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계방산 - 대설주의보
06년 12월 16일 토요일 흐림+눈
대설주의보로 통제를 하는 오대산을 피해 계방산을 오른다. 이 곳도 통제하기는 마찬가지. 오대산과 다른 것이 있다면 통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일 뿐...
오르는 길 내내 온통 눈꽃의 향연과 축제
그리고 정상
하산 길도 좋다. 눈길이 좋다.
그리고 느낌이 다른 장면, 이데오르기의 현장
아침 7시 사당동 네거리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언제나처럼 등산을 가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바쁘다. 히트 산악회에서 나온 서울고속관광 버스에 타니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4~5명 정도다. 앞으로 양재동 등에서 더 탄다고 해도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역시나 그랬다. 양재동과 고속도로 톨게이트, 죽전에서 사람들이 탔지만 20명을 약간 넘는 인원이었다. 그래서 자리는 넉넉하게, 편하게 잡을 수 있었다. 양재동에서는 아가씨 2명이 차를 놓쳐서, 버스가 다시 돌아가는 헤프닝이 있었다. 이 아가씨 둘은 나중에 돌아올 때도 늦게 하산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등산대장은 올 첫번째 등산이었던 태백산 등산 때 보았던 전라도 아저씨다. 역시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중언부언하며 안내 멘트를 날린다. 약간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전라북도 쪽 사투리인데 어쩌면 저렇게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말인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울 말씨를 쓸만도 한데 전라도 사투리로 시종일관 깔아버린다. 산에 오를 때 안 것인지만 전라북도 군산이 고향이란다.
용인 마성길에 접어드니 역시 차들이 기어 간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여주 남한강을 지나 섬강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8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밖을 보니 밤 사이에 이곳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산도 조금은 하얗고 고속도로 갓길은 약간의 눈이 덮여 있다. 이슬(?)이 맺힌 창을 닦고 먼 곳을 바라보니 온통 뿌옇고 흐리다. 날씨 상태로 보아 오늘 산행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기다려지는 것은 구름 사이로 산을 오르는 기분을 생각하는 때문이요, 아쉬운 것은 먼 곳은 동해도 바라볼 수 있다는데, 원경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럴 것이다.
9시 10분, 원주를 지나치니 눈이 창밖으로 휘날린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늦게 부터 중부 북쪽으로 눈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눈이 날린다. 차창 밖은 온통 뿌옇다.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오르는가? 20세 때, 덕유산 오를 때는 정말 정말 간절히 원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랐는데 하는 생각에, 고개 숙여 기도한다. 재승이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라고 기도한다. 재영이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9시 25분, 소사 휴게소 도착, 산악회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먹은지 4시간 밖에 안됐지만,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단 우겨 넣는 기분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눈발은 날리는데 휴게소 야외에서 미역 국에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배불리 먹었다.
9시 50분 다시 출발을 하는데 세일즈맨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다. 일부 승객이 싫어하기는 했지만, 정선군 농협 직원이라고 하니까 그런대로 참아주는 분위기다. 이 사람이 무려 40분간 마이크로 고성을 지르는데, 정선군에 서 생산할 예정인 천마즙을 많이 사주고 홍보해 달라는 것이다. 농협 직원치고는 세일즈 화법, 즉 접근 화법이 뛰어나다. 삼십여만원되는 천마즙을 여러 사람이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아마 농협이라는 공신력과 ‚세일즈 하는 사람의 열정, l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천마의 효용이 결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0시 30분, 진부 톨게이트를 지나 오대산 입구를 지나는데 눈이 쏟아진다.
10시 40분, 매표소 도착했는데 대설주의보가 내려서 입산이 안 된단다. 황당해진다. 순식간에 난상토론이 벌어질 뻔 했으나, 등산대장의 권유로 계방산으로 가기로 했다. 그 동안 계방산, 오대산, 소백산 등 여러 산이 선택 대안이었기 때문에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대산은 서너 번이나 시도했는데 일정이 맞지를 않는다. 어느 땐가는 너무 늦게 신청해서, 또 한번은 취소되어서, 이번에는 큰 눈 때문에 오를 수가 없게 되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대산은 높이로 치면 여섯번째인데, 계방산은 다섯번째이다. 이제3~5위의 산을 다 오르는 셈이다. 3위=설악산, 4위=덕유산, 5위=계방산이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버스가 달린다. 고속도로로 다시 들어가 속사 톨게이트를 빠져 나간다. 그리고는 꼬불꼬불 눈 녹은 길을 위태롭게 올라간다. 길가의 안내판이 해발 1,000m를 넘었음을 알려 준다. 이윽고 고개마루에 버스가 멈춰 선다. 운두령, 해발 1,089m란다.
11시 25분 운두령을 출발하여 계방산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눈발이 날린다. 시야는 100m 이상을 볼 수 없다. 지도도 없고, 시야도 없고, 정상이 어딘지도 모르고 눈길을 따라 걸을 뿐이다.
입산금지 팻발이 붙어 있었으나, 이 팻말은 아마 산불 때문에 입산금지를 한 것일 것이다. 오늘부터 풀렸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계단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니 약간은 가파른 길이다. 사람들이 아이젠을 신는다. 나도 아이젠을 신었다. 새 신발도 그런대로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착지감이 좋고, 발이 편하다는 기분이 든다.
12시 20분, 휴식을 취한다. 높이가 이젠 제법 되었을 것이다. 눈꽃이 아름답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곳이 아니라면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태백산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앞사람의 발만 보고 걸었는데 오늘은 그런데로 여유가 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과 감탄사가 들린다. 야! 좋다! 멋지다! 나는 오래 전 덕유산 설화들에 마음을 빼앗겨서인지 감탄사까지는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어떻든 보기 좋았고, 아름다웠다. 어떻든 사람들이 밀려오기 때문에 오래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또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쉽다.
사진을 눌러 댄다. 예쁘기는 예쁘다. 시간 때문에 부지런히 올랐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정상이다. 허전했다. 너무 빠른 정상이다. 정상 도착 시간은 오후 1시 10분. 그런데 바람이 세기도 하고 차가웠다. 너무 춥고 손이 시려워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 카메라 밧데리를 교환하고 정상에 올랐다. 역시 정상은 바람이 차다. 태백산도 그랬고, 운문산도 그랬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1시 20분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에 너무 빨리 올랐고, 볼품 없는 정상의 모습에 허전한 마음이다. 이런 기분을 갖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던 길의 눈꽃과 내려가는 길의 눈꽃의 모습이 다르다. 아마 양지와 음지의 차이, 기온과 바람의 차이가 설화의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등산 길의 눈꽃은 남성적이라면 하산 길의 눈꽃은 여성이다. 음지쪽 설화는 바람과 찬 온도 때문에 설화가 참빗 모양 아니면 하얀 떡가루가 엉켜 있는 모습이라면 하산 길, 양지 쪽의 눈꽃은 부끄럼 타는 소녀의 모습처럼 하얀 목화 솜들을 얹혀 놓은 모습이다.
40여분 내려오다 보니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수를 따라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대로는 지그재그 방향으로 계곡을 건너 넘는다. 장마철에는 이곳으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할 거 같다. 눈은 계속해서 내린다. 하염없이 내린다. 기분 좋은 걸음이다.
14시 20분 침엽수 숲이 나타난다.
14시 40분 야영장 도착, 아이젠을 풀었다.
14시 50분 이승복 생가에 도착 “공산당이 싫어요” 오래간만에 보는 반공 얘기
15시 20분 주차장 도착, 내려오니 해가 뜨고 구름이 조금 걷힌다. 그러나 이윽고 다시 흐려진다. 인근 가게에서 라면을 꿀맛으로 먹었다.
오늘은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손대지 못했다.
3시 45분 버스 승차. 눈은 계속 흩날린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사람들 때문에 4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 여자 2명은 걸음이 느려서 그렇다 하더라도, 젊은 부부는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막걸리 집에서 느긋하게 보내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심한 부정적 반응을 당해야 했다.
D – 사과하세요 I - 막걸리 맛 좋았어요(빈정거림 약간)
S - 먹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그러나 속 상하다)
C - 먹는 것은 좋지만 시간 전에는 와야 할 것 아냐
그래도 영동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밤 9시 전에 집에 들어 왔다.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