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신미균(1955~)
꽃 청춘 이모티콘/ 신미균
멋대로 살겠다고
집 나갔던 언니가 모처럼 들어 왔습니다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망치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시작합니다.
옛날에는 엄마의 가슴이 석고처럼 부드러워서
못이 쑥쑥 잘 들어갔는데 이제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나봅니다.
못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못대가리에서 불꽃이 튀기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니가 못을 박다 자기 손을 내리쳤나 봅니다. 아프다고 펄펄 뛰는 소리도 들립니다.
엄마의 가슴에 바람이 부딪히나 봅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립니다.
잠시 후, 전기드릴 소리가 들립니다.
망치로 안 되니까 더 강력한 걸 가져왔나 봅니다.
전기드릴의 회전소리에 집이 흔들립니다.
참지 못한 내가 전원 스위치를 내립니다.
갑자기, 나를 발견한 엄마와 언니가 달려들어
대못 나사못 콘크리트못 닥치는 대로 나에게 박아대기 시작합니다.
내 가슴은 합판처럼 얇아서 각종 못이 쉽게 잘 박힙니다.
엄마와 언니는 있는 대로 못을 다 박더니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얇은 합판에 박힌 못은 손으로도 뺄 수 있습니다.
내일 아침 엄마는 빨간약 언니는 반창고를 들고 몰래 오다가
내 방 앞에서 마주칠게 뻔합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서 웃음이 실실 새어나옵니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가족들에게 흔히 있는 일들을 적은 시. 하지만 성장 시다.
못은 ‘아픔’이다. 가족끼리 서로 아픈 곳을 쑤셔대고 있다. 아픈 곳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가족이니까 언니가 어머니에게 몹쓸 말로 가슴에 못을 박는다. 어머니의 가슴은 멍이 들고 또 들어있다. 아예 콘크리트화 되었는지 언니가 고약한 말을 해도 그 말로 상처받기보다 오히려 튕겨 나간다. 언니에게 다시 되돌아간 못된 말들이 언니를 다치게 한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망치질 한 셈이 되었다.
이젠 언니는 못과 망치를 들고 어머니를 공격한다. “엄마가 해 준 게 뭐가 있어. 날 예쁘게 낳아주길 했어. 부자로 호강시켜 주길 했어?” 망치질 당한 엄마의 가슴에 바람이 송송 들어간다. 그래도 안되니까 언니는 드릴로 엄마의 가슴을 들이친다. “죽어버리겠다. 내 혼자 사라지면 되는거지 뭐.”하며 소리친 것이다.
듣다 못한 내가 전원 스윗치를 빼버렸더니 모든 공격이 나한테 집중된다. “취직도 못한 게 밥 축낸다.” “니가 하는 게 뭐가 있냐”등 아픈 곳을 더 찌른다.
방 안에서 꼼짝 않고 있으면 엄마와 언니가 흥분해서 찌르던 말들로 다친 내가 안쓰러워진다. 아픈 만큼 엄마와 언니도 같이 아프기에 치료해주러 온다. ‘미안하다’고.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라’고 몇 번이나 용서를 구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있는 가정이란 험한 사회에 나가서 당할 일에 면역을 키워주는 작은 사회다. 미리 맷집을 키워준다고 보면 된다. 약점을, 트라우마를, 견디는 힘을 키워 주는 곳. 못과 망치와 드릴에 대항하게 하는 힘을 미리 전수 받게 하는 곳, 꽃 청춘 이모티콘을 달아 주는 곳이다. 그래서 강해지게 하는 곳이라 위로 삼기. 대신 상대방의 아프게 한 곳도 알고 있으니 다독여 주는 일도 터득하면 참 좋을 터.
마음대로 말 할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쓰담쓰담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있으니 참 좋은 곳. 없는 사람은 너무나 부러워하는 못질도 있다는 걸 명심하시길. 어디에 가장 가고 싶어? 가족이 있는 내 집. <수필가 박모니카>
가시와 장미/김승희(1952~)
눈먼 손으로/ 나의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네.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이 잊을 수가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 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Million Alyh Roz(노래, Alla Pugatchevaz) ; blog.naver.com/philo515/221961460298
The Story of a Million Roses: www.youtube.com/watch?v=ZS64OA5QxsI
백만송이 장미(노래, 심수봉): www.youtube.com/watch?v=Fc5n6qs3tp0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나는 문득 '덤덤하게 살자'는 마음을 품는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조금만 섭섭한 듯 살고, 이별이라도 영 이별이라 하지 말고 죽어서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거든 만나기로 하는 이별로 살아가자. 연꽃을 만나러 가느라 가슴 쿵쾅거리는 바람이 아니라 이미 만난 바람처럼 덤덤하게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돌아가서 아직 그 마음이 덜 씻겨진 바람이 아니라 한두 해쯤 전에 그렇게 진즉에 이별한 바람처럼 덤덤하게... (펀글)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이채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잎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나이가 들면서/ 좋은 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함이지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벗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지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살아 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고,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아마도 삥 하고,돌아버릴 거래요.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면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보세요.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한눈 팔아도 된다 – 유안진
선생님, 색칠이 자꾸 금 밖으로 가요
괜찮다,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러겠냐
뻥튀기 구경하다 지각했어요
괜찮다, 지금 한눈팔지 않으면 언제 그러겠냐
길가의 강아지풀 꼬리가 패였는지
개미와 송장메뚜기를 구경해도 된다
낮달과 구름을 쳐다봐도 된다
소나기에 흠뻑 젖어 와도 된다
쇠똥구리네 집이 쇠똥인지 땅 구멍인지
놀며 구경하다가 와도 된다
어디나 언제나 학교이고 공부시간
누구나 무엇이나 선생님이란다
때로는 길 밖에서 더 잘 자랄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럴 시간 있겠느냐.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tvN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중에서 tv.naver.com/v/2285306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삐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 |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매주 월화 밤 9시 30분 tvN 방송 연출: 박준화 / 극본: 윤난중 출연: 이민기, 정소민, 이솜, 박병은, 김가은, 김민석
t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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