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목)
지난 5회차 강좌에서 K-사자성어 도입 부분에서 위 내용을 근거로 내로남불(Naeronambul)이 옥스포드대사전 (Oxford English Dictionary, OED) 에 등재된 것으로 소개드리고, 다소 안타까운 기분을 함께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경로를 통해 확인해보니 '내로남불'은 한국에서는·사회·정치 맥락에서 널리 알려진 신조어지만, 2025년 기준 OED에는 등재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한국 정치 상황을 전하는 일부 외신이나 매체에서 간헐적으로 인용한 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2020년 이전에도 몇몇 한국어 또는 한국 관련 단어들이 OED에 이미 등재되어 있었는데 태권도, 한글, 김치, 소주, 비빔밥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비록 수는 적었지만 일부 단어들이 국제적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이후에 한류로 통칭되는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OED에 올라가는 한국어들도 많아지는데 2021년도 9월에만 26개 단어가 등재됩니다.
aegyo (애교), banchan (반찬), bulgogi (불고기), chimaek (치맥), daebak (대박), dongchimi (동치미), galbi (갈비), hallyu (한류), hanbok (한복), japchae (잡채), K‑ (K‑접두사), K‑drama (케이드라마), kimbap (김밥), Konglish, Korean wave, manhwa (만화), mukbang (먹방), noona (누나), oppa (오빠), unni (언니), PC bang (피시방), samgyeopsal (삼겹살), skinship (스킨십), tang soo do (당수도), trot (트로트), 그리고 격려 외침으로 쓰이는 fighting! (paiting!)
저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나 '그리움', '어머니' 등과 같은 우리와 친근한 단어들을 포함해 우리 역사와 전통이 담긴 의미있는 사자성어들까지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애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첫번째 사자성어가 우리 민족의 태동과 함께 했던 홍익인간입니다.
▶ 弘(넓을 홍) 회의문자/ 활(弓) 시위를 팔굽혀(厶: 사사 사, 팔꿈치 사) 당기니 활과 시위 사이가 커지니 --> 넓다, 크다
▶ 益(더할 익) = 회의문자/ 水(氵, 氺:물)를 옆으로 누인 모양 + 皿(그릇 명) ;그릇에 물이 넘치다 --> 넘치다, 더하다, 남다, 이롭다
▶ 人(사람 인) = 상형문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 間(사이 간) = 회의문자/ 문(門)틈으로 스며드는 햇빛(日) --> 사이,
3가지 間 :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 : 사이, 틈이 적당해야 함
▷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대한민국의 사실상(de facto)의 국시이자 법률상 교육이념으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삼국유사』 및 『제왕운기』 등에서 한국사 최고(最古)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소개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교육기본법 제2조에 관련 조문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 王(임금 왕) = 상형문자/ 갑골문에 나온 王자는 고대에 권력을 상징하던 도끼의 일종을 그린 것임
[갑골문 발견 전까지는 하늘(一)과 땅(一) 사이(수직선)를 중재하는 존재(중간선)]--> 왕
▶ 不(아닐 불) = 화살을 쏘았는데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는다(不) – 아니다. 없다, 말다 새가 올라가더니 내려오지 않는다(不)
= 뒷 초성이 ㄷ, 혹은 ㅈ 경우는 '부', 나머지는 '불' 不知不識(부지불식), 不偏不黨(불편부당), 不進(부진), 不足(부족), 不當(부당), 不道德(부도덕)
▶ 食(먹을 식, 밥 식) = 상형문자/ 갑골문의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食의 아래부분;艮) + 뚜껑(亼:삼합 집) ->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됨.
▶ 言(말씀 언) = 입(口)에서 나와서(二) 퍼지는(二) 것이 말(설명과 기억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 지은 설명임)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있었던 사실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역사설화입니다.
고구려 평원왕 시대, 평양 근처에 온달은 나이 많은 어머니와 살고 있었습니다. 온달은 산골에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 겨우겨우 먹고 살았다고 하지요. 그는 생김새가 우스웠고, 워낙 성품이 착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구걸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돌팔매질을 하여도 그저 빙그레 웃고 갔기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면서 놀렸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그는 어느새 저잣거리의 명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말 안 듣는 계집아이들에게 바보 온달한테 시집 보내버린다고 놀리곤 했답니다. 이런 습관은 고구려 왕실에도 전해졌습니다. 한편, 평원왕에게는 어린 공주 평강이 있었습니다. 평강 공주는 어찌나 잘 울었던지 울보 공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원왕은 공주가 울 때마다 바보에게 시집보낸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지요. 그 후 세월이 흘러 공주가 시집갈 나이가 되자 일이 벌어집니다.
평원왕은 평강공주를 귀족 가문의 고 씨 집안에 시집보내려고 했습니다. 이때 공주가 아버지에게 대듭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찌 다른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왕은 농담이었다고 했지만,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우깁니다. 왕은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러자 평강은 기다렸다는 듯이 패물을 싸 들고 궁궐을 나가버렸습니다. 당연히 그녀가 찾아간 곳은 바보 온달이 사는 집... 하지만 평생 궁궐에 살다 보니 혼자 가는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하여 결국 찾은 온달의 집, 누추한 움막 같은 집에 온 공주가 인기척을 합니다. 그리고는 여기까지 찾아온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어머니와 아들은 이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돌아가 달라고 하는 모자... 하지만 밤이 이미 너무 늦고 하여,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집안일까지 다 해놓고 왕실의 패물들로 장식을 해 놓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고 눌러앉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패물을 주면서 팔아오라고 시킵니다. 평강은 그 돈으로 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패물을 주며, 이번에는 말을 사 오라고 했습니다. 공주는 그 말로 온달에게 무술을 수련시켰습니다. 밤이면 글공부도 시켰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장수의 면모를 가지게 된 온달... 그때 나라에서 매년 하는 사냥대회가 열립니다. 바보 온달은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하게 됩니다.
평원왕은 훌륭한 무사가 된 사연을 알고는 감탄하며 평강공주도 다시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보 온달은 온달 장군이 되고, 고구려 시대에 쳐들어왔던 북주의 무제를 쳐부수고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 후 영양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그는 장수왕이 개척한 남쪽 땅을 지금 신라가 차지하고 있으니, 그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신라 진평왕도 나서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차산에 먼저 도착한 온달 장군은 용맹스럽게 활약하며 승리를 거머쥘 듯했습니다. 그때 진평왕의 지원군이 도착합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고구려군은 신라군의 공격이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신라군의 화살이 쏟아지는 비처럼 날아들고, 아단성 아래에서 싸우던 온달 장군은 결국 그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저잣거리의 바보 온달에서 대국 고구려의 장군이 된 그의 일생은 이렇게 끝납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전설이나 설화가 아님을 삼국사기나 조선상고사의 기록으로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가장 존귀한 신분인 평강공주가 바보인 온달과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결혼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일일까요?
당시의 고구려 신분제를 생각하면 평민인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온달을 하급 귀족가문 출신으로 보거나 '피부가 하얗고 말이 어눌했다는 사서의 서술을 근거로 다문화 가정의 혼혈 출신 용사로 보는 견해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 儉(검소할 검) = 회의문자 : 亻(=人; 사람) + 僉(다 첨) : 사람들이 지붕 아래 모여 부르짖음, 왜? 흉년 à ‘흉년이 들다, 가난하다, 검소하다’
亻(=人; 사람) + 僉(다 첨) : 사람들이 지붕 아래 모여 떠들어 댐, 이런 사람들은 ->가난함, 낭비하지 않음, 검소함
▷ 僉(다 첨) =亼(삼합 집) +吅 (부르짖을 훤, 지껄일 혼) +从(좆을 종;모이다=人+人) 사람들이 지붕 아래 모여 떠들어댄다
▶ 而(말이을 이) = 상형문자/ 턱 수염의 모양,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 잇다 , 음을 빌어 어조사로 씀
▶ 不(아닐 불) =자형의 위쪽 가로획(一)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머지 부분은 새(혹은 화살).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는 내려오지 ‘않다’는 의미를 형상화 --> 그래서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생김.
▶ 陋(더러울 루) = 형성문자 : 阝(좌부 변: 阜,𨸏) + 㔷(더러울 루) --> 더럽다, 천하다, 추하다, 볼품 없다
▷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는 직역하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입니다. 이 말의 출처는 고려 시대 문인이자 역사가인 김부식이 쓴 우리 역사의 정사인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처음 나옵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궁궐을 지었는데(作新宮室) 그를 설명하면서 검이불루(儉而不陋)하고,화이불치(華而不侈)라 한 것입니다.
이를 바꾸어 현대적이고 미학적으로 말하면 '기품이 있는 단아함과 천박하지 않은 고상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멋있고 높은 수준의 철학이 녹아있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지만, 지나치거나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너무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러움을 상실하거나 너무 부족하여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에 담겨 있는 것은 서로 대립적인 것들의 조화를 통하여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검소함과 화려함, 누추함과 사치함 등 서로 대립적인 것들이 안겨주는 불안이나 불편함을 넘어서서, 사람이 가장 안정되면서 높은 자존감을 주는 일원적인 미감을 느끼게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 또한 자신의 미학관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는 또한 이 말속엔 우리 민족의 대표적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조선을 건국하고 나라의 정궁인 경복궁을 설계하고 지은 '삼봉 정도전' 선생 역시 이 말이 함의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궁궐을 지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즉 '궁궐의 크기와 형상이 사치하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고갈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된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며 이는 자신의 철학이기도 하지만 고래로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시청을 권합니다(4분 50초) "절제 속에서 빛나는 품격: 검이불루, 화이불치" ,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시청을 권합니다(9분50초) "검이불루 화이불치" 8글자에 담긴 백제의 아름다운 품격✨ | 차이나는 K-클라스 1회 |
▶ 佛(부처 불) = 亻(=人; 사람) + 弗(아니다 불); 사람=(人)이지만 (사람이) 아니다(弗) 그럼 무엇인가? ->‘부처’ ‘비슷하다’ ‘
= 형성문자/ 亻(=人; 사람) + 弗(아니다 불=buddha의 소리를 빌린 글자 ) --> 佛陀 =‘부처’
▶ 眼(눈 안) = 형성문자 / 目(눈 목; 겉에 들러난 외관상의 눈) + 艮(그칠 간; 끝=드러나지 않은 안구의 끝 부분=수정체를 지나온 빛이 상으로 맺히는 망막) ->
▶ 豚(돼지 돈) = 회의문자/ 豕(돼지 시) + 月(월☞肉육)로 이루어짐. 멧돼지와 구별(區別)해 제사에 고기를 바치는 돼지
▶ 目(눈 목) = 상형문자/사람의 눈의 모양, 처음엔 보통(普通)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 썼는데 나중에 세로의 긴 자형(字形)으로 변한 것은 글이 세로 쓰기임으로 맞춘 것
▷ 조선왕조의 시조 이성계와 국사(國師) 무학대사가 어느 날 군신의 관계를 떠나서 놀자고 하였답니다.
먼저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내 눈에는 대사가 돼지처럼 보이는구려.”라고놀리자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소승은 전하가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이성계가 “허허, 나는 대사를 돼지라고 불렀는데 대사는 왜나를 부처님처럼 보인다고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무학대사는 “돼지 눈에는 돼지처럼 보이고,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처럼 보이는 법이지요.라고 받아쳐 경을 칠 말이지만 태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고 하네요.
위 이야기에서의 가르침은 사물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으니 만물을 자기 척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금석문을 정리한 '朝鮮金石總覽(조선금석총람)'에 실렸다고 한국고사성어에 설명하고 있네요.
▶不(아닐 불) = ‘설문해자’ : 자형의 위쪽 가로획(一)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머지 부분은 새(혹은 화살).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는 내려오지 ‘않다’는 의미를 형상화--> 그래서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생김.
▶ 言(말씀 언)
▶ 長(길 장) =상형문자 : 머리털이 길고 옷자락이 긴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람 모양 -> 길다, 어른
▶ 短(짧을 단) = 회의문자 : 矢(화살 시) + 豆(콩 두) : 예전에 짧은 것들의 치수를 잴 때에 화살(矢)과 콩(豆)으로 쟀다는 데서 '짧다'를 뜻함
위 성어는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黃喜) 정승(政丞)과 연관된 사자성어입니다. 황희 정승은 18년간 영의정을 지내 조선의 최장수 재상이었지요. 황희 정승 하면 여종의 다툼에 "너 말이 맞다" "너의 말도 맞다"라는 양자 배려 판결을 내린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황희 정승이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가는 길에 들판을 지나다 잠시 쉬면서 소를 몰며 논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노인장,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농부는 황희 정승의 옷소매를 잡아당겨 소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더니 귀엣말로 "누런 소가 검은 소보다 일을 잘 합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짐승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면 기분이 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의 얼굴이 화끈해졌지요. 황희 정승이 농부의 말에 크게 깨달아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평가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 勤(부지런 할 근) : 堇(진흙 근) + 力(힘 력) -> 진흙 작업(堇)에는 힘(力)이 많이 들어감 à 부지런 할 근
▶ 反(돌이킬 반) : 厂(기슭 엄=돌출벽) + 又(또 우=오른 손) ; 암벽타기에서 바위나 벽이 안쪽으로 기울어진 지형을 <오버행> 거의 수평에 가까운 천장처럼 완전히 뒤집힌 지형을 <루프(roof)>라고 함. 이런 지형을 암벽타기로 오르기 위해서는 몸을 완전히 뒤집어 손으로 지지물을 잡아야 함 => 그래서 反에는 뒤집다, 뒤집히다, 배반하다, 돌이키다, 돌아오다 뜻이 생김
▶ 爲(할 위) = 회의문자/ 爪(손톱 조=手: 손) + 象(코끼리 상형) : 손으로 코끼리를 끌다 -> 하다, 위하다, 있다의 뜻
1) 동사~이다, ‘~하다, ~되다, ~삼다, 말하다, 당하다’
2) 전치사 : 위하여, ~때문에, ~에게, ~에 대하여, 등.
3) 종결사 : 문장의 끝에 쓰여 감탄, 의문, 반문 등의 기분을 나타냄.
▶ 災 (재앙 재) = 火(불 화) + 巛(내 천) : 災자는 ‘재앙’이나 ‘화재’, ‘죄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 災자는 火(불 화)자와 巛(내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재앙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데 그중에서도 ‘화재’와 ‘홍수’는 가장 큰 재앙이었음. 災자는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글자로 火자는 ‘화재’를, 巛자는 ‘홍수’를 뜻하고 있음.
보통은 똑부(똑똑함+부지런함)를 최상의 바람직한 인간형, 멍게(멍청함+게으름)를 최악의 인간형으로 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똑부보다 똑게(똑독함+게으름)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똑부는 상급자의 입장에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아랫 사람의 처지에서는 받들기 힘든 유형의 인간형일수도 있거든요. 똑부는 상대방에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독똑하고 부지런하기를 바라는데 그 기준을 맞추기에는 웬만해서는 힘이 너무 들어갈 것입니다.
멍게와 멍부의 관계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멍게는 그 피해가 본인 한 사람에게만 미치지만 멍부는 지혜가 없이 열심히만 하니 그 피해범위가 빠를 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습니다. 근반위재(勤反爲災)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 身(몸 신) = 상형문자 : 아기를 가진 여자(女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함.
▶ 土(흙 토) = 흙(一)을 뚫고 싹(十)이 나오는 모양을 상형화한 것이다. 땅이 만물을 토해내는 것이다. 二는 땅의 위와 아래를 상형화한 것이며 1은 땅 속에서 사물이 나오는 모양이다
▶ 不(아닐 불) = 자형의 위쪽 가로획(一)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머지 부분은 새(혹은 화살).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는 내려오지 ‘않다’는 의미를 형상화 --> 그래서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생김.
▶ 二(둘 이) = 지사문자/ 두 개의 손가락을 펴거나 나무젓가락 두개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둘'을 뜻함
☆ 1(一)에서 10(十)까지는 지사(指事)문자, 100(百)과 1,000(千)은 형성문자, 萬은 상형문자로 전갈의 모양을 본 뜬 글자
▷ ‘신토불이’라는 사자성어는 1990년대에 가수 배일호가 불러 더욱 널리 알려진 듯 합니다. 그리고 한동안 이말의 유래가 어느 나라이며 출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지요. 저 개인으로는 사자성어로 소개하고 싶었던 신토불이를 딱히 어느 분류에 넣기가 마땅치 않아 부득이 K-사자성어에 포함시켰다는 것을 이 기회에 알려 드립니다. 저로서는 중국에서 발아되어 일본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꽃피운 사자성어라고 말하고 싶네요. 신토불이의 연원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의 내용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 '신토불이'의 유래
[그린경제 =이윤옥 기자]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모두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중략) 우리 몸엔 우리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
www.koya-culture.com
▶ 白(흰 백) = 丿+ 日(날 일; 태양) ; 햇빛(日)이 비추다(丿) --> ‘ 희다, 분명하다, 밝다’
=丿+ 曰(말씀 왈) ;말(왈)을 하다(丿) --> 아뢰다
= ‘말씀 曰’은 입 속의 혀가 보이는 모양이고, 아뢸 白은 입김이 쏙 빠져 나오는 모습이다. 고백을 하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여기에서 ‘흰 白’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白자의 전서 모양은 윗 입술을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그러면 아플 것이고 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고백하면 百 가지 모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 頭(머리 두) = 형성문자 : 뜻을 나타내는 頁(머리 혈) + 음(音)을 나타내는 豆(콩 두)가 합(合)하여 이루어짐.
▶ 大(큰 대) = 상형문자 :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 사람이 서서 팔과 다리를 크게 벌리고 서 있는 모습
▶ 幹(줄기 간) = 형성문자 : 榦이 본래의 글자로 倝(해돋을 간) + 木(나무 목)의 합자임.
= 幹자에 쓰인 干자는 지지대를 표현하고 있다는 풀이도 있음. 지지대는 식물 줄기를 지탱하는데 쓰임
▷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로,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는 지리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총 길이가 1,625 km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의 남한 구간만 해도 690 km에 이릅니다. 각 지방을 구분 짓는 경계선은 삼국 시대에는 국경으로 조선 시대에는 행정 경계로도 쓰였지요. 그리고 각지의 언어와 풍습 등이 나누는 기준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백두대간은 한국의 풍속, 언어 등을 이해하는 주요 바탕이 되었습니다.
특히 백두대간은 레져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더불어 등산 동호인들에게는 꿈의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등산전문잡지인 <사람과 산>이 발간한 〈1대간 9정맥 GPS 종주지도집〉에서는 백두대간의 대한민국 내 지리산~향로봉 부분을 24개 구간으로 나누고 종주하는 데 50여일이 걸린다는 계산까지 제시한 바 있지요. 산림청에서도 구간별 시작점과 도착점, 지도상 거리, 주요볼거리 등 백두대간 등산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杜(막을 두) = 木(나뭄 목) + 土(흙 토) ; 그 옛날 나뭇가지(木)와 흙(土)으로 뭣을 했을까?성을 쌓고 적을 막았다 --> 막다 우리는 석성, 중국은 토성 중심
▶ 門(문 문) 상형문자 =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을 본 뜬 그림 글자
▶ 不(아닐 불) = 자형의 위쪽 가로획(一)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머지 부분은 새(혹은 화살).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는 내려오지 ‘않다’는 의미를 형상화 --> 그래서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가 생김.
▶ 出(날 출) = 회의문자 ; 움집( 凵;위튼 입구 몸/ 입 벌릴 감=구덩이) + 止(=足) =구덩이. 즉 집으로부터 나가는 모습 --> 나가다
▷ 두문불출,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있다고 합니다. 황해도 개풍군의 골짜기에 붙여진 이름, 두문동. 과연 두문동이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시대의 임금인 영조가 개성으로 행차하던 어느 날 부조현(不朝峴)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신하에게 그 뜻을 물었습니다
"부조현이 무슨 뜻이냐?" 그러자 한 신하가 답을 합니다.
부조현이란 조정(朝)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不) 곳(峴)이란 뜻으로 조선에 반대하는 고려 유생들이 갓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갔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이 부조현을 지나면 두문동이 나오는데 두문동에 대한 영조의 질문에 신하는 이렇게 답합니다.
"태종께서 과거를 실시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응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 두문동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 유신들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지는 두문동.
이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두문불출'이라 부른 것이죠.
조선은 이들을 위협하기 위해 두문동 일대에 불을 질렀지만 고려 충신들은 끝내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두문동 72인'으로 부릅니다.
고려 충신들의 이야기에 감탄한 영조는 "고려의 충신들처럼 대대로 계승되기를 힘쓰라."는 뜻의 칠언시를 짓고, 부조현이란 글을 쓴 비석을 이곳에 세웁니다.
▷ 윗글의 부조현(不朝峴)의 峴(현)은 고개를 뜻하는 글자로 예전의 지역 명칭에 많이 보이는 글자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멱조현( 覓祖峴)이 있었는데 용인대 뒷산인 부아산(負兒山)과 함께 얽혀 전해오는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가 있습니다.
효부와 호랑이
아이를 내주고 시아버지를 구한 효부의 이야기. 줄거리 옛날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며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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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1절~4절까지의 가사 중에 한자어를 찾아 써본 후에 훈음(訓音)과 부수(部首), 필순(筆順)을 익혀 보세요.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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