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歌

술(酒)을 부르는 시(詩)

efootprint 2020. 8. 17. 00:03

서울 막걸리/ 정연복


홀로 마시는 /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막걸리/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산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 막걸리 한잔(노래 rkdwls: 강진-막걸리 한잔 - YouTube

영탁:  영탁 ‘막걸리 한잔’♭ 모두 막걸리 열풍! 일.동.원.샷 [내일은 미스터트롯] 4회 20200123 - YouTube

 

 

술 마시기 좋은 밤/신현림

 

햇빛에 내어 말린 고급 속내의만큼

랑도 우정도 바래더라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인가

속이 텅 비면 견디지 못해 마시는

술과 음악은 세월을 썩게 하는 정겨운 습기가

겨울비 내리는 밤 빌리 홀리데이와

바하보다 절실한[혼자만의 사랑] 열 한번

[백학] 일곱 번 갈아 들으며

마음의 지붕인 쓸쓸함을 위하여

홀로 건배하는데 창밖 깊은 연못에서

거북이가 솟아올라

맥주 한 상자 밀고 방으로 기어오더라

 

 

술/ 박희진

 

불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물이 곧 술이니라.
그래서 마시면 가슴이 타느니라.
물은 없어지고 불만 남느니라.
그 불 속에서 푸드득 한 마리 새가 날아가야
불은 꺼지고 아침이 되느니라.

 

(By sk) 술+불 ->수울 ->술

 

 

술 마시는 남자/ 장석주

 

다치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술을 마시네
술 취해 목소리는 공허하게 부풀어오르고
그들은 과장되게/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거나/ 욕을 하네
욕은 마음 빈곳에 고인 고름,/ 썩어가는 환부,
보이지 않는 상처 한 군데쯤 가졌을/ 그들 마음에 따뜻한 위안이었으면 좋겠네
취해서 누군가를 향해 맹렬히 욕을 하는 그대,/ 취해서 충분히 인간적인 그대,/ 그대는 날개 없는 천사인가
그들 마음의 갈피에 숨어 있던 죄의 씨앗들/ 밖으로 터져나와/ 마음 한없이 가볍네
그 마음 눈 온 날 신새벽 아직 발자국 찍히지 않은 풍경이네
술 깬 아침이면/ 벌써 후회하기 시작하네
그렇다 할지라도/ 욕할 수 있었던/ 간밤의 자유는 얼마나 행복했던 것이냐

 

 

내가 술을 마시는 건/ 강태민

 

내가 술을 마시는 건/ 꼭 취하고 싶어

마시는 술 아니다.

 

허무한 세상/ 땀 흘려 얻은 울분을

허기진 뱃가죽 공복에 씻어내려고/ 마시는 술만도 아니다.

 

남자의 고독을 술 한잔에 섞었다/ 말하지 말아라.

나 홀로 술 잔 기울인다고/ 술꾼이라 말하지도 말아라.

내 빈 술잔에/ 아무도, 무엇 따르는 이 없는 걸/ 너희가 아느냐.

내가 말없이 술잔 비우는 건/ 윤회를 꿈꾸는 세월에 주먹을 치며 / 나를 달래는 일이다.

내 가슴 일부를 / 누구 스친바 없는 시간에 / 미리 섞는 일이다.

허기진 공복에 잔을 씻고 씻으며/ 미지의 시간을 위로해주려는

그런 마음이란 말이다.

 

 

 

저녁 술/ 이상국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 저녁 군산
간판등이 흐린 국밥집에 들어서니
허름한 사내가 주인과 말다툼을 한다
그는 전화를 좀 쓰자고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주인은 나가서 하란다
그러다가 사내가 대뜸 내 휴대폰을 빌려달라는데
그깟 전화 한 통화 때문에
따따부따 하기 싫어 얼른 주었다
부인에겐 듯 그는
오늘 간조는 못 봤는데
저녁은 먹고 들어간다고
언제 술 마셨나는 듯
멀쩡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고는
다시 취한 얼굴이 되어 내게 술을 권한다
전화비도 없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니까
화가 나 괜히 그래봤다는 그 사람과
미안하다는 주인여자와
군산에서 저녁 술을 마셨습니다

 

 

나의 노래/ 이상국

 

우리 어머니

처녓적 자시던 약술에 인이 박여

평생 술을 자셨는데

긴 여름날 밭일하시면서

산그늘 샘물에 술을 담가놓았다가 드실 때면

나도 덩달아 마시고는 했지요

그리고 어린 나는 솔밭에서

하늘과 꽃과 놀며 소를 먹이고

어머니는 밭고랑에서 내 모르는 소리를 저물도록 했지요

 

지금 내 노래의 대부분은

그 흙 묻은 어머니의 소릿가락에 닿아 있지요

 

 

/ 정연복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글씨가 보였다

 

 

 

한때 나는 술을 마셨으나/ 유하

술 한잔의 시여
밤 하늘이 문득 낮아져 나는
별의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바람이 낳은 늑대의 푸른 갈기와
온갖 열매들이 간직한 우주를 노래한다
가끔은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의 울타리 밖으로
나를 훌쩍 던져버리는 이 따뜻한 취기
은하수에 사는 애인아
나이 먹는 일이 슬프지만은 않구나
술처럼 익어가는 내 눈동자는
아련히 감지한다 진홍빛 술에 담긴
마법의 세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포도나무, 분주한 꿀벌들
지상의 언어들을 다 읽고 돌아온 바람과
그 바람들에 즐겁게 마음을 내주는 포도알들
햇살의 지혜로 이루어진 수액과
생명의 폭포인 수액의 움직임,
한때 나는 술을 마셨으나
이젠 술의 처음을 마신다
한잔의 술이 떠나온 그 모든 삶의 풍경들을.
따뜻한 취기가 데려다준 이 마법의 세상은
바로 그곳으로부터 왔다.

 

 

술과의 화해/ 강연호

 

나는 요즘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나는 한때
어떤 적의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크기 위해 부지런히
싸울 상대를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때는 애인조차 원수 삼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원수 삼던 세상의 졸렬한 인간들이 우스워지고
더러 측은해지기도 하면서
나는 화해했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크고 싶었으므로
대신 술이라도 원수 삼기로 했었다
요컨대 애들은 싸워야 큰다니까

 

내가 이를 갈면서
원수의 술을 마시고 씹고 토해내는 동안
세상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었고
책들은 늘어나거나 불태워졌으며
머리는 텅 비고 시는 시시해지고
어느 볼장 다 본,
고요하고 섬세한 새벽
나는 결국 술과도 화해해야 했다
이제는 더 크고 싶지 않은 나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득도한 것일까
화해, 나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변하지만
비겁한 타협이라고 굴복이라고
개량주의라고 몰아 붙여도 할 수 없다
확실히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생애는 쓸쓸히 시들어간다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소주 한잔(노래 임창정: 임창정 - 소주한잔 (030608 SBS인기가요 레알 고화질) - YouTube

 

 

 

 

장진주사/정철

 

한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해 흰 달 가는비 굵은눈 소소리바람 불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떠리.

일찍이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순오지)에서 (장진주사)는 이백.이하(李賀). 두보의 것을 모방하고 시구도 취하여 지었으나 '글의 뜻이 통달하고 글귀가 처완하다' 고 평한 바 있다. 동서고금 '술 권하는 노래'야 오죽 많은가. 송강의 (장진주사)에서 더한 풍류적인 멋을 느낀다. 우리말을 콩고물 주무르둣한 노래요, 당시의 벼슬아치'양반들의 권위주의적 체통같은 것도 깡그리 벗어던지 노래다.

송강은 이 (장진주사)를 그의 생애 중 어느 때에 지었을까. 밝혀진 기록은 없다.

- 출처:최승범 의 시조로 본 풍류 247경 중에서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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