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詩, 詩人

efootprint 2021. 4. 3. 18:52

시(詩)/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참고 : 파블로 네루다 시 ㅣ 일 포스티노를 아시나요?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와의 우정을 그린( Il Postino) - YouTube

 

 

시(詩)/ 나병춘

내 뒷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까마득 망각해버린 비망록

혹은 시간의 알

사랑, 이별,

영원한 불완전 동사

나의 신바람으로 춤추는 수평선

 

시벽(詩癖)/ 이규보

年已涉縱心(연이섭종심) 位亦登台司(위역등태사)
始可放雕篆(시가방조전) 胡爲不能辭(호위불능사)

朝吟類蜻蟀(조음류청솔) 暮嘯如鳶鴟(모소여연치)
無奈有魔者(무나유마자) 夙夜潛相隨(숙야잠상수)

一着不暫捨(일착불잠사) 使我至於斯(사아지어사)
日日剝心肝(일일박심간) 汁出幾篇詩(즙출기편시)

滋膏與脂液(자고여지액) 不復留膚肌(불복류부기)
骨立苦吟哦(골립고음아) 此狀良可嗤(차상식가치)

亦無驚人語(역무경인어) 足爲千載貽(족위천재이)
撫掌自大笑(무장자대소) 笑罷復吟之(소파부음지)

生死必由是(생사필유시) 此病醫難醫(차병의난의)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으며 지위 또한 삼공에 올랐으니
이제는 문장을 버릴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 하는가.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노래하고 밤에는 솔개처럼 읊노라
떼어버릴 수 없는 시마(詩魔)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남몰래 따르면서

한번 몸에 붙자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네.
나날이 심간을 깎아서 몇 편의 시를 짜내니

기름기와 진액이 다시는 몸에 남아 있지 않네.
앙상한 뼈에 괴롭게 읊조리는 내 이 모습 참으로 우습구나
남을 놀라게 할 문장으로 천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 못 지었으니
스스로 손뼉 치며 크게 웃다가 문득 웃음을 멈추고 다시 읊는다.
죽고 사는 것도 반드시 이로 말미암을 것이니 내 이 병 의원도 고치기 어려우리.

 

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가지 가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으로 처음으로 셈을 해 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럽게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란애처럼 작은 구구단 곱셈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늘 끝가지 가는 것을 의미하지

 

 

시인의 마을/ 정태춘(작사,작곡,노래)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한줄기 산들 바람

 

살며시 눈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자연의 생명의 소리

 

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 주리오 내작은 가슴을 달래 주리오

누가 내게 생명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차세계 시인이라면 좋겠오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 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울적한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 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돼주리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차세계 시인이라면 좋겠오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옛 시인의 노래/작사: 이경미, 노래: 한경애)

노래: 한경애 - '옛시인의 노래' [콘서트7080, 2005] | Han Gyeong-ae - 'The Song of an Old Poet' - YouTube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그대가 나무라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해도
우리들의 사이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대가 나무라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해도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얘기를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아름다운 사연들을 태우고 또 태우고 태웠었네~~~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시인은 시인은 노래 부른다
그 옛날의 사랑얘기를

 

 

시(詩)를 위한 시(詩)/ 작사:이영훈, 노래: 이문세

- 노래: 이문세 이문세 - 시를 위한 詩 (1988年) - YouTube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자결(自決)/ 이덕규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뒷산을 오르다가

밤새 가만히 서 있었을

가시나무 가시에

이슬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새.

아무 생각 없이 쿨쿨 잠만 잤을

아직도 잠이 덜 깬

그 가시나무 가시에

맑고 투명한

이슬 한 방울이 매달린 채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펀글) 이 시는 이덕규 시인의 시다. 이 시를 읽고 나서, 그리고 제목을 보고,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 시의 제목이 自決(자결)이다. 시인들은 정말 천재같다.  애절한 이슬과 달리 너무나 무심한 가시나무. 그 무심이 견디기 힘들었던 이슬은 자결을 택한다.

시는 깨달음을 전하는 예술이다. 시는 한자로 詩라고 쓴다. 이는 언(言)과 사(寺)가 합해진 글자다. 절에서 스님들은 수양을 쌓는다. 수양을 쌓는 이유가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니 사(寺)는 깨달음을 대신하는 말이다. 즉 시는 깨달음의 언어라는 사실에 도달한다.

 

詩, '자결(自決)'에서 깨달음을 얻다/ 황인원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뒷산을 오르다가

밤새 몸 한 번 움직이지 못한

가시나무 가시에

이슬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새 가시에 바르르 떨며 매달려 있던

맑고 투명한 이슬 한 방울

떨어질까 봐

숨조차 쉬지 못하고

몸만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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