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9일(금), 맑음, 광명, 시흥 일원 문화역사 탐방
1. 어디어디 다녀왔나?
- 광명동굴, 기형도 문학관, 오리 이원익 묘지, 강희맹 묘지, 시흥 도요지, 시화호 제방
2. 어땠나?
- 동굴도 좋고, 이원익, 소현세자 빈의 내용 알아서 좋음. 그러나 사전 확인은 미흡하였음(예: 점심 식사 장소 등)
광명동굴 입구
오래 전, 광부들이 벽에 새겨놓은 삶의 절규, 잘 볼 수 있도록 먹물을 칠한 것 같다
와우! 사방이 별천지, 천천히 안으로 발을 옮긴다
이 곳에서 시간이 되면 동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동굴 내부의 각가지 모습
기형도 문학관
조선 중기 문신인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의 묘이다.
선조 2년(1569)에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임진왜란 때는 평양탈환 작전에 성공하여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대동법을 건의하여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시정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었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오막살이 초가에서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그의 묘는 부인과의 합장묘이며 봉분이 2기인 쌍분이다.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 등이 있고,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각 1쌍씩 서 있다.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는 묘역 아래 길가에 있는데, 비석 윗부분에는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다투는 모양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이준이 글을 짓고 허목이 글씨를 쓴 비문은 마모가 심해 내용을 알기 어렵다.
조선 제16대 인조의 큰아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비 민회빈강씨(愍懷嬪姜氏)의 묘소. 사적 제357호
문이 닫여 있어 보지 못함
조선 초기의 뛰어난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인 사숙제(私淑齊) 강희맹(1424∼1483) 선생의 묘이다.
세종 29년(144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중추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성종 13년(1482)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당대 으뜸이고 글·그림에도 뛰어났으며,『세조실록』,『예조실록』,『경국대전』,『동국여지승람』등의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금양잡록』,『사숙재집』,『존담해이』등이 있다.
묘는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독특한 모습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왼쪽 아래에는 성종 19년(1488)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서거정이 비문을 짓고 박증영이 글씨를 쓴 것이다.
세종 29년(144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중추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성종 13년(1482)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당대 으뜸이고 글·그림에도 뛰어났으며,『세조실록』,『예조실록』,『경국대전』,『동국여지승람』등의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금양잡록』,『사숙재집』,『존담해이』등이 있다.
묘는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독특한 모습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왼쪽 아래에는 성종 19년(1488)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서거정이 비문을 짓고 박증영이 글씨를 쓴 것이다.
시흥 도요
시화호 제방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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