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樂水/100대 명산

1.태백산(또 다른 출발, 100대 명산)

efootprint 2020. 5. 1. 20:38

2006218() 맑음

 

 

 

 

 

 

 

[준비]

밤새 소풍 가는 아이의 마음이었을까? 일찍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아내의 알람 시계 소리에 이불을 걷어 차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김밥 준비에 어제 저녁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것 저것 배낭에 채워 놓고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사당동 네거리 공용주차장 주변에는 벌써 이십여대의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고 다양한 차림과 행색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요, 심하게 말하면 새벽부터 난리 법석이다. 태백산 팻말이 붙어 있는 버스를 찾아 탑승하니 안내자가 이름을 확인하고 좌석번호를 알려 준다. 7번으로 앞자리다.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출발]

한대 두대 각기 목적지를 향해 버스들이 움직인다. 아침 7, 내가 탄 차도 출발한다. 내 옆자리는 비어 있다. 안내인의 명단을 보니 8번 명단은 지워져 있다. 아마 출발을 취소한 듯 싶다. 누구였을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좌석 이용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재동에서 몇 명이 더 탑승했고 전체 인원은 25명 정도인 듯 싶었다. 이윽고 안내인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안내 방송 출발이 김을 빼 놓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태백산에 대한 소개가 부정적이다. 기대를 크게 갖지 말란다. 볼 것이 없단다. 산도 그렇고 주변 볼거리도 그렇고 그렇단다. 왜 그렇게 유명하고, 사람들이 찾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말투로 소개한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대상이라도 왜소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위대하게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기대감을 갖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용히 충고라도 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멋있고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대상도 자주 보고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져 버리는 것이 인생사 아닌가? 오랜 세월 산행하다 보니 그의 눈에는 태백산은 그저 그런 산으로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동]

경부고속도로의 신갈 IC에서 영동 고속도로로, 다시 원주 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버스는 달렸다. 오전 9시경 버스는 이윽고 치악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바람은 찼고 약간의 눈보라도 날린다. 이곳에서 산악회가 준비한 아침 식사를 했다. 모든 것은 속도전이었다. 사람들 모두 플라스틱 대접에 시래기 국과 밥을 담아 부지런히 입에 넣었다. 아마 서울 한복판 같으면 무의탁 걸식 노인들처럼 보였겠지만 사람들은 추위 속에서도 웃고 떠들며 맛있게 추억을 만들어 먹었다.

 

아마 충청북도 제천인 듯 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다가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을 한참이나 달린다. 산길을 이리저리 돌아 해발 4백미터 표시가 보이나 했더니 곧 8백미터가 보이고 버스가 멈춘다. 벌써 먼저 와 있는 많은 버스들과 내린 사람들도 보인다. 산행 안내인은 지난 주 보다 사람이 많이 적다고 한다.

 

 

[등산]

입구부터 바로 오르막 길이다. 대여섯 명이 일렬 횡대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넓다. 그러나 워낙 사람들이 많아 밀려 올라가는 형국이다.길은 얼음 반, 눈 반으로 되어 있다. 저벅저벅 아이젠 소리가 헌병들의 군화 발자국 소리처럼 요란스럽다. 나는 1백여 미터를 아이젠 없이 걸었으나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아이젠을 끼었다. 처음은 어색했으나 곧 익숙해졌다.

 

불과 얼마 오르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길 한쪽에서 쉬는 사람도 있고 ‘평소에 많이 걸어야 한다’는 등의 말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 동안 우면산에서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러는지 아직 힘든 것은 못 느낀다. 조금 더 오르자 길이 좁아진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앞서 올라 가고 계속 밀려 온다.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다. 그저 부지런히 올라 갈 뿐이다. 추월한다고 해도 그만큼 힘이 드니 꾸준히 오르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너무 천천히 올라가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추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마치 쇼트 트랙 작전짜기 식이다. 안쪽 파고 들기와 바깥쪽 돌아가기, 아니면 가운데 뚫고 나가기 등의 여러 방법으로 앞서 나간다. 오늘은 추월하기와 추월 당하기가 9:1쯤 되었다.

 

이윽고 주목 군락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주목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추억을 찍는다. 바람이 차갑게 분다. 정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장군봉에서 잠깐, 그리고 천제단에서 잠깐 머물렀다. 바람이 너무 차갑고 세게 분다. 카메라 샷타를 누르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천제단에 넙죽 절을 사람도 있다. 오래 있고 싶었으나 너무 센 바람과 추위, 그리고 샷터 몇번 누르 카메라 전원이 끊어져 버렸다. 이쪽 저쪽 사방으로 시야를 살피고 바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 역시 눈길이요, 얼음길이다. 아이젠 없었으면 큰 고생이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암자와 같은 절, 망경사에서 컵라면을 시켰다. 컵라면 맛이 좋았다. 아내가 준비해 준 김밥과 된장에 마늘 찍어 먹는 맛이 너무 좋았다.

내려가는 길 역시 올라올 때만큼은 아니지만 밀려서 내려갈 뿐이었다. 길을 따라서 부지런히 내려가기만 할 뿐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계속 내려가기만 한다.

 

 

35년 전, 덕유산 올라갈 때는 어떠했던가? 그 넓은 산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그 때 바람은 기억이 없지만 기온은 영하 20도 이하였을 것이다, 장갑이 꽝광 얼어 붙은 채로 정상까지 올라가고 내려 왔었다. 서울대학 입학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발자국을 찍고 큰 大字로 누워 내 흔적을 남겼다. 눈은 허리까지 빠졌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미끄러질 염려는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젊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새로 밟을 눈은 없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눈이다. 단단히 다져 있거나 얼어 있거나 아니면 아이젠 폭격으로 가루가 되어 버린 눈들이 있을 뿐이다. 아이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눈들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젠으로 찍고, 할퀴고, 때리며 지나간다. 열이면 열 모두가 아이젠을 채웠다. 사람들이 많이 오니 아니젠이 없으면 걷기도 힘들 것이다.

 

35년 전 그 때는 겨울에는 산에 사람이 없었다. 차도 없고, 돈도 없고, 길도 좋지 않았다. 내가 오르면 나 혼자일 뿐이었다. 오늘은 차도 많고, 돈도 많고, 길도 잘 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리고 몰려 온다.

 

 

그냥 내려 왔다. 단지 내려 왔다. 밀려서 내려 왔고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내려 왔다. 1050분경 등산을 시작해서 오후 230분이 되어서 재집결 장소에 도착했으니 4시간이 채 안걸렸다.

 

 

3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한 사람이 늦게 도착하여 4시경 출발, 고문관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큰소리 빵빵 친다. 그래 꼭 그런 사람이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