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박 2일 설악산
2006년 10월 2일(월) 쾌청 – 3일(화) 설악산 등반
설악산 정상(1,708m)에서의 동해 일출, 아름답다. 그리고 참 추웠다.
개천절 새벽, 설악에서 히말라야를 꿈꾸다.
하산길 - 천불동 계곡, 여기저기 할퀴고 간 태풍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설악의 장쾌하고 아름다운 연봉
아름다움에 발을 멈추고
길은 멀어 12시가 넘어 집결지에 도착했다.
빨리 도착했다. 설악산 가는 버스가 도착하려면 30분 이상이나 남았다. 서초구 구민회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기다리다 뒤돌아 본다. 지나간 시간들을 뒤돌아 본다. 뒤쫒는다.
여러 길이 있었고, 여러 선택이 있었다. 어떤 선택들을 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가? 그 때,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앞날을 뼈 속 깊이 바라 보았더라면 오늘 어떤 자리에 있게 되었을까?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회한에 묻혀 살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의 선택은 조금은 지혜롭게 하고, 용기 있게 실천하자.
두렵다. 무박산행은 처음인데, 10시간 가깝게 산을 탈 수 있을까? 잠을 제 때 그리고 제대로 자지 못하면 헤매는 나인데.
10:25 경에 버스가 도착하고, 이것 저것 확인 한 후 10시 33분 출발. 나는 두꺼비 산악회에 신청했는데, 산마루 산악회와 함께 일행이 되었다. 아마 두꺼비는 차량 분이 넘쳐서 다른 산악회에 권리를 팔아 넘긴 것 같다. 등반대장의 설명이 시종 위압적이다. 체력에 자신 없으면 쉬운 코스 잡아 빨리 내려오라는 말투다. 하산 후 늦게 도착하면 기다리지 않고 출발하겠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자리가 비어 있어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딱 한자리 비어 있는 것이 내 옆자리라니, 그런 데로 괜찮은 운이다.
그런데 출발 이전부터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있어 으시시 추어 온다.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으니 은근히 걱정이 되고, 긴장이 된다.
정확하게 새벽 1시, 내설악 광장 휴게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쏟아져 휴게소 식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우리 일행 차량이 3대, 다른 산악회 차량 들도 7~8대가 늘어서 있다. 맛없는 된장 찌게, 이름이 좋아 설악산 토속 된장찌개다. 밥으로 뱃심을 든든하게 해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맛이 시원찮지만 열심히 먹어 두었다.
새벽,2시 10분 오색에 도착했다. 이미 차량 몇대가 도착해 있는 듯 했다. 각 등반 대장들은 자기 소속 산악회 이름을 부르며 빨리 매표소 안으로 들어 가란다. 새벽 2시 평소 같으면 잘 시간이다. 멍한 상태로 매표소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누군가의 말이 귀가에 들려왔다. 마치 마라톤 경기 출발하는 모습과 같단다. 그렇게 사람들은 무리 지어 밀려 들어갔다. 캄캄한 밤에 머리에 랜턴을 두르거나, 손에 후래쉬를 쥐고 열심히 앞으로 나갔다. 로마 군대의 전진하는 모습이 이럴까. 이윽고 한줄이 되어 산을 올라간다. 몇몇은 나란히 붙어서 올라가고 또 떨어져 올라가기도 한다. 돌계단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다만 앞길만 불빛으로 보일 뿐 주위 모두는 캄캄하다.
계속 올라간다. 아마 낮이라면 상당히 지쳐있을 법도 하다. 땀이 찬다. 머리에서 땀이 흐른다. 윈드 자켓을 벗어 베낭 속에 밀어 넣었다. 30분 경과. 다시 오른다. 흙길도 나타난다. 약간의 평지와 내리막길도 있으나 계속 오른다. 1,700미터가 넘으니 어떻든 계속 올라가야 할 것이다. 지난 번 1,400미터 치악산도 얼마나 지겹게 올라갔었는가? 다시 30분, 지금까지 1시간 동안 1.7km 걸어 올라온 것 같다. 앞으로 대청봉까지 3.3km, 2시간이면 올라갈 것 같다.
오늘은 30분 정도는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갈 수 있다. 전에 화악산 올라갈 때는 5분이 멀다 하고 시계를 보며 올라갔는데 오늘은 30분 정도는 시계를 보지 않고 걸었다. 반복되는 우면산 등산의 결과인가? 아니면 야간 산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탓인가?
물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이다. 대부분의 산행에서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하다가 이윽고 물 소리가 끊어지며 산을 오르는데, 오늘은 그 반대다. 3시50분 설악폭포 도착. 밤이라서 그 위용을 알 수 없다. 다만 물소리만 들릴 뿐이다. 어떻든 산행 중에는 물소리가 있어야 제격이다. 거기에 폭포까지 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4시 10분, 휴식을 15분간 가졌다. 땀이 식는다. 땀이 식으니까 한기가 들고, 약간의 추위까지 느끼게 한다. 부지런히 올라간들 너무 빨리 정상에 오르면 떠오르는 해를 보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아 휴식을 길게 가졌다. 초여름용 윈드 자켓을 꺼내 입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5시 35분 정상 300m 전 쯤이다. 일출까지는 약 1시간이나 남았다. 좀 더 쉬었다 가자. 겨울용 윈드 자켓을 꺼내 입었다. 오늘 옷을 여러 개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가을용 내복 까지 입었던 것도 잘했다. 바람이 분다. 올라 올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대청봉 정상 가까이 오니 바람이 느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겁게 느껴진다.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6시 20분 해가 떠오른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출은 아니지만 저 멀리 붉은 연꽃처럼 태양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모두 태양을 향하여 서 있다. 여기저기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나도 디카를 꺼내어 열심히 찍어댔다. 지금 정상에는 100명도 넘는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참아내며 일출을 보기 위해 서 있다.
6시 35분 하산 시작. 중청 대피소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아침 식사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중청 대피소를 지나 희운각 대피소를 향해 계속 하산했다. 이제 해는 점차로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 아래 펼쳐지는 설악의 풍광이 압권이다. 어찌 이곳 설악을 한번 와보고 왔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일곱번 이상은 여기 저기 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더 올 수 있을까?
손꼽히는 국립공원 치고 안내 지도(Board)는 너무 빈약했다. 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다음 기착지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니 희운각 대피소가 나타난다. 8시 10분 희운각 도착. 내 생각에는 설악 정도라면 안내판을 비롯한 여러 시설 들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컵라면을 2,500원에 매식하여 아침을 해결했다.
8시 30분 출발하여 9시 35분 양폭산장 도착. 화장실이 역시 시원찮다.
소변을 보고, 다시 출발. 서서히 발이 아파 오는 듯 했다. 어린 중이 지나가는데 무지하게 내달린다. 벌써 저만큼 달아나더니 곧 보이지 않는다. 발을 내딛어 내려가기 힘들고 기운도 많이 빠져 있어 10시 20분, 계곡 물에 발을 씼었다.
11시 20분 비선대 도착, 그런데 16년 전, 내 기억 속의 비선대와는 달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 때는 너른 바위 아래 너른 소(沼)가 있었고, 그 바위를 걸어 지나간 것 같은 기억인데–––––
12시 25분 매표소 문을 나섰다. 매표소 문을 나서기 전, 케이블 카를 탈까 했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포기했다.
오늘 무사히 마쳐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역시 설악은 설악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었다. 서양 피부의 젊은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깃발 들고 지나가는 일본 아줌마들, 한국의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 수많은 사람들의 면면들.
너무도 좋은 가을 날씨에 설악은 너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시간과 기운 모든 것이 허락된다면 한계령, 백담사, 공룡능선, 마등령, 흔들바위. 모두를 가고 싶고, 걷고 싶고, 보고 싶다.
C주차장에 내려와 아내가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산에서 다니다 보니까 핸드폰 전원이 빨리 나가 버려, 핸드폰 충전도 했다.
3시까지 하산 후 모이기로 했는데, 2시30분,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태우고 버스 1대는 먼저 출발했다. 자리가 무척 불편했지만 나도 먼저 떠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저녁 6시 30분 경 도착했다. 올 때는 영동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한 후 저녁 식사. 그리고 가정예배를 본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