) 세가지 가장 가까운 사이.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를 말함.

焉(어찌 언) 어찌, ~이다, 어조사

倫(인륜 륜) 인륜, 도리

○ 篤(도타울 독) 도탑다(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

 

가훈은 집안의 조상이나 어른이 자손들에게 일러 주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가르침이 없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많은 옛 사람들이 가훈을 두고 자손들을 가르쳤습니다.

 

중국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문가의 여러 가훈(家訓)이 있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안씨가훈(顔氏家訓)』, 당(唐)나라 시대의 『유씨가훈(柳氏家訓)』, 송(宋)나라 시대 사마광(司馬光)의 『가범(家範)』과 주희(朱熹)의 『주자가훈(朱子家訓)』등이 대표적인 가훈들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훈이라 하면 흔히 '정직'이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같은 짧은 구절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가훈에 대한 얫글들을 알아보면 수십 항목의 경구(警句)는 물론 방대한 분량의 서책(書冊)에 이르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글은 본문애 등장하는 '안씨가훈'에 대한 소개, 그리고 오늘에 생각하는 가훈의 의미를 간략히 살펴 보겠습니다.

 

▣ 중국의 최고 훈육서 「안씨가훈」

 

오늘 본문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지식인이었던 안지추(顔之推: 531∼591년)가 후손들에게 남긴 당부의 글입니다. 안씨가훈은 여러 가훈서 중에서도 시대적으로도 제일 앞설 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특출하여 중국 가훈서의 대표로 현재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안지추는 자신이 겪은 구체적인 체험과 사례를 통해 인간관계, 면학, 결혼, 사업, 출세 등 일상의 크고 작은 일에 대처하는 법을 자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지요. 2권 20편 총 206가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중 3가지의 내용을 아래에 옮겼습니다.

 

 

▶ 말과 일을 줄이고 한가지에 집중하라!

 

명금인(銘金人)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은 만큼 실패도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일이 많은 만큼 근심도 많다." 라고 이르고 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뜀박질에 능숙한 자에게는 날개를 주지 않았고, 날아오르는 데 능숙한 자에게는 앞발이 없으며, 뿔이 있는 자는 윗니가 없고, 뒷다리가 발달한 자는 앞다리가 약하다. 대개 하늘의 도란 사물이 모든 것을 갖추지 않도록 했다.

옛사람이 "여러 가지를 하면서도 한두 가지라도 잘하는 일이 없는 것은, 한 가지만 잘 하는 것보다 못하다. 석서(鼫鼠)라고 불리는 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능을 갖추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도 똑바른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근래 들어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맑고 똑똑한 선비였다. 그런데 성품이 여러 가지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면서도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경(經)에 대해 말하자면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역사를 얘기하면 토론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문장은 집록에 실어 후세에 남길 만한 것이 없고, 글씨는 두고서 감상할 만한 것이 없다. 복서(卜筮)도 여섯 가지 중 셋을 맞추지 못하며, 의약에도 열을 치료하면 다섯 밖에 치료하지 못하고, 음악은 수십 명보다 수준이 낮고, 활쏘기는 천 명, 백 명보다도 수준이 아래다. 그리고 천문, 회화, 기박은 물론 선비어, 이민족 문자, 호두 기름 만들기, 주석을 제련하여 은 만들기 등은 대략 그 기본만 이해하고 있을 뿐, 어느 것 하나 능통하거나 익숙하지 못하였다.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그들의 그 신통하고 명석한 머리로 만약 다른 어느 한쪽에 매진했더라면 당연히 정밀하고 신묘한 재주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 좋은 일이면 관여하고 나쁜 일이면 참견하지 말라

 

왕자진(王子晋)은 "밥 짓는 사람을 도우면 밥맛이라도 보지만 싸움을 도우면 상처만 입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좋은 일이면 참견해도 괜찮지만, 나쁜 일이면 아예 참견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개 사물에 손해를 끼치는 일에는 어떤 경우라도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기는 하나, 궁지에 몰린 새가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면 어진 사람은 불쌍히 여기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지에 내몰린 선비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오는데,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오원(伍員 : 오자서)은 어부의 배에 몸을 의지했고, 계포는 광류의 수레에 숨어들었으며, 공융은 장검을 숨겨 주었고, 손숭은 조기를 숨겨 주었다. 이는 전 시대에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겼던 사건들이다. 내가 이와 같은 행동을 하다가, 만약 죄를 얻게 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그러나 곽해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은 일이나, 관부가 땅을 차지하려는 적복에게 마구 화를 낸 사건은 소인배나 할 짓거리지 군자가 행할 일은 아니다. 만약 반역과 반란의 행위로 임금에게 죄를 얻게 되면, 역시 불쌍히 여길 일이 못 된다. 그리고 친구가 위기에 처해 쫓길 경우, 집안 재물과 자신의 힘을 다해 돕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목숨을 제멋대로 여기고 계략을 도모해 무리하게 청탁을 해온다면, 이것은 내가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묵적의 무리들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지나치게 열정적이라 하고, 양주의 무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차갑다고 한다. 창자는 차게 해서는 안 되고 배는 뜨겁게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너희들은 인과 의로써 이를 조절하고 잘 다듬어야 할 것이다.

 

▶ 지나친 욕심은 귀신도 싫어한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귀신의 도리(道理)는 모두 가득 채우는 일을 미워한다. 겸손하고 욕심이 없고, 덜어낼 줄 안다면 언제나 해(害)를 피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옷은 추위와 노출을 덮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음식은 배고픔을 없애주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몸 안에서는 오히려 사치와 지나침을 원하지 않는데, 몸 밖에서는 어찌 교만과 지나침에 끝이 없는가? 주나라 목왕, 진시황, 한무제는 부유하기로 말하면 천하를 모두 가졌고, 귀하기로 말하면 천자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 끝을 알지 못하여 오히려 멸망과 더럽힘을 자초했다.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보통 10경의 좋은 논밭이 있다면 집은 겨우 비바람을 막을 정도면 된다. 또 수레와 말은 겨우 지팡이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재산을 모으는 일은 몇 만금 정도에 그쳐 길흉사 등 급한 일에 쓸 양이면 족하다. 그러나 재물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많아졌다면, 의롭게 나누어 흩어지게 한다. 만약 재물의 양이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 재물을 모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의 3편의 글은 『안씨가훈』 중 사회관계와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을 다스리는 지혜에 관한 글을 선택해 본 것입니다. 이 글들을 읽어보면 1,400여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지만 오늘의 삶과 일상생활에 비춰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안지추의 후손들이 모두 『안씨가훈』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손들의 삶과 사고, 생활방식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만은 틀림없겠지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든 어릴 시절에 보고 겪게 되는 환경과 교육은 한 개인의 인성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오늘에 생각하는 가훈

 

가훈에 대한 글을 정리하려다 보니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가훈이 반드시 필요하느냐부터 따져야 합니다. 가훈이 없다면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가훈의 말뜻 그대로 집안의 어른이 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해야 하는지부터 혼란스러워집니다. 가훈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기다란 설명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가훈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 중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야기 하나를 먼저 소개합니다.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오래 전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이지만 재미도 있고 잔잔한 느낌도 있는 글이어서 그대로 옮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도덕 선생님이 가훈을 써서 가져 오라는 숙제를 내셨다.

'엄마, 우리집 가훈은 뭐에요?' 엄마가 생각 좀 해보고 알려줄게. 이윽고 “맑은 영혼과 건강한 육체라고 이제부터 정하자." 역시 우리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경우도 자식들 교육에 관련된 것은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붓을 찾고 먹을 갈아서  써 주셨다.

 

돌아온 도덕 수업시간, 제대로 써 온 얘들은 칠십명 중 열명 남짓. 도화지에 볼펜으로 휘갈긴 것, 아예 없어서 못 써왔다는 숫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그때에 나왔던 가훈들 중 '참'이 있었다. "참이 너희집 가훈이구나. 근데 뭘로 썼냐?" "집에 붓이 없어서 칫솔로 썼어요."(폭소) 가장 많이 써온 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너무 흔하니 설명 없이 대충 통과.

 

그리고 내 차례. "맑은 영혼과 건강한 육체". 발표를 들으신 선생님은 "으~음" 생각을 하셨다. "누가 썼느냐?"는 질문에 엄마가 쓰셨다고 하니 "훌륭한 어머니시구나" 하였다. 내가 칭찬받는 것 보다 더 기뻤다.

 

급조(急造)된 가훈말고 한문으로 '????'이라고 설명하는 아이가 있었다. 자식 뼈대있는 집안의 자손이네 했다. 써오지 않은 얘들 차례의 발표 중 많이 웃긴 것. 가훈이 “가훈을 잘 지키자"였다. 그래서 가훈이 뭔데?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가훈이 뭔지도 모르는데 가훈을 잘 지키자고? 그냥 준법정신이라고 해라 ㅎㅎㅎ

 

(사진 출처: 경북일보)

 

‘집에 가훈이 있습니까?’ 라는 물음에 ‘예!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초,중학교 시절 학교 숙제로 잠깐 만들어졌다가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있다고 해도 액자로 만들어져 장식품으로만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보다 21세기가 한참 지난 광속(光速)의 변화 시대에 가훈이 필요하기나 한 것일까요?

 

사실 벽에 달라붙은 가훈은 생명이 없는 죽은 가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개그맨이 방송에서 "우리 집은 따로 가훈이 없어요. 엄마 말이 다 가훈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군요. 이어서 말하기를  '흘리지 말고 먹어라,' '샤워하고 물 깨끗이 닦고 나와라', '화장품 쓰면 뚜껑 좀 닫아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곧 가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필자는 이 개그맨의 웃자고 하는 말에 가훈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훈은 한 마디 짧은 단어로 되어 있건 책으로 쓰여 있건 일상의 삶과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훈은 벽에서 내려와 가족의 삶 속에서 살아서 움직여야 합니다. 가훈이 그 필요성을 의심 받는 것은 시효가 지난 옛 유산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상생활과 괴리된 박제(剝製)된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가훈이 일상의 삶 속에서 작동하는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가족 구성원이 진정으로 공유하는 가치여야 합니다. 이미 선대부터 전승된 것이든 새롭게 만드는 것이든 한 가정의 가훈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가훈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구성원들의 확실한 공감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가훈이 '가화만사성'이라고 한다면 '가화만사성'의 의미와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서로 소통하고 공유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가화만사성', 뻔한 말 같지만 가족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화만사성'에 대한 가족 공통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두번째로는 가훈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규범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실천으로 연결이 안 되는 가훈은 말과 글로 그치고 맙니다. 결국 벽에 걸린 장식용 가훈이 되고 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훈은 실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지 보이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면 구성원 각자가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을 실제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에 맞도록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때는 어느 경우인지를 상정(想定)해보고 그럴 경우에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집 저집 똑같은 '가화만서성'이지만 각기 다른 자기 집만의 가훈이 되는 것이지요. 행동규범은 2~5개 정도로 정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정마다 가족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이 있습니다. 가족간 갈등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갈등을 관리하고자 할 때 가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자녀들의 인격 수양과 건강한 가정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앞에 기술한 가훈에 대한 소통 기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훈은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믿고 따라야 할 일종의 가치 기준입니다. 한편 가훈의 내용 중에 부정적인 것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으니 형식으로나마 가훈을 갖추고 유지한다면 알게 모르게 가족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바람직한 것은 가훈이 형식을 넘어 생활 속에 작동하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너나 없이 "내가 가훈이고, 내 뒷 모습이 가훈이다"라는 자세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훈의 문장 하나가 삶의 모든 면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실과 안방,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가훈의 실천은 한 가정은 물론 사회를 밝게 만드는 촛불이 될 것입니다. 

 

 - 글 마침

 

※  다음 주간은 추석 휴가로 9.29(화), 10.2(금)의 두차례 동안 블로그 글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