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樂水/동네방네

등나무

efootprint 2022. 5. 1. 19:37

 

일자 : 22. 4.28

장소 : 81 처인공원

 

 

등나무에서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에는  여름, 그늘 쉼터, 시멘트 벤치, 호박벌 그리고 나중에 배워서 안 것으로 갈등(葛藤)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동무들과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뛰놀다가 등나무 아래를 모여들면 그늘이 좋아서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었지요.

대체로 등나무 밑에는 시멘트 재질의 벤치도 놓여 있었구요, 가끔은 궁둥이가 시커멓고 커다란 호박벌들이 윙윙거려 무섭기는 했지만요.

벌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수세미라고 불리는 등나무 열매. 아이들과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로 장난치다 잘못 맞다보면 그 아픔이 대단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조금 더 성장해서 등나무를 다시 알게 된 것은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를 알면서였지요.

한자로 葛(갈)은 칡이고, (등)은 등나무인데 그렇다면 왜 칡과 등나무가 갈등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칡이나 등나무는 둘다 같은 콩과 식물이면서 모두 덩굴식물인데요. 덩굴식물은 종류마다 정해진 방향으로 감으며 올라가는데 칡 줄기는 오른쪽으로 돌돌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반대로 왼쪽으로 감싸며 오릅니다. 바로 칡은 우권(右捲, 오른돌이)이고, 등나무는 좌권(左捲, 외돌이)으로 감아 올라가는 방향이 서로 다르지요.

 

칡나무(오른쪽 돌기)와 등나무(왼쪽 돌기)

 

참고로 다른 덩굴식물들의 감아 올라가는 방향은 아래와 같습니다.

- 우권(右捲, 오른돌이) : 나팔꽃, 메꽃, 박주가리, 새삼, 마, · · · · ·

- 좌권(左捲, 왼돌이) : 인동, 환삼덩굴, · · · · ·

- 더덕은 양손잡이로서 좌우돌이를 한다고 하네요.

 

어떻든 갈등(葛藤)이란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것과 같이

 

①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적대시하며 일으키는 분쟁

② 상치되는 견해 따위로 생기는 알력

③ 정신 내부에서 각기 다른 방향의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마찰을 이르는 말이며

 

다시말해 불화(不和)·상충(相衝)·충돌(衝突)이 갈등(葛藤:conflict) 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어에서 갈등은 Conflict인데  com(함께, 같이)과 flict(=strike: 싸우다, 치다)의 합성어로 "서로 치고 싸우다",는 뜻이 됩니다.

 

과거에는 갈등을 높은 스트레스, 상호반목과 분열, 적대행위를 촉발하는 존재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제도나 권력 등의 강압적 방법으로 갈등을 제거하거나 은폐, 회피하려 했었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갈등을 필연적인 존재로 인식함은 물론 갈등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오히려 동기부여하여 문제해결을 촉진한다는 측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갈등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관점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등나무꽃의 꽃말은 "환영, 사랑에 취하다"입니다. 또한 등나무에 열리는 꽃을 말려서 원앙베개에 넣으면 금실이 좋아지고 등나무 잎을 삶은 물을 마시면 애정이 깊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어쩌다 등나무가 대립과 투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갈등이라는 단어의 반쪽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등나무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시인들이 등나무를 어떻게 자신의 시세계에 담아냈는지를 몇 편의 시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등나무 아래서/ 김영선

주렁주렁 늘어진

연보랏빛 꽃등

바람 불어오면

신비로운 이국의 여인이

보라색 베일을 쓰고

하늘하늘 춤추는 듯

꽃무리로 어깨동무 하고

갈등이란 전혀 없는 듯

잉잉대는 벌 소리만이

평화로움을 깬다

등신藤身에 기대니

등신처럼 살라고 한다

남 속이지 말고

차라리 속으며 살라고

지지대가 없으면

자랄 수 없는 덩쿨나무

남들과 등지지 말고

등대고 살라고 한다

 

나도 등꽃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낮은 사람들과

화사한 꽃등 서로 켜주며

속없는 사람들 속에

등대며 살고 싶다

 

등꽃나무 아래서 시를 읽는 1人/등나무꽃자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등꽃나무 아래서 시를 읽는 1人/등나무꽃자수/구역모임zoom

3년 전부터 정발산 뒤 뜰 등나무 벤치가 제 서재겸 詩 모임 장소였어요 . 등꽃이 한창 피면 호박벌이 윙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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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권순갑

왼쪽 길 오른쪽 길

어느 길이 바르던가

 

모습은 비슷하나 본성이 서로 다른

칡 갈葛字 등나무 등藤字 꼬인 저 운명

오른쪽 감아올려 돌아가는 칡이나

왼쪽으로 에워싸는 고집통 등나무나

만나면 뒤엉키면서 제 신세를 옥죄는

비비고 쓸어안고 사랑해선 안 될 사이

하지만 뒤엉켜도 배려하는 삶도 있네

억만 겁 세월 갔어도 어지러운 저 속내들

 

이외에도 등나무(강혜림, 서연정, 김은결), 등나무 꽃(문지숙), 등나무 아래(조덕섭), 등나무 아래 서면(홍해리), 등나무 꽃그늘 아래서(정연숙), 등꽃 아래서(이해인) 등의 시가 있더군요. 이처럼 등나무를 노래한 시가 제법 많습니다. 등나무가  그만큼 친숙한 대상으로 가까운 주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혹시 인간관계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에 있는 등나무 그늘을 찾아서 벤치에 앉아 등나무 꽃말(환영, 사랑에 취하다)을 서로가 공유하고 상대와 사랑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