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차 : 카투만두(보더나트-파슈파티낫-수와암부나트-왕궁)
2009년 1월 4일(일) 쾌청, 그러나 카투만두 하늘은 흐릿하다
6시30분 기상, 오늘은 쓸 내용이 많다. EBC 등반에서의 매일매일은 대체로 반복적인 일상이었는데 카투만두만 해도 변화가 많다. 4층 숙소에서 바라보는 정원 모습이 편안하다. 꽃이 피어서인가, 집에 온 듯 정원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8시30분 아침식사, 김치찌개와 비빕밥이 입에 붙는다. 대학생인 듯한 어린 여학생 3명이 주인을 찾는다. 인도 여행 10일 후 이곳에 도착했단다. 본래 따로였는데 여행 중에 팀이 되었단다. 대단한 용기를 가졌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일까? 남들도 우리를,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9시45분 카트만두 유명지 순회를 출발했다. 가이드는 네팔 체류 4년째 여성인 심 양이다. 20대 후반쯤 되었을 것이다. 여행 중에 네팔에 정이 들었단다.
- 오늘 하루 일정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3천루피를 전교수가 가이드에게 건넴.
- 카투만두에는 약 300명의 한국 거주민이 있으며 대부분이 선교사 가족과 대사관 직원이란다. 그밖에 한국 봉사단원도 있음
- 언제나 그렇듯 카트만두 시내의 교통상황은 우리가 보기에는 아수라장이요, 난장판이다.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으로 느껴진다. 정신 없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데, 불안, 불안, 조마조마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과 차량, 오토바이들이 먼지 안개 속을 걷고, 뛰고, 지그재그로 잘도 달린다. 신기할 뿐이다. 뿌연 스모그와 먼지를 뒤집어쓴 주변 모습들이 회색의 빛을 띠었다.
- 처음 카트만두에 왔을 때는 정물화로 보였는데 점차 동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름대로 활기 있는 모습이다.
10시20분 보우더나트 도착
10시50분 보우더나트 관람 마침
- 네팔에도 카스트제도가 상존하고 있다고 한다.
- 사람을 죽이면 돈으로 해결 가능하나, 소를 죽이면 사형
- 개 팔자가 상팔자다. 번잡한 관광지 여기저기에 늘어져 쉬고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널브러져 있다.
파유파티나트로 출발. 11시10분 도착.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광경들을 목도한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 온갖 도료로 몸에 칠을 하고 괴이한 형상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
11시20분 화장터에 들어가기 위해 표를 샀다. 작은 시냇가 정도의 한쪽변에 시체를 태우는 장례의식이 때마침 진행되고 있었다.
- 장작더미와 짚풀더미, 그리고 붉은색 천에 덮여 있는 시체, 장례식을 진행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 장작 위에 시체를 옮겨 놓는다...
- 불을 지피고 시체를 태운다.
- 가장 위쪽은 왕족, 그 다음은 돈 있는 사람, 더 아래쪽은 서민들의 시체를 태우는 장소다.
- 잿더미는 그냥 개울에 버려진다. 우리가 보면 매우 불결한 것 같은데 이 곳 사람들은 죽어서 이 곳 강물에 재로 뿌려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으로 소원한단다.
- 임신녀, 어린이, 뱀에 물려 죽은 사람을 태우지 않고 그냥 수장한다. 거룩한 시체라는 것이다.
12시50분 수와얌부나트 도착. 한참을 차로 올라간다. 좁은 소로 길을 잘도 빠져 나간다.
- 계단을 올라가는데 원숭이, 개와 다르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못한 몰골과 형상의 인간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런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할까?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 사진과 추가적인 이야기는 책자 및 향후에 정리하자.
13시22분 365계단을 통해 하산, 경사가 급하다.
- 사원 정상에서 바라보는 카트만두는 매우 넓었다. 그러나 역시 희뿌연 연기 속에 자리잡은 도시다.
- 시내 관광 중에 우리가 탄 버스가 멈추면 구걸하는 아이들이 버스 창문에 붙어 창을 두드리며 돈을 달라고 한다.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치는 것처럼 불편했다. 우리도 50~60년 전에는 저랬을 것이다.
13시32분 승차•13시55분 ‘네팔짱’도착. 가이드와 걸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14시 실내조명이 어둑한 식당에 도착
- 수제비처럼 생긴 것과 뚱바라는 토속주를 주문했다. 뚱바는 ‘조’를 발효시킨 것에 물을 채워가며 스트로우 빨대로 마시는 독특한 것이었다.
-수제비처럼 생긴 것은 뚱바(?)라는 것으로 먹을만한 음식이었다.
15시 5분 다시 ‘네팔짱’으로 되돌아옴. 봉고 버스를 타는 줄 알았는데, 릭사라는 인력거를 타게 되었다.
15시15분 2명씩 릭사를 타고 왕궁’광장으로 향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질풍처럼 달린다. 좁은 시장 소로 길을 잘도 빠져 나간다. 황야를 달려가는 포장마차와 같다. 나는 배낭까지 들고 앉아 있는데 배낭이 미끄러질까 봐 가슴 쪽으로 바짝 당겨가며, 불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릭사’는 용케도 균형을 잘 잡으면서 왕궁 근처에 도착했고, 나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내릴 수 있었다.
- 그런데 기록용 수첩을 찾으니 없다. 여기 저기 호주머니와 있을 법한 곳을 두 세 번 뒤져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릭사’를 타고 오면서 배낭을 잡아 당기다가 아마 허리에 멘 허리 배낭을 밀어 올린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안에 넣어 둔 기록용 수첩과 볼펜이 길가에 빠진 모양이다. 순간 낙심이 크고, 큰 배낭까지 들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 그때 수첩에 메모한 사항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기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낙심은 컸다.
- 수첩은 잊어 버렸지만 그래도 관광은 관광이다. 이 곳 다르바르 광장은 본래 왕궁자리다. 제법 웅장한 건물들과 목조건물의 조각물들이 예사롭지 않다.또한 살아 있는 여신인 꾸마리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엔 전통적인 시장도 자리잡고 있어 혼잡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 이 날도 꾸마리가 외출한다는 소문이 있어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우리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자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보지 못하고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장은 갖가지 물품들이 골목 골목마다 제법 풍성하게 갖춰져 있었다. 시장은 어딘가 서로 통한다. 사람의 냄새가 나고 역동적이다. 기분이 좋은 곳이다.
17시45분 다시 ‘네팔짱’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는 봉고로 귀가)
-도착 바로 전에 조교수와 이교수는 선물을 사겠다고 버스에서 내려 타멜 시장쪽으로 향했다. (파시미르 머플러를 사가지고 옴?)
18시 5분 나와 전교수는 ‘네팔짱’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시장으로 나갔다. 칼라파타르가 인쇄된 모자와 선물용 손수건(에베레스트 지도)을 사기 위해 10여 곳 이상의 가게를 방문했으나 없었다. 트레킹 현지 보다 카트만두에는 값도 싸고, 종류도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완전한 착오였다.
18시45분-EBC 안내용 지도만을 200루피에 사서 들어오는 마음은 허전했다.
20시15분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의 만찬이 있었다.
- 삼겹살 6인분 등으로 풍성한 식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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