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心寶鑑/동네글방(火金通信)

숙흥야매(夙興夜寐)

efootprint 2020. 5. 5. 12:33



오늘은 존심편(存心篇) [17]의 모두(冒頭)에 나오는 숙흥야매(夙興夜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夙興夜寐, 所思忠孝者, 人不知, 天必知之. 飽食煖衣. 怡然自衛者, 身雖安. 其如子孫何?

(숙흥야매, 소사충효자, 인부지, 천필지지. 포식난의, 이연자위자, 신수안, 기여자손하)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생각하는 바가 충성과 효도인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그를 알아줄 것이고,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서 즐겁게 자기만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은 비록 편안할 것이나 그 자손은 어떻게 할 것인가?"


- 夙: 이를 숙,  興: 일 흥,   夜: 밤 야,   寐: 잠잘 매 -


위 글에서 숙흥야매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잔다'라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사장님이나 학업중인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사자성어(四字成語)네요.


과거형 숙흥야매(夙興夜寐)


옛 글에서 숙흥야매(夙興夜寐)의 표현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시경(詩經) 위풍편(衛風篇)과 소아편(小雅篇)의 두 곳에 있는데 위풍편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三歲爲婦(삼세위부) 靡室勞矣(미실로의)

夙興夜寐(숙흥야매) 靡有朝矣(미유조의)

言旣遂矣(언기수의) 至于暴矣(지우폭의)

兄弟不知(형제부지) 咥其笑矣(희기소의)

靜言思之(정언사지) 躬自悼矣(궁자도의)


삼 년 동안 남의 아내 되어 살림하느라 고생만 했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자며 아침이 있는 줄도 알지 못했네
혼인 언약이 이루어지자마자 남편은 갑자기 난폭하게 나왔지
형제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그저 허허 웃기만 하네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만 가여워지는구나


위 내용에서는 숙흥야매(夙興夜寐)라는 말이 타향 남자의 유혹에 빠져 그의 아내가 되었고,그 후에 밤낮 없이 수고를 했건만 버림받아 헛되었음을 한탄하는 의미로 쓰였네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딱한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올수록 숙흥야매는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하라는 가르침으로 쓰이게 됩니다. 우리나라 선비들도 이 숙흥야매를 공부하는 이가 갖추어야 할 자세로 보았습니다. 퇴계 이황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지어 새벽 일찍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자신을 경계하였습니. 아래는 어린이 교과서인 ‘사자소학’(四字小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夙興夜寐(숙흥야매) 勿懶讀書(물나독서)            

勤勉工夫(근면공부) 父母悅之(부모열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공부를 부지런히 힘쓰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느니라.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을까요?

농사를 업으로 하는 평민들은 농사철에는 때를 잃으면 안 되니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냈을겁니다. 남여를 불문하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해가  후까지 눈코 뜰 새가 없었겠지요그래서 바쁜 농사철을 빗댄 속담들이 여럿입니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 '부지깽이도 나와서 돕는다." "눈썹에 불 붙어도 불 끌 겨를이 없고, 오줌 누고 OO 털 시간도 없다.' 는 것이 이런 사정을 잘 나타냅니다. 


벼슬살이 하던 관리들은 어땠을가요?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 시대에는 대략 2주일에 한 번의 휴일을 가졌습니다출근은 묘시(卯時: 5~7), 퇴근이 유시(酉時: 17~19)로 꼬박 12시간을 일해야 했네요. 말 그대로 숙흥야매로 보여집니다. 덧붙이자면 결근 1일이면 볼기를 치는 10대의 태(苔)를 쳤습니다. 그런데 늦게 출근하고 일찍 돌아가는 관리들이 많아 지각이나 조퇴에 대해서는 결근한 자보다 더 무거운 태형 50대를 부과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근태관리(勤怠管理)를 위한 강수(强手)이자 묘수(妙手)로 느껴집니다. 



▣ 진행형 숙흥야매(夙興夜寐)



한국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1961년에는 82달러,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던 1973년에도 340여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성장의 길을 달려오면서 2년 전인 2018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3만달러를 넘어 섰습니다. 


지난 60년간 무엇이 세계가 놀라는 한국의 400배 경제 성장을 가능케했던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 중에 밤을 낮 삼아 일했던 한국인의 숙흥야매(夙興夜寐)의 근면과 성실성을 빼놓지 않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열악한 환경에서 야간 작업을 하던 공장 노동자, 열사(熱沙)의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횃불을 켜고 땀 흘리며 돌관(突貫) 작업을 하던 건설 인력들, '하면 된다'고 외치며 군사 작전 같은 비즈니스 기회를 창조하던 경영자들이 바친 시간들이 오늘의 초석礎石)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글쓴 이도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회사 근무를 위해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면 밤 10시 이후에 귀가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았습니다. 또한 "시간은 아끼되 땀은 아끼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자랑으로 내세우며,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채웠지요, 그 때는 그것이 잘 나가는 회사원들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이었고 인생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IMF 환란과 디지털 시대의 도래, 금융 위기와 AI(인공지능), 4차 산업 혁명과 코로나 엄습 등 숨돌릴 틈 없이 벌어지는 변화와 위기 속에서 일과 숙흥야매(夙興夜寐)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집단에 매몰되었던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최근 몇 년간은 '워라벨'과 '소확행' 같은 용어가 일상어가 됐습니다. 워라벨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이고, 소확행(小確幸)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용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work)에 투입하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원만한 가정생활이나 개인의 행복 추구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근로시간 단축은 선(善)이고 단축을 반대하는 입장을 악(惡)으로 매도(罵倒)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 기술적인 환경의 변화는 로봇(robot)에 의한 노동의 대체와 비대면(非對面) 노동의 증가 등을 피할수 없는 추세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숙흥야매는 장시간 노동과 관계 파괴를 초래하는 일 중독(中毒: workaholic)이 아니라 시간관리와 주관적 행복감(well-being)을 동시 만족시키는 일 몰입(沒入: work engagement, flow)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노동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일에 쏟는 절대 시간의 길고 짧음에만 있지 않습니다. 노동이 개인을 소외(疏外)시키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거나 일에서 자기 보상과 성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에 임하는 비자발적, 비자주적 태도에 있습니다.

일에 대해서 자발성과 자주성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 항로(航路)에서 선장(船將)이 된다는것입니다. 경험을 갖춘 선장이라면 바람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배의 돛이나 키를 조정하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주도성을 갖추고 자발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변화에 저항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선장과 같이 통제력을 발휘합니다. 그들은 노동 시간이나 보수와 같은 양(量)적 지표 보다는 일의 의미와 성장감과 같은 질(質)적 지표로 일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일을 통해서 더 자주 크고 작은 행복감을 누리고 때로는 세상까지 변화시키는 위대한 결과를 만듭니다.


한 마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숙흥야매(夙興夜寐), 즉 일 몰입을 위한 태도를 옛 현인(賢人)의 말로써 대신합니다.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느 곳에 머무르든 주인이 되어라! 머무는 그 곳 모두 천국(유토피아)이 된다." 


위 귀절은 당나라의 임제(臨濟) 선사(禪師)의 말을 모은 임제록(臨濟錄) 시중편(示衆篇)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상으로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함)을 마칩니다.    


추기(追記)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우리 동아리 회원님들 역시 과거의 그 얼마 동안에는 모두가 어린이였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파블로 네루다는 <질문의 책>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푸른 보리밭 위로 새들이 날으는 계절에 어울리는 동시 하나를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현행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노래로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아래 동시(동요)를 감상하시면서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찾아 냈으면 좋겠습니다.


종달새의 하루/ 윤석중 작사, 이은렬 작곡

(노래와 악보는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615049&cid=59416&categoryId=59436

1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비비배배거리며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2 밭에서 쳐다보면 저 하늘이 좋아 보여
  다시 또 쏜살같이 솟구칩니다
  비비배배거리며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