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31일
[출발]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었던 봄철 1,000m 이상 산행을 봄의 마지막날인 5월 31일 결행(?) 했다. 이번 산행은 가평에 있는 화악산이다. 어제 인터넷을 살펴 보다가 1,500m 가까운 높이에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소개를 보고 무조건 산행을 신청했다. 지난 태백산 산행과는 달리 9시 출발이었고, 늦은 출발이었던 만큼, 느긋한 마음이 아침을 잠깐 바쁘게 만들었다. 행장 꾸리는 것도 대충 준비했다가 시간이 가까워지자 배낭에 되는 대로 집어 넣었다. 더구나 오늘은 지방 일꾼들 뽑는 날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들은 한 명도 없지만 어떻든 지금까지 한번도 기권하지 않았기에 8시 30분 부랴부랴 방현 초등학교에 가서 투표를 마쳤다. 학교에 도착하니 예상과는 달리 다소 기다리는 줄이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앞자리로 가 양해를 구한 후 투표를 한 후 사당동 버스 출발지로 바쁘게 이동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는 내가 갈 행선지 버스만 두 대가 있을 뿐이었다. 9시 10분 드디어 출발했다.
[이동]
양재동과 성남 복정역을 경유하면서 사람은 두 대가 꽉 찬 상태. 양수리 못 미쳐 북한강을 따라 달린다. 양쪽으로는 한껏 피어 오른 봄의 정취가 짙게 느껴진다. 이윽고 새로 난 웅장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대단한 공사들이 몇 년 사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산을 가로 지르고, 산을 뚫어 내고, 과학과 기술의 힘을 위대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사라지고 훼손되는 산야를 안타깝게 바라 보기만 해야 하는지,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대성리-청평을 지나 계속 달린다. 밖으로 나가는 차량 행렬들이 제법 된다. 가평을 뒤로 돌아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더 내달린다. 가는 길목 곳곳마다 유원지가 눈에 띈다. 산을 끼고 돌아가는 개울 물이 제법 수량이 있는 듯 하고 주변 경치도 그런대로 괜찮다. 명지산과 연인산 입구 표지판이 가는 길목에 보인다. 안내인은 산행 후 오후 4시까지 도착하란다. 도착하면 식사를 한단다. 늦어도 5시면 도착해야 하고 5시 30분이면 출발하겠단다. 11:30분 화악산 아래 도착. 도착하자 마자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행]
사람들은 벌써 내달리듯이 앞서 나간다. 내가 탄 버스가 2호차이고 내가 늦게 내린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앞이다. 여자들도 무지하게(?) 빠르다. 지난 번 태백산 등반 시에는 내가 많은 사람들을 추월했고 나를 추월해간 사람은 5명도 안됐던 것 같은데 오늘은 모두 선수들만 온 것 같다.아무튼 우선 계곡의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 내린다. 산 입구 쪽에는 풀들이 높이 자라 얼굴을 때린다.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간다. 계곡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니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경사도가 50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는 것 밖에 없다. 평탄한 길이 없다. 곧 힘이 부치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호흡도 가빠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30분 오르고 5분 쉬겠다는 마음 속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자꾸 시계로 눈이 간다. 1분도 오르지 못하고 2,3분 쉬어가는 꼴이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 꽃들이 그나마 생기를 잃지 않게 만든다. 내가 알고 있는 야생화들도 많이 보인다. 원추리, 은방울, 양지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떻든 ‘우면산’ 중간에 서초구청에서 심어 놓은 야생화(윤판나물,돌단풍,바위치,곰치, 아스타,노랑매미꽃) 거의 모두가 보인다. 그밖에도 희한하게 생긴 온갖 수목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고, 깔려 있다. 여기저기서 나물 채취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 산은 나물이 많단다. 함께 온 사람들 중에서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 중간 중간 멈추어 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어떻든 너무 힘이 들고 체력이 부친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쪽에 내가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든다. 후회와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왜’ 적어도 계절에 한번 이상은1,000m 이상을 오른다고 작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 목표를 버릴 수는 없다. 재승이 시험성적과 걸어 놓았으니까. 그런데 내 눈 앞에 ‘한국명산 300개 등산기념”이라는 리본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순간 300개는 아니더라도 100개는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2번째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힘이 들고, 후회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왠 100개 산 등산이라는 말인가?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여럿이 동시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깔딱고개 정상이라고 한다. 아마 지금 이곳은 해발 1,000m 가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저 아래 ‘중봉’까지 2km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2.8km라고 되어 있다.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 웃어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힘들게 올라와서 보니 약간은 화가 나 있는 그런 마음일 거다. 이동 중간에 샀던 김밥을 먹었다. 시간을 메모하지 않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오후 1시 가까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상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머리 위 저쪽으로 하늘 위에 봉우리가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걱정도 되지만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걸어야 한다.올라가야 한다. 여기저기 철쭉꽃이 피어 있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 그리고 꽃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주어 땀을 식혀 준다. 왼쪽으로 화악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부대가 있어 갈 수는 없다지만 역시 큰 산임을 알게 해 준다. 아래로 녹색의 산맥들이 줄지어 내달린다.
드디어 오후 2시 45분, 중봉에 도착했다. 이쪽 저쪽으로 눈을 돌려가며 발아래 펼쳐지는 산맥들을 살핀다. 10여분 머물면서 사진을 찍고 하산길에 들어섰다. 2시 55분 하산 시작,얘기봉 쪽으로 향하는 하산 길도 쉽지 않았다. 이번에 한없이 내려가는 길이다. 겅사 역시 만만찮다. 수직길도 가끔씩은 나타난다. 길 표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간혹 당황스럽게 만든다. 해당 산악회에서 리본을 부착한다고 했는데 아마 중간에 붙이다가 모자란 듯, 숫자가 줄어들더니 이윽고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어 비리는 사람도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산악회 이름은 ‘안전산악회’인데, 안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 않다. 인터넷 소개에는 산행에 4시간 30분 걸린다고 했는데, 그 시간에 마칠 사람은 다람쥐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오른 데에 3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렇다면 내려가는 시간은 1시간 30분 이내여야 하는데 내려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얘기봉 못 미쳐, 오른 쪽으로 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 가다 4시15분쯤 물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이제 계곡이 나타난 것이다. 4시 35분 드디어 수량이 좀 많은 계곡물을 떠 마셨다. 돌덩이 많은 계곡에서 길이 자꾸 끊어져 헤맨다. 고생 고생하다가 도착지에 도달하니 5시 20분, 그런데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전테 80여명 중에서 10여명 밖에 안된다. 나는 내가 상당히 늦은 줄 않았는데,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착하니 닭죽이 준비되어 있어 허겁지겁 먹어댔다. (지금 생각하니 안전산악회가 아닌가 싶고 서비스가 좋았다. 2010.10.1)
저녁 7시 버스 2대가 서울을 향해 출발, 내가 모르는 길을 달리며 서울행, 집에 도착하니 9시 50분, 그리고 TV는 열린당 참패와 한나라당 압승을 보여주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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