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20) 학습은 교우편(交友篇) 4조(條)로 본문과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과 풀이
相識(상식)이 滿天下(만천하)하되 知心(지심)이 能幾人(능기인)고.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겠는가?
○ 相(서로 상) 서로, 정승, 자세히 보다, 얼굴 생김새
○ 識(알 식) 알다, 지식, 여기서는 면식(面識), 알고 지내는 사람, 낯이 익다
○ 相識(상식) 상식지인(相識之人)으로 서로 안면(顔面)이 있음
○ 知心(지심) 지심지인(知心之人)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 幾(몇 기) 몇, 얼마, 낌새
○ 能幾人(능기인)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라는 반문(反問)의 어투
본문의 출전은 「增廣賢文(증광현문)」으로 위 구절에 잇달아 "相逢好似初相識(상봉호사초상식)이면 到老無怨恨心(도로무원한심)이라"는 글이 이어집니다. 플어보면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날 때마다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좋게 대한다면 늙어서까지 서로의 마음에 원한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입니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속은 알기 어렵다” 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마음은 천산(千山)만큼 떨어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성심편상 20조). 겉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속마음을 알기는 어렵지요. 마음을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를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또한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도 잘 알려져 있지요. 모두가 교우(交友)의 즐거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논어J의 가장 첫 구절에서도 그 기쁨을 아래처럼 전합니다. .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悅乎(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락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이 태어나 젖먹기를 마치면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사희생활을 시작합니다. 혈육은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친구를 만나고 사귐을 갖느냐에 따라 또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번 교우편 1조 학습에서 살핀 것처럼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요, '마중지봉(麻中之蓬)'입니다. 아래에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교류가 있었던 세 가지 고사(古事)를 사자성어로 살피겠습니다.
▣ 지음지교(知音之交): 상대를 알아주는 친구
지음지교(知音之交)는 상대(나)의 소리를 듣고 상대(나)를 알아주는 친구,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를 말합니다. 깊은 우정을 담은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게 바로 .지음지교(知音之交)지요. 줄여서 지음(知音)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지음(知音)이란 말은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유백아(愈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사귐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두 사람의 사귐에 관한 이야기는 『열자』 <탕문(湯問)> 편과 「여씨춘추(呂氏春秋)」 등에 실려 있습니다. ‘백아절현(伯牙絶絃)’도 이 두 사람의 사귐에서 연유된 사자성어입니다.
유백아는 원래는 초(楚) 나라 사람으로 거문고를 기가 막히게 연주한,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거문고의 명인(名人)이요, 달인(達人)이었습니다. 그의 친구 종자기는 유백아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무척 좋아했지요. 특히 종자기는 유백아의 거문고 소리에 배어 있는 슬픔과 기쁨과 괴로움과 외로움을 정확히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유백아가 높은 산을 오르는 생각을 하면서 거문고 타자 종자기는 말합니다. "훌륭하도다. 높이 솟아 오름이 마치 태산과 같구나!"라고 감탄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뜻을 두고 거문고를 타자 다시 종자기는 말합니다. "훌륭하도다. 넘실거리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로구나!"라며 탄복합니다.
어느 날 태산 북쪽으로 유람을 갔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바위 밑 동굴로 몸을 피했습니다.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깁니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을,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합니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혔습니다.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 마음을 읽어냈던 것입니다. 그러한 종자기의 모습에 유백아는 “진실로 훌륭하구나! 거문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자네의 마음이 그 곳에 담긴 내 마음과 같구나!”라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백아와 종자기는 ‘지음지기(知音知己)’, 곧 소리를 알아 나를 알고 ‘지기지심(知己知心)’, 곧 나를 알아 나의 마음을 아는 사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백아와 종자기의 사귐으로 말미암아 이때부터 ‘서로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진실한 사귐’을 일컬어 ‘지음지교(知音之交)’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자기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유백아는 친구의 묘를 찾았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한 곡을 뜯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당나라 말기 때 활동한 시인 오융(吳融)은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린 것은〔伯牙絶絃(백아절현)〕, 오직 진정한 사귐의 도리를 밝힌 것이네[但證知音之道(단증지음지도)]”라는 시구(詩句)를 남겼습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사귐’을 뜻하는 또 다른 고사성어로 ‘백아절현(伯牙絶絃)’이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 관포지교(管鮑之交): 상대의 성공을 돕는 친구
춘추 시대의 재상 관중(管仲)은 제자백가 모든 학파의 비조(鼻祖)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또한 오늘날까지 중국 정치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런 관중(管仲)도 친구의 도움이 없었으면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포숙(鮑叔)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를 '관중과 포숙의 사귐’ 즉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부릅니다.
사실 관중과 포숙은 일찍이 각각 경쟁 관계에 있는 제(齊)나라의 후계자들을 받들었습니다. 권력 투쟁의 결과 포숙이 모시던 사람 소백(小白)이 관중이 모신 사람 규(糾)에게 승리했습니다. 그 승리자인 소백(小白)이 바로 춘추 시대 첫 번째 패자(覇者)가 된 환공(桓公)입니다.
그런데 권력 투쟁 중에 관중은 환공을 활을 쏘아 죽이려다 실패해서 사로잡힙니다. 물론 처형당할 처지였지요. 그때 포숙이 나서서 환공에게 건의했습니다, “우리 제(齊)나라를 잘 다스리고 싶으십니까? 그럼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고 싶으십니까? 그럼 반드시 관중을 쓰십시오.” 이리하여 명재상 관중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관중과 포숙은 동등하게 됴움을 주고 받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관중은 매번 자신에게 유리하게 포숙을 대했지만 그런 관중을 포숙이 감싸 주었지요 .『관자(管子)』와 『사기』에 나오는 얘기를 들어 볼까요? 관중이 말하는 고백입니다.
"내가 옛날에 곤궁하던 때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누면서 내가 스스로 더 많이 가졌으나,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포숙을 위해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도리어 그를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포숙은 내가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시세란 유리할 경우와 불리할 경우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찍이 내가 세 번 벼슬하여 세 번 다 군왕께게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포숙은 내가 못났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나가 세 번 싸우다가 세 번 다 달아난 적도 있었다.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老母)가 계셨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모시던 공자(公子) 규(糾)가 패하자,같이 일하던 소홀(召忽)은 자결을 했지만’ 나는 옥에 갇혀서 치욕을 받았다. 포숙은 내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에 연연하지 않고 천하에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이처럼 포숙은 관중을 누구보다 잘 알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주는 이’라 하여 친한 친구를 지기(知己)라고 부르지요. 옛 사람들은 두 사람의 우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得ᅳ知己 死亦無憾(득일지기 사역무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얻으면 죽어도 유감이 없다."
※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관포지교(管鮑之交) 해설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박재희 교수의 관포지교 해설(6분50초): https://www.youtube.com/watch?v=w4SYDWvzerA
▣ 문경지교(刎頸之交): 대의(大義)를 함께 하는 친구
문(刎)은 '베다', '찌르다'라는 뜻이고, 경(頸)은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신체 부위인 '목'을 뜻합니다. 그래서 문경지교(刎頸之交)는 목이 떨어져도 아깝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친구간의 두터운 정이나 사귐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성어(成語)는 전국 시대 말기, 조(趙)나라 염파(廉頗)와 인상여(蘭相如)의 고사(古事)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염파는 장군으로 제나라를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워 ‘상경’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여가 진나라와의 협상을 지혜롭게 끝냈다는 이유로 염파보다 더욱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지요. 그러자 염파는 인상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나는 조나라의 장군으로서 성과 들판을 누비며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고작 혀만 놀린 인상여는 나보다 지위가 높구나, 수치스러워 차마 인상여의 밑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인상여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에게 모욕을 줄 것이다.”
인상여는 이 말을 전해 들은 후 늘 염파를 피해 다녔습니다. 궁중의 조회가 있으면 병을 핑계로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골목에서 마주칠 상황이 닥치면 급히 옆 골목으로 돌아가기도 했지요. 인상여의 부하들은 염파보다 지위가 높음에도 그를 혼내기는커녕 그를 피해 도망가는 상황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부하들의 이야기를 들은 인상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염파와 진나라의 왕, 둘 중에 누가 더 무서운가?”
당시 진나라는 최강의 군대를 가졌기에 주변국들은 모두 진나라의 위세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인상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천하에 진나라를 상대할 나라는 없소이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염파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진나라는 곧장 무력을 갖춰 우리 조나라를 침략할 것이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원망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대감과 생사를 같이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나의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결코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고사로부터 생사를 함께 하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교우라는 문경지교(刎頸之交)와 가시를 지고 가서 죄를 청한다는 뜻의 부형청죄(負莉請罪)라는 성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 문경지교(刎頸之交) 동영상(5분20초): https://www.youtube.com/watch?v=bh8fnfbf6hI
▣ 맺는 말: 나는 어떤 친구입니까?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 중에는 곧 멀어지는 사람도 있고 가까워져 벗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라 해도 그저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진 친구, 즐거움만 나누는 친구, 기쁨과 슬픔은 물론 의지도 공유하는 진정한 친구도 있습니다.
청나라의 격언집 격언연벽(格言聯壁)에는 "노름과 오락으로 사귄 친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술과 음식으로 사귄 친구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력과 이익으로 사귄 친구는 한 해를 넘기지 못하며, 오직 도의(道義)로 사귄 친구만이 오래 간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앞에서 예로 삼은 백아와 종자기, 관중과 포숙, 그리고 인상여와 염파의 관계는 서로가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여 성공하도록 도왔습니다. 개인의 감정보다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경쟁이 아닌 협력을 택했습니다. 그들의 사귐은 도의(道義)가 바탕이었기에 오늘까지도 아름다운 교우(交友)의 모델로 전해져 오는 것은 아닐까요?
친구는 '또 하나의 나'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락을 함께 즐기는 친구도 있어야 합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술 마시는 친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친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같은 뜻을 가지고 공부하고, 더 큰 가치를 위해 실천의 힘을 합치는 진정한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지음지교(知音之交), 상대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상대의 성공을 돕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문경지교(刎頸之交),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대의(大義)를 위해 사적(私的)인 이익이나 개인적 감정을 유보하는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친구입니까?
- 글 마침
※ 참고
교우(交友)와 관련된 내용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도 담겨 있습니다. 아래 주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 글제목: 이웃과 친구('20.8.4): http://blog.daum.net/footprint/304(앞 부분은 이웃을, 친구는 후반부에 있음)
- 글제목: 친구, 행복을 주는 사람('20.10.16): blog.daum.net/footprint/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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