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WLB: Work & Life Balance)
바탕글 출처: 이진우,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직장에는 삶이 없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에 있고,일을 할 때는 집에 없다.”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분석한 마르크스의 이 명제는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 화두인 ‘워라밸’의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인데 워라밸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직장에서의 활동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워라밸은 시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알바’는 원래 아르바이트(arbeit)를 줄인 말로,한국어에 동화되어 한국어처럼 사용되지만 어원은 독일어다. 중세 독일어로 ‘노동’이라는 뜻을 지닌 이 말에는 고난과 고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몸을 사용하는 노동치고 어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노동은 고되고 힘들었다. 노동이 대부분 노예의 몫이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행위로 구분한 한나 아렌트는 노동에 관해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수행하는 신체의 노동은 노예적이라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즉 생존을 위해 일한다. 노동을 경멸하고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일만 하는 것은 노예인 것이다.
산업화를 거쳐 자본주의가 보편화되면서 우리 삶에 필요한 물건은 공장에서 생산된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노예의 노 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집이었지만,이때부터는 노동자들이 집이 아닌 공장에서 일을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믿는 현대사회에서는 모두가 집으로부터 떨어진 직장에서 일을 한다. 직장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을 살수 있는 돈 버는 일터다. 사람들은 노동을 팔고,회사는 임금을 제공한다. 이런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일반화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생활 수단이 삶 자체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다. 돈을 벌 필요가 없다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직장은 돈 버는 곳이지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정한 삶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한 걸음 더 학습)
1.勞(일할 노/로) : 熒 + 力(등불 형 + 힘 력)
등불(熒)아래에서 힘(力)써 일한다(勞)? 등불 형(熒)의 변형자와 힘 력(力)자가 합쳐져서 勞(일할 노)자 . 여기서 熒(등불 형)자는 등불이 켜져 있는 횃불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 그리고 力(힘 력)자는 쟁기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ㅎ 여튼 熒(등불 형)자의 변형자와 力(힘 력)자가 만나 勞(일할 노)자가 되었네요..ㅋ
- 努(힘쓸 노) :
努자는 ‘힘쓰다’나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努자는 奴(종 노)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奴자는 여자 종을 부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종’이나 ‘노예’라는 뜻이 있다. 노예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밤새도록 일하는 것도 모자라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奴자에 心(마음 심)자가 더해지면 怒(성낼 노)자가 되는 것이고 노예의 숙명처럼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은 努라고 한다. 그러니까 努자는 노예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다. 실제 쓰임에서는 勞(일할 노)자가 뜻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서 努자와 관련된 단어는 거의 없다.
- 奴(종 노), 怒(성낼 노)
2.노(勞)와 동(動)
5월 1일은 세계인들이 함께 하는 勞動節(노동절)이다. 우리는 ‘勤勞者(근로자)의 날’이라 이름 하였지만, 勞와 勤은 사실 같은 뜻이다.
勞를 ‘설문해자’에서는 力(힘 력)이 의미부이고 熒의 생략된 모습이 소리부라 하였지만, 금문(왼쪽 그림)은 두 개의 火(불 화)와 衣(옷 의)로 구성되었다. 火는 등불을 뜻하고 衣는 사람을 의미하여, 불을 밝혀 밤 새워 일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금문에서는 간혹 衣 대신 心(마음 심)이 더해지기도 했지만, 소전체로 들면서 지금처럼 力으로 고정되었다. 힘든 일로 고생스런 마음을 뜻하는 心 보다 육체적 힘을 뜻하는 力이 의미부가 된 것은, 원래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구분이 없던 것에서 육체적 노동이 勞動을 대표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설문해자’에서 ‘힘(力) 쓰는 것을 勞’라 하였고, ‘爾雅(이아)’에서 ‘勤과 같은 뜻이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아가 ‘맹자’에서는 ‘마음(心)을 쓰는 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힘(力)을 쓰는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여 육체적 노동보다 정신적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動은 重과 力으로 구성되었는데, 重은 소리부 겸 의미부이다. 重은 금문(오른쪽 그림)에서 문신용 칼(辛·신)과 눈(目·목)과 東(동녘 동)과 土(흙 토)로 구성되었는데, 東은 소리부이다.
이러한 모습의 重은 사실 童과 같은 字源(자원)을 가진다. 즉 죄를 짓거나 전쟁에 패해 노예가 된 남자 종을 童이라 했다. 童은 눈(目)을 칼(辛)로 刺害(자해)하여 반항 능력을 상실시킨 종을 말했는데, 이후 ‘아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다.
그래서 重은 눈을 자해 당한 남자 종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이로부터 ‘過重(과중)하다’는 뜻이 생겼다. 이런 연유로 童과 重은 鍾·鐘(종)에서처럼 지금도 종종 같이 쓰인다.
重은 이후 動作(동작)을 강조하기 위해 착(쉬엄쉬엄 갈 착)이나 力이 더해졌으나, 결국에는 고된 일이나 强制(강제)를 뜻하는 力이 대표로 채택되어 지금처럼의 動이 되었다. 따라서 動은 ‘고된 일을 강제하다’가 원래 뜻이며, ‘움직이다’는 뜻이 나왔다.
3.노동/ 작업/ 행위 : blog.naver.com/naybj/221716674170
일할수록 사라지는 나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동안은 자신이 설계한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시실은 일을 끝마치고 집에 있 을 때는 편안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에 있고,일을 할 때는 집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경험적으로 옳다. 물론 집에 있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할 일이 없어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면 고통스럽다. 사람에게는 적당히 할 일이 있어야 하고,적당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일하는 것이 삶의 균형을 이루는 적당한 수준인가? 직장에서 일을 할 때든 집에서 쉴 때든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느끼거나 발견하지 못한다면,우리는 소외된 것이다. '소외’는 간단히 말하면 살면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소외 의식을 예리하게 파헤친 마르크스의 말을 살펴보자.
노동은 노동자에게 외면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노동은 노동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 동하면서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올 느끼며,자유로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개발 하지 못하고 지신의 신체를 혹사하고 자신의 정신을 황폐화 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 에 머물며, 노동을 할 때는 자신을 상실한다,
진정한 삶의 핵심은 자신과 함께 있으며,자신을 의식하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삶과 노동은 낯설게 겉돈다. 일과 노동이 삶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우리의 일을 강제 노동으로 만든 것 인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9년에 발표한 연평균 노동 시간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연평균 노동시간이 2005시 간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다. 가장 적게 일하는 나라는 독일로 연평 균 노동시간이 1362시간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은 가장 적게 일하면서도 이웃 나라인 영국보다 생산성이 무려 27퍼 센트나 높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일한다고 가장 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잘살기 위해서는 많이 일할 필요가 있지만 많이 일한다고 잘사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예가 경제력이 높은 국가라고 해 서 반드시 많이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뿐 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잘산다고 반드시 만족도가 높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2019년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19)’에 따르면,1위인 핀란드를 포함해 1위부터 10위까지 유럽의 8개국이 포함되어 있으며,한국은 54위로 중하위권에 위치한다. 우리나라는 일을 많이 해서 경제적으로 잘 살기는 하지만 정작 국민은 잘 산다고,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일과 가정,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시간의 균형’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죽도록 일하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노동시간이 균형 있게 조정되어야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퇴근해 집에서는 잠만 자는 일이 주 5일간 되풀이되면,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결국 가정도 삶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노동의 고통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시간을 자유 시간이라고 한다. 자유는 자유 시간에서 온다. 자유 시간을 가질 때만 자신과 함께하고,자신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 시간을 휴식에 활용하면 휴식 시간이 되고, 레저 활동에 사용하면 여가 시간이 된다. 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다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균형이다.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일이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과도한 노동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인가? 워라밸은 왜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노동과 삶,직장과 가정이 분리된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논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끝과 한계를 모른다. 자본주의적 욕망은 가지면 '더 많이’ 가지려 하고,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이’ 일하게 만든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정지를 모르는 하나의 끝없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시장 경쟁을 통해 움직인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 때 혼히 '정신없이 일한다’고 말한다. 어떤 일에 몰두해 주위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일만 하다 보면 정말 '정신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1년 365일을 수십 년 동안 일하다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가?’ 하는 회의를 품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계처럼 일만 하면 스스로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걸음 더)
1.세계행복보고서
세계행복보고서는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로, 세계 각 나라 거주민들의 행복을 정량화하여 행복지수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정부, 기업 및 시민사회가 행복에 관한 복지를 평가 및 피드백할 수 있도록 한다. 각 나라별 1000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갤럽 월드 폴(World Poll)을 바탕으로 구매력 기준 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아량, 부정부패 등 6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평가한다. 2018년 보고서부터는 이민자들의 행복지수 순위를 별도로 산출하였다.
2.노동시간과 자유시간(노동시간은 자유시간의 대가다/ 혹은 자유시간은 노동시간의 대가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시간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뒹굴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시간, TV를 보는 시간, 월~금의 노동시간을 위하여 재충전을 하는 시간 등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힘든 직장생활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편한 진실은 마주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부(? 행복O)의 3요소는 건강, 관계 그리고 '자유'이다. 이 자유시간이 오히려 미래의 '자유'를 좀먹는다고 생각하면 이 자유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이 잘못된 자유시간에 대한 정의가 오히려 평일 5일 주말 2일의 무한굴레를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시간은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이다. 다양한 환경, 재력, 집안 등 모두가 다르게 가지고 살아가지만 단 한가지 '시간'만은 24시간으로 한정되어있고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자산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 즉 소중한 자유시간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더 나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휴식을 취할 것인가, 미래를 위해서 배움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소비의 만족을 위해 미래의 자유시간을 저당잡아 할부거래를 할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소비는 통제를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자유시간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지식의 습득과 소비행위이다. 즉, 올바른 교육이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교육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인생의 목적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함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3,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서: 자유 시간, 진정한 해방의 조건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더 해야 할까, 혹은 모든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좀더 잘살기 위해 일을 덜 해야 할까? 유급 노동과는 별개로 보장소득 개념에 대한 성찰의 선구자, 철학자 앙드레 고르는 환경친화적이면서도 해방감을 주는 사회 프로젝트의 초안을 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인 <마니에르 드 브와>가 최근호에 2007년 자살한 고르가 타계직전에 남긴 글을 실었다. (이하 내용은 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711.html )
직업과 노동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길이다. 왜 일하는지 일과 노동의 목적을 안다면, 우리는 이 목적의 관점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직장과 가정,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좋은 직장은 이런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직장이다. 독일 문화권에서는 흔히 노동과 직업을 구분한다. 직업이 소명 의식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천직을 의미한다면,노동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활동이다.
요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잡(job)과 워크(work)는 구분된다. 하나는 '생계를 위한 일’이 고, 다른 하나는 ‘삶을 위한 일’이다. ‘잡’이 고용 관계에서 계약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과 책임이라고 한다면,‘워크’ 는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사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받는 만큼 일하는 것이 잡이라면,일하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워크다. 고용주들은 대부분 고용인들이 워크를 해주기를 바라고,고용인은 자신의 일을 단순히 돈벌기 위한 잡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워라밸은 두 영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직장에서의 일이 낯설고이질적인 생계 활동이 아니라 삶의 한부분으로서 의미 있는 노동이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갑질 문화를 제거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해 일하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직장께서의 삶 자체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일,즉 잡을 수행하면서 그것이 삶을 위한 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직장 생활이 나의 삶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우리는 마음을 다해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장을 단순한 '일터’가 아닌 ‘삶터’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루 대부분을 직장애서 보내는 직장인들이 자신의 일을 노역이 아닌 삶으로 여기게 될까? 최근 산업 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일하면서 짧게 자주 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한다. 연속적인 노동보다는 ‘사이’가 있는 노동이 좋다는 것이다. 동료와의 관계에 서도 적당한 거리와 사이가 소통의 윤활유가된다. 틈이 없는 상사와 부하의 수직적 위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동료들 간의 지나친 경쟁 역시 인간적인 거리와사이를 파괴한다.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의 거리와 공간’ 또는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적인 여유나 겨를’을 의미하는 사이가 있어야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사이는 여유의 공간인 동시에 사유의 공간이다. 정신없이 일만 하는 현대인들은 삶에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삶의 숨결이 없는 육체는 시체인 것처럼,사유하지 않는 인간 정신도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오로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계산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삶의 의미를 시유하지 않는다면,직장은 죽은 삶의 공간이 된다. 생존을 위해서만 일하는 공간에는 사유가 숨쉬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열심히 일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해지는가? 일상으로 반복되는 노동을 잠시 중단하고 생각할 여유를 갖는 것이 워라밸의 출발점이다.
(한걸음 더)
1. job, work, vocation, labor 등
2.일생활균형재단: kwlbf.org/
- 바탕글 출처: 이진우, <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