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心寶鑑/동네글방(火金通信)

윤동주 시인 75주기

efootprint 2020. 2. 17. 05:45

 

어제는 윤동주 시인의 서거(逝去) 75주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십중 팔구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시인이지요.

 

 

 

 

 

시대를 아프도록 사색하고 자신의 고뇌와 신념을 아름다운 시어(詩語)로써 승화시켰던 청년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 및 시 세계를 아래에 간략히 요약하였습니다.(아래 글은 시사 상식사전에 나온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임)  

 

 

 

윤동주(尹東柱  1917. 12. 30 ~ 1945. 2. 16)

 

19171230일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5년 명동(明東)소학교에 입학하여 송몽규 등과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2년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35년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학교가 신사참배(神社參拜) 문제로 일제에 의해 폐쇄당하자, 용정 광명(光明)학원 중학부 4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며, 1939년 산문 '달을 쏘다'조선일보, 동요 '산울림'소년지에 각각 발표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가을에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옮겼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점차 끝나가면서 흉흉하던 시절인
1943,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으며, 복역 중이던 19452월 생을 마감했다. 그는 복역 중에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아야 했는데, 그것이 그의 사인(死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그의 유해는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으며, 그와 함께 복역 중이었던 송몽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윤동주의 시

 

윤동주의 첫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그는 생전 시집의 원고를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병욱과 이향하 선생에게 한 부씩 나눠주었는데, 정병욱이 보관하였던 원고만이 살아남아 발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첫 시집의 초판 서문에는 그가 늘 동경하던 시인 정지용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라는 글이 남겨져 있다

그의 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깨달음의 정수를, 아름다운 언어로 곱고도 수줍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그의 시는 매우 서정적인 것은 물론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윤동주 '서시'의 육필 원고(출처: 문화재청)

 

아래(주소)를 클릭하시면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별 헤는 밤>, 그리고 <길>의 낭송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시> https://www.youtube.com/watch?v=RLZ5vy977QQ

 

<별 헤는 밤> https://www.youtube.com/watch?v=ld1Xxa1k6LE

 

<길> https://www.youtube.com/watch?v=IgjS8FeEk9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