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마음이 머무는 시(1)

efootprint 2021. 7. 30. 12:04

마음/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내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백비(白碑)/ 이성부

감악산 정수리에 서 있는 글자가 없는 비석 하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너무 크고 많은 생 담고 있는 나머지

점 하나 획 한 줄도 새길 수 없었던 것은 아닌지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씀을 지녀

입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일 다 부질없으므로

무량무위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저리 덤덤하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을

저렇게 밋밋하게 그냥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2009/9/1(화)에 찾았던 경기도 파주시의 감악산: 아직 여름의 짙은 흔적이 있지만 가을이 성큼 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백비(白碑)는 감악산 정상(675m)에 서 있는 비석, 아무런 글자도 없어 무자비(無字碑) 혹은 몰자비(沒字碑)라고도 불리웁니다.

 

산 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2013/5/4(토), 혼자 떠난 강원도 홍천 가리산(1,051m) 산행: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너 저 멀리 보이는 정상을 향해 오르던 중, 길을 잃고 헤매던 기억이 떠올라 그날의 산행기 중 일부를 옮깁니다.

"드디어 가리산이 보입니다. 저 멀리 구름에 가려진 높은 곳이 가리산 정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른쪽 길로 가야 되는데 왼쪽 길로 가버렸습니다. 똑 같은 가리산이지만 길 없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유는 다음 사진의 안내 표지판(사진은 생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는 길 주위 경관은 너무 좋았습니다. 산과 물, 바람과 빛 그리고 소리와 냄새까지 ~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길 없는 길. 되돌아갈 생각도 했지만 아직 많이 남은 낮 시간과 녹음이 우거지지 않아 시야가 트여 있는 것을 감안해 계속 Go !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간다"는 한니발의 명언과 "사람이 다니므로 길이 만들어진다"는 장자의 탁견을 머리에 떠 올리며 오르고 또 오릅니다만 그래도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힘들고 두렵습니다.

알바(길을 잘못 들어 뜻밖의 길로 가는 것=헛돌이)를 한지 거의 1시간 30분 만에 발견한 길, 반갑기 그지 없었지요. 계속 정상으로 향합니다. 정상 주변은 매우 가파르고 위험합니다."

 

누군가의 그 말/ 천양희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두근 두근 합해서 네근이랍니다

여러분을 만나러 오는 내 마음이 그랬습니다

누군가의 그 말이 내 심장을 쳤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을 만날 때 나도 그 말 꼭 빌려 써야겠습니다

 

덜 소유하고 많이 존재하라던

당신 덕분에 세상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누군가의 그 말이 내 심장을 쳤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을 만날 때 나도 그 말 꼭 빌려 써야겠습니다

 

미움과 갈등을 용서와 화해로 바꾸는 것은

미안합니다라는 단 한마디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그 말이 내 심장을 쳤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을 만날 때 나도 그 말 꼭 빌려 써야겠습니다

 

누군가의 그 말 때문에

나는 오늘 아름다움에 인사할 줄 압니다

나는 이 세상에 심장이

두근 두근 살아가도록 태어났습니다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북한산 만경대에서 본 인수봉 일출/ 출처: 사진작가 강희갑

 

오늘 그대가 한 일들을 떠올려 보라/ 조지 엘리엇

해가 기울고 하루가 저물면 가만히 앉아

오늘 그대가 한 일들을 떠올려 보라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 줄 따뜻한 말 한마디

세심한 배려의 행동

햇살 같은 친절한 눈빛이 있었는지를

그랬다면 그대는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도록

누구에게도 작은 기쁨을 주지 않았다면

온종일 그 긴 시간에도

누군가의 얼굴에 햇살을 비춘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친 영혼을 달래 준 아주 사소한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날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더 나쁜 날이었다고 하리라

 

 

인생은 아름다워/ 쥘 르나르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눈이 보인다

귀가 들린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고맙다!

인생은 아름다워

 

신은 모든 것 속에/ 마이스트 에크하르트

모든 것에서 신을 만나라

신은 모든 것 속에 있으므로

모든 존재는 저마다

신으로 가득 차 있는 신에 대한 책

모든 존재는 저마다 신이 들려주는 한마디의 말

가장 작은 존재 한 마리 애벌레와도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면

따로 설교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존재는

이미

신으로 기득 차 있으므로

 

기도/ 라파엘 메리 델 발

오, 신이시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존경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로워지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송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선택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저를 구해내소서.

 

모욕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경멸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비방당하는 고통의 두려움으로부터

책망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조롱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박해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의심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저를 구해내소서.

 

그리고 신이시여

 

나보다 다른 이들이 더 사랑받기를

나보다 다른 이들이 더 존경받기를

나를 젖혀두고 다른 이들이 선택받기를

나는 낮아지고 다른 이들이 칭송받기를

모든 일에서 나보다 다른 이들이 먼저 인정받기를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나보다 다른 이들이 더욱 성스러워지면

나 또한 성스러워질 수 있기를

 

이 모든 것을 원하는 마음 갖는 영광을 내려주소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알미트라가 물었다.

스승이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너희는 이제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 흰 날개가 삶을 흩어놓을 때까지 너희들을 잊은 신의 침묵 속에서도.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함께 해도 거리를 두어야 하니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로 춤추게 하라.

서로 마음껏 사랑하되 사랑을 이유로 구속하지 말라. 두 영혼의 기슭 사이에 바다가 출렁이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라. 그러나 서로 혼자 있도록 허락하라.

비록 하나의 음률로 울릴지라도 홀로 떨어져 있는 루트의 현처럼 서로 마음을 주되 옭아매지는 말라.

오직 살아 있는 손길만이 그대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신성한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라지 못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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