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心寶鑑/명심보감(직)

24.廉義篇(염의편)

efootprint 2020. 11. 15. 13:31

이 편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도 청렴하고 의로운 삶을 꿋꿋하게 영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솜장사 인관(印觀)과 솜 구매자 서조(署調) 사이의 욕심 없는 삶, 솥 속의 돈 일곱 냥을 놓고 홍기섭(洪耆燮)과 도둑이 벌이는 실랑이, 그리고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 온갖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바보 온달(溫達)에게 시집간 설화를 통해 청렴하고 의로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1.1] 印觀(인관)이 賣綿於市(매면어시)할새 有署調者(유서조자)가 以穀買之而還(이곡매지이환)이러니 有鳶(유연)이 攫其綿(확기면)하여 墮印觀家(타인관가)어늘 印觀(인관)이 歸于署調曰(귀우서조왈) 鳶墮汝綿於吾家(연타여면어오가)라 (고)로 還汝(환여)하노라

인관(印觀)이 시장(市)에서(於) 솜(綿)을 팔(賣)고 있을 때 서조(署調)라는 자(者)가 있어서(有) 곡식(穀)으로써(以) 솜 그것(之)을 사서(買) 돌아갔는데(歸) 소리개(鳶)가 있어(有) 그(其) 솜(綿)을 움켜 채서(攫) 도리어 인관(印觀)의 집(家)에 떨어뜨리거늘(墮). 인관(印觀)이 서조(署調)에게(于) 돌려보내고(歸) 말하기를(曰), "소리개(鳶)가 너(汝)의 솜(綿)을 내집(吾家)에 떨어뜨렸음(墮)이라. 그런고(故)로 너(汝)에게 그 솜을 돌려보내노라(還)."

○ 印觀(인관)과 署調(서조) : 신라 때 사람이다.

○ 有署調者(유서조자) : 여기서 有는 해석되지 않는 조자(助字)이다.

○ 有鳶(유연) : 여기서 有는 ‘어떤’으로 해석해봄직한 조자(助字)이다.

○ 墮(타) : 떨어지다. 墜(추)와 비슷한 글자이므로 기억해 둘만하다.

 

[1.2] 暑調曰(서조왈) 鳶攫綿與汝(연확면여여)는 天也(천야)라 吾何爲受(오하위수)오 印觀曰(인관왈) 然則還汝穀(연즉환여곡)하리라 署調曰(서조왈) 吾與汝者市二日(오여여자시이일)이니 穀已屬汝矣(곡이속여의)하고 二人(이인)이 相讓(상양)이라가 幷棄於市(병기어시)하니 掌市官(장시관)이 以聞王(이문왕)하여 竝賜爵(병사작)하니라.

서조(署調)가 말하기를(曰), "소리개(鳶)가 솜(綿)을 채서(攫) 이미 너(汝)에게 준(與) 것은 하늘의 뜻(天)이라. 내가(吾) 어찌하여(何爲) 되돌려 받으리오(受)?" 인관(印觀)이 말하기를(曰), "그러면(然) 곧(則) 너(汝)의 곡식(穀)을 돌려보내리라(還)." 서조(署調)가 말하기를(曰), "내(吾)가 너(汝)에게 준(與)지가 두 장날(市二日)이 지났으니 곡식(穀)은 이미(已) 너(汝)에게 속함(屬) 것이다." 하고 두 사람(二人)이 서로(相) 사양(讓)하다가 다 함께(幷) 시장(市)에(於) 버리니(棄). 시장(市)을 맡은(掌) 관원(官)이 이로써(以) 왕(王)께 아뢰어서(聞) 둘 다(竝) 벼슬(爵)을 주었느니라(賜).

○ 吾何受爲(오하수위) : 어떤 통행본에 ‘吾何爲受’로 되어 있는데, 무방하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爲가 何에 걸려 ‘무엇 때문에’, ‘어찌’의 의미를 나타낸다.

○ 屬(속) : 귀속(歸屬)의 의미로 보는 것이 뜻을 분명하게 해준다.

○ 掌(장) : 손바닥 ‘장’. 맡다. 주관한다.

○ 以聞王(이문왕) : 여기서 以는 以此이므로 ‘이것(이 소식)을 왕에게 들려주다(아뢰다)’ 의 뜻이다.

 

[출전] 三國史節要(삼국사절요)에 이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三國史節要(삼국사절요) : 노사신(盧思愼),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명을 받아 성종 7(1476)년에 편찬한 단군조선으로부터 삼국의 멸망까지를 다룬 편년체의 역사서이다

[해설] 솜장사 인관(印觀)과 그에게서 솜을 산 서조(署調) 사이의 욕심 없는 삶과 거기에 대해 보답 받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2.11 洪公夔燮(홍공기섭)이 少貧甚無聊(소빈심무료)러니 一日朝(일일조)에 婢兒踊躍(비아용약)하고 獻七兩錢(헌칠양전)하며 (왈) 此在鼎中(차재정중)하니 米可數石(미가수석)이요 柴可數駄(시가수태)니 天賜天賜(천사천사)니다 (공)이 驚曰(경왈) 是何金(시하금)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즉서실금인추거등자)하여 付之門楣而待(부지문미이대)러니

홍기섭(洪夔燮)이 젊어서(少) 가난(貧)이 심하여(甚) 헤아릴(料) 수 없더니(無) 한 날(一日) 아침(早)에 계집종(婢) 아이(兒)가 좋아서 뛰면서(踊躍) 일곱 냥(七兩)의 돈(錢)을 바치며(獻) 말하기를(曰), 이것이(此) 솥(鼎) 안(中)에 있으니(在). 쌀(米)이 가(可)히 두어(數) 섬(石)이요, 땔나무(柴)가, 가(可)히 몇(數) 바리(馱)이니. 하늘(天)이 주심(賜)이니다. 공(公)이 놀라(驚) 말하기를(曰), "이것이(是) 어찌된(何) 돈(金)인고?"하고 곧(卽) "돈(金) 잃은(失) 사람(人)은 찾아 가라(推去)" 는 등(等)의 글자(字)를 써서(書) 대문(門) 인중방(楣)에 붙이고(付) 기다렸더니(待).

○ 洪公耆燮(홍공기섭) : 姓과 이름 사이에 존칭을 넣은 것이다. 때로는 성과 이름 사이에 관직명이나 사회적 지위를 넣기도 한다. 홍기섭은 조선 순조(純祖) 때의 사람으로, 남양(南陽) 홍씨(洪氏)이다.

○ 無聊(무료) :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원문에는 ‘無料’로 되어 있으나 뜻이 분명치 않아 통행본을 따랐다. 聊는 애오라지 ‘료’.

○ 踊躍(용약) : 좋아서 뜀.

○ 米可數石(미가수석) : 여기서 ‘可’는 가능을 나타내므로 ‘쌀로 치면 여러 석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 柴可數駄(시가수태) : 여기서의 ‘可’도 마찬가지로 가능을 나타내므로 ‘땔나무를 몇 바리를 살 수 있다’의 의미이다. 駄(실을 ‘태’)는 말이나 짐승의 등에 싣는 짐의 단위인데, 그 俗字는 馱이다. 柴는 땔나무 ‘시’.

○ 推去(추거) : ‘찾아가다’의 의미이다.

○ 等(등) : 무리(복수)를 나타낸다.

○ 付之門楣(부지문미) : 대문에 붙여 놓다. 술어(付)+목적어(之, 지시대명사)+보어(門楣)의 관계로 되어 있다. 楣는 문미 ‘미’. 문미(창문 위에 가로로 댄 나무)

 

[2.2] 俄而姓劉者來問書意(아이성유자래문서의)어늘 (공)이 悉言之(공실언지)한대 (유)가 (왈) 理無失金於人之鼎內(이무실금어인지정내)하니 果天賜也(과천사야)라 盍取之(합취지)닛고 (공)이 (왈) 非語物(비어물)에 (하)오 (유)가 府伏曰(부복왈) 小的(소적)이 昨夜(작야)에 爲窃鼎來(위절정래)라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환연가세소조이시지)러니 今感公之廉价(금감공지염개)하고 良心自發(양심자발)하여 誓不更盜(서불갱도)하고 願欲常待(원욕상대)하나니 勿慮取之(물려취지)하소서

얼마 있다가(俄) 성(姓)이 유(劉)라는 자(者)가 와서(來) 글(書) 뜻(意)을 묻거늘(問). 공(公)이 모두 다(悉) 말(言)하니. 유(劉)가 말하기를(曰), "남(人)의 솥(鼎) 안(內)에(於) 돈(金)을 잃을(失) 이치(理)가 없으니(無). 과연(果) 하늘(天)이 주심(賜)이라 어찌(盍) 취하지(取) 아니(盍)하닛고?." 공(公)이 말하기를(曰), "나의(吾) 물건(物)이 아닌데(非) 어찌 하리요(何)." 유(劉)가 굽혀(俯) 엎드려(伏) 말하기를(曰). "소인(小的)이 어젯밤(昨夜)에 솥(鼎)을 도둑질(竊) 하러(爲) 왔다가(來) 도리어(還) 가세(家勢)가 쓸쓸함(蕭條)을 연민(憐)하여 두었더니(施), 지금(今) 공(公)의 청렴(廉)하고 결백(价)함에 감동(感)하고, 착한(良) 마음(心)이 스스로(自) 일어나서(發) 다시(更)는 도둑질(盜)을 아니할(不) 것을 맹세(誓)하고, 원컨대(願) 항상(常) 모시 고져(欲侍) 하나니 염려(慮) 말고(勿) 취하소서(取)."

○ 悉(실) : 다 ‘실’. 모두, 남김없이.

○ 理無失金於人之鼎內(이무실금어인지정내) : 여기서 理는 ‘이치로 볼 때’, ‘이치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 盍取之(합취지) : 여기서 ‘盍(덮을 ‘합’)은 ‘何不(어찌 아니하다)’이고, ‘之’는 지시대명사로 錢을 가리킨다.

○ 俯伏(부복) : 고개 숙이고 엎드림. 俯는 구부릴 ‘부’.

○ 小的(소적) : 소저(小底)의 音이 전화(轉化)된 것으로, 소아(小兒)나 노비가 주인에 대하여, 평민이 관부(官府)에 대해 일컫는 말로,‘저’, ‘소인’ 정도의 낮추는 말이고, 적(的)은 조사로서 관례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 爲窃鼎來(위절정래) : 여기서 ‘爲’는 去聲으로 ‘위하여’의 의미이다. 다음의 ‘還’은 ‘도리어’로 해석하면 좋다.

○ 蕭條(소조) : 분위기가 매우 쓸쓸함.

○ 良心自發(양심자발) : ‘良心’은 《맹자》 〈告子章句(고자장구( 上〉 8장에 언급되는 말로 ‘인간 본연의 착한 마음’이다.

 

[2.3] (공)이 卽還金曰(즉환금왈) 汝之爲良則善矣(여지위량즉선의)나 金不可取(금불가취)라 하고 終不受(종불수)러라 (후)에 公(공)이 爲判書(위판서)하고 其子在龍(기자재룡)이 爲憲宗國舅(위헌종국구)하며 劉亦見信(유역견신)하여 身家大昌(신가대창)하니라.

공(公)이 곧(卽) 돈(金)을 돌려주며(還) 말하기를(曰), "네가(汝) 착하게(良) 된(爲) 즉(則) 좋으나(善) 돈(金)은 취함(取)이 가하지(可) 않다(不)."하고 끝내(終) 받지(受) 않더라(不). 뒤(後)에 공(公)이 판서(判書)가 되고(爲) 그(其)의 아들(子) 재룡(在龍)이 헌종(憲宗)의 국구(國舅)가 되며(爲), 유(劉)도 또(亦)한 믿음(信)을 보여서(見)서 몸(身)과 집(家)이 크게(大) 번창(昌)하니라.

○ 汝之爲良則善矣(여지위량즉선의) : 여기서 ‘之’는 주격이고, ‘爲良’은 ‘착하게 되다’로 해석하는 것이 좋고, 矣는 추측형, 미래형 종결사로 약한 단정을 나타낸다.

○ 其子在龍(기자재룡) : 홍기섭(洪耆燮)의 아들 재룡(在龍)으로 헌종(憲宗)의 장인(丈人)이다. 그의 자(字)는 경천(景天)으로 익풍부원군(益豐府院君)에 봉(封)해졌다.

○ 國舅(국구) : 임금의 장인. 舅는 장인 ‘구’.

○ 見信(견신) : 신임을 얻다. 여기서 ‘見’은 동작을 ‘받다’, ‘당하다’의 의미이다.

 

[출전] 《大東奇聞(대동기문)》 卷之四 헌종조(憲宗朝) 〈홍기섭인유군자견뢰(洪耆燮因劉君子見賴)〉에도 보인다.

[해설] 이 글도 청렴한 선비 홍기섭(洪耆燮)과 유가(劉哥)라는 양심 있는 도둑 사이에 벌어진 선행(善行)이 나중에 보답받는 과정을 엮은 것인데, 《周易(주역)》의 “積善之家(적선지가)에 必有餘慶(필유여경) : 선을 쌓는 집에는 경사(慶事)가 있다”라는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3.1] 高句麗平原王之女(고구려평원왕지녀)는 幼時(유시)에 好啼(호제)러니 (왕)이 戱曰(희왈) 以汝(이여)로 將歸愚溫達(장귀우온달)하리라 及長(급장)에 欲下嫁于上部高氏(욕하가우상부고씨)한대 女以王不可食言(여이왕불가식언)으로 固辭(고사)하고 終爲溫達之妻(종위온달지처)하니라

고구려 평원왕(高句麗 平原王)의 딸(女)이 어렸을(幼) 때(時)에 울기(啼)를 좋아하더니(好) 왕(王)이 희롱하여(戱) 말하기를(曰), "너(汝)로써(以) 장차(將) 어리석은(愚) 온달(溫達)에게 시집보내리라(歸)." 자라매(長) 미쳐(及)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于) 시집보내 고저(欲下嫁)한대 딸(女)이 왕(王)으로써(以) 식언(食言)함은 가하지 않다(不可)고 굳게(固) 사양(辭)하고 마침내(終) 온달(溫達)의 처(妻)가 되었다(爲).

平原王(평원왕) : 고구려 제25대 왕(在位期間: 559~590)이다.

○ 啼(제) : 울 ‘제’. 울다.

○ 歸(귀) : ‘돌아가다’, ‘시집가다’의 의미로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이다.

○ 溫達(온달) : 고구려 평원왕 때의 장군으로 북주(北周) 무제(武帝)의 군사를 쳐서 공(功)을 세워 대형(大兄)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 下嫁(하가) : 신하에게 낮추어 시집가는 것을 말한다.

○ 上部(상부) : ‘上部’는 고구려 왕권(王權) 신장책(伸張策)의 하나로 두었던 오부[五部(上(東),西,南,北,中)]의 하나이다.

○ 女以王不可食言(여이왕불가식언) : 여기서 ‘以’는‘以爲’의 의미 곧 謂(말하다, 생각하다)와 같다.

○ 食言(식언) :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

○ 固辭(고사) : 굳이 사양함.

 

[3.2] 蓋溫達(개온달)이 家貧(가빈)하여 行乞養母(행걸양모)러니 時人(시인)이 目爲愚溫達也(목위우온달야)러라 一日(일일)은 溫達(온달)이 自山中(자산중)으로 負楡皮而來(부유피이래)하니 王女訪見曰(왕녀방견왈) 吾乃子之匹也(오내자지필야)라하고 乃賣首飾而買田宅器物(내매수식이매전택기물)하여 頗富(파부)하고 多養馬以資溫達(다양마이자온달)하여 終爲顯榮(종위현영)하니라.

대개(蓋) 온달(溫達)이 집(嫁)이 가난하여(貧) 걸인(乞) 행각(行)으로 어머니(母)를 봉양(養)터니 그 때(時) 사람들(人)이 보고(目) 바보(愚) 온달(溫達)이라 하더라(爲). 하루(一日)는 온달(溫達)이 산중(山中)으로 부터(自) 느릎나무(楡) 껍질(皮)을 지고(負) 돌아오니(來) 왕(王)의 딸(女)이 찾아와(訪) 보고(見) 말하기를(曰), "나는(吾) 곧(乃) 그대(子)의 배필(匹)이라." 하고 이에(乃) 머리(首) 장식품(飾)등을 팔아(賣) 전답(田)과 집(家)과 기물(器物)을 사서(買) 자못(頗) 부(富)해지고 말(馬)을 많이(多) 길러(養) 써(以) 온달(溫達)을 도와(資) 마침내(終) 현영(顯榮)하게 되었느니라(爲).
○ 蓋(개) : 문맥이 바뀔 때 쓰는 어조사이나, 드물게 ‘아마’의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아마 ~였던 것 같다’로 해석해 볼 만하다.

○ 楡(유) : 느릅나무 ‘유’.

○ 吾乃子之匹也(오내자지필야) : 여기서 乃는 ‘곧’의 의미이고, 子는 2인칭 대명사이다.

○ 頗富(파부) : ‘자못 豊富하게 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頗는 자못 ‘파’

 

[출전] 《三國史記(삼국사기)》 卷第四十五 〈列傳 溫達(열전 온달)〉에 이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해설]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딸 평강공주(平康公主)와 이른바 바보 온달 사이의 혼인에 얽힌, 속물 근성을 떨쳐버린 소박한 삶이 종국에는 영달한다고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준다.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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