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9) 학습은 준례(遵禮)편 6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若要人重我(약요인중아)어든 無過我重人(무과아중인)이니라.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보다 더한 것이 없다.
○ 若(같을 약) 같다, 만약
○ 要(요긴할 요) 요긴하다, 바라다
○ 重(무거울 중) 무겁다, 소중하다
○ 無過(무과) ~보다 더 좋은(나은) 것이 없다
○ 無過我重人(무과아중인) 我重人 앞에 어(於: ~보다)를 보충하여 해석함.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가 나를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높여주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중요한 존재로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남으로부터 존중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남을 먼저 존중하면 남도 나를 존중합니다.
종교들은 모두 상대 존중을 중요한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불교에는 남을 먼저 이롭게 하면, 그 이로움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용어가 있지요. 이슬람교에서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가르침니다. 힌두교, 유대교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늘 글은 동양의 옛글이 가르치는 상대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보겠습니다.
▣ 추기급인(推己及人)
♣ 推(밀 추), 己(몸/자기 기), 及(미칠 급), 人(사람 인)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나 마음으로 헤아려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으로 오늘 본문의 취지에 딱맞는 표현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표현은 주희(朱熹: 1130~1200)의 글에 처음 나타나지만 그 유래는 한참 전으로 올라갑니다. 편안한 생활에 묻혀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하는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불찰을 지적한 안영(晏嬰: ?~B.C 500)의 말에서 ‘추기급인’이라는 개념이 시작되었지요. 아래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큰 눈이 내렸다.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따뜻한 방 안에서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를 입고 설경의 아름다움에 푹 취해 있었다. 경공은 눈이 계속 내리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때 쟈상인 안자(晏子: 안영)가 경공의 곁으로 다가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경공은 안자 역시 설경에 도취되어 흥취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들뜬 목소리로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치 봄날씨처럼 따뜻한 게 조금도 춥지 않아"라고 말했다. 안자는 경공의 여우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은지 되물었다.
경공은 안자가 왜 그렇게 묻는지 그 의미를 생각도 않고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안자는 안색을 바꾸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또 누군가가 피로해 하지 않을까를 늘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께서는 자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시는군요."
안자의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지 못했다. 경공이 결국 말했다. “옳은 말이오. 과인은 그대의 말에 따르리다.” 경공이 영을 내려 갓옷과 곡식을 내놓아 춥고 배고픈 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길에서 보이는 자에게는 고향을 묻지 않으며, 마을에서 보이는 자에게는 그 집을 묻지 않고, 전국적으로 숫자를 헤아리면서 그 이름을 묻지 않으며, 일할 수 있는 자는 두 달치를, 병든 사람에게는 두 해치를 나누어 주었다.
안자는 제나라의 정치가로 국민의 신망이 두터웠고,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훌륭한 재상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검소하여 밥상에 반찬을 세 가지 이상 올리지 못하게 했으며, 늘 누더기 같은 낡은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안자는 이 이야기에서 옛 군주들의 예를 들어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지 말고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혈구지도(絜矩之道)
♣ (絜잴 혈), 矩(모날 구), 之(갈/어조사 지), 道(길 도)
혈구지도(絜矩之道)란 '곱자를 가지고 재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대학(大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대학(大學)」의 마지막 장인 제10장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만드는 일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 사이에 효가 흥할 것이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이를 따라 할 것이며, 윗사람이 고아를 긍휼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혈구지도(絜矩之道)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도록 하지 말 것이다.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의 앞에 놓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인데도 앞사람을 따르도록 하지 말 것이다. 오른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 것이며, 왼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일러 혈구지도라 한다."
혈구는 곱자를 가지고 잰다는 뜻이며, 곱자는 나무나 쇠를 이용하여 90도 각도로 만든 'ㄱ'자 모양의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유래하여 혈구지도는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 곱자를 가지고 정확한 치수를 재듯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혈구지도'는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점에서 추기급인(推己及人)과 같은 의미이며,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서로 통합니다.
▣ 서(恕): 남을 이해하는 마음
공자는 상대존중을 실천하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논어J에 보면,자공이 "한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위령공편, 23장).
또한 중궁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합니다. "문을 나갔을 때는 큰 손님을 뵌 듯하고,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베풀지 아니한다” (안연편, 2장). 결국 서란 자기가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남이 싫어하는 바를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위 대화를 보면 공자가 추구하는 바가 잘 드러납니다. 공자가 평생 실천을 했다는 서(恕)는 '같다’라는 뜻의 여(如)와 '마음’의 심(心)이 합쳐져서 생긴 말입니다. ‘상대와 같은 미음이 된다'는 뜻으로,오늘날 우리가 많이 쓰는 공감(共感)과도 같은 의미가 됩니다. 상대와 같이 느끼고 한 마음이 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당연히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게 되겠지요.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되면 세상에는 다툼이 적어지고, 공자가 원하는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런 자신의 철학을 계속 강조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제자 증자와의 대화에서도 자신의 도(道)는 '하나로 집약된다'는 의미로 일이관지(ᅳ以貫之)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증자는 그것을 충(忠)과 서(恕)라고 이해했습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마음의 중심, 즉 자기 마음(心)을 중심(中)에 바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자기성찰을 의미하지요. '충'이 자신을 다스리는 철학이라면, '서'는 그것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천하는 행동철학입니다. 내면을 바르게 하고 충실하게 채운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올바르고 공정하게 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면, 이 둘은 하나로 통하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서란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서(恕)란 적극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남에게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마음입니다. 자공이 물었습니가. "만약 백성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합니다. "어찌 인(仁)에만 그치겠느냐?. 반드시 성(聖)에 속하는 일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겼다. 대저 인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을 세워주며, 자신이 도달하고자 할 때 남도 도달하게 해주는 것이다. (옹야편 28장)." 결국 서(恕)란 적극적으로는 자기의 욕구만이 아니라 남의 욕구까지를 인정하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 맺는 말: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
앞에서 살핀 대로 예나 지금,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면 먼저 상대를 존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세계에서 상대 존중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필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의 인정과 속이지 않기, 존증의 언어습관 그리고 상대의 성공을 지원하기가 그것입니다.
① 차이의 인정
사람은 일란성 쌍둥이라도 똑같지 않습니다. 개인차가 있게 마련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는 물론 함께 사는 부부에게도 보는 관점이나 가치관에 다름이 있습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차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② 속이지 않기
상대를 존중한다면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은 사람간에 인간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토대이며 기초입니다. 상대가 나를 속이고 거짓으로 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들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은 그들을 존중한다는 뜻임과 동시에 자신을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정직은 일을 훨씬 더 간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직만큼 자기 자신을 돕는 덕목은 없습니다. 그래서 정직은 최선의 방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입니다.
③ 존증의 언어 습관
사람간의 관계에서 존중과 무시의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조심하고 삼가하며 말을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함부로 말을 내뱉는다면 그는 상대를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존중의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방법은 경청입니다. 몸을 기울여 듣고,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는 반응을 보이고, 공감하며 들어야 합니다. 그밖에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노력에 대한 칭찬아니 감사, 실수와 실패에 대한 격려와 지지 등이 모두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 습관입니다.
대화에서 무시하는 태도 역시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막말과 비난, 공격, 조롱 등의 방법으로 분노를 표시하는 것은 모두 상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서로의 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갈등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방식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존중의 언어는 상대를 살리고 나를 살리는 말입니다. 무시하는 언어는 상대를 죽일 뿐만 아니라 나까지 죽이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존중의 언어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④ 상대의 성공을 지원하기
우리는 주변에서 상대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바라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예를 들어 여당은 야당이, 야당은 여당이 실수하고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쟁은 있지만 협력은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간에서도 드러납니다. 승자가 과실(果實)을 독점하는 초경쟁사회가 만들어낸 폐단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기중심’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직 자기 이해로만 세상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의 성공만 앞세우면 우리가 없고, 우리가 없으면 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나도 성공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성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많아야 건강한 공동체가 됩니다.
상대가 성공하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내가 상대의 일을 직접 떠맡아 성공시키는 것은 돕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방법은 오히려 상대를 실패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상대의 가능성을 억압하고 죽이는 행동이지요. 상대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상대의 업적이나 강점을 세상에 노출시키고 알리는 것은 상대를 돕는 좋은 행동입니다. 상대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 역시 성공을 지원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상대의 현재 상태에 대해 진정성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만약 상대가 배우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상대의 성공을 크게 돕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남의 성공을 돕다가 나는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양보하다가 손해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들 때 「당서(唐書)」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終身讓路不枉百步, 終身讓畔不失一段(종신양로불왕백보, 종신양반불실일단)
"종신토록 길을 양보한다 할지라도 백보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종신토록 밭두둑을 양보한다 할지라도 밭 한 구역을 잃지 않을 것이다."
위 글에서는 평생 동안 남에게 양보하고 살아도 손해보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보하고 손해본 것 같지만 실제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양보하고 베풀수록 더 많이 채워지고 행복한 삶이 된다는 속뜻을 넌지시 전합니다. 내가 높아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남을 높여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글 마침
'明心寶鑑 > 동네글방(火金通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행복을 주는 사람 (0) | 2020.10.16 |
---|---|
입조심, 말조심(口舌) (0) | 2020.10.13 |
가족과 호칭 (0) | 2020.10.06 |
가훈(家訓) (0) | 2020.09.25 |
부부문제, 초심으로! (0) | 2020.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