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처] 김영수, <현인들의 평생공부법>, 319~
독서나 공부와 관련한 고사성어 71항목은 r中國讀書大辭典」,「中外讀書典故j(南京大學出版社, 1999)의 중국편(657ᅳ687쪽)을 참고하여 요약, 정리했다. 본문에 나오는 고사들과 일부 중복되는 것들은 제외했다. 이 고사성어들은 역대로 수많은 문인과 서적들에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폭넓고 깊은 영향을 남겼다, 각자의 공부법이나 공부 단계, 공부 수준을 비추어 볼 수 있다.
1. 각촉성편(刻燭成篇)
• 풀이 : 초가 타는 시간을 재어 문장을 짓다.
• 의미 : 문장을 매우 빠르게 짓는 재능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남사(南史)』 권59 「왕승유전(王僧孺傳)」.
• 내용 : 제나라 경릉왕(竟陵王) 소자양(蕭子良)은 한밤중에 문인 학사들을 소집해 초가 타들어가는 시간을 재며 시를 짓게 했다. 한 치짜리 초 하나가 다 탈 때까지 8구의 시를 지어야 했다. 소문염(蕭文琰)은 “한 치 초가 타는 시간 안에 8구 시를 짓는 게 뭐가 어렵단 말인가”라며, 자신은 구령해·강홍 등과 함께 동바루를 치면 짓기 시작해 바루 소리가 그치기 전에 시를 완성했다고 했다.
• 영향 : 훗날 이 고사에서 영감을 얻어 많은 글을 남겼는데 ‘각촉시(刻燭詩)’, ‘각촉분전(刻燭分箋)’, ‘각촉분제(刻燭分題)’ 같은 표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각촉(刻燭)’이나 ‘음촉(吟燭)’처럼 간단하게 줄여서 쓰기도 한다. 한구라는 시인은 “초 한 자루 타들어가는 동안 또 한 편의 시를 지었구나”라는 구절에서 ‘각촉제시(刻燭題詩)’란 표현을 사용했다
2. 감택용서(闞澤傭書)
• 풀이 : 감택이 책을 빌려 베껴주면서 공부하다.
• 의미 :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스스로 공부해 성공한 사람이나 그런 경우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 출전 :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감택전(闞澤傳)’ 제8.
• 내용 : 삼국시대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감택(闞澤)은 책을 읽고 공부하길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해 다른 사람을 위해 책을 베껴주는 일로 생활을 꾸렸다. 감택은 책을 베끼면서 집중해 공부했고, 훗날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그렇게 여러 책을 두루 읽고 천문·역법 같은 학문에도 정통한 지식인이 되었다.
• 영향 : 동한의 유명 인사 반초(班超)도 집안 사정 때문에 남을 위해 책을 베껴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 고사는 반초의 고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성어로 ‘용서(傭書)’, ‘용서성학(傭書成學)’(책 베껴주는 일로 학문을 이루다) 등이 있다.
3. 강엄몽필(江淹夢筆)
• 풀이 : 강엄이 붓 꿈을 꾸다.
• 의미 : 문장이 크게 진보하거나 문장 쓰는 재능이 탁월함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남사(南史)』 권59 「강엄전(江淹傳)」.
• 내용 : 일찍이 강엄(江淹)이 야정(冶亭)이란 곳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꿈에 자칭 곽박(郭璞)이란 자가 나타나 강엄에게 “내가 너한테 몇 년 동안 붓 한 자루를 맡겨놓았는데 이제 돌려달라”고 했다. 강엄은 품에서 오색필을 꺼내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날 이후 강엄은 더 이상 좋은 문장을 쓸 수 없었다.
• 영향 :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따르면, 강엄은 어릴 적 꿈에서 누군가에게 오색필을 받은 뒤로 문장이 대단히 좋아졌다고 한다. 『남사』의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강엄이 그 오색필을 돌려준 뒤로 문장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인구에 회자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흔히 ‘몽필(夢筆)’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4. 강장수도(絳帳授徒)
• 풀이 : 휘장을 내리고 제자를 가르치다.
• 의미 : 스승이 강단을 설립해 학생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전고다.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권90(상) 「마융전(馬融傳)」.
• 내용 : 한대에 마융(馬融)은 학문이 깊은 큰 유학자로 1,000여 명의 제자를 거두어 가르쳤다. 그는 피리도 잘 불고 거문고 연주도 아주 좋아했다. 통이 크고 호탕해 유가의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늘 당 위에 휘장을 쳐놓고 그 뒤에 연주자들을 안배해 음악을 들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 영향 : 훗날 ‘강장(絳帳)’, ‘사장(紗帳)’, ‘강악(絳幄)’, ‘강사(絳紗)’, ‘강위(絳幃)’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전파되었고 마융의 휘장이란 뜻의 ‘마융장(馬融帳)’, ‘마장(馬帳)’ 같은 표현도 종종 사용했다
5. 개권유익(開卷有益)
• 풀이 : 책을 들추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 의미 :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고 격려하는 전고다.
• 출전 : 『민수연담록(澠水燕談錄)』 권6 「문유(文儒)」.
• 내용 : 송나라 태종은 하루에 수많은 일을 처리했지만 매일 『태평어람』을 세 권씩 읽었다. 일이 많아 거르면 한가할 때 보충해서 읽었다. 태종은 늘 “책을 들추어보기만 해도 얻는 것이 있다. 이건 사실 하나도 힘든 일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 영향 : 『민수연담록』은 송나라 때 왕벽지(王辟之)가 편찬한 책으로 독서나 학자들과 관련한 일화가 많이 실려 있다. 송 태종보다 훨씬 앞서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책을 들추기만 해도 얻는 것이 있어 문득 밥 먹는 것도 잊곤 한다[開卷有得 便欣然忘食]”라는 문장을 남겼지만 송 태종의 ‘개권유익’이 더 많이 인용되었다. 노신도 이 전고를 인용했다. 간혹 ‘전권유익(展卷有益)’으로도 쓰는데 뜻은 매한가지다
6. 계림거고(鶴林巨賈)
• 풀이 : 계림의 거상.
• 의미 : 외국 사람들까지 구하고 싶어 할 정도로 뛰어난 문장이나 작품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백씨장경집서(白氏長慶集序)」.
• 내용 : 원진(元稹)의 「백씨장경집서」라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구당서』 권166 「백거이전(白居易傳)」이나 『신당서』 권119 「백거이전」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계림(鷄林, 당시 신라)의 상인이 중국에 와서 백거이의 시를 사겠다며 “우리 재상께서 백거이의 시를 무척 좋아해 늘 거금을 주고 구입하시는데 가짜도 가려내실 정도다”라고 말했다. 문장이 생겨난 이래 백거이의 시처럼 이렇게 널리 퍼진 경우는 없었다.
• 영향 : 이 전고는 주로 ‘계림거고’나 ‘계림지고(鷄林之賈)’의 형태로 전파됐다. 때로는 ‘시입계림(詩入鷄林)’(시가 계림으로 들어가다), ‘계림득야광(鷄林得夜光)’(계림이 야광, 즉 훌륭한 글을 얻다), ‘구만계림(句滿鷄林)’(문장이 계림에 가득 차다), ‘시재계림(詩在鷄林)’(시가 계림에 있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당나라의 걸출한 시인 백거이의 명성이 외국에까지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7. 계창야정(鷄窓夜靜)
• 풀이 : 밤이 깊도록 창문 앞 닭과 이야기를 나누다.
• 의미 : 고상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예문유취(藝文類聚)』 권91에서 인용한 『유명록(幽明錄)』.
• 내용 : 진나라 때 송처종(宋處宗)이란 사람이 긴 울음소리를 내는 닭을 한 마리 사서 애지중지 길렀다. 늘 닭장을 창 앞에 놓아두었는데 놀랍게도 이 닭이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다. 둘은 하루 종일 고상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용하는 언어가 대단히 아름답고 재미있었다. 이로써 송처종의 말솜씨도 크게 진보했다.
• 영향 : 이 고사는 너무 황당해서 믿을 수 없다. 하지만 훗날 사람들은 이 재미난 고사에서 영감을 얻어 ‘담계(談鷄)’, ‘계담(鷄談)’, ‘창중벽계(窓中碧鷄)’ 등으로 유창한 말솜씨나 고상한 대화를 비유했다
8, 고봉유맥(高鳳流麥)
• 풀이 : 고봉이 보리를 떠내려가게 하다.
• 의미 : 공부에 열중하느라 다른 일을 잊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권113 「일민전(逸民傳)」 ‘고봉(高鳳)’.
• 내용 : 동한 시대 고봉은 젊은 날 독서를 워낙 좋아했다. 그의 집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었으나 그는 밤낮으로 책에 파묻혀 지냈다. 하루는 아내가 일하러 나가면서 고봉에게 뜰에 말리고 있는 보리를 좀 보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고봉은 닭 쫓는 작대기를 든 채 책을 읽느라 보리가 빗물에 다 떠내려가는 것도 몰랐다.
• 영향 : 보리가 떠내려간다는 뜻의 ‘유맥(流麥)’은 훗날 ‘맥류(麥流)’, ‘기맥(棄麥)’(보리를 버리다), ‘맥불수(麥不收)’(보리를 거두지 못하다), ‘중정맥(中庭麥)’(뜰의 보리), ‘고봉’ 등으로 변용되어 마음을 다해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9. 고재학사(高齋學士)
• 풀이 : 고재학사.
• 의미 : 원래 나라의 명을 받아 사서 등을 편찬하는 문인 학사를 가리키는 용어다.
• 출전 : 『남사(南史)』 권50 「유견오전(庾肩吾傳)」.
• 내용 : 진나라 안왕(安王) 소강(蕭綱)은 늘 유견오(庾肩吾)를 가까이 두었다. 소강이 황태자가 되어 유견오와 유효위(劉孝威) 등 10인과 함께 서적을 편찬했는데 이들을 우대하며 ‘고재학사’라 불렀다.
• 영향 : 높은 학문으로 서적 편찬에 힘을 쏟는 문인 학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해 널리 쓰이고 있다.
10. 궁수저서 (窮愁著書)
• 풀이 : 궁지에 몰리고 시름겨울 때 책을 짓다.
• 의미 : 삶에서 뜻을 얻지 못해 힘들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시름과 울분을 발산하는 것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사기(史記)』 권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 내용 : 평원군(平原君) 우경(虞卿)은 형세를 분석해 조나라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대단히 훌륭했다. 그 뒤 위제(魏齊)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개봉에서 곤경에 빠졌다. 사람들은 우경과 같이 뛰어난 인재가 조나라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경이 이런 고난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 책을 써서 후대에 명성을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 영향 : 이 전고는 다양한 형식으로 변용되어 전해졌는데 ‘궁수유작(窮愁有作)’, ‘궁수한간(窮愁汗簡)’ 등으로도 쓰였다. 평원군 우경이 책을 쓴 사실에 입각해 ‘우경서(虞卿書)’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 표현을 빌려 한유는 “은근한 말로 사양하지 못했다고 나무라지 말라. 우경이 바로 책을 남기지 않았던가”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11. 금석지성(金石之聲)
• 풀이 : 금속이나 돌이 울리는 소리.
• 의미 : 문장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며 성조가 우아한 것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제4.
• 내용 : 동진 사람 손흥공(孫興公, 손작(孫綽))은 『천태부(天台賦)』를 쓴 뒤 그것을 범영기(范榮期)에게 보여주며 “이 문장을 땅에 떨어뜨려보시오. 아마 금속이나 돌이 내는 악기 소리 같은 것이 들릴 것이오”라고 말했다. 범영기는 웃으며 “당신이 말하는 그 소리라는 게 무슨 특별한 음악 소리겠소”라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범영기는 매번 좋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우리 같은 문인은 이런 문장을 써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영향 : 후대에 널리 전파된 전고다. 특히 시인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금석성(金石聲)’, ‘금옥성(金玉聲)’, ‘금석운(金石韻)’, ‘척지성(擲地聲)’(땅에 내던지는 소리), ‘금석갱여(金石鏗如)’(쇠나 돌이 울리는 듯한 소리) 등이 널리 쓰였다.
12. 낙양지귀(洛陽紙貴)
• 풀이 : 낙양의 종이가 귀해지다.
• 의미 : 저술이 한 시대를 풍미해 저마다 구하고 베끼려고 다투는 것을 의미하는 전고다.
• 출전 : 『진서(晉書)』 「좌사전(左思傳)」.
• 내용 : 서진 시대에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으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다. 좌사는 이 문장을 당시 문단의 명망가 황보밀(皇甫謐)에게 보여주었다. 황보밀은 크게 칭찬하며 직접 서문까지 써주었다. 이어 장재(張載)와 유규(劉逵) 같은 문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문과 주석을 썼다. 이름난 문장가 장화(張華)도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반고와 장형(張衡)의 작품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이에 돈 많은 귀족들이 앞다투어 이 작품을 베끼려 했고, 그 때문에 낙양에 종이가 부족해져 종잇값이 폭등했다.
• 영향 :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말로 흔히 사용했다. 『세설신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누군가의 문장이나 책이 한 시대를 주름잡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책을 찍어내느라 종잇값이 껑충 뛰었음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그 작품을 서로 베끼려다 보니 종잇값이 올랐다. 오늘날의 이른바 ‘베스트셀러’와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도중지귀(都中紙貴)’, ‘장안지귀(長安紙貴)’, ‘지귀(紙貴)’, ‘지증가(紙增價)’ 등으로 변용되었다
13. 남면백성(南面百城)
• 풀이 : 남면하여 100개의 성을 통치하다.
• 의미 : 장서가 대단히 풍부함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위서(魏書)』 「이밀전(李謐傳)」.
• 내용 : 후위 사람 이밀(李謐)은 대장부가 만 권의 책을 갖고 있으면 남면(南面)하여 100개의 성을 통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 영향 : ‘남면’이란 원래 제왕의 자리를 뜻한다. 제왕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기 때문이다. 존귀함과 부귀의 상징인데 이밀은 책이 많으면 제왕도 부러울 것 없다는 의미로 이런 전고를 남겼다. 사람들은 이 전고를 빌려 장서의 풍부함과 그로 인한 즐거움을 일쑤 나타냈다. 이외에 ‘좌옹백성(坐擁百城)’(앉아서 100개의 성을 차지하다), ‘백성독옹(百城獨擁)’(100개의 성을 혼자 차지하다), ‘서성(書城)’, ‘서성좌옹(書城坐擁)’(책의 성을 앉아서 차지하다), ‘자옹서성(自擁書城)’(서성을 스스로 차지하다) 같은 형식으로 변용되었다
14. 낭형영설(囊蜜映雪) ☆
• 풀이 : 반딧불이를 주머니에 담고 눈빛에 비추다.
• 의미 : 가난하고 힘든 삶에도 고학하는 모습을 묘사한 고사성어다.
• 출전 : 『예문유취(藝文類聚)』 권97.
• 내용 : 진나라 때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은 공부를 좋아했으나 집이 너무 가난해 등불을 밝힐 여력이 없었다. 차윤은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주머니에 담아 그 불빛으로 밤에 공부했고, 손강은 겨울밤이면 늘 눈빛을 빌려 책을 읽었다.
• 영향 : 우리에게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고사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파생된 비슷한 고사성어만 수십 종에 이른다고 하니 그 위력과 영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귀영화는 때가 있지만 공부는 책만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있으니 힘들고 가난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삼자경(三字經)』에도 “반딧불이를 담아, 달빛에 비추어, 집은 가난하지만, 배움은 끊임없이”라고 했다
15. 노어해시(魯魚亥豕)
• 풀이 : 노(魯)가 어(魚)로, 해(亥)가 시(豕)란 글자로 바뀌다.
• 의미 : 서적을 베끼고 인쇄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글자로 바뀌는 현상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포박자내편(抱朴子內篇)』 권19 「하람(遐覽)」, 『여씨춘추(呂氏春秋)』 권22 「신행론(愼行論)」.
• 내용 : 『포박자내편』에 “서적을 여러 차례 베끼다 보면 어(魚)가 노(魯)로, 제(帝)가 호(虎)로 잘못 바뀔 수도 있다”고 쓰여 있다. 한편 『여씨춘추』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자하(子夏)가 진나라로 가다 위나라에 들렀다. 누군가 사서에 근거해 “진나라 군대의 돼지 세 마리가 황하를 건넜다”고 하자 자하는 “그게 아니라 진나라 군대가 기해(己亥)에 해당하는 날에 황하를 건넜다”고 했다. ‘기(己)’ 자와 ‘삼(三)’ 자, ‘시(豕)’ 자와 ‘해(亥)’ 자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진나라에 도착해서 물으니 정말 자하의 말이 옳았다.
• 영향 : 이 전고는 두 글자씩 떼어서 각각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삼시지의(三豕之疑)’(삼과 시를 혼동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어시(魚豕)’로도 쓴다.
16. 단장취의(斷章取義) ☆
• 풀이 : 문장이나 뜻을 멋대로 잘라서 취하다.
• 의미 :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대변하기 위해 글쓴이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의 문장 중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 출전 : 『좌전(左傳)』 양공(襄公) 28년조.
• 내용 : 춘추시대 여러 제후국이 외교 활동을 벌일 때 사신들은 『시』 등에서 문장을 따와 자기 의사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 『시』의 본래 의미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한 쪽으로만 해석했다.
• 영향 : 지금도 비교적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좋지 않은 쪽으로 의미가 변했다.
17. 대경이서(帶經而鋤)
• 풀이 : 책을 들고 땅을 갈다.
• 의미 : 가난하더라도 공부의 뜻을 굳게 지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 출전 : 『한서(漢書)』 권58 「예관전(倪寬傳)」.
• 내용 : 한나라 때 예관(倪寬)은 공안국에게 오경을 배웠는데 집이 가난해 학비를 낼 수 없었다. 대신 밭에 나가 일했는데 그때도 늘 책(경서)을 가지고 갔으며 쉬는 시간이 되면 온전히 공부에 몰두했다.
• 영향 : 예관처럼 집이 가난해 노동을 하며 공부해서 성공한 예는 많다. 그 때문에 이 고사는 시인들의 시에도 자주 인용되었는데 ‘대경서(帶經鋤)’란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불우한 환경을 비관해 공부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격려의 의미도 들어 있는 고사성어다.
18. 독서격검(讀書擊劍)
• 풀이 : 책을 읽고 검술을 익히다.
• 의미 : 문무를 겸비한 고대 문인의 모습과 뜻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한서(漢書)』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
• 내용 : 항적(항우)은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끝내지 못했고, 검술을 배웠으나 이 또한 마치지 못했다. 이에 항량이 성을 내자 항적은 “글은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족하고, 검은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것으로 배울 것이 못 되니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을 배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항적은 아주 좋아했으나 역시 그 뜻만 대략 알고는 끝까지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한나라 무제 때 기인 동방삭(東方朔)도 독서와 검술을 함께 배웠다. 15세에 검술을 배웠고, 16세 때 『시』와 『서』 등 경전을 읽었는데 무려 22만 자를 외울 정도였다.
• 영향 : 항우는 글과 검을 다 배웠지만 무엇을 배워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전고는 훗날 문무를 겸비한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서검(書劍)’(책과 검), ‘독서마검(讀書磨劍)’(책을 읽고 검을 갈다)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9. 독서종자(讀書種子)
• 풀이 : 독서의 씨앗.
• 의미 : 독서인 집안은 마치 밭에 씨앗을 뿌리듯 대대로 끊기지 않음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 출전 : 『동제야어(東齊野語)』 권20 「서종문종(書種文種)」.
• 내용 : 당나라 사람 배도(裴度)는 늘 후손에게 “우리 같은 사람은 문장의 씨앗이 끊기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문장으로 성공해 재상이 되느냐, 아니냐는 천명에 달린 것이다”라고 훈계했다.
• 영향 :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도 다른 건 몰라도 “독서의 씨앗이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며 독서와 공부의 맥을 살려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그중에서 재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표현은 줄여서 ‘서종(書種)’(책의 씨앗)으로도 많이 쓰며, 간혹 ‘독서종(讀書種)’(독서의 씨앗)이라고도 한다.
20. 등신서(等身書)
• 풀이 : 키만큼 쌓인 책(저술).
• 의미 : 책과 저술이 아주 많음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송사(宋史)』 권265 「가황중전(賈黃中傳)」.
• 내용 : 송대에 가황중(賈黃中)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무엇이든 금세 깨치곤 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매일 아침 가황중을 똑바로 세워놓고 책에서 아들의 키만큼이나 긴 문장을 펼쳐 하루 만에 다 읽게 했다.
• 영향 : 후세 사람들은 이 고사에서 영감을 얻어 책이 아주 많은 것을 비유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 책을 키 높이만큼 쌓아 올린다든지 하는 말은 원래 전고와 조금 다르다. 팽조손(彭兆蓀)이란 문인은 「독서」라는 글에서 “사람이 자기 키만큼 책을 읽는다면 10만 군대를 거느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많은 저술을 가리킬 때도 이 고사를 인용하는데 ‘저술등신(著述等身)’이나 ‘등신저작(等身著作)’ 등으로 표현한다.
21. 마천철연 (磨穿鐵硯)
• 풀이 : 쇠로 만든 벼루를 갈고 뚫다.
• 의미 :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비유하는 성어다. 독서와 공부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 출전 : 『신오대사(新五代史)』 권29 「상유한전(桑維翰傳)」, 『구오대사(舊五代史)』 권89 「진서(晉書)」 ‘상유한전’.
• 내용 : 5대 시대에 상유한(桑維翰)이 처음으로 진사 시험을 보려는데 고시관이 ‘상(桑)’이라는 그의 성이 죽음을 뜻하는 ‘상(喪)’의 발음과 같다 하여 그를 미워했다. 이에 누군가 상유한에게 시험을 보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권했다. 상유한은 크게 분개하며 「해는 부상(扶桑)에서 뜬다」는 글을 써서 자신의 뜻을 밝히는 한편 쇠벼루를 하나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만약 이 쇠벼루를 갈거나 뚫을 수 있다면 내가 다른 길을 찾으리라!”라고 선언했다. 상유한은 마침내 진사에 급제했다.
• 영향 : 쇠로 만든 벼루는 갈기도, 뚫기도 어렵다. 공부에 대한 의지를 쇠벼루에 비유한 것이다. 이 고사 역시 ‘철연마천(鐵硯磨穿)’이나 ‘철연천(鐵硯穿)’, ‘마철연(磨鐵硯)’ 같은 표현으로 변형되어 널리 퍼졌다.
22. 만첨삽가(萬簽揷架)
• 풀이 : 책꽂이에 매달린 만 개의 책갈피.
• 의미 : 책이 아주 많은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출전 :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권7
• 내용 : 당나라 때 업후(鄴侯) 이필(李泌)의 집에는 책이 대단히 많았는데, 3만 축에 상아로 만든 책갈피가 다 매달려 있었다.
• 영향 :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때의 장서 관습은 붉은색 상아 책갈피로 경전류를, 녹색으로 역사책을, 청색으로 제자백가서를, 백색으로 문집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훗날 ‘아첨만축(牙簽萬軸)’(상아로 책갈피가 만 축), ‘아첨삽가(牙簽揷架)’(상아 책갈피가 서가에 꽂혀 있다), ‘아첨만가(牙簽滿架)’(상아 책갈피가 서가에 가득하다) 등으로 차용되었는데 모두 책이 많은 것을 나타냈다. 때로는 ‘아첨’이란 표현으로 서적을 대표하기도 한다.
23, 목불식정(目不識丁)
• 풀이 : 눈으로 정 자도 못 읽는다.
• 의미 : 쉬운 글자조차 모르거나 학문이 없음을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구당서(舊唐書)』 권129 「장홍정전(張弘靖傳)」.
• 내용 : 당나라 때 위옹(韋雍) 등은 주인의 위세를 믿고 병사들에게 늘 욕설을 퍼붓는 등 함부로 대했다. 어느 날 수하의 관군을 꾸짖으며 “지금 천하는 태평무사하여 싸움이 없다. 두 석 무게의 석궁 시위를 당길 수 있다 해도 정(丁) 자 하나 아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 영향 :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의미다. ‘정’ 자 같은 간단한 글자도 모른다는 뜻이지만, 혹자의 고증에 따르면 ‘丁’은 ‘個’의 잘못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한 글자도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아무튼 무식한 이를 비유하는 성어로 널리 알려졌다. ‘정자불식(丁字不識)’, ‘일정불식(一丁不識)’, ‘불식정(不識丁)’ 등으로 변형되어 사용하기도 했다. 뜻은 다 같다.
24. 몽필생화(夢筆生花)
• 풀이 : 붓에서 꽃이 피는 꿈을 꾸다.
• 의미 : 문인의 문장이 크게 진보하거나 빼어난 문장력을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권下.
• 내용 : 이백(李白)은 젊을 때 꿈에서 자기가 쓰는 붓끝에서 꽃이 피는 모습을 보았다. 이후 그의 문장은 크게 진보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대시인이 되었다.
• 영향 : 이 이야기는 다양한 형식으로 변용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간결하게 줄여서 ‘몽화(夢花)’나 ‘몽생화(夢生花)’로 쓰기도 하고, ‘채필생화(彩筆生花)’나 ‘화종필생(花從筆生)’ 같은 표현으로 크게 달라진 문인의 문장력을 비유했다. 또 ‘필화입몽(筆花入夢)’이라고도 하는데, 『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걸출한 괴기 소설집을 남긴 포송령(蒲松齡)은 이 표현을 빌려 “붓에서 꽃이 피는 꿈을 꾸니 명사의 풍류를 모두가 우러러보노라”라는 시를 남겼다.
25. 문방사보(文房四寶) ☆
• 풀이 : 문인의 방에 필요한 네 가지 보물.
• 의미 : 옛날 문인이 문장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네 가지 문구, 종이와 먹, 붓과 벼루를 일컫는 용어다.
• 출전 : 『문방사보(文房四寶)』 권5.
• 내용 : 북송 때 소역간(蘇易簡)이 지은 『문방사보』라는 책에서 유래했다.
• 영향 : 흔히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하며, 간혹 ‘문방사사(文房四士)’로도 쓴다(시인 육유는 “물 겹겹 산 겹겹 나그네 드물고, 문방사사만이 서로서로 의지하누나”라는 시를 남겼다). 줄여서 ‘문방’이라고도 한다. 소역간은 『문방사보』에 이 네 가지 문구의 품종과 고사 등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문방사보’란 명칭이 늦어도 북송 때 이미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사보’나 ‘사우’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종이는 선지(宣紙)(안휘성 경현(涇縣))가, 먹은 휘묵(徽纆)(안휘성 흡현(歙縣))이, 붓은 호필(湖筆)(절강성 오흥(吳興))이, 벼루는 단연(端硯)(산동성 고요(高要))이 유서 깊은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26. 문불가점(文不加點)
• 풀이 : 점 하나 보탤 것 없는 문장.
• 의미 : 단숨에 써 내려갔지만 고치거나 손댈 필요가 전혀 없는 문장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초학기(初學記)』 권17에서 인용한 『문사전(文士傳)』.
• 내용 : 한나라 사람 장순(張純)은 어릴 때부터 유명했다. 한번은 진남장군 주거(朱据)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어떤 사물을 가지고 문장을 지어보라고 했다. 장순은 단숨에 문장을 완성했는데 점 하나 보탤 것이 없었다.
• 영향 : 이 전고는 ‘단숨에 문장을 완성했다’는 ‘일기가성(一氣呵成)’과 함께 널리 유행했다. 형식도 다양하게 변용됐는데 ‘불가점찬(不可點窜)’과 ‘불가점(不可點)’ 등이 보인다.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은 ‘만 자의 글에 점 하나 보탤 것 없는 문장’을 뜻하는 ‘만언불가점(萬言不可點)’이란 표현을 남겼다.
27.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
• 풀이 : 『논어』 절반으로 천하를 다스리다.
• 의미 : 과거 유가 경전의 학습을 강조한 전고다.
• 출전 : 『학림옥로(鶴林玉露)』 권7.
• 내용 : 송나라 개국공신으로 재상이 된 조보(趙普)는 책이라곤 『논어』만 읽었다. 그는 일찍이 송 태종에게 과거에 『논어』의 절반으로 태조가 천하를 얻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이제부터 나머지 절반으로 태종의 천하 통치를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 영향 : 사실 이 전고는 공자와 맹자의 도로 치국의 근본을 삼으라는 유가의 선전 구호처럼 들린다. 유가가 학술과 사상은 물론 통치의 근본 원리로 자리매김하면서 이 전고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어떤 책이든 깊이 파고들어 그 이치를 깨치면 공부는 물론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무난할 것 같다.
28. 반표(半豹)
풀이 : 원표의 반.
의미 : 폭넓은 독서를 나타내는 전고다.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제4.
내용 : 은중문(殷仲文)은 천재적인 글쓰기 재능을 타고났다. 하지만 독서량이 많지 않았다. 이에 부량(傅亮)은 "은중문이 읽은 책이 원표(袁豹)의 반만 되어도 그 문장이 반고(班固)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영향: 이 일화는 「진서(晉書)」 권99 「은중문전(殷仲文傳)」 에도실려 있다. (다만 부량이 한 말미 당시 유명 인사인 사령운(謝霊運의 말로 되어 있다). 책을 많이 읽기로 이름 난 원표에게 빗댄 이 이야기는후대에 ‘표반(豹半)’, '원표반(袁豹半)’, '반원표(半袁豹)' 등으로 변형되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비유하거나 책을 많이 읽으라고 격려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29. 변소복사(邊韶腹笥)
• 풀이 : 상자처럼 생긴 변소의 배.
• 의미 : 학식이 풍부하거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권110(상) 「문학전(文學傳)」 ‘변소(邊韶)’.
• 내용 : 변소는 학문이 뛰어나 수백 명의 제자를 거두었다. 한번은 변소가 대낮에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제자 하나가 슬며시 “변 선생의 배가 아주 크네. 공부할 생각은 않고 잠잘 생각만 하다니”라며 비웃었다. 변소가 이 말을 듣고 “내 배는 오경이 가득 찬 책 상자다. 내가 눈을 감은 것은 학문을 생각하고 꿈에서 주공과 공자를 뵙기 위함인데 네놈들은 어째서 스승을 비웃느냐”라고 말했다.
• 영향 : ‘변소복사’에서 ‘사(笥)’는 상자를 말한다. 상자처럼 생긴 변소의 배란 말인데, 책이 가득 들어 있는 책 상자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 고사에서 ‘변소복(邊韶腹)’, ‘복사(腹笥)’, ‘오경사(五經笥)’, ‘군서사(群書笥)’ 같은 표현이 파생되었다. 모두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해 학식이 풍부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30. 복장부(覆醫瓿)
• 풀이 : 항아리를 덮다.
• 의미 :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형용하는 전고다.
• 출전 : 『한서(漢書)』 권87(하) 「양웅전(揚雄傳)」.
• 내용 : 양웅(揚雄)은 가난한데도 술을 무척 좋아해 그의 집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거록 사람 후파(候芭)는 항상 양웅과 함께 지내며 그에게 『태현(太玄)』과 『법언(法言)』을 배웠다. 유흠(劉歆)도 와본 적이 있는데 양웅에게 “정말 헛수고를 하시는구려. 지금 학자들은 생활 여건이 좋아졌지만 『주역』도 제대로 모르거늘 하물며 당신의 『태현』을 어찌 알아듣겠소? 훗날 당신의 저작을 가져다 항아리를 덮지나 않을까 두렵소”라고 했다.
• 영향 : 뛰어난 저술이나 문장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항아리 따위를 덮는 뚜껑으로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반영한 전고다. ‘복부(覆瓿)’라고 많이 쓴다. ‘복장(覆醬)’, ‘복앙(覆盎)’, ‘개장(蓋醬)’ 등으로 활용되었다.
31. 부신독서(負薪讀書)
• 풀이 : 장작을 등에 진 채 책을 읽다.
• 의미 :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것을 권하는 고사성어다.
• 출전 : 『한서(漢書)』 권64 「주매신전(朱買臣傳)」.
• 내용 : 서한 시대 관리 주매신(朱買臣)은 젊은 시절 너무 가난해 땔나무를 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책을 좋아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늘 땔나무를 지고 나르며 틈틈이 공부했다. 고생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 0. 『사기(史記)』 속 현자들)
• 영향 : 언제 어디서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의미지만 때를 만나지 못한 가난한 생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는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 성공하라는 격려의 의미로도 쓸 수 있다. ‘부신’ 대신 ‘부초(負樵)’로 쓰기도 하지만 뜻은 매한가지다. 이 고사 역시 『삼자경』에 수록되어 있다
32. 분고계구(焚膏繼晷)
• 풀이 : 날이 밝을 때까지 불을 밝히다.
• 의미 : 낮부터 시작해 어두워지자 등불을 밝히고 공부해 날이 샐 때까지 계속했다는 고사성어다.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 출전 :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권12 「진학해(進學解)」.
• 내용 : 당나라 때 대문장가 한유의 문집 『창려집』에 나오는 고사다. 한유는 오랫동안 유가 경전의 저술은 물론 제자백가의 책을 꾸준히 공부했는데, 사건을 기록한 문장이건 논설문이건 그 문장에 내재된 맥락과 정교한 의미를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이렇게 낮부터 시작한 공부는 어두워져 등불을 밝히고도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 영향 : 이 고사성어는 이후 1,000년 넘게 널리 퍼져 집집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유가 당대 최고 문장가이자 학자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이고, 이 말은 훗날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을 격려하는 고사성어로 남게 되었다.
33. 불구심해(不求甚解)
• 풀이 : 깊은 해석을 추구하지 않다.
• 의미 : 문장의 글자나 구절의 해석이 제약에 얽매이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전 : 『도연명집(陶淵明集)』 권6.
• 내용 : (도연명은) 천성이 한가롭고 차분한 것을 좋아했다. 공명이나 이익을 좇지 않았다. 독서를 좋아했지만 자구의 뜻을 풀이하는 따위에 얽매이지 않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있으면 먹고 자는 것도 잊었다.
• 영향 : 이 전고의 본래 의미는 독서란 자구의 해석에 마음 쓰지 않고 그 정신과 요지만 깨우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점차 대충만 이해하고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는 천박하고 얕은 독서를 비유하는 말로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34. 삼년불규원(三年不窺園)
• 풀이 : 3년 동안 정원을 엿보지 않다.
• 의미 : 문을 걸어 잠근 채 장기간 전심전력으로 공부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 출전 :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
• 내용 : ‘하유독서(下帷讀書)’라는 고사를 남긴 동중서의 공부법을 나타내는 또 다른 성어다. 공부에 전념하느라 3년 동안 정원에도 나와보지 않았다는 동중서의 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 영향 : 훗날 ‘불규원포(不窺園圃)’, ‘불규원정(不窺園井)’, ‘절규원(絶窺園)’, ‘불리전원(不履田園)’ 등 여러 형식으로 변용되어 공부에 전심전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도연명을 비롯한 많은 문인이 이 고사를 빌려 공부를 권하거나 격려하는 문장을 남겼다.
35. 三墳五典(삼분오전)
• 풀이 : 『삼분(三墳)』과 『오전(五典)』.
• 의미 : 중국의 고대 문화와 관련한 전적을 가리키는 전고다.
• 출전 : 『좌전(左傳)』 소공(昭公) 12년조.
• 내용 : 춘추시대 초나라 영왕(靈王)과 그의 대신 자혁(子革)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초나라 사관 의상(倚相)이 잰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갔다. 초왕이 “저 사람은 우수한 사관이니 잘 대해야 할 것이오. 그는 『삼분』과 『오전』, 『팔색(八索)』과 『구구(九丘)』를 읽어 알고 있소”라고 말했다.
• 영향 : 초나라 영왕이 언급한 책이 어떤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와 문화 및 문물제도와 관련된 서적일 것으로 추측한다. 이 전고는 간단하게 줄여서 ‘전분(典墳)’ 또는 ‘분전(墳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분적(墳籍)’이나 ‘구분(丘墳)’ 등으로도 쓴다.
36. 삼십승서(三十乘書)
• 풀이 : 서른 수레의 책.
• 의미 : 장서가 많거나 학식이 넓고 깊은 이를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진서(晉書)』 권36 「장화전(張華傳)」.
• 내용 : 서진(西晉)의 문학가 장화(張華)는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가 죽었을 때 집에 다른 재산은 없고 집 안을 가득 채운 각종 문학서와 역사서뿐이었다. 장화가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책 상자만 서른 수레에 이르렀다. 서진의 국가 도서관을 관장하던 관리 지우(摯虞)도 도서를 교정하려면 장화의 장서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 영향 : 훗날 여러 사람의 글에 차용되었는데, ‘책을 실었더니 서른 수레나 되었다’, ‘서른 대의 수레에 책을 보관했다’ 등으로 장서의 풍부함을 나타냈다. 유우석(劉禹錫)은 “천 일을 술에 취해 있고, 서른 수레의 책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서른 수레의 책을 읽다’는 말로 방대한 학식을 뽐내기도 했다. ‘서른 수레’는 훗날 책을 논하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고, ‘서른’이란 숫자도 상징적인 수가 되었다.
37. 삼여독서(三餘讀書)
• 풀이 : 세 가지 남는 시간에 독서하다.
• 의미 : 시간을 잘 활용해 책 읽고 공부하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 출전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종요(鐘繇)·화흠(華歆)·왕랑전(王郞傳)’에서 인용한 『위략(魏略)』.
• 내용 : 삼국시대에 동우(董遇)는 『노자』와 『좌전』을 깊이 연구해 정통했다. 누군가 그에게 배움을 청하자 “먼저 책을 백 번 이상 읽어야 한다. 그러면 뜻이 자연스럽게 분명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그 사람에게 동우는 ‘삼여(三餘)’의 시간을 이용하라고 가르쳐주면서 삼여란 겨울, 밤, 흐리고 비 오는 날이라고 풀이해주었다.
• 영향 : 농경사회에서 겨울과 밤 그리고 흐리고 비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 일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남게 마련이다. 동우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해 공부하라고 제안했다. 이 고사성어는 파생어가 많지 않지만 ‘삼여’라는 표현은 널리 인용되었다.
38. 서통이유(書通二酉)
• 풀이 : 책이 대유산(大酉山)에서 소유산(小酉山)까지 통하다.
• 의미 : 책을 보관한 장서처를 나타내거나 장서가 아주 많음을 비유하는 전고다.
• 출전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9에서 인용한 『형주기(荊州記)』.
• 내용 : 이 전고에서 ‘이유(二酉)’는 소유산과 대유산을 가리킨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소유산 한 동굴에 책이 수천 권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진나라 사람이 이곳에서 책을 읽다가 남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 영향 : 이 전고는 주로 ‘이유’로 줄여서 차용했다. 명·청 시대의 일부 장서가는 이를 자신의 장서각 이름으로 삼길 좋아했다. ‘이유산방’이니 ‘이유재’ 등이 그것이다. 또 장서가 많다는 의미의 ‘서통이유’와 함께 ‘재관이유(才貫二酉)’라 하여 ‘재능과 학식이 소유산과 대유산을 관통할’ 정도로 대단함을 비유하기도 했다. 소유산은 유양산(酉陽山)이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희귀한 도서를 비유하는 ‘유양지전(酉陽之典)’이란 전고가 탄생했다.
39. 소재(蕭齋)
• 풀이 : 편액이 걸려 있는 서재.
• 의미 : 옛사람들의 서재에 대한 별칭을 말한다.
• 출전 : 『국사보(國史補)』 권中,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권1.
• 내용 : 남북조시대 양나라 무제는 독실한 불교도로 절을 많이 지었다. 절을 짓고는 소자운(蕭子雲)으로 하여금 비백체(飛白體)로 ‘소(蕭)’라는 글자를 쓰게 했다. 이 글씨는 당나라 때까지 보존되었다. 이약(李約)이 많은 돈을 들여 강남에서 이 글씨를 사서 낙양으로 가져온 다음 액자를 씌워 작은 정자에 걸어두고 ‘소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글자는 그 뒤 장언원(張彦遠)의 선조 손에 들어갔다.
• 영향 : 지식인의 서재를 나타내는 운치 있는 이 용어는 종종 ‘소사(蕭寺)’라 하여 절을 대신하는 용어로도 쓰였다.
40. 속지고각(束之高閣)
• 풀이 : 문설주에 묶어두다.
• 의미 : 지식인이나 책을 쓰지 않고 한쪽에 치워둔다는 의미의 전고다.
•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호상(豪爽)」 제13.
• 내용 : 동진 사람 유익(庾翼)은 가슴에 중원 수복이라는 큰 뜻을 품었다. 당시 두의(杜義)나 은호(殷浩) 같은 사람은 고상한 담론과 박학다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유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늘 “지금 그런 이들은 높다란 문설주에 묶어두고 쓰지 않는 것이 옳다. 천하가 평정된 다음 다시 그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 영향 : 원래 책과는 상관없는 전고였지만, 후세 사람들이 왕왕 이를 빌려 책을 한쪽에 치워놓고 보지 않는 상황을 나타냈다. 이 고사에서 ‘속각(束閣)’, ‘속고각(束高閣)’, ‘속치고각(束置高閣)’ 같은 표현이 파생되어 쓰였다.
41. 심장적구(尋章摘句)
• 풀이 : 문장 몇 개를 뒤지거나 구절 몇 개를 가려내다.
• 의미 : 문장의 단편적인 단어 정도만 살피고 그 실질적 의미는 깊이 탐구하지 않는 것을 형용하는 표현이다.
• 출전 :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오주전(吳主傳)’.
• 내용 : 오나라 대신 조자(趙咨)가 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위 문제(文帝) 조비(曺丕, 조조의 아들)가 그를 예우하면서도 농담 삼아 “그대 오왕(손권(孫權))도 책이란 걸 읽는가?”라고 물었다. 조자는 “오왕은 구름처럼 많은 전함과 비처럼 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고 마음으로 천하 대사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남을 때는 잊지 않고 여러 가지 책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는데, 문장 몇 개를 뒤지거나 구절 몇 개를 가려내는 백수 서생의 공부와는 다릅니다”라고 대답했다.
• 영향 : 깊이 있는 공부나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 일부 문장이나 자기 눈에 드는 단어 몇 개로 공부했다고 으스대는 경우를 비꼬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42. 십년창하(十年窓下)
• 풀이 : 10년 동안 창을 닫아걸다.
• 의미 : 오랜 세월 문을 걸어 잠그고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십년한창(十年寒窓)’이라고도 한다.
• 출전 : 『귀잠지(歸潛志)』 권7.
• 내용 : 금나라가 몽골의 침략으로 갈수록 땅을 잃어 하남과 섬서 일대만 겨우 남게 되었다.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어 공명을 이루고자 하는 독서인이 적당한 자리를 얻어 재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나돌게 되었다. “옛사람은 사람 만나지 않고 10년 고학하면 일거에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거에 명성을 얻는다 해도 10년 동안 창 아래로 아무도 찾지 않는구나.”
• 영향 : 훗날 ‘한창지하(寒窓之下)’, ‘십재한창(十載寒窓)’, ‘한창십재(寒窓十載)’, ‘등창십재(燈窓十載)’ 같은 형식으로 오랜 세월 청빈하게 고학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렇게 공부하고도 명성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는 성어로 쓰인다.
- 계속(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