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내용은 아래 주소에 있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terms.naver.com/entry.nhn?docId=2271519&cid=51213&categoryId=51213
▣ 한자의 기원
4대 문명에 속하는 나라들은 일찍이 자기만의 문자를 만들었다. 이집트는 신성문자가 있고 고대 바빌로니아인은 설형문자를 썼으며, 고대 인도에서는 팔라와문자와 카로슈티문자를 만들었다. 고대 중국의 문자는 한자이다. 오래된 문자 중 한자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 사용된다. 한자는 각각이 한 폭의 그림과 흡사하며, 중국민족의 지혜와 문화를 담고 있다. 중국 문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중국민족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복희(伏羲)가 팔괘(八卦)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팔괘에서 한자가 생겨났다. 가령, 감(坎)인 ‘’는 세로로 쓰면 “”水자가 되고, 이(离)괘인 ‘’는 세로로 쓰면 ‘’火자가 되고, 곤(坤)괘인 ‘’는 세로로 쓰면 ‘’川자가 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창힐(倉頡)이 만물의 형태를 자세하게 관찰하여 동물의 발자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에 착상하여 문자를 만들고 자형에 근거하여 의미를 구별하였다고 한다.
전설마다 그 내용이 다른데, 그렇다면 한자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출토된 고고학적 실물자료를 볼 때, 지금부터 7,000~8,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초기 문화유적지에서 새김부호가 나왔는데, 이들은 도기나 거북딱지에 새겨져 있다. 후에 또 옥기에 새겨진 것이 있는데, 이들은 구체적인 도형이나 추상적인 기호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 자료에 나타나는 새김부호는 한자의 맹아형태를 갖고 있다.
▣ 한자 자형의 변화
체계적인 한자로 현존하는 최초의 것은 3,000여년 전 상(商)나라 때(B.C.1,600~B.C.1,046)의 갑골문이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신비한 힘이 자연과 사람의 일을 주재하기 때문에 제사나 전쟁, 사냥, 농사, 결혼 등은 먼저 점을 통해 일의 길흉화복을 알아보았다. 갑골문은 바로 거북의 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한자인데, 이를 통해 고대에 점을 쳤던 내용과 결과를 기록하였다.
갑골문은 상나라 후기의 수도인 은허(殷墟)에 매장된 것이다. 1899년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학자가 병이 났을 때 용의 뼈라고 알려진 약재를 사왔다가 그곳에 새겨진 부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 부호가 고대문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갑골문은 이렇게 우연히 발굴되었다. 왕의영은 이 때문에 갑골문의 아버지라 불리며, 갑골문이 출토된 하남성(河南省) 안양(安陽)의 소둔(小屯) 지역은 ‘은허’라고 명명된 세계 인류문화의 유적지가 되었다.
갑골문은 여러 상황에 대해 중국 상나라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가령, “癸卯卜, 今日雨, 其自東來雨?”라는 복사의 뜻은 “계묘일에 점을 칩니다. 오늘 비가 옵니까? 대체로 동쪽부터 비가 내릴 것 같습니까?”이다.
또 가령, “甲子卜, 殼貞, 王疾齒佳(唯)易?”이라는 복사의 뜻은 “갑자일에 점을 칩니다. 殼이라는 점치는 사람이 묻습니다. 왕의 치통은 회복이 되겠습니까?”이다.
갑골문에 기록된 점과 사건의 내용은 당시의 천문, 역법, 기상, 지리, 국가, 가족, 임무, 관직, 정벌, 형벌, 농업, 목축, 사냥, 교통, 종교, 제사, 질병, 양육, 재난 등인데, 이는 진귀한 역사와 문화, 언어문자의 자료이다.
칼을 이용하여 거북딱지나 소, 양의 뼈에 새긴 문자는 선이 가늘고 예리하며 상형의 정도가 높다. 아래에서 갑골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갑골문과 동시에 출현한 한자 자형을 금문(金文)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것이 청동기에 주조된 것이고 동(銅)이 금속이기 때문이다. 금문은 주로 상나라와 주(周)나라 때(B.C.1600~B.C.256)의 것이다. 청동기에는 삶는 그릇, 음식을 담는 그릇, 술그릇, 물그릇, 악기, 무기, 수레나 마차에 쓰는 도구, 공구, 도량형 도구, 잡기 등 여러 가지 기물이 있는데, 여기에 모두 한자를 주조해 넣을 수 있었다.
초기 금문의 상형 정도는 높다. 대다수는 민족 휘장이나 제사의 대상이 되는 선조의 호칭이다.
아래의 초기 금문을 살펴보면, 상형성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주시대 중·후기부터 금문의 자형은 선이 분명해지고 직선화되었다.
전국시기(B.C.476~B.C.256)에는 청동기 외에 도기, 석기, 도장, 화폐, 죽간이나 비단 등의 다른 재료에도 한자가 출현하였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제(齊), 초(楚), 연(燕), 한(漢), 조(趙), 위(魏) 등의 여섯 나라 문자와 진나라 문자가 달랐기 때문에 진시황은 “서동문(書同文)” 정책을 실행하였다. 승상이었던 이사(李斯)는 진나라 계통의 문자를 정리하여 표준자체인 소전(小篆)을 반포하였다. 소전은 고른 타원형이다. ‘전(篆)’의 뜻은 관청에서 사용한다는 것인데, 새겨 쓸 수 있고 선이 원만한 자형이다.
갑골문, 금문, 전국문자, 소전은 모두 고문자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이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고문자를 알아보기 매우 어렵다.
소전과 동시대의 문자로 예서(隸書)도 있다. ‘예(隸)’는 노예를 가리키는데, 노역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노예가 관청에서 문서를 쓸 때 소전의 필획과 구조를 개조하여 글을 쓰는 속도를 빠르게 하였다. 이 자형이 바로 ‘예서’이다. 진(秦)나라(B.C.221~B.C.206)의 예서는 진예(秦隸)라고 부른다.
한나라(B.C.206~220)의 예서는 한예(漢隸)라고 부르는데, 진예에 비하여 발전한 자형이다.
예서는 한자 발전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인데, 이 한자로부터 네모난 형태로 변하고 필획도 체계적이 되어 고문자가 갖고 있던 그림의 성격이 소실되었다.
예서 이후 한위(漢魏, 206~265) 시대에 해서(楷書)가 생겨났다. ‘해(楷)’는 모범, 표준이라는 뜻이다. 예서와 비교할 때, 해서는 전체 윤곽이 납작한 사각형 모양에서 장방형 모양으로 변하였고 필획도 굴곡을 없앴다.
해서가 만들어진 후, 한편으로는 정부와 과거제도 등을 통한 문자규범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자형이 변하는 현상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서가 사용되고 있다. 한자는 갑골문, 금문, 전국문자, 소전, 예서, 해서 등 다른 자형의 변화 단계를 거쳐 점차 현재에 이른 것이다.
*甲骨文字 갑골문자 : 귀갑과 짐승의 뼈에 새긴 중국(中國) 고대(古代)의 상형 문자(文字). 중국(中國) 문자(文字)의 시초(始初)이며 점복(占卜)의 기록(記錄)을 새긴 것으로 하남성(河南省)의 은허(殷墟)에서 많이 발견(發見)되었음
*金文 금문 : 옛날의 동기(銅器) 같은 금속(金屬)에 새겨진 명문(銘文)
*小篆 소전 : 한자(漢字)의 팔체서(八體書)의 하나. 중국(中國) 진 시황(秦始皇) 때, 이사(李斯)가 대전(大篆)을 간략(簡略)하게 변형(變形)하여 만든 글씨체임
*隸書 예서 : 한자(漢字) 서체(書體)의 하나. 전서(篆書)의 번잡(煩雜)함을 생략(省略)하여 만들었음. 노예와 같이 천한 일을 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도록 한 글씨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
*楷書 해서 : 한자(漢字) 서체(書體)의 하나. 예서(隸書)에서 변한 것으로 자형이 가장 방정한 것
'한자(漢字) > 한자,한문 입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못 쓰이고 있는 사자성어(예) (0) | 2020.06.17 |
---|---|
한자의 필순 (0) | 2020.06.15 |
한자의 구성원리:육서(요약) (0) | 2020.06.15 |
한자의 구성원리: 육서(六書) (0) | 2020.06.15 |
한자의 3요소와 변천 (0) | 202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