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말(言˙語)

efootprint 2021. 4. 22. 14:33

 

참 좋은 말/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같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결이라는 말/ 문성해

결이라는 말은
살짝 묻어 있다는 말
덧칠되어 있다는 말

살결 밤결 물결은
살이 밤이 물이
살짝 곁을 내주었단 말
와서 앉았다 가도 된단 말

그리하여 나는
살에도 밤에도 물에도 스밀 수 있단 말
쭈뼛거리는 내게 방석을 내주는 말

결을 가진 말들은
고여 있기보단
어딘가로 흐르는 중이고

씨앗을 심어도 될 만큼
그 말 속에
진종일
물기를 머금는 말

바람결 잠결 꿈결이
모두모두 그러한 말

 

별거 아닌 말/ 이윤재

밥 먹었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그래 조심히 집 들어가고 푹 자

 

매일 묻던 나의 안부

별거 아닌 너의 말들

 

그게 그렇게 그립더라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사랑한다는 말/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김용택

당신,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당신...

 

※ '당신'이나 '여보'는 존칭으로도 비칭으로도 쓰이니, '안해'가 어떨까? 안에 있는 해!

그것이 아니라면 ~ 나라면 그보다 '어머니, 사랑, 용서'와 같은 말을 넣고 싶다  

 

 

 

꽃의 말/ 황금찬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오광수

말 한마디가 당신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생활(生活)입니다.

험한 말을 하는 생활은 험할 수밖에 없고

고운 말을 하는 생활은 고와집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이웃입니다.

친절(親切) 한 말을 하면 모두 친절한 이웃이 되고

거친 말을 하면 거북한 관계(關係)가 됩니다.

 

말 한마디가 당신의 미래(未來)입니다.

긍정적(肯定的)인 말을 하면 아름다운 소망(所望)을 이루지만

부정적(否定的)인 말을 하며 실패(失敗)만 되풀이됩니다.

 

말 한마디에 이제 당신이 달라집니다.

예의(禮儀) 바르며 겸손(謙遜) 한 말은 존경(尊敬)을 받습니다.

진실(眞實) 하며 자신(自身) 있는 말은 신뢰(信賴)를 받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좋은 사람입니다.

 

말의 힘/ 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를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멀고 먼길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귀울여 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말없이 기다릴 때이다/ 강심원

언어로 오염된 세상에서

찾지 못한 언어를 갈구하지만

찾고나면 바로 오염이 된다.

진정성을 찾을수록

점점 멀어지고

설명하려 할수록 오해만 깊어지는 것은

아직 준비되지 못한 까닭이다

있는 그대로

그냥 보여주면 될 일을

설득하려다 의미만 퇴색되니

조바심 말고

지금은 말없이 그저 기다릴 때이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천양희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풀이 돋는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리
저 미물보다
더 무엇이라고 말을 하리
다만 부끄러워
때때로 울었노라
대답할 수 있을 뿐

풀은 자라
푸른 숲을 이루고
조용히 그늘을 만들 때
말만 많은 우리
뼈대도 없이 볼품도 없이
키만 커간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리
다만 부끄러워
때때로 울었노라
대답할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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