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존심편(存心篇) 15조(條)의 본문 중에서 옥(屋: 집 옥)과 갱(羹: 국 갱)의 두 글자를화제(話題)로 삼았습니다. 학습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心安茅屋穩 性定菜羹香(심안모옥온
성정채갱향)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아늑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본문의 10글자 중에서 옥(屋)과 갱(羹)의 두 글자를 화제(話題)로 선정한 이유는 작금(昨今)의 생활과 무관치 않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屋)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주 봄나물 국(羹)을 먹다 보니 옥(屋)과 갱(羹), 두 글자가 쉽게 눈에 잡히더군요.
▣ 屋(집 옥)
옥(屋)자는 ‘집’이나 ‘주거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屋자는 尸(주검 시)자와 至(이를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지요. 至자는 화살이 땅에 박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다르다’나 ‘(영향이)미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옥(屋)자가 조상의 명패를 모시던 방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의미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집’이나 ‘주거 공간’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옥(屋)이 들어가는 단어로는 옥상(屋上), 옥외(屋外), 가옥(家屋), 한옥(韓屋) 등이 있으며, 일이나 사람이 쓸데없이 거듭됨을 지칭하는 옥상옥(屋上屋), 임진왜란 당시에 위세를 떨쳤던 판옥선(板屋船)도 있습니다.
▶ 집을 의미하는 한자들
그런데 공간으로서의 집을 뜻하는 한자는 옥(屋) 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가리키는 익숙한 한자들을 찾아보니 집 가(家), 집 실(室), 집 궁(宮), 집 택(宅), 집 우(宇), 집 주(宙)가 있네요.
'집 가(家)’자에 ‘돼지 시(豕)’자가 들어 있는 것은 왜일까요? 옛날에는 집안에 들어오는 파충류 가운데 뱀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뱀의 천적이 돼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옛 사람은 집안에 돼지를 키웠고 가(家)자 안에 돼지를 그려 넣었던 것이지요.
아직도 세계의 오지(奧地) 중에는 위에는 사람이 살고 그 아래에서는 돼지, 개, 닭과 같은 가축을 키우는 가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집 실(室)’은 가족 구성원이 이르는[至 : 이를 지] 곳이요, ‘집 궁(宮)’은 건물이 많이 늘어선[呂: 등뼈 려] 집을, '벼슬 관(官)'은 많은 사람[㠯 : 써 이]이 모여 사무를 보는 관청을, ‘집 택(宅)’은 사람이 의탁(乇 ; 부탁할 탁)하고 사는 집을 나타냅니다. 우주(宇宙)라고 할 때의 ‘집 우(宇)’는 동서남북의 사방(四方)과 상하(上下), 곧 공간적 개념이고, '집 주(宙)'는 옛날부터 지금, 곧 시간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가(家), 실(室), 궁(宮), 택(宅) 등의 글자를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원시 움집 모양의 ‘집 면(宀)’자를 머리에 얹혀 놓았습니다. 면(宀)은 사람의 거처를 지붕과 벽으로 막아놓은 공간입니다. 발음이 ‘면’인 것은 집이 비바람이나 한서(寒暑), 맹수 등으로부터 피해를 면(免)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기억이 쉽습니다.
인위적인 공간을 나타내는 다른 한자로는 곳집 고(庫), 곳집 유(庾), 관청 부(府), 관청 청(廳), 사당 묘(廟), 가게 점(店), 농막집 려(廬) 등도 있습니다.
거마(車馬)나 무기를 넣어두는 곳은 고(庫), 노적가리처럼 잠깐(臾; 잠깐 유) 쌓아두는 곳은 유(庾), 나누어 줄 것을 맡기는(付: 줄 부, 맡길 부) 곳은 부(府)입니다. ‘관청 청(廳)’은 ‘들을 청(聽)’자가 들어있으니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고, 조(朝)가 들어 있는 '사당 묘(廟)'는 신주(神主)나 위패(位牌)를 모신 집을 뜻하며, '가게 점(店)’은 정한 자리[占]에서 물건을 차려놓고 파는 집을, '농막집 려(廬)'는 갈대로 만든 허술한 집(盧)을 뜻합니다.
이들 한자들이 공통적인 부수(部首)로 취하고 있는 것은 '집 엄(广)'입니다. 왜 '엄(广)'을 엄으로 불렀을까를 생각해보니 창고(庫, 庾), 관청(府, 聽), 사당(廟) 등의 공간은 엄격, 엄정, 엄숙한 처신이 필요한 엄한 곳이라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밖에도 거주와 관계가 있는 한자를 더 찾아보니 殿(전각 전), 堂(집 당), 閤(쪽문 합), 閣(집 각), 齋(집 제), 軒(집 헌), 樓(다락 루), 亭(정저 정)이 있고, 舍(집 사), 院(집 원), 房(방 방), 倉(곳집 창). 幕(장막 막), 牢(짐승 우리 뢰)도 있네요. 기회가 있을 때 나머지 집에 대한 신분(?)도 확인할 계획입니다.
▣ 羹(국 갱)
국을 뜻하는 갱(羹)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羊(양 양) + 灬(연화 발=火) + 美(아름다울 미)가 됩니다. 여기에서 다시 미(美)는 羊(양 양) + 大(큰 대)로 되지요.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양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때 신이나 조상들이 큰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양(羊)과 크다(大)는 글자를 합쳐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이라는 뜻의 미(美)자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갱(羹)은 “양(羊)을 불(火)에 끓여 요리한 훌륭한(美) 먹거리"로 양고기국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국을 가리키는데 쓰입니다. 주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魚羹(어갱=물고기국), 菜羹(채갱=채소국), 肉羹(육갱=고기국), 豆腐羹(두부갱=두부국), 羊羹(양갱=양고기국) 등으로 불려집니다.
여러가지 국 중에서 특히 양갱(羊羹)은 고대 중국에서 대단한 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편집한 <전국책(戰國策)> 중산편(中山篇)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中山君饗都士(중산군향도사). 大夫司馬子期在焉(대부사마자기재언), 羊羹不遍(양갱불편), 司馬子期怒而走於楚(사마자기노이주어초), 說楚王伐中山(세초왕벌중산). 中山君喟然而仰歎曰(중산군위연이앙탄왈), 吾以一杯羊羹亡國(오이일배양갱망국)
이 글의 뜻을 풀면 대략 이렇습니다.
중산국(中山國) 왕이 신하를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었다.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대부(大夫)도 잔치에 참가했는데, 그의 차례가 됐을 때 양고기국이 모자라 먹을 수가 없었다. 이 일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화가 난 사마자기는 그 길로 남방의 큰 나라인 초나라로 달려가 초왕에게 중산국을 정벌하도록 설득하였다. 중산국 왕은 한숨을 쉬며 "한 그릇 양고기국 때문에 나라를 망쳤도다."라고 우러러 탄식하였다.
그런데 양갱(羊羹)은 고깃국이기 때문에 식으면 젤리 형태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부드럽게 가공한 것이 연양갱(鍊羊羹)입니다. 이런 양갱을 중국에 유학갔던 일본의 승려가 배워서 자기 나라인 일본에 전했지요. 그는 승려 신분인지라 고기 대신에 팥을 이용했고 '요오깡'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후에 H 제과가 생산을 시작해 지금 우리가 먹는 양갱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요약해 놓은 것이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후기(後記)
코로나19로 인해 벌써 100일 가까이 많은 시간을 '집콕', '방콕'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확진자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전면적인 집합교육 활동은 아직은 조심스럽네요. 다만 일부 학교의 등교 수업과 몇몇 공공 기관의 동향으로 볼 때 멀지 않은 시기의 개강을 기대해 봅니다. 변화가 있으면 동아리 회장단 분들과 상의하여 공지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정상 개강이 되어 만날 때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민족은 국이나 탕(湯), 찌게가 있어야 밥을 밥답게 먹습니다. 코로나로 움츠려들었던 몸과 마음을 풀고 기운을 북돋는데는 신선한 봄나물국이 제격입니다. 집에서 먹는 나물국은 향기도 높아 더욱 맛이 좋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屋(집 옥)과 羹(국 갱)'을 마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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