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관련 고사성어(아~하)
43. 앙옥저서(仰屋著書)
• 풀이 : 대들보를 올려다보며 글 쓸 생각만 하다.
• 의미 :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도 사절한 채 저술에 전심전력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양서(梁書)』 권22 「태조오왕전(太祖五王傳)」.
• 내용 : 양나라 원제 소강(蕭綱)은 생활이 매우 검소하고 소박했다. 오로지 저술에만 힘을 기울일 뿐 다른 향락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공(蕭恭)이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이렇게 즐거움을 멀리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집의 문을 잠그고 침상에 누워 두 눈으로 대들보를 올려다보며 오로지 글 쓸 생각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을 누가 읽을 것이며, 또 누가 그것을 널리 퍼뜨릴까? 청풍명월을 벗 삼아 산수를 유람하며 마음껏 현실의 환락을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 영향 : 후세 사람들은 이 고사성어로 부지런히 글을 쓰는 모습을 나타냈는데, 종종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신음 소리를 내며 글을 짓는다는 식의 조롱기 섞인 표현도 있었다.
44. 영월독서(映月讀書)
• 풀이 : 달빛을 비추어 책을 읽다.
• 의미 : 가난하고 힘든 생활에도 공부를 버리지 않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 출전 : 『남제서(南齊書)』 권55 「강필전(江泌傳)」.
• 내용 : 남제 시대 강필(江泌)은 어려서 집이 너무 가난해 낮에는 짚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했다. 저녁이면 시간을 내서 책을 읽었는데 집이 가난하다 보니 등불을 밝힐 수 없었다. 강필은 책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달빛을 빌려 힘들게 책을 읽었다.
• 영향 : 이 고사 역시 널리 전파되어 다양한 형식으로 변형됐는데, ‘영월(映月)’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탕현조(湯顯祖)는 「목단정(牧丹亭)」이란 시에서 “옛사람은 반딧불이를 자루에 담거나 달빛을 빌려 책을 읽었다”고 썼다. 그런가 하면 맹교(孟郊)는 「북교빈거(北郊貧居)」라는 시에서 “가난한 집 밤 등불 꺼지니 밝은 달빛이 내 책을 비추는구나”라고 노래했다.
45. 오하아몽(吳下阿蒙)
• 풀이 : 오나라 땅의 여몽.
• 의미 : 학식이 아직 얕은 사람을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
• 내용 :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성어다. 손권이 여몽(呂蒙)에게 독서를 권했지만 여몽은 군대 일이 바빠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자 손권은 “네가 바쁘면 나만큼 바쁘겠느냐? 나는 그래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라고 나무랐다. 여몽은 크게 깨닫고 분발해 책을 읽었다. 오래지 않아 여몽의 학문은 당시 보통 유학자들의 수준을 넘어섰고 노숙(魯肅)과 얘기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노숙은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며 여몽을 칭찬했고, ‘오나라에 (무식한) 여몽이 살고 있지’라는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 영향 : 이 고사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향으로 대단히 유행했다. 하지만 그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몽오하(阿蒙吳下)’, ‘아몽(阿蒙)’ 정도가 남아 전한다'
※ by 요섭: 괄목상대(刮目相對)
46. 온서편포(溫舒編蒲)
• 풀이 : 온서가 부들에 글을 쓰다.
• 의미 : 언제 어디서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 출전 : 『한서(漢書)』 권51 「노온서전(路溫舒傳)」.
• 내용 : 한나라 사람 노온서(路溫舒)는 거록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그 지역에서 문지기를 했다. 온서가 양을 방목할 때면 손가는 대로 부들을 꺾어 그것을 마치 죽간처럼 만든 후 거기에 글을 썼다.
• 영향 : 이 고사성어는 주로 ‘편포(編蒲)’라 하여 배움을 권하는 다른 고사성어와 함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아동용 교과서 『삼자경』에도 수록되어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격려했다.
47. 왕순연필(王珣椽筆)
• 풀이 : 왕순의 서까래만 한 붓.
• 의미 : 중요한 작품이나 문장 또는 뛰어난 글솜씨를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진서(晉書)』 권65 「왕도전(王導傳)」.
• 내용 : 진나라 사람 왕순(王珣)은 잠을 자다 누군가가 서까래만 한 붓을 주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나라에 큰일이 생겨 중요한 문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뒤 효무제가 죽고 관련된 중요한 문장을 모두 왕순이 맡아서 기초했다.
• 영향 : 이 전고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 때문에 후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여연필(如椽筆)’, ‘여연건필(如椽健筆)’, ‘연필(椽筆)’, ‘필여연(必如椽)’ 등 다양하게 변용되었는데 모두 ‘서까래만 한 붓’이란 뜻이다. 또 ‘대수필(大手筆)’이라 하여 중요한 문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진서』 「서릉전(徐陵傳)」에 보면 “세조와 고종 때 국가의 대수필(중요한 문장)은 모두 서릉이 기초했다”는 대목이 있다.
48. 우각괘서(牛角掛書)
• 풀이 : 소뿔에 책을 걸어두다.
• 의미 : 부지런히 분발해 공부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출전 : 『신당서(新唐書)』 권84 「이밀전(李密傳)」 외.
• 내용 : 수나라 사람 이밀(李密, 582~618년)은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짧은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 애썼다. 평소 존경하던 포개를 찾아가기 위해 이밀은 『한서』를 챙겼는데, 길을 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갯버들로 안장을 만들어 소 등에 앉은 다음 소뿔에 책을 걸어놓고 읽었다고 한다.
• 영향 : 이 일화는 그 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독서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고사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선비를 ‘우각서생’이라 부르기도 했다. 중국의 전통적 아동용 교과서로 그 영향력이 큰 『삼자경』에서도 이 이야기를 인용해 후학들에게 분발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49. 위편삼절(韋編三絶)
• 풀이 :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지다.
• 의미 : 책을 묶는 데 사용한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한다는 의미를 담은 유명한 고사성어다.
• 출전 :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
• 내용 : 만년에 공자는 『주역(周易)』을 좋아해 여러 종의 주석서를 남기기도 했다. 공자가 『주역』을 공부할 때 죽간을 엮은 소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서 끊어졌다. 공자는 “내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주역』은 제대로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 공자)
• 영향 : 공부나 독서와 관련해 이만큼 유명한 고사성어도 드물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식으로 전파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위편(韋編)’, ‘절편(絶編)’, ‘위삼절(韋三絶)’, ‘절삼편(絶三編)’, ‘삼절위편(三絶韋編)’ 같은 표현을 통해 각고의 노력으로 진지하게 공부하는 지식인을 나타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마음은 형통하고 만사가 느긋해졌다고 노래한 사람도 있다.
50. 유향연여(劉向燃黎)
• 풀이 : 유향을 위해 명아주 지팡이를 태우다.
• 의미 : 부지런히 공부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진정한 독서인은 누군가 알아주고 돕는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출전 : 『삼보황도(三輔黃圖)』 권6 「각부(閣部)」.
• 내용 : 서한 성제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이 천록각(天祿閣)이란 궁중 도서관에서 고서를 교감(校勘)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 배우길 좋아하고 또 그 이치를 깊이 생각했다. 어느 날 늦은 밤 누런 옷을 입고 푸른 명아주 지팡이를 든 노인이 천록각으로 들어와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는 유향을 보았다. 노인은 지팡이에 입김을 불어 불을 붙여서 조명으로 삼게 하고는 유향에게 ‘오행홍범(五行洪範)’이란 문장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떠나면서 자신은 태을신선(太乙神仙)이라고 했다.
• 영향 : 이 신비로운 일화는 미신적 색채가 강하지만 일심으로 공부하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다는 의미로 훗날 공부에 뜻을 둔 지식인을 격려하는 이야기로 남았다. 간혹 ‘청여학사(靑藜學士)’란 표현으로 박학다식한 사람을 비유하고, ‘여장취화(藜杖吹火)’(명아주 지팡이에 불을 붙이다)나 ‘취여(吹藜)’(명아주 지팡이에 입김을 불다)라 하여 한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신의 도움이 따른다는 것을 비유한다
51. 이하시낭(李賀詩囊)
• 풀이 : 이하의 시 주머니.
• 의미 : 심혈을 기울여 시를 창작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
• 내용 :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지은 『이장길소전』, 즉 이하의 짧은 전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하는 늘 등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메고 노복 하나를 대동한 채 노새를 타고 외출했다. 좋은 시구가 생각나면 바로 써서 그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이하의 어머니는 하녀에게 먹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고는 “내 아들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좋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 되면 이하는 낮에 써놓은 시 구절을 가지고 완전한 시 한 편을 완성한 다음 다른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 영향 : 이하의 시 주머니 이야기는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의 작품에 인용되었다. 대부분 ‘금낭(錦囊)’이나 ‘시낭(詩囊)’으로 표현했고, ‘금시낭(錦詩囊)’이나 ‘해낭(奚囊)’으로도 썼다. 어느 쪽이든 심혈을 기울여 시를 짓는 모습이나 뱃속까지 가득 찬 재능을 가리킨다. 때로는 ‘금낭시(錦囊詩)’, ‘금낭시권(錦囊詩卷)’, ‘금낭가구(錦囊佳句)’(비단 주머니에 든 아름다운 구절), ‘금리경인구(錦里警人句)’(사람을 놀라게 하는 비단 주머니 속 시 구절) 등으로 나타난다.
52. 일목십행(一目十行)
• 풀이 : 한눈에 열 줄을 읽다.
• 의미 : 책 읽는 속도가 빠른 것을 형용하는 표현이다.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권78 「응봉전(應奉傳)」.
• 내용 : 동한 시대에 응봉(應奉)은 대단히 총명해 어릴 때부터 겪은 일을 모두 기억했으며 책을 읽는 속도도 무척 빨라 다섯 줄을 한꺼번에 읽었다.
• 영향 : 양나라 간문제(簡文帝)도 책을 무척 빨리 읽었다고 한다. 한눈에 열 줄을 읽었을 뿐 아니라 한번 읽은 책은 잊지 않았다. 이로써 ‘일목십행’이란 전고가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오행구하(五行俱下)’, ‘십행구하(十行俱下)’, ‘목하십행(目下十行)’, ‘일목십행구하(一目十行俱下)’ 같은 표현으로 빠른 독서를 묘사했다.
53. 일자천금(一字千金)
• 풀이 : 한 글자에 천금.
• 의미 : 문장이나 책을 정성들여 창작하거나, 그 문장과 책의 가치가 지극히 높다는 것을 형용할 때 사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사기(史記)』 권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 내용 : 여불위는 자신의 문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쓰게 해서 총 20만 자가 넘는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했다. 이 책에 천지만물, 고금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자부심에 그는 진나라 수도 함양의 성문에다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빼거나 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글자에 천금을 주겠다는 방을 내붙였다.
• 영향 : ‘일자천금’ 외에 ‘천금자(千金字)’, ‘금현진시(金懸秦市)’(진나라 저잣거리에 현상금을 걸다), ‘현금(懸金)’(현상금을 걸다) 등으로 활용되었다. 때로는 문인이 자신의 글이나 저술에 대한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54. 장지명산(藏之名山)
• 풀이 : 명산에 보관하다.
• 의미 : 작품이 대단히 값어치 있어 귀하게 여기는 것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에 실린 「보임안서(報任安書)」.
• 내용 :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한 뒤 친구 임안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제 이 일을 마무리하고 명산에 깊이 보관하여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해져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져 나감으로써 지난날 치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벌을 받는다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 영향 :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사기』가 행여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원인으로 박해를 받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마천의 염려에서 나온 전고다. ‘장제명산(藏諸名山)’, ‘명산장(名山藏)’, ‘장명악(藏名岳)’, ‘장저술(藏著述)’, ‘명산전(名山傳)’, ‘명산사업(名山事業)’(불후의 명작을 비유)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되었다. 고염무는 “이제 책이 완성되었으니 그 판본을 명산에 보관하여 훗날 옛것을 믿는 사람을 기다리련다”라는 글에서 ‘장판명산(藏版名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55. 정문입설(程門立雪)
• 풀이 : 정이의 집 문 앞에서 눈을 맞고 서 있다.
• 의미 :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중시하는 독서인의 모습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송사(宋史)』 권428 「양시전(楊時傳)」.
• 내용 : 양시(楊時)는 마흔 살 때 당대 최고 학자 낙양의 정이(程頤)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동창과 함께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정이는 정좌한 채 잠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기다렸는데 마침 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이가 깨어났을 때 눈은 이미 한 자 이상 쌓여 있었다.
• 영향 : ‘입설(立雪)’과 관련해서는 불교에도 비슷한 고사가 전한다. 선종의 2조인 혜가(慧可)가 1조 달마를 찾아가 법을 구할 때도 큰눈이 내렸다. 선종의 메카 소림사에 이를 기념하는 건물 ‘입설정’이 남아 있다. 이 고사는 불교 쪽이 먼저였지만 훗날 유가의 위상이 커지면서 ‘정문입설’이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에 따라 ‘입설정문(立雪程門)’, ‘정문탁설(程門度雪)’, ‘정문비설(程門飛雪)’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되었다. 어느 쪽이든 공경하는 태도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비유한다.
56. 정전(鄭箋)
• 풀이 : 정현의 주석.
• 의미 : 고서에 대한 주석과 해설 따위를 가리킨다.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권79 「위굉전(衛宏傳)」.
• 내용 : 동한 시대 정현(鄭玄)은 모공(毛公)이 전한 『모시(毛詩)』에 주석을 달았다.
• 영향 : 한나라 때 『시경』을 전수한 제(齊)·노(魯)·한(韓)·모(毛) 4가(家)가 있었다. 그중 『모시』가 가장 늦었다. 나머지 3가의 『시경』은 이미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학관까지 들어설 정도로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훗날 정현은 『모시』를 중시하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는데 『시경』에 대한 해석이 다른 3가보다 더 정확하고 정교했다. 이에 따라 『모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졌다. 이 모두가 정현 덕분이었다. 이른바 ‘정전’이란 정현이 쓴 『모시』에 대한 주석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57. 착벽투광(鑿壁偸光)
• 풀이 : 벽을 뚫어 빛을 훔치다.
• 의미 : 어두워도 등을 밝힐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 남의 집 벽을 뚫어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뜻으로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이나 사람을 형용하는 고사성어다.
• 출전 : 『서경잡기(西京雜記)』 권2(유흠(劉歆)이 편찬한 서한 시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수록한 책. 진나라 갈홍(葛洪)이 편찬했다고도 한다).
• 내용 : 서한 시대 광형(匡衡)은 가난했지만 공부를 무척 좋아했다. 밤에 등불을 켤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는데, 이에 광형은 이웃집 벽을 뚫고 그 불빛을 빌려 독서했다.
• 영향 : 훗날 ‘착벽차광(鑿壁借光)’·‘착벽차휘(鑿壁借輝)’·‘천벽차광(穿壁借光)’·‘투광착벽(偸光鑿壁)’ 등 여러 비슷한 성어로 재활용했고, 간단하게 ‘착벽(鑿壁)’·‘투광(偸光)’·‘광벽(匡壁)’(광형의 벽) 등으로도 쓰였다. 원진(元稹)은 이 고사에서 영감을 얻어 “하루해는 짧아서 아쉽고, 벽을 뚫어 빛을 빌리자니 벽이 너무 두껍구나”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고사로, 대대로 가난에 굴하지 않고 분발해 공부하는 이들을 격려해왔다.
58. 청상세업(靑箱世業)
• 풀이 : 대대로 전해진 푸른 상자.
• 의미 : 대대로 전해진 독서 생활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송서(宋書)』 권60 「왕준지전(王准之傳)」.
• 내용 : 왕준지(王准之) 일가는 증조할아버지 왕표지 때부터 박학다재하고 조정 예의에 정통했다. 뿐만 아니라 그 학식을 대대로 대물림했다. 왕준지가 이런 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푸른 상자에 보관했다.
• 영향 : 양나라 때 명사 심약(沈約)에게는 총명한 어린 자식이 있었는데 독서를 무척 좋아했다. 심약은 그 아들을 몹시 예뻐하며 자신의 문장과 학식을 이어받게 하고 싶어 이름을 ‘청상(靑箱)’이라 지어주었다. 여기서 ‘청상’이니 ‘청상업(靑箱業)’이니 하는 고사가 파생되어 독서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59. 칠보성시(七步成詩)
• 풀이 : 일곱 걸음에 시를 완성하다.
• 의미 : 시 짓는 재능이 빠르고 뛰어남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제4.
• 내용 : 삼국시대 위 문제 조비는 동생 조식(曹植)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 시 한 수를 지으라고 명령했다. 그사이 시를 완성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조식은 일곱 걸음을 다 떼기도 전에 시를 완성했는데,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조비는 몹시 부끄러워했다.
• 영향 : 이 고사는 ‘칠보지재(七步之才)’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짓는) 재능’이란 뜻이다. 백박(白朴)이란 문인은 “뱃속에는 시서와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짓는 재주가 가득 찼다”는 시를 지어 ‘칠보재(七步才)’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 밖에 ‘칠보재화(七步才華)’, ‘칠보장(七步章)’, ‘칠보시(七步詩)’, ‘재고칠보(才高七步)’ 같은 표현으로 문장을 쓰는 재주가 민첩하고 남다른 문인을 상징했다. 줄여서 ‘칠보’라고 썼다.
60. 침중비보(枕中秘寶)
• 풀이 : 베개 속의 비밀스러운 보물.
• 의미 :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진귀한 도서를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한서(漢書)』 권36 「초원왕전(楚元王傳)」.
• 내용 : 한나라 선제(宣帝)는 신선방술을 제창하며 부귀영화와 불로장생을 추구했다. 공교롭게 그해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베개 속에 아주 진귀한 『홍보(鴻寶)』와 『원비서(苑秘書)』가 있었는데, 그 책에는 신선의 도술과 수명을 연장하는 추연(鄒衍)의 방중술 등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영향 : 회남왕 유안은 이런 비기를 베개 속에 감추어두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홍보(鴻寶)’, ‘비보(秘寶)’, ‘비침서(秘枕書)’, ‘침함서(枕函書)’, ‘비지침중(秘之枕中)’, ‘침중지비(枕中之秘)’, ‘침중비서(枕中秘書)’ 등으로 도술서 또는 진귀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도서를 비유했다.
61. 필경(筆耕)
• 풀이 : 붓으로 밭을 갈다.
• 의미 : 옛날 문인들은 붓을 놀려 글을 쓰거나 저술하는 일을 ‘필경’이라 했는데,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 출전 : 『예문유취(藝文類聚)』 권58에서 인용한 『후한서(後漢書)』.
• 내용 : 동한 시대 반초(班超)는 다른 사람을 위해 책을 베껴주는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았는데, 문득 붓을 내던지며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워 공명을 떨쳐야 하거늘 어찌 이런 별 볼일 없는 문자놀음 같은 필경이나 하고 있는가”라고 탄식했다.
• 영향 : 이 일화는 훗날 책을 베껴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정착했다.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은 문장이 좋기로 이름났는데, 각처에서 그의 글과 글씨를 얻으려는 이들이 몰려들어 덕분에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심직필경(心織筆耕)’이라 표현했다. 여기서 종이를 밭에 비유하는 고사가 나왔고, ‘필경’과 함께 ‘목경(目耕)’이란 용어로 독서 생활을 나타냈다. 또 ‘설경(舌耕)’이란 표현이 나왔는데 글을 가르쳐 생활하는 것을 비유한다.
62. 하유독서(下帷讀書)
• 풀이 : 휘장을 내리고 독서하다.
• 의미 :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도 사절한 채 전심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것을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 출전 : 『사기(史記)』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동중서(董仲舒)’.
• 내용 : 동중서는 『춘추(春秋)』 연구에 정통해 한나라 경제 때 박사가 되었다. 그는 실내의 모든 휘장을 내리고 대문을 걸어 잠근 채 강학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자들은 순서대로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렇게 동중서는 3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전심전력을 다해 공부에 열중했다.
• 영향 : 이 고사는 후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어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졌다. 줄여서 ‘하유(下帷)’로 쓰고 ‘하서유(下書帷)’, ‘폐호수유(閉戶垂帷)’ 등으로도 쓰였다. 동중서를 부르던 존칭 동생(董生)이나 이름을 따서 ‘동생유(董生帷)’, ‘중서유(仲舒帷)’ 같은 표현이 나왔다. 단단히 결심하고 공부에 열중하는 자세를 가리키는 성어로 널리 인용되었다.
63. 학륭쇄복(郝隆晒腹)
• 풀이 : 학륭이 배를 말리다.
• 의미 : 학문이 높은 사람이나 그런 상태를 이를 때 사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배조(排調)」 제25.
• 내용 : 진나라에서는 음력 7월 7일 볕에 의복을 말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학륭(郝隆)은 이날이 되면 집을 나가 태양 아래 누웠다. 남들이 이유를 묻자 학륭은 “나는 내 뱃속에 있는 책을 말리는 중이오”라고 대답했다.
• 영향 : 이 일화는 널리 퍼져 많은 시인의 시에 차용됐다. ‘단복쇄서(袒腹晒書)’(배를 드러내고 책을 말리다), ‘포복중서(曝腹中書)’(뱃속의 책을 말리다), ‘쇄복중서(晒腹中書)’ 등으로 변형되었고 간결하게 ‘쇄복(晒腹)’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 전고를 조롱조로 인용하기도 했는데, 양만리(楊萬里)는 “뱃속에 글자 하나 없이 비어 있다고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래야 가을볕이 사람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있다”라고 했다.
64. 학부오거(學富五車)
• 풀이 : 배운 것이 다섯 수레를 넘는다.
• 의미 : 책이 많거나 학식이 풍부한 이를 일컫는 전고다.
• 출전 : 『장자(莊子)』 「잡편(雜編)」 ‘천하(天下)’ 제33.
• 내용 : (장자의 친구) 혜시(惠施)는 도술이 다양하고 읽은 책이 수레 다섯 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그가 말하는 이치는 복잡하고 불순하며, 언어는 설득력이 있지만 적합하지 않았다.
• 영향 : 훗날 사람들은 다섯 수레의 책(오거서(五車書)), 책 다섯 수레(서오거(書五車)), 혜시의 수레(혜시거(惠施車)) 등으로 책이 많다는 것을 나타냈다.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문장가 왕안석(王安石)은 외손자에게 “어릴 때는 배나 밤 따위를 좋아하지만 커서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지”라는 글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다섯 수레의 책을 읽다’, ‘공부한 책이 다섯 수레를 넘는다’ 같은 표현으로 활용했다.
65. 한서하주(漢書下酒)
• 풀이 : 『한서』를 읽으며 술을 마시다.
• 의미 : 독서를 너무 좋아해 좋은 책과 술을 함께 벗 삼았다는 문인이나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중오기문(中吳紀聞)』 권2 「소자미음주(蘇子美飮酒)」.
• 내용 :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송나라 문학가 소순흠(蘇舜欽)은 매일 저녁 책을 읽으며 술 한 말을 마셨다고 한다. 『한서』를 읽을 때는 더 큰 잔으로 마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장인이 좋은 책은 한 말로 부족하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 영향 : 옛사람이 책과 술을 또는 책과 밥을 함께 즐겼다는 일화는 상당히 많이 전한다. 시인들의 시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독서와 술을 함께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지만 책에 관해 담소를 나누며 술을 곁들이는 것으로 이해하면 한결 운치가 있다.
66. 한우충동(汗牛充棟)☆
• 풀이 : (책을 나르면) 소가 땀을 흘리고, (책을 쌓으면) 용마루까지 가득 찬다.
• 의미 : 책이 아주 많음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유종원(柳宗元)이 육문통(陸文通)을 위해 쓴 비문.
• 내용 : 공자가 『춘추』를 지은 이래 거기에 전(傳)을 붙인 책만 모두 5종이 나왔다. 『좌전』·『공양전(公羊傳)』·『곡량전(榖梁傳)』·『추씨전(鄒氏傳)』·『협씨전(夾氏傳)』이 그것인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세 종류다. 그 후 수천 명이 정성을 다해 이 책들에 주를 달고 해설을 붙여 저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이 책들을 쌓아놓으면 용마루까지 가득 차고, 실어 나르면 소나 말이 땀을 흘릴 정도였다.
• 영향 : 책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전고로 ‘충동(充棟)’, ‘충양동(充梁棟)’, ‘영옥충동(盈屋充棟)’, ‘한우새옥(汗牛塞屋)’, ‘우한(牛汗)’ 등 여러 성어로 변형되어 후대에 널리 전파되었다. 하지만 가장 널리 인용된 것은 유종원의 묘지명에 나온 내용을 간명하게 요약한 ‘한우충동’이다. 어떤 표현이든 모두 장서가 아주 많은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67. 현량자고(懸梁刺股)
• 풀이 :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달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다.
• 의미 : 고통을 참으며 지독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한 고사성어다.
• 출전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1,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제1, 『사기(史記)』 권69 「소진열전(蘇秦列傳)」.
• 내용 : 소진은 몇 차례 유세에 실패한 뒤 절치부심 공부에 매달렸는데, 그때 그의 공부법을 형용한 것이다.(→ 0. 사기 속 현자들)
• 영향 : 스스로를 다그쳐 계속 공부에 매진하라는 자극적인 공부법을 대표하면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고, 그 영향이 적지 않았다. 『삼자경』에도 공부와 관련해 지식인의 분발을 촉구하고 격려하는 이야기로 실려 있다.
68. 협책독서(挾策讀書)
• 풀이 : 죽간을 끼고 공부하다.
• 의미 : 오로지 한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 출전 : 『장자(莊子)』 「외편(外篇)」 ‘병무(騈拇)’.
• 내용 : 옛날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이 함께 양을 치러 나갔는데 둘 다 양을 잃어버렸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장은 책을 보다 잃었다고 했고, 곡은 다른 놀이를 하다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 영향 : ‘협책망양(挾策亡羊)’, ‘독서망양(讀書亡羊)’으로도 쓴다. 다 같은 뜻으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늘 책을 끼고 다니며 공부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성어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69. 형석정서(衡石程書)
• 풀이 : 문서의 무게를 달아 양을 정해놓다.
• 의미 : 독서할 양을 정해놓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진시황이 그날그날 검토할 문서의 양을 저울로 달아 정해놓고 그것을 다 검토하지 못하면 잠도 자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 출전 :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내용 : 진시황은 천하의 크고 작은 일을 스스로 결정했다. 또 하루에 읽고 검토해야 할 문서의 무게를 달아 정해놓고 그 양을 채우지 못하면 쉬지 않았다. 「진시황본기」 원문에는 ‘형석양서(衡石量書)’로 나오지만 훗날 ‘형석정서’로 주로 쓰였다.
• 영향 : 진시황은 지독한 일중독자였다. 「진시황본기」에 보이는, 진시황의 공부가 만만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이 고사성어가 유력한 증거다. 다만 방대한 통일 제국의 일을 위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이 성어는 독서할 시간이나 분량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다.
70. 회독남화(悔讀南華)
• 풀이 : 「남화(南華)」 읽은 것을 후회하다.
• 의미 : 폭넓고 깊이 있는 학문을 이루고도 타인에게 배척당하는 경우나 지식인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당시기사(唐詩紀事)』 권54 「온정균(溫庭筠)」.
• 내용 : 당나라 재상 영호분(令狐棻)이 한 고사에 대해 온정균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온정균은 “이 고사는 『장자』에 나오는 것입니다. 『장자』가 별스러운 책도 아닌데, 정무를 돌보시고 남는 시간에 고서 좀 읽으시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비위가 상한 영호분은 온정균이란 자가 재주는 있는지 몰라도 덕이 없다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이 때문에 온정균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 온정균의 시에서 “그 고사를 안다고 사람들의 원망을 샀으니 「남화」 제2편 읽은 것을 후회하노라”라는 대목이 그 일을 두고 한탄한 것이다.
• 영향 : 예로부터 공부를 많이 한 탓에 수난을 당한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공부한 걸 후회한다’고 한 사람도 많았다. 개인의 명예와 세속의 이익을 위해 공부를 일삼은 자들은 출세해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 반해 제대로 반듯하게 공부한 참 지식인은 냉대를 받는 일이 많았고,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온정균의 한탄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독서인의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는 전고라고 할 수 있다.
71. 회연제참(懷鉛提槧)
• 풀이 : 석묵(石墨)을 품고 목간을 들다.
• 의미 : 부지런히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모습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
• 내용 : 양웅(揚雄)은 늘 석묵(흑연)과 목간을 지니고 다녔는데, 인사·호구·세금 같은 일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전국 각지의 방언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석묵과 목간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과거 방언 자료를 보완했기 때문이다.
• 영향 : 이 전고는 다양한 형식으로 변용됐지만 간단하게 ‘연회(鉛懷)’나 ‘제참(提槧)’ 또는 ‘악참(握槧)’(목간을 쥐고 다니다)으로 쓴다. 여기서 ‘회연악참(懷鉛握槧)’이란 표현이 나왔고, 간혹 ‘회연연묵(懷鉛吮墨)’이라고 쓰는데 물이 없을 때 먹에 침을 묻혀 사용했기 때문에 ‘연묵’이라고 한 것이다. 흑연과 목간을 쥐고 다닌다 해서 ‘파연참(把鉛槧)’이라고 표현했다.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