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efootprint 2020. 4. 22. 13:52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은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 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맞고 와서는

참외 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손님인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산다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경치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구본형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 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눈물로 매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詩)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나의 싸움/ 신현림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자리애 잎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잎 진자리에 새가 앉는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내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옛날 애인/ 유안진

 

봤을까?

날 알아 봤을까?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우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 좀더 당당하게 /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 해구신을 고아먹고  /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 제 속의 눈  / 천년의 역사에다 댕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인생이란 계단/ 안성란


인생은 연극이라 했다.
산다는 게 힘들다고 삶이 버겁다고
중도에 막이 내려지는 연극은 아무 의미가 없다.

햇볕이 있어야 초록 나무를 볼 수 있고
잔잔히 불어 주는 바람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꿈을 가질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만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주어진 일에 성실함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때론 내가 하는 일에 실증을 느낄 때도 있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우리는 쉽게 버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생각을 바꿔보면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또는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있다면
모든 일에 당당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삶과 행복한 인생이 따로 있겠는가?
일어나 하늘을 보라.
저 넓고 푸른 하늘은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명심하라.
누구든지 삶에 대하여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없으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여겨 보라.

포기하는 삶을 살지 말고 절대 좌절치 말고
한 번 더 일어나 걸어간다면 예전에 큰 물건이 아닐지라도
작은 꿈 상자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이란 계단을 웃으며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와 행복/ 이해인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감사가 힘들 적에도
주문을 외우듯이 시를 읊듯이
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늘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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