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26)의 학습 과제는 성심 상(省心 上)편 [13]으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天有不測風雨(천유불측풍우)요 人有朝夕禍福(인유조석화복)이니라.
하늘에는 예측 못하는 바람과 비가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과 저녁으로 화(禍)와 복(福)이 있다.
○ 測(헤아릴 측) 헤아리다, 재다, 알다
○ 雨(비 우) 비, 비가 오다
○ 夕(저녁 석) 저녁, 밤
天有不測風雨(천유불측풍우)
- 天(하늘 천)은자연계의 우연성을 말합니다.
- 有(있을 유)의 뒤는 보어가 되며 토씨는 '~이', '~가'를 붙입니다.
- 불측(不測)은 예측하지 못함이니, 자연의 변화는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人有朝夕禍福(인유조석화복)
- 人(사람 인)은 인간 세상을 말합니다.
- 조석(朝夕)은 풍우(風雨)와 대구(對句)이므로 아침과 저녁으로 풀이합니다, 조석(朝夕)을 종신(終身)의 상대 개념으로 보고 '짧은 시간'이나 '잠깐 사이'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은 하늘(天)의 풍우(風雨)와 사람(人)의 화복(禍福)을 대비시켜 삶의 지헤를 가르치고 있네요. 풍우(風雨)가 뜻하는 날씨와 화복(禍福)을 오늘의 주제로 공부거리를 찾아 보겠습니다. 먼저 날씨의 핵심 변수인 비를 뜻하는 雨(비 우)와 화복(禍福)의 부수(部首)로 쓰이는 示(보일 시/땅귀신 기)에 대한 풀이부터 하겠습니다.
▣ 자원(字源) 풀이
▶ 雨(비 우)
‘雨’의 갑골문이나 금문은 비가 오려고 할 때의 장면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위의 가로획은 하늘의 구름층을 나타내고 아래의 점이나 짧은 세로획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나타냅니다. 소전체의 雨는 구름층 위에 다시 가로획을 더했는데, 이 가로획은 하늘을 나타냅니다. 글자 ‘雨’에는 모두 빗물이 구름층의 위로 삐져나온 것이 없습니다. 몇 천년 전의 고대인들의 육안으로 ‘雨’를 관찰한 것이, 뜻밖에도 몇 천년 후 과학기구를 통해 관찰한 결과와 동일합니다.
雨자는 또 한자의 편방(偏旁: 글자의 좌우나 상하)으로 쓰여 날씨를 나타내는 많은 글자를 만듭니다. 雲(구름 운), 雪(눈 설), 露(이슬 로), 霧(안개 무), 霜(서리 상), 電(번개 전), 雷(우레 뢰), 霹(벼락 벽) 등이 그 예입니다.
▶ 示(보일 시/땅귀신 기)
示(시)는 갑골문에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을 그렸으며 이후 제물을 뜻하는 가로획이 위에 추가 되었고, 다시 ‘설문해자’의 해석처럼 하늘이 내리는 화복(禍福)을 상징하기 위해 글자의 아랫부분 양편으로 획이 더해져 지금처럼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글자의 뜻도 제단에서 신이 길흉을 내려준다는 의미에서 ‘나타내다’와 ‘보여 주다’ 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한자에서 示자로 이루어진 글자는 대부분 숭배, 축원, 귀신, 제사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령 禍(재앙 화)는 앙상한 뼈와 제단을 그려 ‘재앙’을, 福(복 복)은 술통과 제단을 그려 ‘복’을 나타냈습니다. 그밖에도 祝(빌 축), 神(귀신 신), 祀(제사 사), 祭(제사 제), 祈(빌 기) , 禱(빌 도) 등도 그 예입니다. 示(시)가 편방(偏旁)으로 쓰일 때에는 礻(보일 시변)으로 쓰입니다.
▣ 날씨의 불확실성
오늘 본문 13조(條)의 전반부인 天有不測風雨(천유불측풍우)는 날씨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바람과 비는 언제 얼마나 올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네요. 옛날 사람들에게 날씨라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하늘의 색이나 구름의 움직임, 동물들의 행동 등을 통해 날씨 변화를 예측하는 관천망기법(觀天望氣法)도 역사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수십년 전 만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고, 한 해의 농사는 날씨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농사철 중에 날씨가 고르게 좋으면 풍년이요, 그렇지 못하고 가뭄이나 홍수, 태풍이나 한해(寒害)가 닥치면 온 나라가 기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때문에 날씨는 나라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현저히 줄었지만 현재도 날씨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컨데 강수량은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食水)와 발전(發電), 공업용수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날씨는 관광산업과 공연산업, 박람회같은 전시산업에 역시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요. 냉장고나 에어컨 같은 전자제품 그리고 의류, 식음료 등의 수급(需給)역시 날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날씨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매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관심을 갖습니다. 일기 예보는 현재의 기온, 바람, 습도 뿐만이 아니라 지형이나 바다의 수온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계측하거나 반영하여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합니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가 차원의 많은 투자로 일기 예보의 정확성이 예전보다는 많이 높아졌으나 아직도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인공 위성이 동원되고 슈퍼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도 일기예보는 왜 정확하지 않을까요?
예측이 가능하려면 규칙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일 때→20이고, 20일 때→40이면 50일 때→( ? )라는 문제에서 ?은 100이 됩니다. 이처럼 규칙성이 있는 경우를 선형적(線型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날씨와 같은 자연현상은 비선형적(非線型的)입니다. 자연현상에서는 10일 때→20이지만 20일 때→40인 경우도 있고 20일 때→5 혹은 30인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렇게 결과값이 달라지는 이유는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요소간의 상호작용이 워낙 많고 복잡해서 작은 조건의 변화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현재 기온을 빼고는 맞는 것이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고, 기상청은 오보청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상청 일기예보가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장마나 가뭄, 태풍, 폭염, 기후 온난화 등으로 인한 피해가 해를 거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비가 있다(天有不測風雨: 천유불측풍우)라는 겸손함으로 자연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 화복무문(禍福無門), 화와 복은 창조하는 것
본문인 13조(條)의 후반부인 人有朝夕禍福(인유조석화복)은 직역하면 "사람(人)에게는 아침(朝) 저녁(夕)으로 화(禍)와 복(福)이 있다(有)"가 됩니다. 언뜻 그 뜻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전반부인 天有不測風雨(천유불측풍우)의 대구(對句)로 쓰인 것이고, 바로 앞의 11조(條), 12(條)의 취지로 보아 그 속뜻을 헤아려보면 복이 화로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끝이 없어서 살핀다고 해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회복(禍福)을 완전히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일까요? 글쓴 이는 오히려 언제, 어떤 화복(禍福)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으니 항상 경계하고 관리하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즉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福)이 화(禍)로 변하는 불확실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자는 것이지요. 지난 날 최고의 경영 사상가였던 드러커(Drucker)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禍)를 피하고 복(福)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명심보감에서는 그 원리를 책 내용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도 책의 첫 머리에서 단언(斷言)하고 있지요. 명심보감의 첫 편인 계선(繼善)편의 1조(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子曰(자왈) 爲善子(위선자)는 天報之以福(천보지이복)하고 爲不善子(위불선자)는 天報之以禍(천보지이화)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 주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다.”
명심보감의 저자는 위 문장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결과이고 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개인임을 천명(闡明)합니다. 개인이 선행과 악행 중 아느 것을 실천하느냐에 따라 행복을 누리기도 하고 불행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화복은 문이 따로 없거나 아니면 같은 문으로 드나듭니다. 그래서 禍福無門 唯人所召(화복무문 유인소초), 재앙이나 복은 모두 사람이 스스로 부르는 것이라고 「소학(小學)」은 가르칩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하늘 탓, 운명 탓으로 돌렸습니다. 하늘의 날씨를 헤아릴 수 없고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운명론이고 숙명론입니다. 오늘날은 과학의 발달에 의해 상당한 기간의 날씨 정도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의 연구는 개인의 행복과 불행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지만 돛의 방향은 조절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碌碌)치가 않습니다. 정의롭고 착한 사람들이 환난을 겪고, 불의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누리는 모습을 때때로 목격합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을 중시하는 현실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외로운 메아리로 돌아옵니다. 아래 글은 명심보감 계선(繼善)편 8조(條)의 타이름입니다. 지난 1월, 도서관 세미나실에서 학습한 내용입니다. 복습 겸 격문(檄文) 삼아 마치는 글로 올립니다.
一日行善(일일행선)이라도 福雖未至(복수미지)나 禍自遠矣(화자원의)요 一日行惡(일일행악)이라도 禍雖未至(화수미지)나 福自遠矣(복자원의)니 行善之人(행선지인)은 如春園之草(여춘원지초)하여 不見其長(불견기장)이라도 日有所增(일유소증)하고 行惡之人(행악지인)은 如磨刀之石(여마도지석)하여 不見其損(불견기손)이라도 日有所虧(일유소휴)니라.
“하루 동안이라도 착한 일을 한다면 비록 복(福)은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재앙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하루 동안이라도 악한 일을 한다면 비록 재앙은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복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마치 봄 동산의 풀처럼 눈에 풀이 자라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날마다 자라나는 것과 같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마치 칼을 가는 숫돌처럼 눈에 숫돌이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날마다 닳아 없어지는 것과 같다.”
-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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