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7일(목) 맑음 - 한국
이륙 후 7시간도 더 지났다. 지금 위치는 알라스카 상공. 날짜 변경선을 이미 지났다. 어렸을 때는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 밤이 갑자기 낮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남은 시간은 6시간 이상이다. 생각보다는 좀이 쑤시지 않는다. 처음 여행길이서일까? 다만 가래가 나오는 몸 상태와 방귀 참는 것이 조금은 불편할 따름이다. 어떻든 이렇게 드라마는 시작되고 있다.
아침 새벽 저절로 잠이 깨어 왔다. 5시 30분경,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5시가 넘으니 저절로 깨어 버린다. 부지런히 출발 준비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6시 20분, 남부 순환도로 대로 변에서 택시를 타고 삼성 공항역에 도착하니 6시 50분. 곧 리아의 아버지(현철)와 리아도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수속 절차를 마친 후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9시가 된다. 공항에는 이미 큰 이모, 작은 이모 부부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11시 조금 넘어 이륙, 그리고 지금 이륙 후 7시간이다.
인천공항에서
2008년 8월 7일(목) 맑음 - 미국
하루를 벌었다. 8월 7일 일기 다음에 8월 7일을 또 써야 한다. 이상하다. 그런데 어떻든 날짜는 뒤로 가야 한다. 시간도 뒤로 간다는 말인가?
뉴욕 공항에 내리기 40여 분전 비행기 아래로 미국 땅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평화롭게 보였다. 14시간의 강행군 끝에 한국시간으로 8월 8일 새벽 1시, 이곳 뉴욕 시간으로 8월 7일 12시 경에 존에프케네디(JFK)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 출국 수속에서 말썽이 생겼다. 우리 일행 3팀은(7명) 식구별로 출국 수속을 마쳤다. 내가 가장 먼저 14번 줄에 섰는데 끝난 것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우리 줄 처리하는 직원이 멀리서 보기에도 서투른 것 같고, 앞 사람들 처리하는데 시간을 지연시키더니 기어코 事端(?)을 냈다.
큰 동서, 작은 동서는 다른 줄에서 이미 끝나고 나갔는데 14번 줄에 서 있던 나는 가장 늦게 ‘Next”라는 호명과 함께 나와 아내, 그리고 리아 이렇게 3명이 서있게 되었다. 재영이 편지와 청첩장을 보여 주었지만 그로 인한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나 먼저 좌측 검지, 오른 쪽 검지 그리고 사진을 찍고 마친 후 나갔다. 그리고 아내와 리아 둘이서 수속 중인 것을 보면서 기다리는데 큰 동서가 가방부터 찾으라고 한다.(본인이 리아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나는 수하물 내리는 트랙에서 가방을 찾고 있었다. 비슷비슷한 가방이 몰려오니 여러 바퀴가 돌고 나서야 가방 3개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다음 번 여행시에는 커다란 칼라 수건 같은 것으로 묶어 놓아야 하겠다.
그런데 가방을 찾는 중에 아내와 리아가 수속 중이던 창구에서 컴퓨터 에러가 발생해서 창구를 옮겨 재수속을 해야 했던 모양이다. 출국 수속 서류에는 동행가족이 1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내 밖에 없으니 새로운 담당자가 시비를 붙였나 보다. 내가 없던 상태에서 해결이 안되니 아내는 대기줄에서 다시 뒤로 밀려 나게 되었고 대단히 당황을 했나 보다. 당황을 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정을 알고 난 후에도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출국 수속절차와 서류 기재방식에 서툴렀던 것과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즉 영어 구사능력이 문제였다.
(교훈)
1.모든 프로세스가 다 마칠 때까지 동행 집단에서 이탈하지 말 것
2.여행 종료시까지 모든 자료, 서류를 버리지 말 것
3.언어 구사능력, 특히 영어 실력을 키울 것
이런 저런 사정으로 출국 수속에만 1시간 정도를 소비한 것 같다. 공항에서 사전에 전세 낸 25인승 버스를 탄 것이 오후 2시쯤 되었을 것이다.
JFK 공항(펀사진)
공항에서 프로비던스로 이동하는 길은 너무 비슷한 풍경이 계속 스쳐간다. 도로 양편으로 무성한 활엽수, 프로비던스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소나무도 보였다. 가끔 드러나 보이는 대서양의 펼쳐진 모습과 중간중간의 호수(?)와 강들,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전세 25인승 버스 기사는 한국 사람으로 프로비던스는 초행길이란다. 가도가도 나오지 않는 프로비던스, 다소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비던스에 들어와서도 길을 못찾아 호텔 근처를 3~4번 돌아다녔다. 호텔은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웨스틴 호텔이었다. 도착시간은 6시 30분경 이었을 것이다.
Westin 호텔
(펀 사진: 현재는 옴니 호텔로 바뀜)
존과 존의 부모, 재영이가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만남의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7시경부터 호텔 내부의 식당에서 환영연이 있었다. 해산물과 스테이크, 그리고 후식의 순서로 식사하는데 음식 나오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피곤해서 졸음이 엄습해 왔다. 사돈댁과의 첫 만남, 환영하는 자리인데 피곤한 기색 보일 수 없어, 허벅지를 계속 꼬집으며 졸음과 전쟁을 벌였다.
비행기 14시간, 버스 4시간 등을 포함해서 20시간이 넘는 강행군 끝인데 식사 자리에 앉으니 좌불안석이다. 게다가 의사소통까지 불편하지 않은가. 영어 대화는 한 문장 아니면 토막 단어 나열식이다. 한 마디 한 후 침묵, 무척이나 어색하고 힘들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멋진 저녁 만찬을 차려 놓았지만 밥맛이 맛이 아니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존의 어버지와 어머니는 화목하고, 경우 바른 사람으로 보여졌다. 특히 존 엄마는 식당에서도 종업원이나 다른 손님들과도 대단히 활달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떻든 오늘 너무 늦게까지 환영식을 한 것은 너무 힘들었다.
<크고 작은 차이와 문화 충격>
1.호텔 식사 인원 중 존의 대학원 친구, 그러니까 재영의 친구도 되겠지만 두사람의 남녀가 있었다. 둘은 연인의 관계인 듯 했다. 대단히 가까운 관계로 생각되었고 그러려니 했다. 식사 중 처음 한시간여는 건전하게(?) 어울려 식사를 하는 듯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장난이 아니다. 포옹하고, 뽀뽀하며 서로에 열중하는 것 아닌가. 하필이면 그 정면에는 교장선생님, 큰 동서가 있었는데 민망했다고 한다. 여자 아이는 가슴까지 환히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2.그런데 마지막 후식 후에 계산서가 나오는데 존과 그의 친구가 나누어서 계산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자기 2명의 것을 계산했다고 한다. 친구 축하하러 참석해서 자기도 먹고 즐겼으니 두 사람 몫은 자기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인가? 존의 부모는 당연한 문화(?)로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재영이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존의 남자 친구는 페루 국적으로 직장이 있는 플로리다에서부터 일부러 온 것이라 한다. 친구의 역할은 신랑의 대표 들러리였고, 돈을 낸 것은 음식료 중 음료 부분을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와인을 여러 잔 마신다고 생각했다. 어떻든 친구 결혼식 참석을 위해 휴가를 내어 찾아온 것은 대단한 것이다)
3.호텔에 들어가니 슬리퍼가 없었다. 화장실에는 바닥 부분에 배수구가 없다. 구두 신고 돌아다니라는 말이다. 구두에 흙을 묻힐 일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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