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行, 苦行, 考行의 길(10) 고락셉(5,140m)-칼라파타르(5,550m)-고락셉(5,140m)-로부체(4,910m)-페리체(4,280m
10일차 : 고락셉-칼라파타르-고락셉-로부체-페리체
2008년 12월 31일(수) 쾌청, 바람이 심함
오늘의 일정은 이번 트레킹의 최대 목표인 칼라파타르(5,550m)를 오른 다음 페리체까지 하산하는 것이다. EBC가 그 명칭 때문에 에베레스 트레킹의 주요 목표가 된다면 칼라파타르는 그 높이로 인해서 또 다른 목표가 된다. 트레커 중에는 두 곳 중에 하나 만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우리 일행은 두 곳을 다 가기로 하였다. 칼라파타르까지 왕복 3시간 이상이 소요되는데 다시 페리체까지 내려가야 한다. 하산 길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는 하지만 각오를 새롭게 한다.
새벽 3시 30분, 온 사방이 까만데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이 바로 거사일(擧事日) - 내가 살아 온 이후로 내 발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느 날이다. 칼라파타르(Kala Patthar), 이곳 말로 검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마치고 4시 넘어 롯지를 나섰다. 우리 일행 모두가 헤드 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가이드인 파쌍의 뒤를 따라 열심히 오른다. 바람이 세게 불어 주위를 살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몸을 바짝 웅크리고 앞 사람의 뒤를 따라 무조건 걷는다. 한국에서 처음 야간산행을 따라 나설 때의 기분이다.
5,000m 이상의 언덕길을 계속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4시 57분)
칠흑같은 어둠 속을 무엇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가?
바람까지 세게 불어 체감 온도는 한참 더 내려간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추위였다.
칼라파타르에 오르자(6시 20분) 먼저 에베레스트를 바라본다.(왼쪽이 에베레스트, 오른 쪽은 눞체)
아직은 하늘도 까맣고 산도 까맣다.
산 그림자 위의 발갛고 가느다란 띠가 해뜨는 방향임을 알려 줄 뿐이다.
몰아치는 칼바람에 룽다가 춤을 추고 온 몸은 오그라든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은 없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 해뜨기 만을 바랄 뿐이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산도 자기 모습을 조금씩 드러낸다.
에베레스트와 눞체의 뒤 쪽으로 붉은 구름이 조금씩 피어 오른다.
쿰부 빙하계곡과 아마다불람을 비롯한 히말라야의 수많은 고봉들이
전후좌우에 말 그대로 파노라마 처럼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마치 세상의 중심, 우주의 중앙에 서 있다는 착각이 든다. 오래 오래 머물고 싶은데 너무 춥다.
30여분 이상을 머물면서 세상이 밝아오는 것을 기다린다.(6시 47분)
조금 더 기다리면 더 멋진 에베레스트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찬 바람의 강추위는 어서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한다.
아쉬움을 안고 7시에 하산 시작,
내려오는 길은 달음박질 하듯이 내려왔다. 왜? 추워서......
내려오면서 올라가는 사람을 만난다.
얼마 후면 저 사람도 히말라야가 선물하는 대장관을 볼 것이고 감동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고락셉 마을이 보인다.
아래에 보이는 모래밭 끝에서 롯지가 있는 언덕길을 오르는 수 m의 길이 그렇게 힘들 수 가 없었다.
천근만근이 된 발걸음을 옮기며 이심전심으로 고쿄가는 길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 버렸다.
최대 목표인 칼라파타르 등반을 마친 후 기념 촬영(7시 51분)
사진으로 보면 금방 달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400m 높이의 언덕길인데
오르는데만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하산 길이다.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달성했다는 안도감일까?
그 동안 몸 고생이 심했던 이교수가 포터가 꾸린 짐을 져 보면서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짓는다.
9시 55분, 오늘의 목적지인 페리체를 향해 출발
하산 길은 아무래도 한결 수월하다.
유난히 심한 바람으로 느껴지는 한기를 쫒기 위해서도 발검음이 빨라진다.
어제 올라올 때는 힘들고 지겹던 너덜길이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간다. (10시 8분)
10시 20분
로부체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난다.(11시 40분) 앞에 보이는 언덕이 그저께 올랐던 곳이었을까?
당시에는 무척 험하고 추웠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늑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로부체 롯지에 도착(11시 55분)
이 곳에서 한국인(남) 60대 3名과 조우, 우리가 오늘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고 있다.
이 분들의 말로는 아래 쪽에 ‘EBS 할머니 팀’,‘혜초 여행사 팀’이 있다고 한다.
계란 후라이로 간단히 식사,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정말 따사로왔다.
1시가 되어 다음 장소로 출발
로부체에서 투클라로 내려가는 길
갈길이 남아 있지만 중간 중간 내려가며 휴식을 취한다.(1시 53분)
딩보체와 페리체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2시 13분)
2일 전에 잠시 머물렀던 투클라의 롯지를 들리지 않고 바로 내려간다.
멀리 페리체 마을이 보인다. (2시 28분)
가깝게 보이는 마을이지만 쉽게 도착되지 않는다.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분다. 춥다.
오른 쪽으로는 박범신 씨의 소설의 무대였던 촐라체봉을 끼고 계속 내려간다.
춥고 바람부는 날씨에 바쁘게 내려가다 보니 사진에 담지 못한 모습이 촐라체다.
바로 아래 사진은 2일 전(12월 29일)에 딩보체에서 투클라 가는 길에 왼쪽으로 보며 찍은 사진이며
그 아래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글이다.
촐라체는 도도하고 장대한 암벽과 설빙으로 뒤덮여 있다. 촐라체를 등정하다 조난당한 사람도 있다. 작가 박범신은 <비우니 향기롭다(2006)>에서 촐라체에서 조난당한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의 극적인 생환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촐라체 북벽을 타고 베이스캠프를 출발한지 사흘 만에 등정에 성공한다. 그러나 오후에 눈길을 헤치며 내려오다 뒤따라오던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추락한다. 박정헌은 본능적으로 피켈로 얼음 사면을 찍어 제동을 거는데 성공하지만, 최강식은 보이지 않고 살려 달라는 소리만 들린다. 자일로 서로를 묶었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박정헌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최강식은 빙벽에 부딪혀 두 발목이 부러진다. 자일을 끊지 않으면 자신도 추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박정헌은 자일을 당기면서 버티고 최강식은 두 손으로 빙벽을 기어 오른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최강식은 크레바스에서 올라온다. 이미 갈비뼈와 발목이 부러지고 손과 발이 얼어버린 상태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새벽부터 시작된 처절한 죽음의 장정은 낮고 밤으로 이어지다 촐라 호수 가까이서 의식을 잃어 버린다. 이 곳의 늙은 부부가 이들을 발견하여 밤새 간호를 하고 두 자매는 목숨을 걸고 촐라 고개를 넘어 이들의 조난 소식을 전한다. 그들은 이 분들의 도움으로 정말 기적 처럼 살아 돌아온다.(펌)
드디어 페리체 마을에 도착(3시 18분)
아래 사진은 다음 날 남체로 떠나며 찍은 것임
다이닝 룸에는 '혜초여행사 팀'들이 이미 난로가에 둘러 앉아 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인 이교수와 '혜초팀'의 가이드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알고 보니 이 교수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당시의 가이드였으며 우리 가이드인 '파상'과는 친척간이란다(파상의 아내가 왕추의 동생). 이름(왕추) 때문에 '왕초'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한국원정대와 팀을 이루어 에베레스트도 여러 차례 등반했단다.
'혜초팀' 중에는 현대자동차 직원 3명과 60세가 넘은 광주 아주머니, 그리고 여고 3학년 학생 등이 있었는데 실로 오랫 만에 한국 사람들을 편안한 곳에서 만나 이런저련 얘기들을 니눌 수 있었다. '아일랜드 피크 할머니 원정대' 소식이 EBS에서 1월 17일에 방영된다는 것, 광주 아주머니는 중국의 여러 명산과 말레이지아 키나바루 트레킹을 마쳤으며, 3학년 여학생은 대입을 포기하고 재수를 선택했는데 심기일전을 위해 부모의 승인 후 참가했다는 등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팀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식사를 만찬으로 준비(6시 42분)
김치(2통) + 꽁치(2캔) 등으로 전 교수가 한국의 맛을 창조
섣달 그뭄의 밤이 너무 아쉬워 한국 시간으로 11시까지 난로 가에 있다가 숙소로 이동
우리가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새해의 첫날을 맞았던 롯지의 실내 모습
그 동안 경험했던 롯지 중에서는 형편이 나은 편에 속했다.
사진은 떠나기 전에 찍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