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多思,落書一步

분노의 긍정적 힘

efootprint 2021. 2. 11. 13:27

 

[참고의 글]

發憤著書에서 窮而後工까지(대학논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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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분저서[ 發憤著書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적인 의미로 풀어 본다면 '억울한 일을 당해 마음이 자극되어 명작을 남긴다'는 이야기이다.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유사한 문학 관념으로는 당대 한유()의 '불평즉명()' 송대 구양수()의 '시궁이후공(, 시인은 어려운 일을 당해야 시가 훌륭해진다)' 등이 있다.

사마천은 그가 흉노()와의 전투에서 투항했던 어느 장수를 변호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는 사형 대신 거세형을 택했는데, 이는 유교 사회에서의 실질적인 목숨을 포기한 것이나 같다. 이 같은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기』를 완성했다. 사마천은 서문에서 서백(西)이 『주역()』을, 공자가 『춘추()』를, 굴원은 「이소()」를, 그리고 좌구명()이 『국어()』를 지은 것 들은 모두 곤경을 딛고 일어선 결과라고 하여,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본기(), 표(), 서(), 열전()등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사기』는 1백30편, 모두 52만 6천여 자라는 방대한 양을 통해 전설시대인 황제() 때부터 한의 무제까지 약 3천여 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러한 사건이 발분저서의 기원이 된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료를 직접 체험 수집하면서 집필에 임했고 엄밀한 태도와 개인적 애증이 문체에 투영됨으로써 '발분저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전통적 문학 관념은 실용주의 문학관과 표현주의 문학관으로 크게 나뉜다. 실용주의 문학관은 문학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에 활용하기 위한 시교()의 도리를 중시하고, 표현주의 문학관은 도가적 낭만성 속에서 문학의 정감 표현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문학관은 정감이 현실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면 실용주의 정신이 담기는 것이고,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라면 순수한 서정이 담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주의 문학관이 창작의 효과를 중시했다면, 표현주의 문학관은 창작의 동기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사마천의 발분저서의 문학관은 후자에 속하는 문학관에 속하며, 사료적 가치 뿐 아니라, 사실적 실질적 글쓰기의 한 전범이 되었다.(오태석)

 

불평즉명[ 不平則鳴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불평즉명()’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문학가 겸 사상가 한유(, 768~824)가 지인 맹교(, 751~814, 자 동야)를 위로하며 쓴 「맹동야에게 보내는 글()」에 나오는 말이다. 맹교는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다가 46세에 진사에 합격했지만, 50세가 넘어서야 율양현위()가 되어 떠난다. 이때 한유가 때를 못 만나서 고생하는 맹교를 위로하며 보낸 글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현재에도 시대와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는 문인, 예술가를 일컬을 때 쓰는 문학용어이다.

 

▶ 한유의 불평즉명,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평정함을 얻지 못해서다

 

한유의 표현에 따르면, 시인은 ‘잘 소리 내어 우는 사람’, 즉 선명자()다. 나라를 위해, 민중을 위해, 임을 위해, 나를 위해 소리 내어 운다. ‘선명자’는 대개 회재불우(, 훌륭한 재주를 지녔으나 때를 만나지 못함)의 삶을 산 사람들이다. 그런 삶 속에서 ‘평정을 얻지 못하면’, 자신의 울결한 마음을 시나 글로 표현해 ‘소리를 내는데’, 그런 글과 시는 감동과 울림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한유는 「맹동야에게 보내는 글」에서 ‘불평즉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릇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낸다. 초목은 본래 소리가 없는 것인데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게 되고, 물 역시 소리가 없는 것인데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게 된다. 물이 튀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물을 격동시켰기 때문이고, 물이 급히 내달리는 것은 무언가가 물길을 막았기 때문이며, 물이 끓는 것은 무언가로 가열했기 때문이다. 쇠와 돌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무언가로 치면 소리를 낸다. 사람과 말의 관계도 그러하다. 어떻게 할 수 없는 후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며, 통곡하는 것은 가슴에 품은 회포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평정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그리하여 새를 빌려 봄의 소리를 내고, 우레를 빌려 여름의 소리를 내고, 벌레를 빌려 가을의 소리를 내며, 바람을 빌려 겨울의 소리를 내니, 사계절이 서로 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은 반드시 그 평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한유는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야 강남의 율양현 현위로 떠나는 맹교가 훌륭한 재주를 지녔음에도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가난으로 힘들었고 또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답답한 세월 속에서 글로 많이 울었을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니,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세상 만물이 평정을 잃으면 소리 내어 우는 것처럼, 역대로 회재불우한 시인들은 ‘잘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이라면서, 그의 마음을 위로함과 동시에 그의 시재()를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 천리마도 그 능력을 알아보는 주인을 만나야 비로소 천리를 달린다

한유는 회재불우한 사람을 ‘천리마’에 비유했다.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명마라도 단지 노예의 손에서 욕이나 당하며 평범한 말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죽게 되어, 천리마로 불리지 못한다. 천리마는 한 끼에 때론 곡식 한 섬을 먹기도 하거늘, 말을 먹이는 자가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줄도 모르고 먹인다. 그 말이 비록 천리를 달리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먹는 것이 배부르지 않아 힘이 부족하여 훌륭한 재주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또 보통 말과 같아지려 해도 될 수 없으니, 어찌 그 말이 천리를 달릴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_ 「잡설(雜說)」

 

백락()은 춘추시대 주()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진나라 장수 항우에게는 오추마()가 있고, 후한의 장수 여포에게는 적토마()가 있었다. 모두 명마로, 이들을 천리마라고 한다. ‘항우’와 ‘오추마’, ‘여포’와 ‘적토마’의 관계는 ‘백락’과 ‘천리마’의 관계와 같고, 백락은 명군현상(: 훌륭한 군주와 현명한 재상 또는 신하)을 의미하며 천리마는 인재를 뜻한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여도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 천리마가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그 능력을 알아보는 사회와 명군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들은 회재불우의 삶을 살게 되고,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소리 내어 우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유는 새를 빌려 봄의 소리를, 우레를 빌려 여름의 소리를, 벌레를 빌려 가을의 소리를, 바람을 빌려 겨울의 소리를 내는 것처럼, 시인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소리를 낸다고 했다. ‘잘 운다’는 것은 문학적 감수성에서 비롯되지만, 이처럼 뜻한 바가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와 불합리로 인해 막혔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맹교(, 751~814, 자 동야)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도 요절하는 등 가정적으로 불우했고, 벼슬길도 순탄치 않았다. 이런 불우한 상황 속에서 창작에 몰두하여 ‘시수(: 시에 갇힌 죄수)’라고도 불렸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하는 자식의 심정을 표현한 <유자음()>이라 시가 있다.

 

▶ 사마천의 발분저서, 훌륭한 저작들은 대개 ‘마음속 울분이 발산된’ 작품이다!

중국에서 ‘불평즉명’의 계보는 한나라 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 「태사공자서( · )」의 “마음속 울분이 발산되어 쓴다()”, 당나라 한유의 “평정을 잃으면 소리 내어 운다()”, 송나라 때 구양수가 쓴 「매성유시집서()」의 “시는 곤궁할수록 더욱 공교해진다()” 등으로 이어진다.

 

사마천(, BC145?~BC86?)은 이릉() 장군의 부당함을 변호하다가 한나라 무제에게 궁형()을 당했다. 그는 극도의 슬픔과 모멸감을 견뎌야 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나 집에 있을 때는 망연자실하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했소, 매번 이런 치욕감이 일 때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옷을 흠뻑 적셨소,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그런 중에도 끝내 『사기』를 완성하고, 과거의 훌륭한 저작들은 대부분 이렇게 ‘마음속 울분이 발산되어 쓴’ 작품이라고 했다.

 

굴원은 쫓겨난 후에 「이소」를 지었으며, 좌구명은 실명을 한 후에 『국어』를 엮었다. 손자는 발꿈치를 잘리고 나서 병법을 논하였으며, 여불위는 촉 땅으로 좌천된 후에 세상에 『여씨춘추』가 전해졌다. 한비는 진나라의 감옥에 갇히고서 「세난」과 「고분」을 썼으며, 『시경』의 시 삼백 편은 대개 성현들의 마음속 울분이 발산되어 쓰여진 작품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답답하게 맺힌 바가 있으나 그들의 이상을 표출할 방법이 없어서, 지난 일을 서술하면서 미래를 생각했던 것이다._『사기』 「태사공자서」

 

사마천은 이런 저작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시대적 조우와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실의한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가슴속에 맺힌 울분을 글로 풀어내어()’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고 보았다. 사마천 자신이 궁형을 받은 모멸감을 저술로 승화해 훌륭한 역사서 『사기』를 저술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구양수의 시궁이후공, 시인이 곤궁할수록 시는 공교해진다!

한유의 ‘불평즉명’은 사마천의 ‘발분저서’를 이었고, 후에 구양수5)(, 1007~1072)의 ‘시궁이후공()’으로 이어졌다. 구양수는 시우() 매요신(, 1002~1060)의 시집에 서문을 써주면서 “시는 곤궁할수록 공교해진다”고 했다.

 

내가 듣기로 세상에서 시인은 잘된 사람은 적고 곤궁한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어찌 그렇겠는가, 이는 세상에 전해지는 시는 대부분 옛날에 곤궁했던 사람에게서 나온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 따라서 시는 곤궁할수록 더욱 공교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곤궁하게 된 후라야 시가 공교해지는 것이다._ 「매성유시집서(梅聖兪詩集序)」

 

‘궁()’은 단순히 물질적인 결핍이나 경제적인 빈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벼슬길이 막혀 생활은 곤궁해지고 이상도 실현하지 못하는 곤궁한 처지와, 사회적 현실과의 모순으로 인해 ‘삶의 평정이 깨진’ 불안정한 감정과 절실한 고뇌를 뜻한다. 이런 곤궁한 개인적인 처지와 암울한 사회적 환경이 창작에 영향을 주어 더욱 울림이 큰 시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런 삶 앞에서 인간과 사회의 참모습을 깊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핍도 없고 목마름도 없는 삶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둔탁하게 만들고 감성적 촉각도 무디게 만든다. 앞서 말한 사마천, 굴원, 좌구명, 손자, 여불위, 한비자 등의 좌절과 곤궁한 삶이 『사기』, 「이소」, 『국어』, 병법, 『여씨춘추』, 「세난」 등 우수한 작품을 지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공명과 울림이 크다는 것이다.

 

‘불평즉명’, ‘발분저서’, ‘시궁이후공’ 등은 모두 작가가 ‘평정을 얻지 못해서 글로 시로 소리를 낸다’는 의미다. 문학은 작가가 처한 사회 환경으로 인해 조우한 불운한 삶과 관계있다는 ‘불평즉명’은, 중국 고대 리얼리즘 문학 창작의 규율성을 보여준 문학용어다. 문학이 현실사회의 모순을 반영한다는 문학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 기타, 참고할 만한 내용 

 

- 역사, 악을 태우는 촛불 - (출처: '무엇이 좋은 삶인가' p257~259 참조) 

역사는 이처럼 과거를 수동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능동적으로 짓기 위해 고안됐다. 미래를 선하게 지어 있기에 역사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우리 영혼에 실존에 품음으로써 미래의 역사가 되곤 한다.

사마천은 이러한 '역사 되기 "공분을 드러내고자 쓰다: "발분저서(發憤著書)”라는 명제로 개괄하였다. 공자 <춘추>를 묶어 내고 좌구명이 <좌전>을 저술함도 공분을 당하게 드러낸 활동이었다고 규정했다. 주지하듯 사마천은 군주에게 직언했다가 고환이 제거되는 궁형을 겪었다. 이는 당시 식인에게는 크나큰 치욕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외양만 남성으로 사는 것은 죽음만 못하다고 여겨졌다. 생물학적 생명만 있었을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감내하며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사기>를 완성했다. 그러고는 서문격인 [태사공자서]를 써서 자신이 <사기>라는 역사를 저술 의의를 천명했다.

그가 보기에 자기 가슴에 가득한 분노는 결코 사적 한이 아니었다. 자신은 진리대로의 삶을 따랐는데 하필 나라에 도가 무너진 탓에 야기된공적 분노였다. 그것은 진리가 통용되 않는 시대에서 비롯된 원망이었고,부도덕한 자들이 떵떵거리며 행세하는 시절에 대한 공분이었다. 쉬이 삭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대 탓이나 하며 하늘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하늘이 자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목적을 어떻게 해서든 실현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존재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문득 <춘추>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고 <시경>등의 경전을 정리하는 공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보다 500여년 전 주나라 문왕이 무고하게 유폐당했을 <역경>해설서를 저술하 훗날을 기약했듯이,그는 글로써 부조리한 현실을 가로지르 미래를 능동적으로 준비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공자는 저술 통해 하늘이 자기를 세상에 보낸 목적에 부응하였음이다. 랬듯이 사마천도 <사기>를 저술하여 공적 분노로 미래를 기획함으로써 하늘의 의도에 튼실하게 부응하였다. 그리고 2016 울,우리는 강토 곳곳에서 촛불을 밝힘으로써 미래를 지어 갔다. 밀실에서 제조된 국정 역사 교과서가 음지에서 피어난 독버섯인 모습을 드러냈을 때,양식 있는 시민들은 광장과 거리에서 삶터에서 공분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가 역사가 되었다.

역사는 결코 사원(私怨) 한풀이가 없다. 사적 욕망이 가득한 글은 과거를 비듦으로써 미래를 공멸로 이끌 름이다. 반면에 삶터에서 굴하지 않고 밝히는 촛불은 역사가 다.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자신이 선에 기생하는 악을 태우 촛불이 되기에 그렇다.

 

- 역사, 인간을 빚는다 - (출처: '무엇이 좋은 삶인가' p276 참조)

유형 백이 형제,공자, 안회 .

유형 척,이름을 나열할 없을 정도로 널려 척의 후예들.

 

불세출의 거작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은 서문 격의 글에서 유형의 인물과 유형의 인물을 대비하며 절규했다. 역시를 보니 유형은 올곧고 선하게 살았음에도 불우한 삶을 살다요절하기 일쑤였고,유형은 갖은 악행을 일삼아도 떵떵거리며 천수를 누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편파적이지 않으 항상 선한 이와 함께한다" 하늘에 대고 외쳤다. “하늘의 과연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

가만히 따져 보면 사마천의 이런 행동은 꽤나 의아하다. <사기> 문학과 사학,철학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 받아 왔지만,그래도 '역사 기술이라는 제목에서 확인할 있듯이 본질은 엄연히 역사서다. 그런데 위의 하늘에 대한 사마천의 절규는 백이 숙제 형제의 삶을 기술한 [백이열전]에 나온다. 실증적 역사 기술에 역사가의 목소리가 가감 없이 실려 있는 것이다. 비유컨대 언론이 사건 보도를 한다면서 사실보다 기자 자신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다룬 셈이다.

단적으로 이러한 마천의 태도가,역사는 사실의 기록으로 역사가의 목소리를 최대치로 배제할수록 좋은 역사서라는 일반적 관점과 위배된다. 하여,[백이열전]이 <사기> 전체의 서문 역할을 겸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여도 문제의 핵심이 해소되진 않는다. [백이열전]을 보면 백이 형제의 삶이 기술되어 있다. 서술 분량이 많지 않고 생애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마천이 역사는 사실의 기록임을 분명하게 인지하 있었음의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더욱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사기> 곳곳에 사실의 기록과 사마천 자신의 목소리가 함께 실려 있고,이런 경우 기록된 사실은 개진된 견해 근거로 활용되기 마련이어서,역사 기술의 방점이 사실보다 견해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사마천이 고대 중국의 역사 기술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결과로 보기도 한다.(이하 생략)

 

 

 

  -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서평1: blog.naver.com/b_seong/221635157760

서평2: blog.naver.com/artist_pj/222133792138

 

분노는 회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인간의 7가지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해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이전(以前) 대통령을 탄핵한 것도 정권을 바꾼 것도 분노였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계속 타오르고 있다. 세상은 분노할 일 천지인 것이다.

분노는 다른 감정들과 달리 강력한 에너지를 동반한다. 그래서 정적을 없애고 정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분노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분노는 어떤 것이든 만들어낼 수가 있는 힘이 있다. 분노만이 비리를 고발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분노는 에너지다. 분노를 술 마시고 화풀이하는데 쓰지 말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사용해야 한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사회의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에너지로 써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똑똑하게 분노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 시는 논개의 애국적 정열을 노래한 작품이다. 논개는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義妓)이다. 일제하에서 이러한 민족사적 소재를 택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민족 의식,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의 표현이다.

이 시의 구성은 1연이 죽음을 결심한 순간의 분노와 정열, 2연이 죽음의 장면 묘사, 3연은 죽음이 역사적으로 남게 되는 이유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조국을 위해 몸을 내던진 논개의 죽음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격앙될 수도 있는 소재를 직설적으로 읊지 않고 몇 가지 중요한 이미지의 재구성을 통해 시로 승화시켰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라는 후렴구가 각 연마다 되풀이되면서, 푸른 물결의 유구함 = 변함 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붉은 마음의 의연함 = 민족혼의 계승이라는 주제 의식이 선명한 색감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죽음을 결심한 논개의 분노와 정열을 노래한 1연만 보면 그 비유의 수사법은 아직 단순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2연의 ‘아리땁던 그 아미 / 높게 흔들리우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맞추었네.’에 오면, 논개의 죽음의 장면 묘사가 ‘석류’라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신비롭고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3연은 후렴구의 의미를 부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시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이미지와 구성의 묘미로 성공한 시이다. 후렴구의 반복을 통해 민요적 대중성을 가지고 친숙하게 읽히는 시이기도 하다.

(출처 :  blog.daum.net/humm99/17109257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

 

 

 

 

 

영화 <거룩한 분노>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의 안락한 삶의 이면에는 항상 누군가의 분노(=용기와 헌신/희생)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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