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心寶鑑/동네글방(火金通信)

월권(越權)

efootprint 2020. 4. 10. 12:05

오늘의 학습 본문인 "자왈 부재기위 불모기정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 공자가 이르시기를 그 지위에 있지 않거든 그 정사를 꾀하지 않는다."는 안분편(安分篇) [7]의 내용입니다.  



여기 공자의 말은 논어태백편(泰伯篇)헌문편(憲問篇)에 중복되어 실려 있습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위()나라 대부(大夫)를 지냈던 거백옥()이란 인물이 공자에게 현재 돌아가고 있는 정치 상황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에 있습니. 이때 공자는 노나라에서 공직(公職)을 맡다가 물러난 상태였으므로  “나는 이미 퇴직하였으므로 현재 노나라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그 지위나 직분(職分)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일(정사)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의 말을 "자기의 직분에만 충실하고 남의 일에는 전혀 관여해서는 안된다"라고 해석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문구(文句)도 계급과 신분의 불변성을 옹호하는 의미로만 받아 들입니다. 시체말로 흙수저는 결코 금수저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통치세력이나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합리화한  측면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공자 자신은 그 어떤 권력의 자리에 있지 않았을 때에도 정치를 말하고, 세태를 평하고, 사람을 논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말은 다른 속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 곧 월권(越權)에 대해 경고하는 말로서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하거나  관여하기 전에 자신의 직무부터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고, 기웃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따라서 월권을 하는 사람은 조직에 이중의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른 일에 관여하느라 자기 일을 소홀히 해서 문제를 야기시키고, 전문도 아닌 다른 일에 개입함으로써 그 일에 대한 지장과 담당자와의 불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은 집단 속에서 직분(職分)을 맡아 일을 수행할 때 분수(分數)를 알고 행동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직분이란 직무상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본분(本分)으로 예로부터 자기 처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과욕이기에 항시 이를 경계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고사(古事)가 월관지화(越官之禍)니다. 아래는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법가(法家) 사상가였던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원문과 풀어 쓴 이야기입니다.


昔者韓昭侯醉而寢典冠者見君之寒也故加衣於君之上覺寢而說問左右曰

옛날 한나라의 소후가 술에 취하여 잠들었을 때 그것을 본 전관(모자 담당 관리)은 임금이 추우리라 여겨 그에게 의복을 덮어 주었다. 소후는 깨어나자 기뻐하며 좌우에게 물었다.


「誰加衣者?左右對曰:「典冠」 君因兼罪典衣與典冠

누가 옷으로 덮어 주었느냐좌우가 대답했다. 전관(=모자 담당 관리)입니다.

그런데 소후는 관(모자)을 담당한 자와 옷을 담당한 자를 함께 처벌했다.


其罪典衣ㆍ以爲失其事也其罪典冠ㆍ以爲越其職也

옷을 담당한 자를 처벌한 것은 그 직무를 태만히 했기 때문이고

관을 담당한 자를 처벌하는 것은 직무외의 일을 참견했기 때문이다.

 

非不惡寒也以爲侵官之害甚於寒

물론 소후가 춥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직무외의 월권의 해독이 추위보다 더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일화를 정리한 한비자(韓非子)는 한 소후(韓昭侯)의 처신을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사람마다 직위(職位)가 있고, 그 직위마다 그에 부합한 직권(職權), 즉 권력의 범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직권을 넘어선 월권(越權)자신의 임무를 잊는 것보다 폐해가 더 심각할 수 있으며, 직권을 넘어선 행위는 전체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지녔다고 봤습니다. 자신의 직무를 벗어나서 하는 일이 재앙이 된다’는 뜻인 월관지화(越官之禍)란 고사성어가 태어난 배경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월권(越權)으로 인해 나라가 소란스러워진 경우를 여러 번 겪어 왔습니다. 권력자와의 사적인 인연이나 혈연관계 등의 연고력(Connection power)을 통해 권력을 사유화하는 상황으로 비선(秘線), 실세(實勢), 소통령(小統領)과 같은  말들이 이것입니다.


비선은 정식 절차가 아니라는 뜻이고, 실세는 주어진 권한보다 크게 힘을 쓴다는 것이지요. 숨어서 드러나지 않으니 통제가 불가능하고 당연히 권한이 남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권한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투명하게 행하는 것이 성공적인 조직의 기본 원칙이며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바탕입니.


참고(1) - 位(자리 위)


자리라는 접미어가 붙는 단어에는 일자리, 돗자리, 잠자리, 꿈자리, 별자리, 술자리 등이 있습니다. "자리가 말을 한다.",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한 자리 하더니 교만해졌다." 라는 말도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여호와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아담에게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음을 책망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군대에서는 탈영병의 죄를 엄하게 다스립니다. 운동 경기의 승패도 선수들이 자기 자리를 잘 지켰느냐 아니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자리란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나 장소, 또는 어떤 조직 속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직위나 직책을 일컫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부모의 자리, 남편과 아내에게 주어진 부부의 자리, 스승과 제자에게 주어진 사제의 자리, 형과 동생에게 주어진 형제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장관의 자리, 국민의 자리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를 잘 지키느냐 아니냐입니다.

자리란 차지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가정도, 국가도, 너도, 나도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불행을 초래합니다. 각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되 남의 일에 월권해서는 안되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만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일의 복잡성은 깊어지고 상호 관련성은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만약사회 각 단위가 자기 자리(位)의 독립성과 권한만을 앞세워 외부의 간섭을 배척하게 되면 권력과 이해 다툼이 심해져 오하려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만 커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권한의 벽을 높이 쌓아 월권을 초래하기 보다는 협업을 통한 권한의 공유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해관계자를 미리 확인하고 충분한 소통을 활발히 함으로써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자기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참고(2) - 政(정사 정)


논어를 보면 政(정치)에 대한 공자의 다양한 생각을 살필 수 있습니다. 대화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政(정치)에 대한 공자의 설명이 각기 다름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政(정치)의 범위가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정치에 대한 공자의 여러 가지 흥미있는 설명은 『명심보감』 14.치정편(治政篇)을 학습할 때 자세하게 살펴 볼 예정입니다. 하루 속히 코로나가 종식되고 개강의 날이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